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수 끝에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지만 한 학기 만에 학업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내가 그동안 바라온 것은 1년 내내 과실에 틀어박혀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나를 장식해 줄 학교 이름과 대학생이라는 지위였다. 그 즈음 뜬금없게도 나는 연극과 사랑에 빠졌다. 전공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강의가 끝나면 매일같이 대학로로 달려가서 공연을 관람했다. 마침 연극원이 우리와 같은 건물을 쓰고 있었고, 비전공자에게도 연극 수업을 몇 개 개방해 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수강했다. 그제야 예술 학교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학년이 되어서는 뒤늦게 연출과에 부전공 신청서를 제출했다. 사랑만 컸지 할 줄 아는 게 없어 연극 대본을 수십 부씩 복사하고 무대에 물을 뿌리는 허드렛일을 하며 미래의 극작가, 연출가, 배우들의 학창 시절을 엿봤다. 무엇보다 나는 연출과의 할아버지 교수들을 좋아했다. 내가 동경하는 연극계에서 거장으로 대접받으며 아직도 열정적으로 작품을 만드는 연출가들이었고, 무능한 정권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예술가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정년퇴직 전에 교수실을 정리하며 학생들을 불러다가 자기가 소장하고 있던 책을 직접 골라 나누어 주기도 했다. 연극원 학생이 아닌 나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콘티북을 선물받고 무척 감격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가르쳐 주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도 제시해 주었다. 교수라기보다는 스승이라고 부르고 싶은, 존경스러운 어른들이었다.
2018년, 내게 콘티북을 건네준 교수의 이름을 뉴스에서 볼 수 있었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던 시기였다. 그보다 더 최근, 2024년에는 또 한 사람이 뉴스에 떴다. 그들의 명예교수직은 박탈되고 공연은 취소되었다. 두 사람 다 이름 옆에 ‘제자 성추행’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들에게 받은 것들을 다 쓰레기통에 처박아야 하나? 물성이 있는 것은 그렇다 치자. 그들의 수업 속에서 내가 발견한 선한 것들, 꼭꼭 씹어 내 것으로 만든 생각과 태도와 마음들. 그것들도 사실은 전부 거짓되고, 더럽고, 나에게서 뜯어내야만 하는 것들인가?
<히스토리 보이즈>를 처음 본 것도 역시 대학생 때였다. 대극장 뮤지컬도 아니고 연극이 인터미션 포함 세 시간에 달하다니! 2013년 3월, 의문을 가지고 도착한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만난 이 연극은 내 인생을 뒤흔들어놨다. 따뜻한 분위기가 감도는 아름다운 무대 위에는 그와 상반되게 차갑고 냉소적인 인물들이 올라와 빠른 템포로 대사를 주고받았고, 쉴 틈 없이 끼어있는 영국식 유머에 피식거리다 보면 어느새 휴식 시간, 어느새 커튼콜이었다.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등장인물들은 옛날 서양의 시인들을 인용하고, 오래된 영화나 셰익스피어의 한 장면을 놀이처럼 재현한다. 이십 대 초반, 사대주의에 물든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기에도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은 없었다. <히스토리 보이즈>는 내게 ‘재밌는 연극’의 기준이 되었다.
1980년대 영국, 사우스 요크셔 지방의 도시 셰필드가 배경인 <히스토리 보이즈>는 명문대 옥스포드와 캠브리지에 진학하기 위해 공립학교 특별반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남자 고등학생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이야기이다. 한국식 입시 드라마라면 학생들 간의 성적 경쟁과 스트레스를 부각했겠지만, 이 연극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교사들이 서로의 교육 방식을 견제하며 학생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싶어 하고, 학생들은 그것을 흥미진진하게 관전하며 선생님들을 비웃고 놀린다.
