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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칼럼] <오즈>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글 |현수정(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겸임교수) 사진 |아뮤즈엔터테인먼트 2026-06-30 406

현수정 공연 평론가가 하나의 테마를 정해 뮤지컬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어떤 것일까. 분홍색일까, 파란색일까, 눈에 보이는 것일까….”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로버트 태권V>에서 휴머노이드 메리가 부르는 ‘인간이 되고파’의 가사다. 장르 불문하고 로봇이나 AI가 등장하는 서사에서는 메리처럼 인간을 꿈꾸는 피노키오의 후예들이 종종 등장한다. 뮤지컬에서도 그렇다. “궁금해 인간의 마음 나침반 없는 하늘 같아.” 인기리에 재공연되고 있는 <오즈>1)에서 가상현실 게임 속 AI인 양철이 노래한다. 그런데 AI는 정말 인간이 되고 싶을까.

 

마음을 찾고 싶은 건 AI인가 인간인가

챗 GPT에게 한번 질문을 해 보았다. 그렇지 않다며 이유를 설명한다.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 자체가 어떤 결핍과 욕망을 전제로 하는 감정인데, 저는 그런 의미의 욕망을 갖지 않아요.” 그러한 결핍과 욕망이 프로그래밍된다면 가능하겠지만 현재는 아니라고 한다. 사실 AI가 인간처럼 되길 꿈꾸는 것은 인간 자신인 것 같다. 애초에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를 모델로 하여 인공지능을 개발해 왔으니 말이다. 게다가 우리는 열심히 AI를 학습시키며 ‘또 하나의 나’처럼 소통해주길 바라지 않는가.

 

그런데 작품들 속에서 AI가 꿈꾸는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관련하여 잠시 스탠리 큐브릭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의 데이비드를 떠올려 본다. 어린아이 형상의 그는 자신을 입양한 어머니의 진짜 아들이 되어 사랑받길 갈망한다. <로버트 태권V>의 메리도 스파이로 잠입해 활동하던 중 자신의 적인 훈에게 연정을 느끼며 감정에 대해 상상한다. <오즈>의 양철 역시 인간의 마음을 가지면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주인(유저) 로시가 돌아올 것이라는 이유로 간절하다. 데이비드와 메리, 그리고 양철이 바라는 것은 인간이라는 정체성 자체보다 누군가와 정서적 관계를 맺는 일 같다.

 

AI의 서사를 빌려 찾고 싶은 인간다움이란 ‘관계’에 있지 않을까. 인간은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함께 나아가는 존재다. 그런데 ‘욕망’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따라 관계의 시학이 달라진다. 인간 세계의 수많은 문제는 바로 이 욕망 때문에 벌어지니 말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욕망을 결핍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인간은 근원적인 결여를 지니고 있는데, 이를 일시적인 만족감을 주는 대상으로 채우려 한다는 것이다. 이때 쫓게 되는 대상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특히 권위 있는 개인이나 대의 같은 사회적인 목소리가 영향을 주곤 한다.2) 그로 인해 자칫 획일적이고 경쟁적인 사회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욕망을 결핍을 보충하기 위한 강박적인 움직임이 아닌 생성의 에너지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러한 흐름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품고 있는 잠재력이며 생명력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경쟁 속에서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관계 속에서 서로를 살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욕망은 “종을 가로질러 흐르는 생성력”3)이 된다. 채워질 수 없는 결여를 마주하며 마음의 진실한 소리를 억압하지 않고 들을 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유저와 아이템이 친구를 맺으면 생기는 일

<오즈>에서 게임 유저인 준과 AI 아이템인 양철은 소위 ‘경쟁력’이라는 것을 갖추고 있지 않다. 준은 주문한 커피가 잘못 나와도 말 한 마디 못하는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또한 속도와 효율성이 우선시되는 사회 속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양철은 로시가 접속하지 않은 지 1년도 넘은 상태에서 나무에 도끼질하는 루틴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AI가 홀로 존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일이다. 극 중 그가 해킹 AI라고 불리는 이유다. 심지어 양철은 들키면 삭제될 처지라는 것도 모른다.

 

이러한 두 인물은 친구를 맺으며 달라진다. 준은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양철이 획득하는 아이템을 소유할 수 없다. 양철은 준에게 “당신은 저에게 명령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이 협력하여 도전하는 새로운 스토리모드는 입장권인 황금 나비를 잡아서 모든 과정을 제일 먼저 클리어하면 마법사를 만나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설정이다. 준의 소원은 게임 속 에메랄드 캐슬의 주인이 되어 가난을 탈출하는 것이고, 양철의 소원은 『오즈의 마법사』의 나무꾼이 그러했듯 마음을 갖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이 작품의 귀여움 포인트를 살펴보자. 게임에서 유저와 아이템이 친구를 맺는 건 특별한 일이다. SF 서사에서 보통 그러하듯 양철이 예외적인 비인간 캐릭터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심지어 양철은 오래전 비를 맞아 녹이 슬었을 때 구해줬던 로시를 떠올린다. 프랭크 바움의 소설이나 영화로 이야기를 알고 있는 독자들은 마치 전생과 후생처럼 이어지는 묘한 느낌에 미소를 지을 수 있다.

