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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AWARDS] 제76회 토니 어워즈 [No.226]

글 |여태은(뉴욕 통신원) 사진 | 2023-07-27 2,014

▲ 오프닝 무대를 여는 호스트 아리아나 드보스 ⓒTheo Wargo / Getty Images for Tony Award

 

 

대본 없는 시상식

 

지난 6월 11일, 유나이티드 팰리스 시어터에서 제76회 토니 어워즈가 열렸다. 유나이티드 팰리스 시어터는 <인 더 하이츠>의 배경인 워싱턴 하이츠 지역에 위치한 3400석 규모의 극장으로, 이곳에서 토니 어워즈가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시상식은 예년과 같이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먼저 OTT 플랫폼 ‘플루토TV’를 통해 생중계된 시상식 1부에서 디자인과 음악, 안무 부문 등의 시상이 이루어졌다. 이후 진행된 본 시상식은 지상파 방송사 CBS와 OTT 플랫폼 ‘파라마운트 플러스’를 통해 방영되었다. 


올해 토니 어워즈는 미국 작가 조합(WGA) 파업의 영향으로 대본 없이 진행되었다. 지난해에 이어 시상식 호스트를 맡은 아리아나 드보스가 오프닝 공연을 마친 뒤 올해 시상식에는 대본이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대본 없는 시상식은 건조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원래 시상식에서는 시상자끼리 가벼운 대화와 농담을 주고받곤 하는데, 올해는 시상자 대부분이 별다른 말 없이 속전속결로 후보 소개와 수상자 발표를 마쳤다. 베스트 뮤지컬상 후보작의 축하 공연에 앞서 작품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 역시 사라졌다. 대신 미리 준비한 공연 소개 영상과 짧은 인터뷰 영상을 송출했다.

 

 

▲ <앤줄리엣> 축하 공연 ⓒTheo Wargo / Getty Images for Tony Award

 

▲ 수상 소감을 말하는 <캄벌리 아킴보>의 프로듀서 데이빗 스톤 ⓒTheo Wargo / Getty Images for Tony Award

 

 

풍성한 축하 공연

 

그럼에도 시상식의 볼거리는 여느 때보다 풍성했다. 수상 후보작 위주로 축하 공연을 꾸렸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수상 후보에 오르지 않은 작품도 축하 공연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작년 봄에 개막해 올해 수상 후보 자격이 되지 않는 <퍼니 걸>과 비록 수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관객의 호응 속에 순항 중인 주크박스 뮤지컬 <뷰티풀 노이즈: 닐 다이아몬드 뮤지컬>의 축하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토니 어워즈는 전국에 방영되는 시상식인 만큼, 수상 여부를 떠나 시상식에 작품이 노출되기만 해도 엄청난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브로드웨이가 팬데믹 이후 예전만큼 관객 수를 회복하지 못했기에 토니 어워즈가 더 많은 작품에 홍보 기회를 준 게 아닐까.


수상 후보에 오른 <숲속으로> <앤줄리엣> <카멜롯> <킴벌리 아킴보Kimberly Akimbo> <퍼레이드> 등의 축하 공연도 이어졌다. <스위니 토드>는 주연과 앙상블이 함께 무대에 올라 오프닝 넘버를 합창했고, <셕트Shucked>는 대담하게도 주요 뮤지컬 넘버를 매쉬업해 선보였다. 지난해 <파라다이스 스퀘어>로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조아키나 칼루캉고는 지난 4월 브로드웨이에서 폐막한 <오페라의 유령>의 뮤지컬 넘버 ‘Wishing You Were Somehow Here Again’을 부르며 작고한 브로드웨이 인사들을 추모했다. 올해 공로상 수상자는 작곡가 존 칸더와 배우 조엘 그레이였는데, 이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아리아나 드보스와 1부 시상식 호스트 줄리안 허프가 <시카고>의 ‘Hot Honey Rag’ 장면에서 벨마와 록시가 추는 춤을 선보였다. 공로상을 받은 두 거장은 어깨동무를 하고 무대에 등장해 두 호스트를 안아주었다.

 

 

▲ 남우주연상을 받은 <뜨거운 것이 좋아>의 제이 해리슨 지  ⓒTheo Wargo / Getty Images for Tony Award

 

▲ 남우조연상을 받은 <셕트>의 알렉스 뉴웰  ⓒTheo Wargo / Getty Images for Tony Award

 

 

뮤지컬 부문 수상 결과

 

올해 토니 어워즈 뮤지컬 부문 최다 수상작은 5관왕을 차지한 <킴벌리 아킴보>(『더뮤지컬』 220호 NOW IN NEW YORK에 소개)다. 동명 연극을 뮤지컬화한 이 작품은 조로증을 앓고 있는 열여섯 살 소녀의 이야기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중 가장 규모가 작지만, 토니 어워즈에서 베스트 뮤지컬상, 극본상, 음악상, 여우주연상(빅토리아 클라크), 여우조연상(보니 밀리건)을 휩쓰는 저력을 과시했다. <킴벌리 아킴보>는 작곡가 지닌 테소리가 2015년 <펀 홈> 이후 8년 만에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린 작품인데, 그는 이 작품으로 <펀 홈>에 이어 두 번째 토니 어워즈 음악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13개 부문 후보로 지명되어 최다 수상 후보에 올랐던 <뜨거운 것이 좋아>(『더뮤지컬』 221호 NOW IN NEW YORK에 소개)는 안무상, 편곡상, 의상 디자인상, 남우주연상(제이 해리슨 지)을 차지하여 4관왕이 되었다. 마릴린 먼로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뜨거운 것이 좋아>는 우연히 살인을 목격하고 갱단에게 쫓기게 된 두 연주자가 여장을 하고 악단에 잠입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국내 공연 제작사 라이브러리컴퍼니가 공동 제작 및 투자한 작품이기도 하다. 


