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SPECIAL] 뮤지컬 VS 뮤지컬영화④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정교해진 서사로 완성된 이야기 [No.221]

글 |조용신(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쇼노트 2023-03-09 1,051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정교해진 서사로 완성된 이야기

 

브로드웨이 뮤지컬 황금기인 1957년에 초연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미국 고전 뮤지컬의 대표작 중 하나다. 뮤지컬의 인기에 힘입어 1961년 작품의 오리지널 안무가 겸 연출가인 제롬 로빈스와 영화 감독 로버트 와이즈가 공동 연출로 참여한 뮤지컬영화가 개봉했다. 이후 60여 년이 지난 2021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새로운 버전의 뮤지컬영화를 발표했다. 

 

 

고전을 보는 새로운 시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을 도시 개발이 한창인 뉴욕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반목하는 이탈리아 귀족 몬터규와 캐풀렛 가문은 뉴욕 웨스트 사이드 거리의 주도권을 놓고 싸우는 폴란드 이민자 제트파와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샤크파로 치환했다. 당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매우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댄서 출신의 안무가 겸 연출가 제롬 로빈스는 안무와 연출을 하나로 결합하고, 춤으로 스토리텔링을 전달하는 작품을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작가 아서 로렌츠와 작사가 스티븐 손드하임은 뮤지컬 코미디가 주류인 브로드웨이에 비극적인 서사를 도입했고, 뉴욕 필하모닉 상임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은 클래식과 재즈가 혼합된 음악을 선보였다.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1961년 뮤지컬영화는 캐릭터 해석 및 줄거리 등을 원작 뮤지컬과 거의 동일하게 유지한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면, 바로 캐스팅이다. 뮤지컬은 마리아, 베르나르도, 아니타 등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역할에 되도록 라틴 아메리카계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다. 하지만 뮤지컬영화에서는 배역과 배우의 인종 논란이 일었다. 마리아 역을 맡은 톱스타 나탈리 우드는 러시아계 혈통으로, 원작 희곡의 줄리엣을 떠올리게 하는 백인이었다. 베르나르도 역할을 맡은 조지 샤키리스는 그리스 이민자 2세였는데, 라틴계처럼 보이기 위해 태닝 분장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서야 했다. 2021년 스필버그 버전의 뮤지컬영화에는 배역에 맞는 라틴 아메리카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데 긴 시간을 들이고,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장면을 넣어 현실감을 더했다.

 

더욱 선명해진 캐릭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원작 뮤지컬의 기본 틀을 지키면서도 많은 변화를 꾀했다. 가장 큰 변화는 등장인물 각각의 사연을 정교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우선 뮤지컬의 주인공 토니는 원작의 로미오에 비해 사랑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귀족 자제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던 로미오와 달리 토니는 하루하루가 고달픈 가난한 청년이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토니가 갑자기 사랑의 화신으로, 평화의 전도사로 변신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또 원작 뮤지컬에서는 그가 과거에 어떤 인물이었는지 뚜렷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필버그 영화에서 토니는 현실적인 상황과 목표를 가진 인물로 다시 태어났다. 영화의 토니는 과거 패싸움에 연루되어 1년간 소년원에 구금된 후 가석방으로 풀려나 발렌티나의 가게에서 일하며 새 출발을 하려고 한다. 이 설정으로 토니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목표와 욕망을 가진 인물이 되었고, 제트파와 샤크파가 화해하도록 노력하는 그의 행동은 당위성을 갖게 됐다. 


토니뿐만 아니라 푸에르토리칸 배역들도 캐릭터성이 더욱 선명해졌다. 마리아는 천사처럼 순수한 모습을 벗어났다. 토니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하고 먼저 키스를 할 정도로 당찬 성격으로 바뀌었다. 베르나르도에게는 권투 선수라는 설정이 주어졌다. 푸에르토리칸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는 자신의 특기인 권투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베르나르도의 연인 아니타는 강단 있는 인물로 거듭났다. 사람들의 말보다는 자기의 생각과 판단으로 행동한다. 아메리칸드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아니타는 베르나르도를 사랑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결혼하자는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토니를 살해하는 치노는 원작 뮤지컬에서 샤크파 일원으로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갱단과는 관련 없는 사무직 종사자로 등장한다. 미래에 대한 뾰족한 대책 없이 싸움만 일삼는 샤크파와 달리 안정된 삶을 살 기회가 있었던 치노가 살인자로 추락하는 장면은 뮤지컬보다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성별의 변화가 가져온 새로운 의미 


제트파 중에는 남자 무리에 섞이고 싶어 하는 여성 캐릭터 애니바디스의 변화가 눈에 띈다. 무대에서는 남성처럼 꾸민 여성 배우가 애니바디스를 연기하는데, 스필버그의 영화에서는 실제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배우 아이리스 메나스가 애니바디스를 연기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애니바디스는 제트파의 일원이 되고 싶어 했고, 그가 바란 대로 결국 제트파에게 인정받는다. 하지만 제트파가 아니타를 희롱하는 장면에서 제트파와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호전적이고 파괴적인 남성성에 반대되는 새로운 미래를 암시한다. 


