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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SPECIAL①] 애정으로 읽어낸 여성 캐릭터

글 |이솔희 사진 |. 2025-03-04 1,193

2025 여성의 날 특집_<나라는 이야기>

역사 속에서 잊히고 지워졌던 여성들. 그들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다시 펼쳐집니다. 우리가 몰랐던 여성의 삶을 끄집어내고,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무대 위 여성 캐릭터가 품고 있는 여러 겹의 이야기를 우리가 너무 얕게 읽어 내린 것은 아닐까?” 지난해 4월부터 더뮤지컬에서 연재 되고 있는 '여성 캐릭터' 칼럼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장경진 칼럼니스트는 오롯이 읽히지 못했던 여성 캐릭터를 다각도로 섬세하게 해석해 한 편의 글에 담았다. 지난 1년간 그가 새롭게 들여다본 인물 11인의 이야기에 다시 한번 귀 기울여 보자.

*문단별 제목을 클릭하면 각 기사로 연결됩니다. 

 

 

<넥스트 투 노멀> 나탈리, 투명인간의 독립

“나탈리는 엄마로부터 정확한 사실과 담백한 사과를 듣고서야 본인이 가족의 일원이 되었음을 감각한다. 오래도록 억눌러왔던 감정을 솔직하고 조용히 털어놓는 것도 이때부터다. 집을 떠나고 싶어했지만 언제나 엄마가 떠날까 봐 겁이 났다고, 자신도 같은 상황을 겪게 될까 봐 무서웠다고. 그렇게 나탈리는 자신의 취약함을 고백하며 자신이 쌓아 올린 거대한 이상과 일탈의 혼돈에서 한 걸음씩 빠져나온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대신 현재의 행복에도 조금씩 기대본다. 헨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 3순위지만 가장 좋아하는 문제라는 서툰 고백처럼.”

 

 

<일 테노레> 베커 여사, 용기로 길을 내다

“<일 테노레>에서 ‘꿈’은 중요한 키워드다. 이선으로부터 시작한 꿈은 진연과 수한, 문학회원과 베커로 이어지며 성별과 나이, 국가를 초월해 확장된다. 졸업 후 오페라단에 있었던 베커는 조선에서 이선을 발견해 성장의 희열을 느끼고 슬픔을 아름다운 노래로 지휘하며 꿈을 이룬다. 그의 꿈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낯선 곳, 낯선 시간에 낯선 방식으로 완성된다. <일 테노레>는 중년의 이방인 베커를 통해 꿈을 재정의한다. 뚜렷한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것의 일부가 되는 것. 스스로 놓지 않는다면 늦더라도 반드시 찾아오는 것. 나누다 보면 이루어지는 것. 때로는 내가 아닌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이 꿈이 될 수 있다는 것. 다양하게 확장된 의미가 서로 다른 지점으로 관객을 위로한다.”

 

 

<섬: 1933~2019> 고지선, 성찰하는 인간

“<섬:1933~2019>는 지선의 부정과 분노보다는 곁에 선 존재들을 통해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작품은 지선 개인의 고군분투를 “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로 고쳐 말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과거의 인물들은 지선의 고단한 하루하루에 “다 잘될 거야”라고 노래한다. 응원을 등에 업은 지선이 여전히 막막한 사회로 걸어 나간다. 지원을 시설에 보내라는 가족의 무례함에 강하게 항의하고, 동료들과 함께 아이들의 학습권을 지키고, 지원의 5분 지하철 달리기로 새로운 가능성에도 손을 내밀어본다. <섬:1933~2019>는 지선을 통해 장애의 유무를 떠나 서로 다른 존재들은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답은 명확하다. 각자의 내면에 자리한 차별의 경험과 문제를 인지하고 수정해 나갈 것.”

 

 

 <어쩌면 해피엔딩> 클레어, 기꺼이 상처를 선택하는 마음

““원래 이게 이런 거야”라거나 “영원한 것은 없어”처럼 클레어의 문장들이 단정적인 것 역시, 이별의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현존’에 집중한다는 것은 다가올 미래의 심각성을 부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클레어의 모습이 얼핏 과장되거나 부자연스럽게 보인다면, 그것은 그가 로봇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그늘을 감추려 애쓰기 때문이다. ‘평온’을 가장한 외로움, 상처로 남은 설렘, 나와 같지 않은 마음에 대한 서운함, 시작의 두려움, 끝의 슬픔은 오로지 혼자일 때만 드러난다.”

