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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인터뷰] 죽을 때까지 배우, 정보석 [No.86]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장소협찬 | 슬로우 가든(02-762-7187) |의상협찬|갤럭시 2010-11-10 4,924

드라마 <자이언트>의 조필연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정보석. 그는 브라운관을 통해 만날 수 있고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배우지만, 그 누구보다 연극을, 무대를 사랑하는 배우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틈이 연극 무대에 서고 있는 배우. 국립극장 페스티벌 폐막작으로 선정된 <新시집가는 날>의 출연을 앞두고 있는 정보석을 만났다.

 

인터뷰하러 오기 전에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신 걸 봤어요. 도사에게 의뢰한 고민이 ‘뮤지컬을 하고 싶은데 음치에요’였더라고요. 저희가 만드는 게 뮤지컬 잡지잖아요.(웃음) 방송 후에 출연 제의를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하하하하. 이번에 할 뻔했어요. 노래 들어가는 건 도저히 안 되고, <코러스 라인>에서 노래 안 하는 역을 제의 받아 할 뻔했죠. (노래 못하면서 무대에 서는 배우도 많아요.) 아유, 말도 안 되지.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연습장도 가봤어요. 노래를 안 하는 대신 춤을 많이 추는데 감독이니까 한번 시범을 보여도 그 친구들보다 더 나은 자세가 나와야 하잖아요. 그게 자신이 없어서 안 했죠. 미국에서 온 연출이 내가 하면 춤도 빼주겠다고 했는데, 아니 그거 춤 빠지고 뭐 빠지고 하면 무슨 재미로 해요.(웃음)


인기 좋은 토크쇼에 출연할 만큼  ‘하이킥 보사마’로 전 세대의 사랑을 받았고, 방송에서 인기를 실감한다는 이야기도 하셨어요. 대중들에게 반응을 얻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꾸준히 해오던 일인데 어느 순간 ‘스타’처럼 주목받을 때, 좀 묘한 기분이 들지 않으세요?
감사한 일이죠. 고마운 일인데 의식하진 않아요. 그 호감이라는 게 내 것이 아니잖아요.  하이킥 속 정보석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감이고 반응이지 배우 정보석한테 주는 건 아니거든요. 배우로 열심히 살아가는 게 좋지, 그건 크게 의미 있는 일은 아니에요.


오랜만에 악당 연기를 하는 건 어떠세요? 정의도 믿지 않고, 오로지 이기는 것이 선이라고 믿는 조필연에 공감하세요?
공감 못하면 연기를 할 수가 없죠. 조필연은 남들이 다치든 말든 자기가 최우선이고, 자기 신념대로 밀어붙이는 인물인데 어느 조직에나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은 있잖아요. 지금까지 조필연에 공감이 안 됐던 부분은 없고, 오히려 좀 시원한 느낌이 있어요. 우리는 주변 눈치를 보고, 배려하느라 생각대로 못하는 게 많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그런 게 없으니까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시원시원하죠. 솔직히 부러운 마음도 있어요. 저렇게 한번 살아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젊은 시절에 거침없이 살아본 적은 없으세요? 많은 인기도 누리셨는데.(웃음)
일에 대해서는 많은 욕심을 냈지만, 그 밖의 것에 대해서는 크게 뭐…, 생각도 안 했죠. 연기한다는 게 정말 좋고 신났기 때문에 여기다 힘 다 쏟고 나면 다른 것에 쏟을 힘도 없고. 연기 외에 나머지 일들은 가급적이면 안 하고, 안 움직이고, 대충대충 했어요.


배우로 사는 즐거움으로 다른 인생을 살아 볼 수 있고 그래서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으로 산다는 게 뭘까, 확 와 닿지가 않더라고요. 자기를 대입해 연기할 텐데 그럼 결국 자기 자신이 아닌가 싶고요.
음, 옛날에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조금 싫었어요. 이해도 안 됐고. 배우가 딴 사람의 삶을 산다? 그 배우가 하는 거니까 결국은 자기 삶이지.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는 그 재미가 있어요. 내가 나 아닌 어떤 존재가 돼서 연기하는 느낌이 즐거워요. 아까 얘기했듯이 조필연이 거리낌 없이 시원시원하게 행동할 때 오는 카타르시스, 이건 내 식이 아니거든요. 나로서는 느끼지 못할 것을 그 사람을 통해서 보고, 느끼는 것들이 있어요. 근데 우리 공연 이야기 안 해요? 나 공연 이야기하러 온 건데.(웃음)


하하. 연극 얘기할 거예요, 해야죠. 지난해 공연했던 <新 시집가는 날>이 국립극장페스티벌 폐막작으로 선정돼 다시 무대에 오르신다고요. 그런데 작년에 이 작품이 공연됐을 때 엄청 바쁘셨을 때 아닌가요?
엄청 바빴죠. <지붕 뚫고 하이킥> 초창기였고, 하이킥 캐릭터에 도전 중이었는데 쉽지 않았어요. 그 작품을 했던 건 그 전년도에 계획이 세워졌던 거라 안 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오죽 힘들었으면 대장포진까지 걸렸겠어요.