대학을 갓 떠난 젊은 역사 선생 어윈이 아이들에게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독재자를 변호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치는 반면, 나이 많은 문학 교사 헥터는 입시를 위한 교육의 무용함을 설파하며 수험생들에게 대학 입학과 전혀 상관없는 연극 놀이를 시키고 좋아하는 책을 읽기를 권한다.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다수의 관객은 자연히 “시험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라고 말하는 헥터의 방식에 마음이 갈 것이다. 그러나 이 마음에는 즉시 제동이 걸리는데, 바로 헥터가 학생들의 성기를 ‘만지작’거리는 부도덕한 노친네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명백하게 성추행 피해자인 학생들은 그러나 여전히 헥터를 인간적으로 좋아한다.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이 보잘것없는 노인의 눈물에 마음 쓰여하고, 그를 상처 주고 싶지 않아 할 뿐 아니라 헥터에게 닥친 징벌적 은퇴를 적극적으로 막아내기까지 한다.

한국 초연으로부터 13년이 지나 무려 여덟 번째 재공연이 올라온 <히스토리 보이즈>는 제작사가 바뀌고 극장을 옮기면서도 초연과 거의 동일한 연출, 같은 무대며 의상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다. 심지어 학생 역을 하던 배우들이 다음 시즌에 교사 역으로 캐스팅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여서 프로덕션의 분위기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 그러나 공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 시즌마다 연출부의 새로운 노력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헥터라는 인물을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히스토리 보이즈> 대본은 마치 그리스 비극처럼, 모든 인물들에게 결함을 주었고 그들이 쏜 화살은 어느 순간 돌아와서 그 주인을 맞춘다. 구세대적 지혜와 우매함을 둘 다 지니고 있는 헥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이미 저물고 있는 헥터의 시대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두가 어윈에게 새롭게 배운 기술로 원하던 대학에 진학한다. 졸업 직전에는 헥터가 좋아하는 고전 영화를 공부해오는 대신 요즘 유행하는 팝송을 부르며 늙은 선생님과의 오랜 게임에서 승리를 거둔다. 아이들은 스스로의 잔인함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해맑은 얼굴로 헥터에게 비수를 꽂는다. “선생님, 팝은 새로운 문학(원문:문해력)이래요.” 더 이상 아무도 읽어주지 않으며, 그 자신도 새로 쓰인 이야기를 읽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헥터는 연극이 끝날 즈음 물리적으로도 관념적으로도 죽음을 맞이한다.
2018년, 연극 마니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의 무대를 봤을, ‘믿고 보는 배우’라는 별명에 이견이 없던 한 남자 배우가 극장 스태프를 성추행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이후로 줄줄이 이어질 연극계 성범죄 폭로의 시발점이었다. 그의 출연작에는 <히스토리 보이즈>도 있었다. 얼마 후에 또 한 명의 중견 배우가 같은 죄목으로 고발당했는데, 그는 헥터 역할을 무려 세 시즌이나 맡아 연기했었고 그 자신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관객들은 분노했고, 허망해했다. 이야기의 전달자인 줄로만 믿고 있던 배우들이 실제로 성추행 가해자였다는 사실은 충격과 불신을 야기했다.
그래서 한국 프로덕션은 관객에게 조금 더 친절한 방향으로 헥터에게 벌을 주기 시작했다. 나레이터 역할을 맡은 스크립스나 린톳은 헥터를 더 직접적으로 비난하게 되었으며, 헥터는 자신의 마지막 대사마저 다음 세대에 ‘넘겨주고’ 무대에서 쓸쓸히 퇴장하게 되었다. 분명히 필요한 변화들이 있었고, 관객이 안전함을 느낄 수 있게끔 작품을 리모델링해온 창작진의 노력에 개인적으로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모든 위험 요소가 매끈하고 부드럽게 다듬어질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스크립스와 데이킨이 헥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도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걸까?” 라는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은 예전보다 훨씬 무거운 분위기가 되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헥터의 하찮음을 농담 삼아 웃을 수 없게 되었고, 마치 자신들이 아닌 제삼자의 피해 사실을 염려하듯 엄숙한 표정을 짓는다. 헥터의 성추행이 픽션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사안이 맞다. 