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더없이 빠르게 달려온 배우 이해준은 지난 2월 뮤지컬 <렌트>를 마친 후 속도를 한껏 낮췄다. 한 걸음씩 차분히 걸으며, 한동안 놓치고 있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기 위해서다. 낯선 성장통을 겪고 있는 이해준은 지금 어떤 고민을 품고 있을까? 여러 고민 속에서 오는 7월 11일과 12일, 이화여자대학교 ECC 삼성홀에서 열리는 단독 콘서트 < ME: INSIDE >를 준비 중인 이해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더뮤지컬과의 만남은 지난 2023년 이후 3년 만이에요. 당시 뮤지컬 <모차르트!>의 타이틀 롤을 맡아 더뮤지컬의 표지를 장식했었죠.
<모차르트!>로 더뮤지컬 커버스토리 촬영을 한 건 저에게도 정말 특별한 기억이에요. ‘그래도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보다’ 생각이 들기도 했었고요. (웃음) 제게 큰 의미가 있는 인터뷰여서, 그때 찍었던 커버 사진을 꽤 오랫동안 SNS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해 두었던 기억도 나네요.
3년 만에 다시 만난 지금, 해준 씨는 간헐적 휴식기를 가지고 있어요. 지난 2025년 <틱틱붐> 공연을 마친 후 <렌트>를 만나기까지 약 9개월의 공백기가 있었고, 지난 2월 <렌트>를 마친 후 지금까지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죠.
2020년 무렵부터 약 5년간 쉬지 않고 숨 가쁘게 달렸어요. 물론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지만, 때때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어느 날에는 스스로가 빛나 보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날에는 한없이 작아 보이기도 해서요. 특히 최근 3년간 대극장 작품에 주로 출연하면서 감사하게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자연스럽게 ‘내가 그 기대에 부응했나?’, ‘내가 더 채워야 할 건 뭘까?’라는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앞으로 더 잘 나아가기 위해 잠시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는 잊히면 안 된다는 불안감을 늘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장기간의 휴식기를 선택하는 건 배우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겠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좋은 작품들로부터 출연 제안이 꽤 많이 들어왔는데,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저 역시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지금은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때인 것 같다’고 말씀 드리게 되더라고요.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당연히 있지만, 이 시간 동안 내 것을 잘 다져두면 언젠간 다가올 또 다른 기회를 잘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갈 무렵에, 배우를 그만둬야겠다고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어요. 주변 친구들은 저축도 열심히 하고 결혼도 하는데, 저는 무엇을 위해 이 배우라는 일을 붙잡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도전한 작품이 뮤지컬 <쓰릴 미>였는데, 예상치 못하게 너무 큰 사랑을 받았고, 감사한 마음에 그때부터 몰아치듯이 일을 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그러면서 계속해서 무대에 서는 제 모습과 아직 준비가 안 된 제 마음 사이에서 괴리가 생겼어요. 저에게 일은 ‘증명해야 하는 것’이 됐고, ‘내가 이렇게 활동하는 게 정말 행복한 걸까?’라는 생각이 피어올랐어요. 되게 아이러니하죠. 겉으로 보기에는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럼 지금은 ‘증명하는 일’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나요?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 자체는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그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는 순간 배우로서의 자세도 잃게 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이제는 증명하려는 마음과 동시에 저 자신도 잘 챙기는, 유연한 자세를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조금 덧붙이자면, 일을 ‘증명’으로만 해내던 마음이 조금 꺾인 건 뮤지컬 <아몬드> 덕분이었어요. 출연 제안을 받고 원작 소설을 읽는데, 제가 연기해야 하는 곤이라는 친구의 이야기가 너무 제 얘기 같은 거예요. 곤이는 아버지와 부딪히는 인물인데, 저도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아몬드> 공연 기간 중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어요. 제작사의 배려로 두 회차 정도 쉬었다가 다시 <아몬드>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 곤이가 아버지와 갈등하는 장면을 도저히 마주 보지 못하겠더라고요. 곤이와 제 모습이 겹쳐 보여서 너무 괴로웠어요. 그런데 그때 동료들이 제가 덜 힘들 수 있도록 손을 많이 내밀어 줬어요. 그때 처음으로 ‘아, 내가 작품 속에서 뭔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구나, 이렇게 팀에 녹아드는 걸로도 충분하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나를 증명하는 것보다 나와 우리를 잘 챙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순간이죠. 신기하게도 그런 마음을 먹은 후 전 소속사인 EMK엔터테인먼트에서 <아몬드> 공연을 보러 오셨고, 오디션 제안을 주셔서 <엘리자벳>의 ‘죽음’ 역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아몬드>는 여러모로 소중한 작품으로 기억에 남아 있어요.