전에 하신 인터뷰를 읽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약속이나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나 봐요.
약속 중요하죠. 하기로 한 건 지켜야지. 더구나 그건 어길 수 있는 약속이 아니었어요. 몸이 힘들어서 고생 좀 했는데 국립극장페스티벌에 뽑혀서 또 하게 됐죠. 솔직히, 작년에 했으니까 올해는 다른 작품을 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작년에 보시는 분들이 정말 즐겁게들 보셨어요. 입석 안 된다고 항의하고 그래서 국립극장 쪽에서 입석도 넣어주고 그랬다고. 그러니까 안 할 수가 없죠.


 

 

 

 

 

 

 

 

 

 

 

 

 

 

 

 

 

 

 

 

 

 

 

이번 공연은 작년 공연과 달라지는 것 없이 그대로 가나요? 작년에는 미언이 능구렁이 날라리처럼 보였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어…, 그랬죠. 왜냐하면 원래 <시집가는 날>에 있던 작은아버지 역할을 미언하고 합쳐놨거든요. 요번에는 전반적으로 느낌을 많이 바꿨어요. 내가 가장해서 맹진사네 잠복 들어 갈 때는 좀 능글능글하게 가고, 사랑을 찾아갈 때는 전통 멜로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방식으로 가요.


<新 시집가는 날>에서 졸업생 제자들과 한 무대에 선 것도 의미가 있었다고요. 학생들을 가르치신 지 벌써 10년이나 됐다고 들었는데, 10년 전에는 연예인이 교수가 되는 건 드문 일이었다면서요.
내가 늘 운이 좋다고 말하는 게, 교수하고 싶은 마음은 요만큼도 없었어요. 처음에 교수하자고 했을 때 내가 무슨 교수냐고 거절했어요. 그런데 좀 도와달래. 그러니까 했어요. 내가 귀가 얇고, 정에 약해요. 경험만 얘기해도 학생들한테는 큰 공부라는데 어떻게 경험만 얘기해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죠. 그런데 첫날 30분 얘기하고 나니까 할 말이 없는 거예요. 3시간짜리 강의인데.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이제부터는 사담할 테니까 안 들어도 되고, 출석 점수 다 줄 테니까 앞으로 수업 안 들어와도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반 정도는 열심히 나오다가 중간고사 지나고 나니까 진짜 안 나오는 거야. 나 때문에 다른 강좌에도 문제가 되는 것 같아 안 되겠다 싶어서 일년 약속한 거 채우고 사표를 냈어요. 근데 학교에서 그 학생들 졸업할 때까지만 있어 달라는 거야. 하지만 그 학생들 졸업한다고 끝나나요. 그 학생들 졸업할 동안 밑에 애들이 오는데. 다음 애들 때까지, 또 그 다음 애들까지, 그렇게 지금까지 온 건데 이제는 학교한테 정말 고맙죠. 

 

이번에도 시작은 약속이었네요.(웃음)
처음에는 약속 때문에 진짜 마지못해 했어요. 땅을 몇 번씩을 쳤죠.  내가 왜 이 사람 사정을 봐줘야지, 여기서 뭐하는 거지 하는 회의가 끊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내가 가르칠 생각을 하니까 문제였지, 학생들 스스로 하게끔 하면서 봐주니까 정말 재밌는 거예요. 재미만 있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내가 정말 많이 배워요. 얘들은 기발한 생각들을 해내니까. 옛날에는 촬영 핑계 대고 안 가기도 하고, 땡땡이도 치고 그랬는데 지금은 어떤 작품을 해도 이 날짜는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된다 딱 못을 박고 시작해요.


