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노이즈 : 닐 다이아몬드 뮤지컬>
올드 팝 황제의 삶을 무대로
현재 브로드웨이에서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약진이 유독 눈에 띈다. <물랑루즈!> <앤줄리엣> <뷰티풀 노이즈 : 닐 다이아몬드 뮤지컬>(이하 <뷰티풀 노이즈>)가 관객의 호평 속에 공연 중이고, 올해 두 편의 주크박스 뮤지컬 <원스 어폰 어 원 모어타임>, <댄싱>이 개막을 앞두고 있다. 익숙한 음악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은 대중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어 흥행에 실패할 우려가 적다는 게 장점이다. 2022년 여름 보스턴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마치고, 12월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뷰티풀 노이즈>도 관객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순항 중이다.
©Julieta Cervantes
싱어송라이터 닐 다이아몬드의 인생사
공연 시작 전 객석에 불이 꺼지면 마치 콘서트장에서 들을 법한 관객의 함성이 극장을 가득 메운다. 신나는 뮤지컬 넘버로 극이 시작되리라는 기대감이 무색하게 조명이 켜진 무대 위에는 안락의자에 앉은 현재의 닐 다이아몬드와 그의 정신과 주치의 닥터가 앉아 있다. 닐은 부인 케이티 때문에 이 자리에 온 것일 뿐 하고 싶은 말이 없다고 한다. 덧붙여 자신은 오직 노래로만 자기 이야기를 한다며 선을 긋는다. 이에 닥터는 닐 다이아몬드의 노래 가사를 엮어 만든 책을 가져와 책 속의 노래에 얽힌 이야기부터 해보자고 제안한다. 몇 주째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던 닐이 자신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드디어 입을 열고, 시간은 곧 그가 싱어송라이터로 커리어를 시작한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루클린 출신의 작곡가 닐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쓴 곡을 들고 당대 최고의 음악 프로듀서 엘리 그리니치를 찾아간다. 닐의 노래가 마음에 들었던 그리니치는 곧장 그를 작곡가로 고용한다. 닐이 가수들 앞에서 시범 삼아 노래하는 것을 본 그리니치는 그에게서 싱어송라이터의 가능성을 본다. 그리니치는 닐에게 연습 삼아 작은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해 보라고 제안하고, 닐은 자신이 쓴 노래 ‘Solitary Man(고독한 사내)’을 부른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거라던 닐의 예상과 달리 그의 기타 연주와 노래가 이어지자 카페 손님들은 그에게 빠져든다. 닐의 재능과 외로움을 한눈에 알아차린 웨이트리스 마샤는 닐에게 신나는 노래와 연주를 장기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닐은 자신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마샤와 점점 가까워진다. 라이브 카페 공연 이후 닐은 가수로 점점 빛을 발하고, 동시에 마샤와 행복한 날들을 이어간다. 하지만 범죄 조직과 연루된 음반사와 계약을 파기하려다가 도리어 목숨의 위협을 받고 숨어 지내는 신세가 된다. 닐은 어려운 상황에서 그의 대표곡인 ‘Sweet Caroline(스위트 캐롤라인)’을 탄생시킨다. ‘Sweet Caroline’의 성공으로 닐은 콘서트 투어를 다니며 가수로서 입지를 더욱 단단하게 다진다. 하지만 닐의 성공은 마샤를 외롭게 만든다. 바쁜 일정 탓에 함께 시간을 못 보내는 것을 만회하려고 값비싼 선물을 보내는 닐과 선물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했던 마샤는 조금씩 멀어진다.
마샤와의 이별을 회상하던 현재의 닐에게 닥터는 왜 그의 노래에는 외로움이 가득한지 묻는다. 러시아 이민자 출신의 소심하고 예민한 소년이었던 닐은 자신의 깊은 고독과 우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음악으로 소통해 온 인생을 되돌아본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소년과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올드 팝의 황제 사이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더 이상 무대에 서지 못할지라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며 <뷰티풀 노이즈>의 막이 내린다.