1998년 초연 이후 오랜만에 브로드웨이에 돌아온 <퍼레이드>는 베스트 리바이벌 뮤지컬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퍼레이드>는 1913년 유대인 공장장 레오 프랭크가 13세 직원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유죄 판결을 받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리바이벌 공연의 연출은 2015년 농인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데프 웨스트 시어터의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2017년 <원스 온 디스 아일랜드>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을 연출한 바 있는 배우 겸 연출가 마이클 아든이 맡았다. 그는 이 작품으로 첫 토니 어워즈 연출상을 거머쥐었다.  


이 밖에 조명 디자인상과 음향 디자인상은 <스위니 토드>에, 무대 디자인상은 <뉴욕, 뉴욕>에, 남우조연상(알렉스 뉴웰)은 <셕트>에 돌아갔다. 작곡가 헬렌 박이 아시아 여성 최초로 토니 어워즈 음악상 후보에 올랐던 <케이팝>을 비롯해 <숲속으로> <앤줄리엣> <올모스트 페이머스> <카멜롯>은 수상 후보에는 올랐으나 안타깝게도 수상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

 

 

▲ 연극 <레오폴슈타드>의 극작가 톰 스토퍼드 ⓒTheo Wargo / Getty Images for Tony Award

 

 

연극 부문 수상 결과

 

연극 부문 수상 후보작은 다양성이 돋보였다. 흑인의 이야기를 다룬 <에인트 노 모어Ain't No More> <비트윈 리버사이드 앤 크레이지Between Riverside and Crazy> <피아노 레슨The Piano Lesson>을 필두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흑인 퀴어 청년의 이야기로 각색한 <팻 햄Fat Ham>, 흑인 배우를 캐스팅한 <세일즈맨의 죽음>, 그리고 장애에 대한 이야기 <코스트 오브 리빙Cost of Living>이 수상 후보에 올랐다. <에인트 노 모어>는 공연 당시 큰 화제를 일으키고 토니 어워즈 6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나 안타깝게도 수상의 영예는 안지 못했다. 


빈에 살던 부유한 유대인 가족이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도망치는 이야기를 그린 <레오폴슈타드Leopoldstadt>는 웨스트엔드 공연 당시 올리비에 어워즈 작품상을 받은 데 이어 토니 어워즈에서도 베스트 연극상, 연출상, 의상 디자인상, 남우조연상(브랜든 우라노위츠)을 차지했다. <레오폴슈타드>의 극본을 쓴 톰 스토퍼드는 이로써 토니 어워즈에서 가장 많은 작품상을 받은 극작가가 되었다. 수상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그는 “극작가는 종종 먹이사슬의 끝에 위치한다”라며 챗지피티 사용과 작가에 대한 평가 절하를 비판하고 작가 파업을 지지했다. 


웨스트엔드에서 올리비에 어워즈 작품상을 받고 브로드웨이로 건너온 또 다른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도 무대 디자인상, 조명 디자인상, 음향 디자인상을 휩쓸었다.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퍼펫과 프로젝션 영상을 활용해 호랑이와 함께 태평양 한가운데 표류하게 된 소년의 이야기를 무대에 옮겼다. 베스트 리바이벌 연극상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형제의 삶을 그린 <탑독/언더독Topdog/Underdog>에 돌아갔다. 


남우주연상은 정신 질환과 약물 중독으로 고통받는 피아니스트를 연기한 <굿 나잇, 오스카>의 션 헤이즈가 차지했다. 시트콤 <윌 앤 그레이스>의 잭 역으로 유명한 그는 기존 이미지를 탈피해 예술가의 고뇌를 표현하고 뛰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까지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여우주연상은 일인극 <프리마 페이시Prima Facie>에 출연한 조디 코머에게 돌아갔다. 드라마 <킬링 이브>로 이름을 알린 조디 코머는 앞서 올리비에 어워즈에서도 <프리마 페이시>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다. 

 

 

논바이너리 배우들의 쾌거

 

올해 토니 어워즈는 다양한 인종의 창작자와 배우를 수상 후보로 선정했다. 하지만 수상 결과만 놓고 보면 여전히 백인 중심적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이 와중에 희소식은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모두 흑인 논바이너리 배우가 거머쥐었다는 것이다. 논바이너리 배우의 수상 여부는 후보가 발표되었을 때부터 초미의 관심사였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뜨거운 것이 좋아>의 제이 해리슨 지는 논바이너리 배우로서 무대에 오르는 일의 어려움을 언급하는 동시에 그를 믿고 배역을 맡겨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셕트>의 알렉스 뉴웰은 성별 구분 없이 배우Actor로 인정받고 싶다는 뜻을 밝혀 남우조연상Best Performance by an Actor in a Featured Role in a Musical 후보에 올랐고 수상의 쾌거를 거두었다. 그는 “뚱뚱한 흑인 논바이너리가 뭘 해냈는지 보라”는 수상 소감을 남겨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전했다.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인 연극과 뮤지컬이 더욱 다양한 삶의 모습을 포용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6호 2023년 7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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