얼마 전 개막한 2인극 페스티벌의 조직위원장도 맡으셨더라고요. 위원장은 어떻게 맡게 되신 거예요?
그러니까 참 우연이었죠. 작년 초였나. 연극을 보고 나오는데 옆자리에 앉았던 남자가 연락처를 달래요.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연극 연출이래. 그러고 인사하고 헤어졌는데 이것 좀 해달라고 연락이 온 거예요. 좀 어렵다고, 도움을 받고 싶다고. 얘기를 들어보니까 혼자 8회를 끌고 오면서 고군분투했더라고요. 요즘 관객들은 버라이어티하고, 비주얼이 좋은 것들을 좋아하니까 흥행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행사는 아니지만 없어져서는 안 될 것 같고, 같이해서 도와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전 2인극이란 것 자체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두 명이라는 제한적인 인원으로 하기 때문에 제약보다는 오히려 상상력이 풍부해질 수 있고 연극적인 맛을 깊게 우려낼 수 있거든요.


연극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연극으로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고, 연극에 대한 애착 많죠. 성북동으로 이사 온 이유도 사실 연극 많이 하고 싶어서 온 거예요. 많이 보고, 많이 하려고.


연극영화과 출신의 배우들이 모두 연극에 애착을 갖는 건 아니잖아요. 특별히 연극을 사랑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드라마는 전체 대본이 나와 있는 게 아니라서 그 인물을 파고 들어가는 데 한계가 있어요. 그런데 연극은, 한 인물을 온전히 새로 만들어 낼 수가 있죠. 태어난 순간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내 느낌대로 창조를 할 수 있잖아요. 거기서 오는 맛이 좋고, 또 연극은 막이 오르면 기댈 곳이 사라지고 배역에 빠져야 하기 때문에 실제의 나를 홀라당 벗고 열정을 쏟아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하고 나면 정말 짜릿하죠. 어떤 것에 완전히 빠져들어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그 순간에 몰입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요. 사람이 도박에 미치는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 공연하는 두 시간 동안 완전한 집중 속에 있기 때문에 끝나고 나면 내가 뭔가를 진하게 살아낸 것 같고, 지금 살아있다는 게 확실하게 느껴지는 거죠. 그 맛이 연극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방송과 다르게 한 작품을 위해서 연습을 반복하면서 고민하고,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도 연극의 매력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굉장히 좋죠. 그래서 연극을 하고 나면 역할을 보는 느낌이 많이 달라져요. 안 해 본 경우에는 역할을 문자로 보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오늘 대본 나온 걸 내일 촬영해야 되고, 당장 촬영해야 되기 때문에 연구할 시간이 없으니까 이게 문자로 외워지지 인물의 내면 정서가 담긴 살아 있는 말로는 안 외워져요. 그런데 연극은 한 인물을 한두 달씩 연습하니까 다양한 각도에서 다 들여다볼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연극을 많이 하다 보면 대본을 정서로 보게 되지 책으로 안 본다는 얘기예요.


연극은 어떤 정서의 작품을 좋아하세요? 다양하게 즐겨보세요?
그렇죠. 연극뿐 아니라 방송도 그렇고, 장르를 가리진 않아요. 관객으로서 좋은 점이 뭐냐면 어떤 작품이든 보기 시작하면 흠뻑 빠져서 봐요. 그래서 다 재밌어요. 사람들이 그게 왜 재미있냐고 그러는데 나는 재밌어. 그래서 얘기하다가 재미없다고 하면 그래 알았어, 그러고 말아요. 나 혼자 재밌으면 되는 거잖아요. 나는 봐서 재미없는 작품이 없어요.


그럼 이것만큼은 꼭 하고 싶은데 아직 못 해본 작품이 있나요?
<햄릿>은 꼭 해보고 싶어요. 어떤 기자 양반하고 이거 갖고 싸운 적도 있어요. 지금은 굉장히 친하고 그때 얘기하면 막 웃는데, 내 나이에 무슨 햄릿이냐는 거예요. 안 된다는 거죠. 술 먹다가 얼마나 싸웠는지. 로렌스 올리비에는 마흔 살 넘어 햄릿하고 그랬어요. 영혼을 얘기하는 건데, 내 나이쯤 돼야 햄릿의 그 느낌을 표현하죠. 아직도 다 이해 못하는데. 아무튼 <햄릿>은 꼭 할 거예요.


인생의 절반을 배우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배우로 살아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평생 한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란 어떤 걸까요.
그냥, 꿈인 거죠. 그만큼 이 일이 재밌다는 거고. 죽을 때도 배우로 죽고 싶은 꿈, 그게 나를 지켰고, 나를 채찍질하게 하고, 열심히 하는 거죠.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6호 2010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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