팬들에게 헌정하는 무대
닐 다이아몬드는 미국의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으로 꼽히며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아티스트다. 그는 1984년 미국 작곡가 명예의 전당과 201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2012년에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올렸다. 1941년생인 닐 다이아몬드는 1966년 첫 싱글 「Solitary Man」을 발표하고 솔로 아티스트로 데뷔한 이래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갔지만, 2018년 파킨슨병의 악화로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닐 다이아몬드의 일대기를 그의 노래와 함께 풀어낸 <뷰티풀 노이즈>는 <스프링 어웨이크닝> <아메리칸 이디엇> 그리고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퍼니 걸>의 연출가 마이클 메이어가 연출을 맡았다. 대본은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 <보헤미안 랩소디>, 연극 <두 교황>으로 잘 알려진 작가 앤소니 맥카튼이 썼다. <뷰티풀 노이즈>는 앤소니 맥카튼의 첫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작품의 제목은 닐 다이아몬드가 자신이 자란 도시 뉴욕의 소음에 보내는 찬가 ‘Beautiful Noise(아름다운 소음)’에서 따왔다. 이 노래는 뮤지컬 오프닝곡으로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뷰티풀 노이즈>는 의사의 권고로 콘서트 투어를 중단하고 우울감에 빠진 현재의 닐이 정신과 주치의와 상담하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구조다. 과거 회상 장면이 작품의 주를 이루는 가운데, 닐이 닥터와 이야기를 나누는 현재로 돌아와 과거 장면에 설명을 덧붙이며 이해를 돕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연출은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주크박스 뮤지컬에서는 흔한 연출 방식이지만, <뷰티풀 노이즈>는 한 무대에 과거와 현재의 인물을 동시에 배치하고 종종 현재의 닐이 과거의 장면에 개입하는 방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 마샤 때문에 전 부인과 이혼하게 된 상황에서 과거의 닐이 무릎을 꿇고 애원할 때 현재의 닐이 그 뒤에 똑같이 무릎을 꿇는다거나, 범죄 조직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음반사와 계약하는 장면에서 현재의 닐이 개입해 서명하려는 손을 막는 식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 만약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표현하기 위한 연출이라고 볼 수 있지만, 과거 회상 장면에 난입하는 현재의 닐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아 아쉬웠다.
많은 평론가가 <뷰티풀 노이즈>의 단점으로 드라마의 강약 부족을 꼽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닐 다이아몬드의 인생은 대체로 평탄했다. 그는 방탕한 록스타도 아니었고, 인생을 바꿀만한 역경과 시련도 겪지 않았다. 그래서 작품은 이야기보다는 닐 다이아몬드의 명곡을 잘 배치해 관객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전략을 택한다.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는 닐 다이아몬드가 그의 팬들에게 노래를 헌정하는 장면들이 다수 이어진다. 이런 장면에서는 조명이 아예 객석을 비추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한다. 1막 마지막곡인 ‘Sweet Caroline’의 전주가 시작되면,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부른다. 백발이 성성한 관객이 그 순간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작품이 평단의 미지근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순항 중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다.
©Matthew Murphy
돋보이는 무대와 의상 그리고 배우
대체로 평탄했던 닐 다이아몬드의 삶의 궤적을 충실히 따라가는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무대와 의상이다. <쉬 러브즈 미>로 토니상, 드라마 데스크상, 외부 비평가상을 모두 휩쓴 데이비드 록웰은 싱어송라이터 닐 다이아몬드의 상징인 기타를 모티프로 한 무대를 선보였다. 기타 줄을 연상케 하는 구조물로 장면과 공간을 구분하고, 이동식 소형 무대와 소품으로 무대 위에 다양한 공간을 구성한다. 닐 다이아몬드가 가수로서 성공할수록 무대는 점점 화려해지는데, 2막에서 닐 다이아몬드가 월드 투어를 다니는 장면은 무대 위 3층짜리 구조물 위에 자리한 12인조 밴드와 객석을 향한 강렬한 조명으로 구현한다. 신나는 비트의 노래 ‘Crunch Granola(크런치 그래놀라)’를 부를 때는 배우들은 물론 구조물이 앞으로 진출해 객석 가까이 위치한다. 관객들은 점점 고조되는 음악과 에너지를 만끽한다. 데이비드 록웰은 쿠바 출신의 미국 가수 글로리아 에스테판의 이야기를 다룬 주크박스 뮤지컬 <온 유어 핏!>의 무대 디자인도 맡았었는데, 같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에밀리오 소사가 <뷰티풀 노이즈>의 의상을 디자인했다. <온 유어 핏!>에서 1990년대 레트로 스타일의 의상을 선보여 외부 비평가상 후보에 오른 바 있는 에밀리오 소사는 닐 다이아몬드가 활동했던 시대를 의상으로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로큰롤 하면 떠오르는 몸에 꼭 끼는 상의와 통바지, 그리고 원색의 원단에 반짝이를 붙인 화려한 무대 의상까지 다양하게 선보인다.