 

 

<홍련> 홍나현이라는 생존자

“잔인하고 지독한 홍련의 성장통은 배우 홍나현을 만나 만개했다. 그는 지난 2년간 트라이아웃 공연부터 본공연까지 <홍련>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깊이 만난 배우다. 특히 뮤지컬 <앤ANNE>을 비롯해 <비틀쥬스>와 <비밀의 화원>, <더 라스트맨>에 이르는 필모그래피의 다수를 빛나는 생존력으로 채워왔다. 그의 인물들은 대체로 10대이며, 모두가 어른의 보호 밖에 있다. 부모는 사망했거나 아이를 구박하거나 방치한다. 하지만 홍나현은 혼자 서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만 했던 친구들에게 ‘야무지다, 건강하다, 용감하다, 긍정적이다’라는 형용사를 주로 붙인다. 그의 인물들이 상처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이유다.”

 

 

<킹키부츠> 있는 그대로의 로렌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로렌은 <킹키부츠>의 주제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롤라의 말에 "그게 다야?"라고 반문하는 돈처럼, 로렌처럼 혹은 롤라처럼 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런 존재를 무대에서 마주하는 경험은 생각보다 더 큰 응원이 된다. 요즘 나는 로렌 덕분에 산다.”

 

 

<리지> 100년 만에 허락된 목소리

“<리지>의 카타르시스를 더욱 깊게 만드는 것은 피해자들의 연대다. 같은 폭력의 피해자이자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또 다른 비극의 주인공 엠마, 무시와 고립 안에서 살아야만 했던 브리짓과 앨리스. 이들의 연대는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누군가가 가장 약한 면을 공격받을 때 가장 먼저 나서서 곁에 서는 것으로 완성된다. 사건의 진실에 집중했던 앨리스가 리지와의 관계를 추궁당하며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리지와 엠마, 브리짓이 앨리스의 뒤를 단단히 지키고 있던 것처럼. 피해자들의 연대는 희망의 불씨가 된다.”

 

 

<틱틱붐> 수잔, 과정의 힘을 믿는 예술가

“수잔은 춤추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용수라고 믿는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라면, 자신의 예술은 한 발짝 나아갔다고 믿는다. 한발 한발 쌓아 올린 궤적의 힘을 믿고, 춤추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익숙해 보이는 일상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맥베스> 맥버니라는 나르시시스트

“원작의 레이디 맥베스에게는 이름이 없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아버지의 성에서 남편의 성으로 이동하며 이름 대신 남편의 성으로 불린다. 특정한 개인은 사라지고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만이 강요되는 삶이다. 그런 사회에서 남편의 권력욕을 자극해 왕비가 되는 레이디 맥베스는 신인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원작 속 레이디 맥베스가 갈 수 있는 길은 딱 거기까지다. 김은성 작가는 레이디 맥베스에게 맥버니라는 이름과 칼을 쥐여주며 그의 감정과 주장, 행동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맥버니가 아이를 잃은 어머니이며 승리한 맥베스가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도, 그가 폭력의 가해자라는 점을 절대 잊지 않는다.”

 

 

<시라노> 록산, 세계를 확장하는 사랑

“우리는 록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역설적이게도 록산을 설명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회가 여성에게 조신함만을 원할 때, 록산은 내면에서 일어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좋아하게 된 사람을 놓치지 않겠다는 결심과 그가 불편함 없이 군 생활을 하길 바라는 기원에는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나 주저함, 가식이 없다. 사랑 앞에 앞뒤 재지 않고 돌진하는 록산은 또 다른 돈키호테다.”

 

 

<라파치니의 정원> 베아트리체, 책임을 향한 질문

“<라파치니의 정원>이 베아트리체의 선택을 통해 그에게서 ‘피해자’의 흔적을 지워나간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다. 베아트리체는 엄마의 무덤과 그가 겪었던 혐오의 정체를 직접 경험하며 혼란 속에서 고민한다. 세상은 왜 누군가를 배제하는가, 인간의 증오는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 무엇이 용서를 가로막는가. 베아트리체는 스스로 이런 결론을 내린다. 엄마의 죽음은 비극이었으나 그로 인한 분노가 폭력이어서는 안 된다. 이후 베아트리체는 기꺼이 아버지의 의견에 반기를 들고, 자신이 타인을 해쳤다는 객관적인 사실에서도 도망가지 않는다. 그러나 베아트리체의 비극은 그의 힘이 여전히 미비하다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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