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가 더뮤지컬 칼럼을 통해 공연 속 여성 캐릭터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널 지키려고 이러는 거야.”
“날 질식시키려고 이러는 거겠지.”
뮤지컬 <헬스키친>은 싸움으로 시작한다. 마약과 총, 흉악범으로부터 딸을 지키려는 엄마 저지와 그런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딸 앨리. 저지의 보호는 앨리에게 통제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감정이 다른 건 아니다. 둘 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싱글맘인 저지는 위험으로부터 딸을 지키려 애쓴다. 매 끼니를 챙기고,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는 잔소리로도 부족해 건물 관리인과 친구들에게까지도 딸을 지켜봐달라고 부탁한다. 통제처럼 느껴지는 저지의 보호는 사실 자신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것에 가깝다. 활기찬 헬스키친은 앨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지만, 저지에게는 지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딸이 자신처럼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과보호의 형태로 드러난다. 저지는 직접 쓴 1인극을 무대에 올릴 만큼 예술을 사랑했지만, 꿈은 사랑과 함께 좌절됐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고, 정착하지 못하는 데이비스 없이 아이를 키웠다. 살아남기 위해 세워온 날카로운 가시가 안타깝게도 이제 딸에게로 향한다.
반면 앨리는 구체적인 간섭이 아니라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기를 원한다. 그는 예술이 가까이에 있고 다양한 인종과 세대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헬스키친에서 유일하게 섬처럼 고립된 아이다. 규칙에 갇혀 허드슨강처럼 흐르지 못하는 자신의 삶이 억울하고, 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다. 하지만 정작 자신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 앨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칙이 아닌 발견이다.
모녀의 갈등을 통해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어온 가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네 엄마니까 당연한 거지”라는 말처럼, 저지는 보호와 희생이라는 모성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그 과정에서 한 사람으로서의 욕망은 후순위가 됐고, 자신의 상처를 돌아볼 여력도 없었다. 딸들에게는 역할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엄마가 분노와 안타까움의 대상이 된다. 서로를 사랑하기에 더욱 복잡해지는 양가적인 감정은 서로를 향한 날 선 말로 터져 나온다.
이들의 관계를 완화하는 인물이 라이자다. 그는 엄마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앨리를 대한다. 음악에 관심을 두는 그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며,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믿어준다. 앨리는 그런 라이자를 엄마처럼 여기지만, 그는 앨리의 유사 엄마가 되는 대신 앨리가 엄마와의 관계를 스스로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엄마라는 역할이 아닌, 자신의 삶을 먼저 살아낸 선배이자 같은 여성이 가진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도록. 라이자와 저지, 앨리로 이어지는 세 여성의 관계는 서로 다른 세대의 여성들이 무엇을 주고받는지를 보여준다.
서로를 엄마와 딸이라는 역할에 가두지 않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도 달라진다. 저지는 데이비스와의 관계를 떠올리며 앨리에게도 자신과 같은 순수한 열정이 찾아왔음을 인정한다. 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선택한 행동이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도 돌아본다. 이는 엄마로서의 깨달음인 동시에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하는 반성이다.
앨리 역시 다르게만 보였던 엄마에게도 자신과 같은 욕망과 상처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에게도 열일곱이, 꿈이,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순간 앨리가 만나는 존재는 엄마가 아닌 과거의 저지다. 두 사람의 갈등이 완벽하게 해결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의 삶을 자신의 기준으로만 바라보던 시선이 변화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저지는 딸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데이비스도 돌아본다. 그에게 데이비스는 놓쳐버린 젊음과 꿈, 아직 끝내지 못한 과거다. 아이를 홀로 키우며 버거워질 때마다 기대고 싶은, 놓지 못한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족보다 자신의 일이 더 소중했던 데이비스가 딸에게도 상처를 줬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저지는 과거를 다시 정의한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는 것보다 앨리와 함께 나아갈 오늘과 내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저지는 깨진 조각을 억지로 맞추는 대신, 깨어진 채로도 새로운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받아들인다.
엄마에게서 받은 감정적 유산은 딸에게로 이어진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넉과 화해하는 과정에서 앨리는 엄마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먼저 손을 내밀고 먹을 것을 챙긴다. 앨리 역시 그제야 간섭이라고 생각했던 행동 뒤에 감춰진 사랑하는 사람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발견한다. 변화와 함께 저지가 데이비스의 떠도는 삶을 존중하듯, 앨리 역시 애틀란타로 떠나려는 넉을 붙잡지 않는다. 상대의 선택을 자신의 욕망으로 막지 않고 지금 함께할 수 있는 행복과 기쁨을 만끽한다. 그렇게 저지와 앨리는 서로의 거울이 되어 지금의 자신을 바라보고 함께 성장한다. 보호는 인정으로, 통제는 신뢰로, 의존은 연대로.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상대를 역할로만 바라본다. 엄마니까 이해해주겠거니, 딸이니까 당연히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지와 앨리의 화해는 엄마와 딸이라는 역할 안에서 서로를 한 사람의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면서 시작됐다. 앨리샤 키스의 ‘No One’은 연인의 사랑을 노래하지만, <헬스키친>에서는 모녀의 사랑으로 새롭게 읽힌다. 상대의 삶을 결정하지 않으면서도 곁에 있을 수 있는 사랑으로. 두 사람의 사랑이 존중이라는 결론으로 다다르듯, 가족 역시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