그렇게 만난 <엘리자벳> 이후 <베토벤> <모차르트!> 등 굵직한 작품에 연이어 출연했죠. 특히 <프랑켄슈타인>의 앙리 뒤프레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건, 배우에게 정말 흔치 않은, 귀한 경험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대부분의 배우, 특히 신인 배우들은 ‘기회만 주면 내 실력을 보여줄게’라고 생각할 거예요. (웃음)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막상 그 기회를 얻으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부담감이 다가오더라고요. 기회를 얻는 건 첫 번째 단계인 거고, 진짜 중요한 건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이었죠. 제작사에서 저에게 좋은 기회를 주신 만큼 그 마음에 보답하고, 증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단히 노력했어요. <프랑켄슈타인> 때는 정말… 낭떠러지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웃음) 오케스트라 피트 앞에 서 있으면, 진짜로 절벽 끝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죠. ‘여기서 떨어지면, 다음 기회는 없겠구나.’ 그래서 그때 엄청 절실했어요. 그 절실함이 캐릭터의 면모와 맞닿은 덕분에 많은 분이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그 뒤로 <틱틱붐>과 <렌트>를 만났어요. 두 작품 모두 청춘의 방황과 성장을 그리는 만큼,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마주하고 있는 해준 씨에게 더더욱 의미 있는 작품이었겠죠. 두 작품이 어떤 가르침을 주었나요?
<틱틱붐>은 서른을 앞둔 예술가 조나단 라슨의 두려움과 고민을 담고 있잖아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도 같은 시기에 배우 활동에 대한 고민을 했기 때문에, 조나단 라슨과의 접점이 많다고 느꼈어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조나단 라슨의 삶을 들여다보니 스스로에게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나는 이 사람만큼 치열하게 임했나?’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부끄러웠어요. 조나단 라슨의 삶에 저를 대입해 보면서 나 자신을 다시 마주해 보자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정말 치열하게 공연을 준비했던 기억이 나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조나단 라슨이 쓴 작품인 <렌트>를 만나게 되었어요. <렌트>는 한 문장으로 설명이 되는 작품이죠. ‘No Day But Today’. 우리는 늘 미래를 걱정하면서 사는데, <렌트>는 오늘을 살라고 말해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치열하게 사랑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많은 힘을 얻었어요. 두 작품은 저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도 충분히 괜찮다’는 위로를 해줬죠.

본격적으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기 전, 단독 콘서트로 잠시 관객들을 만나요. 이번 콘서트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지난 몇 년간 팬분들께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받기만 하고 제대로 돌려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제가 배우로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는 아무도 저를 선택해 주지 않고, 아무도 저를 좋아해 주지 않을 때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그 응원과 사랑에 보답하고 싶고, 함께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쉬는 기간 동안 콘서트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이번 콘서트 타이틀은 ‘ME: INSIDE’인데, 제가 직접 지었어요. (웃음) 저의 내면, 내 안에 있는 나를 꺼내겠다는 마음을 담았어요. 콘서트 콘셉트는 ‘네 개의 방’이에요. 제가 걸어온 길과, 그 길 위에서 마주한 여러 감정을 네 개의 방으로 나누어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2025년 첫 번째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1년 만에 다시, 같은 공연장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관객들은 이번 콘서트에서 어떤 것을 기대하면 좋을까요?
그동안 관객분들이 사랑해 주셨던 작품의 넘버는 물론이고, 제가 해보고 싶었던 작품의 넘버, 또 관객분들이 ‘신선한데?’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 노래, 팬분들을 향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요 등 다양한 무대를 만나보실 수 있을 거예요. 첫 번째 콘서트 때와 비교했을 때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세트 리스트를 많이 바꿨어요. 팬분들이 좋아할 만한 자리로 만들고 싶어서, ‘이전보다 더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여러 고민을 했고요. 이번에는 1년 만에 다시 콘서트를 하게 되었지만, 다음 콘서트는 또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요. 이번에 꼭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콘서트를 마친 후, 가까운 미래에 해준 씨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예정인가요? 또, 조금 더 먼 미래의 해준 씨는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나요?
우선, 최대한 빠른 시기에 작품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은 단순히 쉬는 기간이 아니라, 저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숨을 고르면서, 천천히 나아가는 시간이니까요. 좋은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그래서 저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또, 글쎄요, 거창한 목표를 정해두기보다는 지금의 시간을 잘 보내고 싶어요. 배우 활동을 하며 매번 빛나는 순간만 있지는 않겠죠. 하지만 지금은 어두운 때에도 어딘가에는 빛이 있다는 걸 알아요. 어두웠던 스물아홉과 서른 사이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작은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볼 수 있는 서른아홉과 마흔 사이의 시기를 보내고 있잖아요.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10년은 빛나는 순간이 더 많을 거라고 믿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