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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칼럼] 창작뮤지컬, K-뮤지컬 그리고 한국형 뮤지컬

글 |최승연(뮤지컬 평론가) 사진 |. 2025-09-30 84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가 매월 주목할 만한 뮤지컬계 이슈를 심도 있게 들여다봅니다.


 

사진= 아이스톡

 

현재 한국 뮤지컬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마치 2001년 <오페라의 유령> 첫 라이선스 공연 이후의 상황처럼 인접 문화산업계의 뮤지컬 제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당시와 차이가 있다면, 지난 25년간 쌓인 뮤지컬 업계의 노하우가 공공의 지식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1세대 프로듀서들의 열정으로 뮤지컬 업계가 셋업되었다면, 현재는 창작뮤지컬에 주력해온 2세대 프로듀서들이 구축한 레퍼토리들이 업계를 다변화시키며 제작의 모델을 만들고 있다. 여러 창작자 지원사업에서 멘토링을 하며 멘티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창작진들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해외 작업을 통해 누적되고 있는 글로벌 인프라 역시 업계의 중요한 자산이다.

 

2025년 신작 경향, ‘한국’을 콘텐츠로

이러한 맥락에서 2025년 하반기는 중요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을 콘텐츠로 활용한 신작이 상당수 눈에 띈다. 트라이아웃부터 대극장 뮤지컬까지 풍성한 신작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유독 한국의 역사와 인물이 뮤지컬의 소재로 다수 활용되고 있다. 조선 후기 정치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 ‘사도세자의 죽음’을 다룬 <쉐도우>(블루스테이지), 해방 이후 가장 혼란했던 시기인 1945년~1950년에 주목한 <낙원>(이비컴퍼니), 여전히 전부 규명되지 못한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삼형제의 비극으로 풀어낸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오차드뮤지컬컴퍼니)는 비극적이고 복잡한 ‘역사’에 휘말린 ‘인물’을 다룬다. 이 세 작품은 조선에서부터 현대까지 문제적인 역사에 주목하고 당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을 각자의 관점으로 풀어낸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특히 <홍련>을 쓴 배시현 작가가 작·연출까지 맡은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에 선 인물을 진중하고도 날카롭게 그리며 역사에 질문을 던진다.

 

역사를 과감하게 차용한 공연들도 주목된다. 김우진과 윤심덕의 연애사를 여성 정체성 확립과 치유의 서사로 전복시킨 <관부연락선>(홍컴퍼니), 일제강점기의 ‘조선권투구락부’를 소재로 우정과 죄책감의 테마를 파고 들어간 <조선의 복서>(엠비제트컴퍼니), 그리고 이상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세종 시대 장영실과 명나라의 정화대장,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장대하게 연결한 <한복 입은 남자>(EMK뮤지컬컴퍼니)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은 역사를 판타지로 활용하거나 소재적 차원으로 전유함으로써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준다. 역사와 인물을 정공법으로 다루거나 기성의 관점을 반복하지 않고, 뮤지컬의 테마를 위해 역사의 이면에 집중하고 역사적 사실을 후경화하거나 약화시키는 과감함이 핵심이다.

 

가령, <관부연락선>은 김우진과 윤심덕의 정사라는 말초적 사건을 뒤집어 현해탄에 투신한 윤심덕이 어딘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바다에 빠진 윤심덕을 살리기 위해 ‘홍석주’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김우진은 윤심덕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윤심덕의 예술을 이용한 것이라는 관점을 보여준다. 공연의 매력은 모던걸 윤심덕과 관부연락선에 몰래 탑승한 홍석주가 서로 친구가 되어 진정한 자신을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마치 <위키드>의 넘버 ‘파퓰러’처럼 경쾌하고 한편으로는 애잔하다. <조선의 복서> 역시 실존했던 ‘조선권투구락부’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일제강점기 조선과 일본을 무대로 활약했던 복서 요한과 이화의 우정을 다룬다. 현재를 사는 이들의 2세인 마리아와 장명이 아버지들의 과거를 ‘소설’과 ‘사실’로 복원함으로써 현재와 과거의 연관성을 비대칭적으로 밝히는 것이 플롯의 핵심이다.