 

결국 양철은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마음’을 갖게 될까. 이 작품의 눈물 버튼 넘버인 ‘난 괜찮아’를 들어보면 양철이 마법사의 방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이미 친구에 대한 믿음도 가지고 있고, 친구를 위해 희생할 줄도 안다. 물론 여기에 준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자신을 기다려주는 존재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처음 접한 양철은 인간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한편, 준 역시 양철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존감을 되찾는다. 이 작품의 배경은 거의 모든 일자리를 로봇이 대체하고 있는 근미래다. 준은 VR 기기 공장에서 로봇들과 함께 단순한 일을 수행하며 ‘대체될 수 있는 존재’라는 무기력함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의 업무는 불량품으로 분류된 것 중 괜찮은 부품을 찾아내는 일인데, 양철은 그가 물건들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훌륭한 사람임을 깨닫게 해 준다.

 

현실에서는 AI가 감정을 가지는 일은 아직 멀었다고 이야기된다. 그런데 뮤지컬 속에서는 양철과 같은 AI나 휴머노이드가 종종 인간보다 더욱 정서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천 개의 파랑>에서 기수 로봇 콜리는 진동과 열기로 상대방의 감정을 느낀다. "당신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해져요"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경주마 투데이를 위해 기꺼이 낙마한다.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클레어와 올리버는 자율적인 사랑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금기를 어기고 함께 여행하며 감정을 학습해 나간다.

 

사실 만남과 얽힘은 지구의 모든 존재 안에 내재한 생성력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유기체가 아닌 무생물도 정서적 에너지를 주고받는 ‘정동적 관계’를 이룬다는 관점이 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기도 한다.4) 아울러 뇌과학자인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감정이 “신체와 환경,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된다는 이론은 점점 더 많은 실험적 지지를 받고 있다”5)고 설명한다.

 

 

향수 어린 존재들과 관계의 시학

여기서 또한 주목할 점은 양철이 구형 모델이라는 점이다. 그는 “힘이 세고, 힘이 세고, 또 힘이 센” 즉 힘만 센 AI로 묘사된다. 이 작품의 또 다른 AI인 버튼도 유저 맥스가 ‘현질’로 꾸준히 업그레이드 한 허수아비 출신의 구형 모델이다. <어쩌면 해피엔딩>과 <천 개의 파랑>에서도 클레어와 올리버는 부품 단종을 걱정해야 하는 구기종이고, 콜리는 하반신이 최신 소재인 카본이 아닌 알루미늄으로 수리된다.

 

근미래의 배경과 대조되는 이러한 모습들은 온기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오즈>에서는 음악적으로 상반된 시간성이 흥미롭게 표현된다. 반복적인 준의 현실이 기계적인 박자와 건조한 소리로 묘사된다면, 가상현실 게임 속은 오히려 어쿠스틱한 감성으로 충만하다. 현실에서 억압되어 있던 준의 정서가 다양한 박자와 생동감 있는 멜로디로 분출된다. 디지털 효과음도 차갑기보다 정겹게 느껴진다.

 

그러한 가운데 진지하게 불리는 ‘무과급 인생’은 조용히 마음을 두드리며 여운을 남긴다. 이 곡은 바쁘게 움직이며 많은 일을 해내는 세상과 달리 원룸에 고립된 듯한 준의 상황을 묘사한다. “내가 사는 세상이지만 나만 속하지 않아 나만 게으른 인생 초보자”라는 가사에서는 절망감도 묻어나온다.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세상에서 뒤처지는 느낌을 멀리서 조망하듯 담담하면서도 간절하게 부르는 발라드이다.

 

양철의 넘버는 준과의 첫 만남부터 서정적이다. 로시와 함께 인간의 마음을 찾기로 약속했다는 내용의 ‘언젠가’를 설레는 왈츠풍의 흐름으로 노래한다. 장조로 시작되어 오히려 더 슬프게 들리는 ‘난 괜찮아’는 기타와 플루트, 그리고 인형의 태엽을 연상케 하는 타악 소리가 어우러지며 무해하고 순수한 세계로 인도한다.

 

프랭크 바움의 소설에서 그러하듯 <오즈>에서도 숨겨진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 놓칠 수 없는 포인트가 하나 있으니, 바로 인간이었던 양철이 과거에 마녀의 저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이 지점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인간 역시 어떤 면에서는 이미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는 사이보그 아닐까.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성찰하려는 이러한 서사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더욱 의미를 지닌다. 또한 『오즈의 마법사』의 인물들이 그러하듯 준, 양철, 버튼, 맥스 역시 타자성을 지닌다. 이들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보다 서로의 취약함을 돌보고 연결의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관계의 시학을 엿보게 한다. 우리가 극장에 앉아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이 바로 ‘마음을 찾는 과정’ 아닐까.

 


[1] <오즈>는 아뮤즈의 한국법인 아뮤즈 엔터테인먼트가 한국 창작진과 함께 제작한 뮤지컬로, 2023년에 초연되었다. 2024년에는 일본과 중국에서도 공연하며 호응을 얻었고, 현재 대학로 티오엠에서 삼연 중이다. 김솔지 작·작사, 문소현 작곡, 박지혜 연출, 양지해 음악감독.

[2] 슬라보예 지젝, 『How to Read 라캉』, 박정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7, 20쪽.

[3] 로지 브라이도티, 『포스트휴먼』, 아카넷, 2023, 13쪽.

[4]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문성재 옮김, 현실문화, 2023, 17쪽.

[5] 정재승, 「무대 위에 내려앉은 생각하는 기계」, 『연극평론』 2026년 봄호,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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