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시지프스>는 멸망 직전의 세상에서도 무대를 포기하지 않는 네 배우의 이야기다. 그리스 '시지프스' 신화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엮어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배우 강하경은 <시지프스>의 '언노운' 역할을 만나 7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섰다. 무대와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자신을 품는 법을 배우며 한층 단단해진 강하경은 이제 『이방인』 속 뫼르소처럼 뜨거운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7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마주하는 소감이 어떤가요.
책임감과 부담감도 크지만, 우선 정말 재미있고 행복해요. 매 공연 어떻게 해야 더 재미있을까 고민도 많이 하고요. 사실 처음 연습실로 돌아왔을 때는 적응이 안 됐어요. 예전에 공연했던 경험이 있으니 빠르게 적응 되겠지 생각했는데, 몸이 안 움직이더라고요. (웃음) 함께하는 배우분들이 도와주셨기에 가능했지, 혼자 연습했다면 다시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연습을 잘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마이크를 착용하고 리허설 하던 날에 다시 '큰일 났다' 싶었어요. 제 목소리가 너무 어색하고 이상하게 들리더라고요. 당장 3일 뒤에 공연인데!(웃음) 그래도 무사히 적응하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뮤지컬 <시지프스>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 출연을 결심했나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배우 생활을 시작한 후로 삶의 풍파를 꽤나 많이 겪었어요. 좋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겪지 않아도 되는 일도 많이 겪었죠. 그런데 동시에, 좋은 분들도 정말 많이 만났어요. 현 소속사 대표님을 비롯해 제가 힘든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제게 손을 내밀어 주신 분들도 많았어요. <시지프스>도 그렇게 만난 작품이에요. 사실 공연 출연 제안이 매년 꾸준히 들어왔던 걸로 알고 있는데, 중간에 이런저런 안 좋은 상황에 가로막히면서 출연까지 이어지지는 못했거든요.
그렇게 공연과 멀어지면서 '앞으로 무대에 서기는 힘들겠다'고 체념하던 차에 <시지프스> 측 PD님이 정말 감사하게도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그리고 대본을 보고 딱 느낌이 왔죠. 내가 무대로 돌아가는 이유가 이 작품이면 충분하겠다고요. 공연 중에 '더럽게 힘든데 더럽게 행복하다'라는 대사가 있거든요? 제가 지난 7년간 어떻게 살았는지 관객분들께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 한 마디로 설명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대를 향한 제 마음이 가장 잘 담긴 작품이에요.

<시지프스>는 폐허 속에서도 공연을 이어가는 배우들의 이야기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돌을 굴리는 시지프스처럼, 공연을 놓지 않는 배우의 삶을 연기하는 것은 배우 입장에서 의미가 남다를 듯한데요. 배우를 연기하는 배우의 마음은 어떤가요.
되게 어려웠어요. 근본적인 무언가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배우는 사실 '흉내를 되게 잘 내는 사람'인 거잖아요. 흉내를 잘 내는 사람을 흉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미궁 속에 빠져있었죠. 그러다가 마지막에 해결책으로 생각한 건,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이 세상을 마주했을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그러면서, 이 작품을 마주하는 제가 절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 제 마음도 그러니까요. 그래서 공연 중에는 계속해서 동료들을 찾아다니고, 그들을 살펴요. 마치 뮤지컬 <렌트>의 마크처럼 친구들의 중심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그들과 함께 공연을 이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죠. 언노운을 통해 표현하는 절박함이 작품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시지프스>를 통해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금 고찰하게 된 점이 있나요?
<시지프스>에 배우들이 달리는 장면이 있잖아요. 온 힘을 다해서 달리다가 암전이 됐는데, 순간 객석에서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오는 걸 들었어요. 그때 문득 '아, 이런 관객의 반응을 끌어내는 게 배우의 힘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지금 막 달리고 온 우리는 숨이 차서 죽을 지경이지만(웃음) 그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관객분들이 느끼신다면 그걸로 됐다 싶더라고요. <시지프스> 공연을 하면서 여러 감정을 많이 느끼는 중이에요. 모든 감정이 소중해요.