 

뮤지컬 <쉐도우> 공연 장면. 사진=블루스테이지

 

한편, 12월에 초연될 <한복 입은 남자>의 역사적 상상력은 매우 장대하다. 세종의 가마를 제작한 후 역사에서 사라진 장영실의 ‘그 후’를 서양 중심적 역사관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그려낸 소설의 관점을 따랐다. 삭제된 장영실을 이탈리아 가문의 비망록 내용으로 복원하는 현재의 강배와 진석, 정의공주와 정화대장의 도움으로 신분적 차별이 엄존하는 조선의 경계를 뛰어넘는 과거의 장영실, 그리고 작품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적 상상력은 기록된 역사의 바깥을 역동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서사적 위치를 기준으로 인물을 묶어 과거와 현재를 입체적으로 연동시킨 것은 뮤지컬의 비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장영실과 강배, 세종과 진석, 정화대장과 마교수, 정의공주와 엘레나 등이 배우의 1인 2역으로 수행될 예정이며 이러한 해법은 극의 의미망을 증폭시킬 것이다. 비망록의 비밀을 푸는 강배가 장영실이 되어 삭제된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해독된 비망록의 내용을 공개하려는 피디 진석이 비천한 신분의 장영실을 등용하는 세종으로 존재하는 설정 등은 니체의 언어를 빌려 “현재의 삶을 창조적으로, 생동하는 것으로 만드는 역사적 이해”를 지향한다. 이런 측면에서 타임슬립 판타지물 <쉐도우>는 타인의 그림자(shadow)를 벗어나 진정한 이해와 화해로 나아가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를 록 음악으로 폭발시킴으로써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서적 접근을 도모했다.

 

과거의 역사 외에 한국의 ‘현재’에 집중한 작품도 있다. 국립정동극장 창작ing <수영장의 사과>(작품개발 위크)가 대표적이다. 여고생 수영선수 지담과 현서가 치열한 경쟁과 순수한 우정을 오가는 일상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한국 고등학생들의 감정적 리얼리티를 담아냈다. 공연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 학창 시절의 정서가 넘버 ‘떡볶이 지옥맛’으로 집중되고, 동시에 ‘사과’라는 징크스를 통해 그 시절의 치열한 경쟁을 포괄했다. <수영장의 사과>는 향후 여고생들의 정서를 입혀 한국의 경쟁사회를 예민하게 관찰하는 작품으로 발전될 가능성을 보였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소설과 시가 뮤지컬로 탄생하기도 했다. 먼저, 고전소설 <설공찬전>(채수 작)과 <전우치전>(작자 미상)이 각각 뮤지컬 <설공찬>(이비컴퍼니), <전우치>(서울예술단)로 전환되었다. 두 작품은 모두 실존 인물을 소설화한 고전소설이 원작이며 ‘저승과 도술’이라는 ‘기이함’을 뮤지컬의 매력으로 흡수했다. 작가 채수가 설공찬을 따라 저승 체험을 하며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설공찬>은, 1511년 무렵 <설공찬전>이 금서로 지정되었던 실제 역사를 뮤지컬의 결말에 넣어 원작을 둘러싼 당대의 상황을 흥미롭게 극화했다. 10월 말 개막 예정인 <전우치>는 ‘도술을 부리는 남성 판타지적 민중 영웅’ 전우치의 프리퀄로서 신화적 공간 안에서 신들이 대결하는 이야기로 각색되었다. 전우치가 민중의 삶에 개입하기 전 영웅 탄생 과정에 주목하여 서울예술단이 지향하는 ‘총체극’ 양식을 실험하는 작품으로 탄생될 예정이다. <민들레 피리>((주)섬으로간나비, 레인보우 웍스)는 2017년에 출간된 윤동주, 윤일주 형제의 동명 동시집을 뮤지컬의 톤과 정서로 전환하여, 두 형제의 이야기를 애잔하고 잔잔하게 다뤘다. 이로써 ‘윤동주’는 <윤동주, 달을 쏘다>와 더불어 한국 뮤지컬을 메타적으로 묶을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다.

 

사진= PL엔터테인먼트

 