주크박스 뮤지컬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노래다. 닐 다이아몬드의 노래는 대부분 솔로 발라드곡이기에 뮤지컬은 닐 다이아몬드의 노래가 절정에 다다를 때쯤 앙상블이 백업 코러스로 함께 노래하며 춤을 추는 방식으로 장면을 연출한다. 하지만 이런 장면이 반복되면서 단조로운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대신 배우들의 호연이 극의 단조로움을 보완한다. 과거의 닐 역할로 극을 이끌어가는 윌 스웬슨과 마샤 역할을 맡은 로빈 허더가 보여주는 노래와 춤은 일품이었다. 윌 스웬슨은 <헤어>의 버거,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외에는 크게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배우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자신의 개성과 재능을 십분 발휘하며, 올해 토니상을 노려볼 만한 호연을 펼쳤다. 로빈 허더는 <물랑루즈!>의 오리지널 니니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 토니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그녀는 유혹적이며 에너지 넘치는 마샤 머피에 적역이었다. 마샤는 원곡을 빠른 템포로 편곡한 ‘Song Sung Blue(우울한 노래)’를 부르며 닐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만, 마샤의 밝고 희망찬 모습과 대비되는 가사는 그녀의 앞날이 밝지 않으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결국 두 사람은 닐과 마샤의 이별 장면에서 관객의 눈물을 쏙 빼놓는다. 이때 부르는 노래는 1978년에 발표한 닐 다이아몬드와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의 듀엣곡 ‘You Don't Bring Me Flowers(넌 네게 꽃을 주지 않아)’다. 사랑 표현으로 해왔던 행동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연인의 이야기인데, 그중 하나가 제목처럼 남자가 여자에게 더 이상 꽃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닐 다이아몬드가 쓴 가사는 시적이기보다 직관적이고 현실적인데, 이 곡 역시 멀어진 연인의 모습을 에둘러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극초반에 현재 닐이 자신은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노래 가사로만 이야기한다고 했던 말이 대번에 이해되는 곡이다. 이 장면에서 윌 스웬슨과 로빈 허더의 아름다운 하모니가 두 사람의 이별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내 안의 나와 화해하는 법
<뷰티풀 노이즈>에는 이렇다 할 갈등 구조나 사건이 없다. 닐 다이아몬드의 인생에서 사건이라고 불릴만한 것은 세 번의 결혼이지만, 결혼과 이혼은 그에게 특별한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려갈 때마다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외부의 무엇이 아니라 자기 안의 외로움이다. 닐 다이아몬드는 천성적으로 우울하고, 슬픈 감정에 끌리는 사람이었다. 데뷔 초 신나고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로 인기를 끈 닐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외로움을 음악으로 승화시켜 보려고 하지만, 음반사에서 허락하지 않는다. 이에 반발한 닐 다이아몬드는 음반사와 계약을 파기하려다 생명의 위협을 받지만, 이때도 그를 괴롭힌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닌 외로움이었다. 닐 다이아몬드가 왜 그렇게 외로움을 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공연 후반부에 드러난다. 러시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닐은 방에 틀어박혀 상상 속의 친구와 대화하고 좀체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또래 아이들과 달라 늘 부모님의 걱정거리였던 닐 다이아몬드는 자신은 이상한 사람이며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항상 외로워한다. 이러한 생각에 휩싸여 평생을 살아온 닐의 마음은 ‘I Am… I Said(나는 말했어요)’의 가사에서 잘 드러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마음속에는 늘 공허함이 존재하는, 그래서 자신에 대해서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노래인데, 닐 다이아몬드가 바라보는 자기의 모습이다. 노년에 이르러 무대에 설 수 없게 된 닐 다이아몬드는 늘 대중에게 사랑받는 매력적인 남자와 늘 외로움을 타는 남자 사이의 괴리를 더욱 크게 느낀다. 하지만 현재의 닐은 상담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며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 <뷰티풀 노이즈>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현재의 닐과 과거의 닐이 서로를 바라보며 ‘I Am… I Said’를 함께 부르는 것으로 끝난다. 드디어 자기 자신을 똑바로 보게 된 닐 다이아몬드를 통해 이 작품은 관객에게 진짜 자신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2호 2023년 3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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