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헤세
성장하는 청춘들의 기록
헤르만 헤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청춘’이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대부분 막 피어나는 청춘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젊은 날의 방황과 고민을 통해 점차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영원한 청춘의 작가, 헤세의 삶과 작품 세계를 간략하게 들여다본다.
평생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구도자
헤세는 1877년 독일 서남부의 작은 도시 칼브에서 기독교 선교사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엄격한 아버지와 신학교의 억압적인 환경 속에 힘들어하던 헤세는 강압적인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했고, 결국 학교를 나와 서점의 수습 직원과 시계 공장 직원으로 일하며 스스로 문학적 소양을 쌓아갔다. 1899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1904년에는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로 이름을 널리 알리며 작가로서 지위를 확고히 했다. 헤세는 평생 어떤 종류의 전쟁에도 반대했으나 그의 조국 독일은 그의 생애 동안 두 번이나 전쟁을 벌였다. 제1차 세계 대전 기간에 헤세는 독일어 신문에 전쟁을 비판하는 수십 개의 기사를 발표해 배신자로 낙인찍혔고, 나치 치하에서는 출판이 금지된 유대인 작가 작품을 대중에게 알리는 등의 행보를 벌이다 자기 작품마저 모두 출판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헤세는 결국 독일 국적을 버리고 스위스인으로 살다 죽었다. 헤세는 대외적인 삶뿐만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아버지의 사망과 아내의 조현병, 아들의 병 등으로 심신이 쇠약해진 헤세는 커다란 정신적 위기에 빠졌고, 이때 의학심리학의 대가 융을 만나 정신 치료를 받는다. 융과의 만남과 정신 치료는 이후 헤세의 삶과 작품 세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신 치료를 받으며 헤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문학 활동과는 별개로 그의 그림 활동 역시 상당한 수준과 컬렉션을 자랑한다. 인생의 후반부에 헤세는 집필과 그림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정원을 가꾸며 조용한 삶을 살다가 85세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시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결코 평탄하지 않은 삶이었으나 평생 오로지 예술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자아를 찾는 데 매진했던 헤세의 구도자의 삶과 같은 인생은 그 자체로 잔잔한 감동을 준다.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만남
평생에 걸쳐 자아와 세계의 불화를 겪은 탓인지, 헤세의 작품에는 유독 서로 다른 세계를 상징하는 두 인물이 만나고 충돌하는 이야기가 많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기벤라트와 헤르만 하일러,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중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의 자전적 요소가 짙은 작품이다. 헤세의 신학교 시절 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된 이 작품은 여리고 섬세한 정신의 소유자 한스가 아버지와 학교의 기대에 억눌려 살다가 자유분방한 기질의 헤르만을 만나 새로운 삶에 눈을 뜨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헤르만이 강제 퇴학당한 이후 한스는 학교를 나오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무리한다. 한스는 수레바퀴처럼 개인을 짓누르는 사회의 억압에 의한 희생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데미안』의 싱클레어 역시 한스의 고통과 정신적 방황을 이어받은 주인공이라 할 수 있지만, 데미안이라는 영적 동반자를 만남으로써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새로운 삶의 길을 걷게 된다는 점에서 작가 헤세의 내적 성장과 이후의 작품 세계를 예감할 수 있게 만든다. 한때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역시 차분하고 지적인 나르치스와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골드문트로 대변되는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만남을 보여준다.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과 소명, 그리고 신을 찾아 나선다. 나르치스는 평생 수도원 안에서 학문과 기도에 매진하며 신을 찾고, 골드문트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사랑과 불륜, 살인과 용서 등 수많은 사건과 관계 속에서 신을 만난다. 『수레바퀴 아래서』와 같은 초기작에서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만남은 충돌, 혹은 좌절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았지만 후기작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헤세는 두 주인공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서로의 존재에서 위안과 구원을 찾는 모습을 통해, 두 개의 다른 세계가 아름답게 만나고 서로를 지탱하는 조화로운 풍경을 구현해 낸다.
고통 속에 성장하는 삶과 영혼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작가 헤세의 자전적 경험과 삶의 일부가 녹아 있어서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 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헤세의 주인공들은 모두 삶이 주는 시련 속에서 끝없이 고통받고, 그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고자” 하는 헤세의 주인공들은 깨어지는 고통을 느끼고 때로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삶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의 작품 속 많은 주인공이 청소년인 이유는 바로 이 시기가 자신의 세계를 확립하는 시기이자, 그 과정에서 많은 깨어짐을 겪게 되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헤세의 작품들은 유달리 청소년기에 읽을 때 깊은 인상과 각인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도 평생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노력하고 길을 찾아 헤맨 헤세의 작품들은 그 자체로 세상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기 시작하는 청춘의 방황과 고통, 그 속에서 자라나는 성장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늘 자신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상과 불화를 겪고 고통을 느끼며 또한 그 속에서 다시 성장해 나갈 것이기에, 헤세의 문학은 인생이 지속되는 한 하나의 이정표로서 늘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참고 자료 『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저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3호 2023년 4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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