한국 원작 그대로 해외 공연을 타진하다

국내 뮤지컬의 이러한 경향과 더불어 주목되는 것은 해외 쇼케이스 공연에서 발견되는 변화된 풍경이다. 올해 영국 쇼케이스 공연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PL 엔터테인먼트, 이하 <스웨그에이지>)과 <여신님이 보고 계셔>(연우무대)는 대본과 넘버를 바꾸는 현지화 작업을 하지 않고 한국 버전 그대로 웨스트 엔드 공연을 도모했다. 지난 9월 8일 런던의 질리언 린 씨어터(Gillian Lynne Theatre)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을 완료한 <스웨그에이지 (Swagage)>와오는 11월 6일 런던의 디 아더 팰리스 스튜디오(The Other Palace Studio)에서 리딩 쇼케이스 공연을 앞두고 있는 <여신님이 보고 계셔(The Goddess Is Watching)>는 가상의 조선과 1950년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서사와 넘버 전체에 한국의 지역성을 펼치는 대표적인 오리지널 한국 창작 공연이다. <스웨그에이지>는 런타임 170분을 콘서트용 100분으로 줄였으나 한국 버전 그대로 한국어로 공연하는 방식을 택했고,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영어로 공연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 역시 오리지널 버전 그대로 무대에 올라갈 예정이다. 인물의 한글 이름, 한국전쟁 배경 또한 그대로 유지된다. 더불어 <스웨그에이지>는 14명의 한국 배우가 투어 형식으로 공연을 완료한 반면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현지 배우에 의해 공연된다는 차이가 있지만, 연우무대 유인수 대표와 ILOVESTAGE의 김준영 대표가 공동으로 이끄는 현지 프로덕션은 캐스팅 디렉터를 통해 모두 영국에서 활동하는 ‘아시안 배우’로 무대를 채울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지역적 정체성이 강한 두 작품이 내용상의 조율 없이 웨스트엔드에서 그대로 공연되는 상황을, 2025년 토니어워즈 이후 한국 뮤지컬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증거로 읽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 뮤지컬에 대한 외부의 관심과 호기심이 증폭되고 있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는 있다. 무엇보다 내부에서 ‘한국적’ 오리지널 뮤지컬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확대되고 있는 현상이 읽힌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공연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현지화 이전에 작품성이라는 의식, 더불어 한국적인 요소가 다양성을 충족시키는 참신성을 가미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또한 읽힌다. 그동안 다수의 한국 뮤지컬이 서양의 역사와 위인, 예술가를 다루고 출처가 불분명한 낯익은 서양식 이름을 즐겨 사용하는 방식으로 보편적 세련미를 추구해 왔기에, 현재 관찰되는 이러한 변화들은 유의미하다. PL 엔터테인먼트 송혜선 대표의 말처럼, “우리가 세계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다.

 

한국 뮤지컬의 역동성

지난 9월 22일 『뉴욕타임즈』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위기에 처했다”라는 제목으로 현재 브로드웨이 상황을 진단했다. 기사를 쓴 『뉴욕타임즈』 공연 전문 기자 마이클 폴슨(Michael Paulson)은 브로드웨이의 오랜 핵심 장르였던 뮤지컬이 고전하고 있는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그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46편의 신작 뮤지컬이 제작비 총합 8억 달러를 기록하며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했지만, , <앤 줄리엣(& Juliet)>, 단 3편만 수익을 달성했다. 수익을 내는 신작이 10%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비해 <위키드>, <해밀턴>, <라이온 킹>, <알라딘>, 리바이벌 공연 <맘마미아!>는 여전히 강세를 보이며 오래된 레퍼토리가 시장을 유지하는 보수성을 보이고 있다.

 

제작자들은 송앤댄스 스펙터클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는 비용이 제작과 운영 양면에서 급등했지만, 뮤지컬 티켓 가격은 상대적으로 정체되어 있으며 관객 수 역시 팬데믹 이전에 비해 다소 뒤처져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배우·뮤지션·스태프 임금, 목재와 철강 등의 무대 장치 재료, 극장 임대료, 각종 기술과 서비스 비용 등이 모두 상승했으나, 2024년 뮤지컬 평균 티켓 가격은 127달러로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여 3.25% 정도 올라 전체 비용을 감당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당 100만 달러어치의 티켓을 팔아도 생존하지 못하는 뮤지컬이 대부분이며 이는 브로드웨이를 지탱해 왔던 뮤지컬을 위축시키고 있다. 2025년에 개막할 신작이 2024년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이를 증명한다.

 

브로드웨이의 현재 상황은 한국 뮤지컬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뮤지컬 마니아들의 N차 관람이 시장의 코어 관극 패턴을 유지하는 가운데 티켓 가격 상승 이슈가 지속되고 있으며, 오래된 레퍼토리들이 지속적으로 티켓 판매액 상위 10개 공연 리스트를 점유하고 있는 현상은 한국 뮤지컬의 불안정성과 보수성을 증명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 시장의 힘은 ‘역동성’에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규모의 제작·운영비로 다양한 작품이 기획되고 있으며, 신진 창작자들이 업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다수의 지원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한국 뮤지컬은 자체의 강점을 지렛대 삼아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그 시작은 한국 뮤지컬의 정체성과 상상력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가령, 현재 한국 뮤지컬의 글로벌한 움직임을 반영하여 ‘창작뮤지컬’이 아닌 중립적 의미의 ‘뮤지컬’로 용어가 조정되고, 국가주의 프레임을 벗고 하나의 장르로서 ‘K-뮤지컬’이 유통되며, 궁극적으로는 ‘한국형 뮤지컬’이라는 시그니처 양식이 개발될 미래를 꿈꾼다. 한국이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는 2025년 하반기 신작의 경향은 그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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