영화에는 뮤지컬에 없는 새로운 인물도 추가됐다. 뮤지컬에서 오갈 데 없는 토니를 거두어준 닥 아저씨 대신 등장하는 발렌티나다. 닥 아저씨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지만 제트파와 샤크파의 싸움을 말릴 의지도 힘도 없다. 푸에르토리칸인 발렌티나는 백인 닥과 결혼한 인물로, 남편과 사별한 후 그의 뒤를 이어 잡화점을 운영 중이다. 발렌티나는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엄격하게 젊은이들의 멘토 역할을 하며 샤크파는 물론 제트파에게도 존경받는다. 뮤지컬에서 토니와 마리아가 사랑의 도피처를 꿈꾸며 부르는 노래 ‘Somewhere(어딘가)’는 영화에서 발렌티나가 마리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읊조리듯 부르는 곡으로 바뀌었다. “우리를 위한 곳이 있어, 어딘가 우리를 위한 곳이 있어”라고 노래하는 이 곡은 주체가 바뀌면서 해석도 완전히 달라졌다. 발렌티나의 ‘Somewhere’는 자신을 포함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 다시 말해 잊히기 쉬운 ‘언더독’ 집단에 대한 위로의 정서를 전한다. 또한 낯선 땅에 온 이민자들에게 절실한 소속감 혹은 편안한 ‘집’으로 상징되는 안전한 미래를 갈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찬가로도 해석될 수 있다. 여담으로 발렌티나를 연기한 리타 모레노는 실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출신으로 1961년 영화에서 아니타 역을 맡았다.
 
스필버그의 영화가 뮤지컬에 비해 한층 더 명확한 서사를 갖추게 된 데에는 각색자로 참여한 작가 토니 커쉬너의 역할이 컸다. 토니 커쉬너는 그의 대표작인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를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 미국의 본질을 탐구해 온 작가로, 다양성과 자유를 기반으로 건국된 미국에서 이민자 혐오와 문화 갈등, 잘못된 애국심 등의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강화되고 있음을 비판해 왔다. 이러한 기조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각색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는 영화를 각색할 때 되도록 현실을 반영하려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토니 커쉬너에게 영화가 이민자, 인종 차별 그리고 외국인 혐오에 대한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영화는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원작 뮤지컬과 1961년 뮤지컬영화에서는 다소 불완전했던 서사가 2021년 영화에서는 보다 명확하게 정리되었다. 무대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는 전혀 다른 텍스트이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불가하지만, 스필버그의 영화는 원작이 미처 담지 못했던 많은 정보와 정서를 담아내 작품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Film vs Musical

 

 

Something′s Coming
토니가 고심 끝에 무도회에 함께 가자는 리프의 제안을 수락한 후 홀로 ‘무언가 일어날 것 같다’며 기대에 차 부르는 노래다. 이때 가사의 ‘무언가’는 실체가 막연한데, 극이 진행되고 토니가 마리아와 사랑에 빠지면서 앞서 노래한 무언가는 사랑을 지칭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영화는 토니가 리프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으로 설정을 바꾸고 발렌티나와 대화하는 장면을 추가했다. 발렌티나는 토니에게 과거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한다. 이 대화 뒤에 ‘Something′s Coming’이 바로 이어져 마치 발렌티나에 말에 대한 토니의 화답처럼 들린다. ‘무언가'는 새로운 미래를 의미하며, 싸움을 멀리하고 새 출발을 해보려는 토니의 목표 의식이 노래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 

 

 

America
뮤지컬의 ‘아메리카’는 푸에르토리칸 여자들이 모여 고향에 대한 향수와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동경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서로 대결하듯 부르는 곡이다. 영화에서는 베르나르도와 아니타로 대표되는 남녀의 대결로 바뀌었다. 스필버그 감독은 이 노래를 여러 장소를 이동하며 부르는 것으로 연출했다. 아니타의 집에서 출발해 웨스트 사이드 곳곳을 누비는 카메라는 도시 개발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이민자들의 시위 모습 등 당시 이민자의 현실을 포착한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 도로 한복판에서 라티노 커뮤니티가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장면을 삽입해 이 곡이 단순히 남녀 간의 말다툼이 아닌 저마다의 꿈과 희망을 대변하는 것처럼 표현했다. 

 

 

Gee Officer Krupke!
샤크파가 자신들이 갱단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불우한 가정사나 사회의 무관심을 우스꽝스러운 역할극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뮤지컬에서 이 장면은 마치 보더빌 쇼처럼 풍자적이면서 독립적인 장면으로 연출되었는데, 베르나르도가 사망한 이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샤크파가 웃고 떠들며 노래를 부른다는 설정이 다소 어색했다. 영화에서는 제트파와 샤크파의 패싸움 이전으로 노래 위치를 변경해 극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장면 이동으로 “사회가 자신들을 제대로 대우했다면 다가올 비극을 피할 수도 있었다.”라는 가사가 새롭게 부각되며 앞으로 다가올 이야기의 복선으로 기능한다. 

 

 

One Hand, One Heart
뮤지컬에서는 무도회장에서 서로 첫눈에 반한 토니와 마리아가 마리아의 집 발코니에서 짧은 만남을 갖는다. 그리고 다음날 마리아가 일하는 의상실에서 데이트하며 ‘One Hand, One Heart’를 부른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결혼에 골인하는 달콤한 상상에 빠진다. 영화에서는 성당을 개조한 박물관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 토니가 마리아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면서 이 곡을 부른다. 과거 성당이었던 장소의 신성한 분위기는 이들이 스스로 결혼식을 올렸음을 암시한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토니는 패싸움에 총을 사용하려는 리프를 적극적으로 말리는데, 앞서 마리아와의 사랑의 맹세가 토니의 행동에 확실한 동기를 부여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1호 2023년 2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