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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연출노트] <무명, 준희> 종이비행기에 실린 마음

글 |이기쁨(연출가) 사진 |라이브러리컴퍼니 2025-02-27 1,656

 

뮤지컬 <무명, 준희>는 조선말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 글을 쓰는 것조차 어려운 시대 속에서 준희와 정우가 각자의 존재성을 찾아 헤매며 시인으로서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조명을 활용한 연출과 시적 감수성이 담긴 무대 디자인 등 시각적 요소가 준희, 정우, 연희 세 인물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관객에게 감동을 전한다. 

 

지난 1월 개막해 오는 4월 6일까지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2관에서 공연된다.  <무명, 준희>를 이끄는 이기쁨 연출가의 연출 노트를 함께 펼쳐 보자.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준희와 연희와 정우는 참으로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나비가 나릿나릿1) 날아가는 모습에 슬며시 웃음 짓다 종이 위에 사각사각 마음을 써 내려갔던, 그저 서로를 도타이2) 여기며 살아갈 줄로만 알았던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살았던 시절은 평범하지 않았죠. 1940년대 식민지 시절의 조선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매체가 금지되었고, 일제는 창씨개명과 강제징용을 시행하며 조선을 강제로 영구히 병합하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시절을 살아내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이 이야기를 받아 들고선 처음 했던 질문이었습니다. 제 삶을 돌이켜보면 무지했던 시간이 참 길었습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것이 공평하고 중립을 지키는 것이라며 입을 다물었던 시간이, 왜 굳이 과격한 언행으로 큰소리를 내어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의견을 얘기해야만 하느냐고 비난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몰랐거든요, 그렇게 크게 말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조차 지워져 버린다는 것을. 이들이 살았던 시절에도 분명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무지함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더는 똑같이 살 수 없습니다. 그 거무끄름3)한 곳에 다시 내 몸을 누일 순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준희와 연희와 정우는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고 끝내는 그 답을 찾아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단단함이 이 보드랍고 아름다운 노래 속의 굳센 심지가 되어 관객분들의 마음에 닿는 순간을 그렸습니다.

 

1) 우리말. 동작이 재지 못하고 좀 느린 모양.

2) 우리말. ‘서로의 관계에 사랑이나 인정이 많고 깊게’

3) 우리말. 조금 어둡게 거무스름하다.

 

 

종이비행기가 서로의 마음에 닿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던 준희에게 가장 익숙한 물건은 종이였을 겁니다. 준희는 마땅히 가지고 놀 것이 없었던 연희에게 종종 종이비행기를 접어주고, 연희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훨씬 무거워져 있는 마음들을 날아가는 종이비행기에 실어 날리며 미소 지었을 겁니다. 가장 흔한 것으로 만들어지는 가장 익숙한 놀이. 그것이 연희를 위로하는 준희의 방식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종이비행기’가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오브제가 되었습니다. <무명, 준희>의 세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건네고 그 마음으로 다시 일어설 이유를 찾는 관계성, 다시 말해 준희와 연희를, 연희와 정우를, 정우와 준희를, 다시 연희와 준희를 이어주는 그 관계성을 시각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은 이 이야기를 보고 계시는 관객분들로 향했습니다. 세 사람을 연결해 주던 종이비행기가 관객들을 향해 날아가며 준희와 정우의 시뿐만 아니라 ‘나로서 살아간’ 그들의 마음이, 그 시절에 존재했던 수많은 ‘무명’의 흔적들이 계속해서 앞으로, 현재로, 또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커튼콜의 마지막 순간이 만들어졌습니다.

 

 

깜빡이는 불빛이 이끄는 길

<무명, 준희>는 1944년,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취조당하는 준희의 회고록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준희의 삶을 돌이켜보며 그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생각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준희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정보들과 새롭게 받아들이는 현재의 정보들, 그리고 준희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던 것들, 또는 준희가 예측하고 바라는 것들에 대해 준희의 상상 속 존재인 정우와 연희의 ‘환영’과의 대화로 표현하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장면들을 실제 일어난 사건들과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각 인물의 주된 공간에 배치된 갓등의 깜빡이는 불빛으로 ‘환영’과의 장면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정우의 환영은 학교 창고 때 사용되는 기둥의 불빛을, 연희의 환영은 보육원 때 사용되는 무대 가장 뒤편의 갓등을 사용하였으며 감옥에서 풀려난 정우에게 보이는 준희의 환영은 준희가 시를 만나고 정우의 시를 채워나가는 공간인 책상의 갓등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시각적 표현이 준희와 정우의 고뇌 속에서 깜빡이는 불빛이 되어 서로에게 길잡이를 해주는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하였습니다.

 

 

조선어를 사랑하는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

<무명, 준희>의 매력 중 하나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무한히 곱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은유적인 표현으로 가득 찬 시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최대치로 가동 시킵니다. 순간의 예술인 뮤지컬에서 이런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공감각적으로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발화되는 말, 써지는 문자, 그려지는 그림이 본래의 형태와 목적이 아닌 또 다른 형태와 목적으로 뒤바뀌는 순간을 표현해 볼 수 있다면? 들리는 말이 눈으로 보이고, 그려지는 그림이 읽어내야만 하는 문자로 써지고, 쓰여진 문자가 그림으로 변화하는 순간이 공존한다면 좀 더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이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인물들이 낭독하는 시와 이들에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문자로 써지는 것, 그리고 이들이 거쳐 가는 공간의 이름과 그 공간의 상황, 상태를 표현하는 부가적인 설명을 당시 ‘금지된 언어’인 조선어로 써지고 그것을 다시 그림으로 변화시키는 등의 표현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감각적인 세상, 어쩌면 조선어와 시를 사랑하는 정우와 준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가장 격렬한 대비

정우와 준희는 매우 닮아있으면서도 매우 다른 사람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같은 것일지라도 가는 길의 모양도, 생의 마지막 모습도 다릅니다. 그런 두 명이 큰센바람4) 마냥 맞붙는 순간이 딱 한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거짓말을 해>라는 곡입니다. 이 곡에서는 정우와 준희의 모습이 매우 대비되어 보이길 원했습니다. 자신의 글이 주변 사람들을 해하는 칼이 되어버린 것을 깨닫고 자신의 시가 무용하다고 느끼는 정우, 그리고 정우의 시로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얻게 된 준희가 서로 격렬하게 싸우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조명 역시 정우에게는 차가운 색감의 빛이, 준희에게는 따스한 색감의 빛이 묻어나도록 구성하였습니다.

 

어떤 공연이나 수많은 생각 끝에 장면들을 그려내지만 <무명, 준희>는 그 고민의 시간들이 마치 찰나처럼 여겨집니다. 준희와 정우와 연희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찰나의 고민이 억겁의 인연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그럼 극장에서 만나요. 

 

4) 우리말. 대강풍. 풍력 계급 9의 바람. 굴뚝이 넘어지고 기와가 벗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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