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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칼럼] <몽유도원> 아랑, 진화하는 세계의 얼굴 | 예스24

글 |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에이콤 2026-02-20 248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가 더뮤지컬 칼럼을 통해 공연 속 여성 캐릭터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뮤지컬 <몽유도원>의 뿌리는 1,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의 개로왕은 내기를 빌미로 도미의 아내 아랑을 탐한다. 부부는 아랑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하지만, 결국 거짓이 밝혀지며 분노한 개로왕에 의해 도미는 실명한다. 이후 개로왕에게서 탈출한 아랑은 실명한 도미를 찾아 헤매고, 마침내 재회한 두 사람은 백제가 아닌 곳에서 여생을 함께 보낸다. 죽음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는 오래도록 구전되어 오다 백제를 대표하는 설화로서 『삼국사기』에 기록되었다. 이후 아랑은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던 조선에 이르러 ‘열녀’라는 수식어와 함께 재소환됐다. 『삼강행실도』에 수록된 이 설화는 권력을 남용해 백성을 착취한 위정자의 폭정을 비판하기보다, 남편 외의 남성을 거부하는 여성의 ‘절개’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아랑이라는 인물 자체의 서사보다 여성에게 강요된 사회적 ‘행실’이 더욱 중요하게 다뤄진 셈이다.

 

박제된 이미지에 구체적인 얼굴을 부여한 것은 1995년에 발표된 최인호 작가의 소설 『몽유도원도』였다. 설화와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진 소설은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정치·사회적 맥락과 함께 읽어냈다. 소설 속 아랑은 스스로 신체에 상처를 내서라도 적극적으로 위기를 돌파하며, 온전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능동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이러한 서사적 기틀 위에 2002년 동명의 뮤지컬이 제작됐다. 인물의 내면을 직접 노래하는 뮤지컬의 장르적 특성이 개로왕과 도미, 아랑의 캐릭터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했다.

 

24년 만에 리부팅된 2026년의 <몽유도원> 역시,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랑의 힘을 충실하게 계승한다. 다만, 이번 작품은 현대 관객의 감각에 맞춰 입체적인 진화가 이뤄졌다. 탐욕적 인물로 그려졌던 개로왕(여경)에게는 아버지의 죽음과 약화된 왕권이라는 역사적 결핍이 더해져, 아랑을 향한 집착을 일종의 ‘구원’으로 재해석했다. 개로왕과 도미의 내기 대상을 아랑의 ‘정절’이 아닌, 대왕의 꿈과 목지국 부족민의 자유로 설정함으로써 도미가 가진 읍차로서의 책임감과 품격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아랑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담보로 했던 과거의 선택들은 과감히 삭제되었다. 이는 ‘세상 만물엔 주인이 따로 없으니 사람 또한 구분 없이 어울려 살아감이 마땅하다’라는 목지국의 이념을 체화한 아랑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더불어 2002년 공연 당시에도 존재했던 ‘정절’이나 ‘순결’ 같은 타인의 시선으로 규정된 가사들도 지워졌다. 2026년의 아랑은 자신의 언어로 영민하고 강단 있게 스스로를 정의한다. 그는 부족민과 함께 일군 터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개로왕의 정체를 모른 상태에서도 “돌아가시더라도 부디 이 마을을 잊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이후 그의 정체가 밝혀지고 대왕의 꿈이 자신이라는 말에 “대왕의 자리라는 게 고작 그런 것이오? 하늘의 뜻을 빙자하여 다른 이의 사랑마저 빼앗은 그런 자리!”라고 일갈한다. 이는 도미에 대한 사랑을 넘어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아랑의 기개를 보여준다.

 

아랑에게 도미와의 사랑은 단순한 이성 간의 애정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이자 ‘말의 무게’를 끝까지 감당하는 책임의 실천이다. “세월 지나 이 모습 변한다 해도 세상 끝까지 그대만을 사랑합니다”(‘도원의 혼례’), “이 세상을 다 헤매도 그대를 찾으리”(‘그리고 그리며’)와 같은 서약은 아랑의 단단한 행동력을 통해 실재하는 진실이 된다. 이러한 신념은 아랑이 스스로 얼굴에 상처를 내는 결단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는 자신의 외모가 비극의 원흉이라는 자책이 아니라, 소리와 향기만으로도 자신을 찾아낼 도미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선택이다. 아랑은 스스로 선택한 비극으로 사랑의 본질과 진정한 자유를 질문한다. 자신을 해함으로써 오히려 자아를 지켜내는 이 결단은 사랑마저 가벼워진 시대에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몽유도원>은 아랑의 선택과 실천을 통해 사랑의 숭고한 형태와 방식을 증명하며, 객석의 관객을 끝내 설득해낸다.

 

2026년의 <몽유도원>이 그려낸 아랑은 더이상 박제된 설화 속 ‘열녀’가 아니다. 그는 누군가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를 거부하고, 스스로 말하고 선택하고 그 결과까지 감당하는 주체로서 무대에 선다. 수 세기 동안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변화해온 아랑의 모습은 여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증명한다. 앞으로의 아랑은 또 어떤 얼굴로 우리를 마주할까. 고전을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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