그리고 그러지 않을 것 같던 인물들이 별안간 자신들의 피해자 정체성을 진지하게 감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출자가 캐릭터 개개인의 개성을 흐려가면서 그들에게 일괄적으로 같은 입장과 태도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2019년 무렵부터 린톳 선생님이 작품의 ‘정치적 올바름’을 담당하게 되어버린 점이 못내 아쉽다. 열두 명의 등장인물 중 단 한 명의 여성 캐릭터인 역사 교사 린톳은 아주 냉정한 시선을 가진 인물로, 남자들의 한심함을 통쾌하게 지적할 때도 있지만 스스로의 위치를 자조하기도 하는 현실적이고 복합적인 캐릭터였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린톳은 극중 상황에 불편함을 느낄 관객에게 주어지는 피난처가 되었다.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장면에서는 남성에게 말꼬리가 잘려버릴 대사를 굳이 발화하며 완벽한 성차별 피해자로 그려지기 시작했고, 2026년에는 학생들이 성범죄를 당했다는 것을 알자마자 “아이들의 상태부터 체크해야죠”라며 그린 듯이 ‘멋진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린톳이라는 캐릭터의 언행이라기보다는 역시 헥터와 거리를 두려는 제작진의 필사적인 항변에 가깝다. 이 같은 인물 사용은 린톳이 2막 초반에 제4의 벽을 깨고 조명이 켜진 객석에 던졌던 “내가 안전할 거라고 여기는 것 자체가 나를 만만하게 본다는 뜻이죠”라는 대사를 한 번 더 증명하고 만다. 등장인물의 성비부터 이미 작품이 여성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걱정 때문인지는 몰라도(그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인물이 조금씩 흠을 가진 이 희곡에서 린톳만이 완전한 인간상을 향해 나아가는 연출은 결국 또 하나의 대상화에 불과하다.

이처럼 지금의 연출 방식이 이 희곡이 가진 모순과 역설의 미학을 완전히 구현한다고 여겨지진 않는다. 작가 앨런 베넷은 관객이 헥터 뿐 아니라 모든 인물과 거리를 둘 수 있도록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건방지고, 어른들은 졸렬하다. 방금까지 마음이 쓰이던 인물이 다음 장면에서 뒤통수를 치며, 누구도 완벽하게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그렇게 모두가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에 비로소 그들은 우리와 같은 세계, 같은 사회에 살아있는 인간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히스토리 보이즈> 프로덕션이 무의미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연이 새로 올라올 때마다 조금씩 변하는 연출을 보면 제작진의 선한 의도와 작품을 향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이 연극을 보게 되는 대부분의 여성 관객들이 살아오며 위계형 성폭력을 경험했고, 그중 많은 이들은 허구 속 폭력의 재현이 폭력 그 자체를 옹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 할 도리 없이 상처를 받기도 한다. “어떤 역사적 사실은 아직 거리를 두고 보기엔 이르다”라고 극 중에서 어윈이 인정한 것처럼,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도 관객이 저마다 삶과 이야기를 분리하고 또 잇는 속도가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난제를 포기하지 않고 이야기를 넘겨주기 위해 <히스토리 보이즈> 팀은 여전히 균형을 맞춰가는 긴 통로를 걷고 있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과거를 완전히 내다 버릴 수는 없다. 아무리 한심한 과거라도 말이다. 존재했던 것은 반드시 자취를 남긴다. 다만 그 흔적을 보면서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고, 그러기를 희망할 뿐이다. 이야기의 결말에, 헥터의 세상을 물려받은 학생이 한 명 있다. <리어 왕>의 마지막 장면에서 “해야 할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이야기를 합시다.”라는 대사를 읊었던 포스너는 너무 많은 것을 마음으로 느껴버린 탓인지 자꾸만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거기엔 그의 어린 시절에 잠시 진심을 나누었던, 오래전에 쓰인 낡은 책이 있다. 어리석은 동시에 지혜로웠던 늙은 리어를 떠나보낸 에드거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포스너가 완벽한 인간으로 자라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그의 역사에는 앞으로도 수많은 오점이 새겨질 것이고, 어쩌면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도 비관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헥터와 같은 잘못은 반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극장에 갔을 때, 책을 읽다가, 어느 날 떠올린 과거에서, 사랑스러웠던 순간들과 떼어낼 수 없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추악함을 그는 다시 읽어내고야 말 테니까.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2026. 03. 19 - 2026. 06. 07
링크아트센터 페이코홀
=> 예스24 티켓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