<시지프스>의 '언노운', 그리고 극중극인 <이방인>의 '뫼르소'를 잘 표현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나요.
앞서 말했듯 언노운은 '간절함'에 포커싱을 맞췄어요. 언노운을 이루는 구성 요소 중 간절함이 100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언노운이 때로는 친구들의 기분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신 스스로가 더 밝게 행동하고, 때로는 친구들을 위로하고 보호하기 위해 달려 나가는 모습의 원천에는 간절함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뫼르소 같은 경우는, 저와 닮은 면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느끼는 감각, 저의 본능을 꺼내 무대 위에 올리려고 노력했어요.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금씩 가면을 쓰고 살잖아요.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뫼르소는 그 가면을 쓰지 않은 인물이죠. 그래서 저도 가면을 쓰고 살지 않는 저의 모습,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솔직함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작품이나 캐릭터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하는 편인데, 오히려 뫼르소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대본이 제게 준 것만으로도 충분할 정도로, 저와 맞닿아 있는 인물이었으니까요.
뫼르소를 짓누르던 뜨거운 태양은, 죽음을 맞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에게 삶에 대한 깨달음을 안겨줍니다. 하경 씨에게 '태양' 같은 존재가 있다면요.
조금 이르게 하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저는 요즘 제가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은 뒤를 돌아볼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야 좀 여유가 생겨서 지난 시간을 돌아봤거든요? 뒤를 돌아봤더니, 삼수를 하던 시절의 나, 현대 무용을 하루에 8시간씩 연습해서 발이 만신창이가 됐던 나, <마마돈크라이>로 더뮤지컬과 인터뷰를 했던 나(웃음), 지난 순간순간의 제가 쌓아놓은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삶의 풍파를 겪으며 그렇게 쌓아놓은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졌다고 느낀 순간이 있어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진 게 아니라, 제가 진짜로 마주해야 할 무언가를 가로막고 있는 벽이 무너진 거였어요. 열심히 살아준 과거와 무너진 벽, 그게 제게 '태양'인 것 같아요.

2016년 연극 <갈매기>로 데뷔했으니, 벌써 10년째 배우 활동을 이어오고 있어요. 재차 말한 것처럼 삶의 풍파를 겪으면서 인간으로서, 배우로서 많은 변화가 생겼을 텐데, 10년 전의 강하경과 지금의 강하경은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른가요.
배우로서는 지난 10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치열하게 살았어요. 일을 하든 안 하든 바쁘게 살았죠. 지금 당장 내게 주어진 일이 없을 때도, 친한 동생을 만나서 하루 종일 연기 얘기만 했어요. '우리 어떻게 해야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을까?' 이러면서요. (웃음) 배우로서 열정을 가지고 치열하게 사는 건 여전히 변함없어요.
인간으로서의 저는 많이 의연해진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든지요. 처음 해보는 일, 하기 싫은 일을 마주해도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같은 태도를 지니게 되었달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많이 강해졌어요. 저는 원래 주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는 사람이거든요.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처럼 조금은 어리석을 정도로 제가 가진 모든 걸 나눠주는 사람이었죠. 물론 행복한 마음으로 나눴지만, 그런 마음을 악용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갉아 먹히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현명하게, 단단한 자세로 살아가면서 선한 마음을 지키려고 해요.

공연 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 여러 장르를 오가면서 활동하고 있어요. 배우의 길 위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저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관객분들도, 저 스스로도. 또, 앞서서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어떤 상황이든 내가 걱정한 만큼 큰 일이 벌어지지는 않더라고요. 오히려 벌어지지 않은 일에 나서서 걱정하다 보면 겁이 나서 해야 할 일도 못 하니까, 앞으로는 걱정을 덜어낸,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저는 죽을 때까지 제가 하는 연기에 만족을 못할 것 같거든요? 그러니 제가 살아있는 동안 잘 갈고닦은 것을 제 주변의 좋은 사람들에게 잘 나눠주고 떠나고 싶어요. 좋은 사람들이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