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키를 돌려 험난한 폭풍 속으로
이번 팀은 역대 리딩 팀들 중 가장 우여곡절이 많았다. 리딩 3주 전, 진행하던 컨셉에서 제목과 등장인물 이름만 제외하고는 스토리와 컨셉 등 대부분의 방향키를 돌렸다. 방향 전환이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리딩 발표 연습이 맞물리면서 혼란이 가중되었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가 좋은 작품을 개발한다는 측면과 더불어, 좋은 창작자를 양성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면, 이번 <서커스 피자>의 채정원 작가, 조재신 작곡가는 그 어느 팀보다도 큰 공부를 한 셈이다. <서커스 피자>의 순탄치 않은 제작기를 들어본다.
작품 소개
재래시장에서 피자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둔 명호는 대형 마트에 밀려 점점 매출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본인이 직접 나서보기로 한다. 상가번영회 회장으로 나서 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명수는 대자본을 끌어들여 재래시장을 대형 마트처럼 깨끗하고 폼나는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 고집스러운 서커스 피자 가게 사장인 허당과 시장 상인들은 반대한다. 아버지 허당과 명수의 갈등은 깊어간다.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노하우를 전수받으려는 한고음이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시장 사람들을 보며 ‘달인 특구’로 만들자고 제안, 명수의 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는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게다가 눈치 없는 명수에게 은근히 마음을 내비치는 한고음. 이들은 재래시장을 다시 살릴 수 있을까?
3주 전에 이야기 방향을 바꿨다고 들었다. 바뀐 대본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채정원 이전 대본에서 메인 갈등은 피자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날라리 아들 사이의 갈등이었다. 나중 대본은 그 갈등의 원인, 보다 본질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둘의 갈등의 원인을 소통의 부재라고 보았다. 남이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막 대하고 상처를 주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소통이 되지 않는다. 배경을 재래시장으로 바꿨는데, 편의성이 강조된 대형 마트들 때문에 재래시장이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다. 재래시장에 가보면 가격 흥정을 하기도 하고 아직도 정이 넘치고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대형 마트 때문에 점점 사라져가는 재래시장이 사라지는 이야기도 넣고 싶었다.
작품의 방향을 바꾼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소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작 리딩 공연을 보면서 이 작품이 소통에 관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채정원 3주 전에 새롭게 고쳐진 것이지만 연습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실제로 새롭게 대본을 구성할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미 전 대본에 맞는 음악이 나와 있는 상황이라 곡 변화를 많이 주기도 힘들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리딩에서는 큰 틀만 보여주고 그 다음에 채워나가자는 생각이었는데, 리딩 공연을 보니 해프닝만 보여진 것 같아 아쉬웠다.
소통이라는 말이 다소 모호하게 들린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소통의 부재라면 이해가 되고 좀 명확한데, 재래시장을 소통의 공간으로 본다는 것은 앞의 소통과 같은 맥락으로 읽히지 않는다.
채정원 넓은 의미에서 소통이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이랄까. 점점 이해타산적이고 자기편의적인 사회로 변하고 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시장이라는 공간도 예전처럼 정이 넘치지 않고 그나마 남아 있는 재래시장도 사라져 간다. 가족 관계에서도 점점 정이 약해지고 있다. 그런 현상에 대한 성찰을 담으려고 했다.
주요한 컨셉은 그렇다고 해도 상가번영회 회장을 하려는 아들 명수라든가, 재벌 집안의 한고음이 피자 가게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설정 등 캐릭터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채정원 각 인물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잘 보여주지 못했다. 고등학생 시절의 명수는 아픈 엄마를 위해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어서 공부에만 열중한다. 엄마가 아픈 데도 일만 하는 아버지가 불만이다. 그런데 엄마가 죽으면서 아버지를 부탁하라는 말을 남긴다. 아버지에겐 피자 가게가 소중하고 그래서 명수는 피자 가게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게다가 피자 가게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추억이 있는 장소이다. 아버지도 그렇고, 한고음도 그렇고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전사를 보여주는 방식에서도 문제가 있다. 대부분이 자기 고백 식으로 인물의 전사가 노출된다. 너무 일방적이어서 공감이 안 된다. 즉, 앞에서 전사와 관련된 사건이나 갈등이 있고 난 후 자기 고백이 뒤따른 다음 공감할 수 있을 텐데, <서커스 피자>에서는 너무 뜬금없이 일방적으로 전사를 노래한다.
채정원 어떻게든 전사를 보여주긴 해야 하는데 리딩에서 연기나 행동으로 보여줄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사를 안 보여줄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대사보다는 노래로 풀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노래가 덜 어색할 것 같았다. 아버지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쩐다, 쩐다’도 그렇고, 한고음의 노래도 그렇고 전사를 해결하는 곡들이 많았다.
한고음이라는 캐릭터는 왜 등장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전 버전에 남겨둔 캐릭터의 영향인가?
채정원 현재 인물 구성에서는 성비 불균형이 심하다. 게다가 드라마 자체가 건조하다보니 러브 라인을 만들 필요도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캐릭터를 만들다 보니 존재감이 없어졌다.
제목이 ‘서커스 피자’이다. 제목만 들으면 무언가를 기대하게 하는데 실제 작품과 잘 맞진 않는다.
조재진 처음부터 제목이 ‘서커스 피자’였는데 전 버전하고도 잘 어울리는 제목은 아니다. 서커스라고 하니까 무언가 신기한 일들이 벌어질 것 같고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실제 사건은 그렇지 못하다 보니 제목이 족쇄였다.
음악이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였다. 원래 작곡 스타일이 그런 것인가, 아니면 그런 스타일이 이 작품과 어울렸기 때문인가?
조재진 음악은 들으면서 좋고 흥겨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듣는데 너무 어렵고 난해하면 힘들지 않나. 멜로디가 쉽지만 후지지 않는 음악이 제일 좋다고 본다. 대중가요도 후크 송이 대세인데 뮤지컬에서도 그런 음악들을 사용하면 작품에 도움을 줄 것이다.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음악이나 작곡가가 있나?
조재진 뮤지컬 <프로듀서>을 좋아하는데 작곡, 작사, 대본까지 한 멜 브룩스의 음악을 좋아한다. 그리고 월트 디즈니 스타일의 음악이 좋다. 창작뮤지컬에도 그러한 음악 스타일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메인 곡이 ‘서커스 피자’인데 자주 리프라이즈된다. 어떤 음악적 구성을 한 것인가?
조재진 3주 전에 버전이 바뀌면서 원래 있었던 노래들이 빠지고, 새로운 노래가 필요했다. 그래서 상황에 맞게끔 리프라이즈를 하다 보니 좀 많아졌다. 원래 욕심은 같은 곡이지만 전혀 편곡을 다르게 해서 아까 그 곡 맞아, 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느낌의 곡을 선보이는 것이었는데 그 정도의 여유가 없었다.
사용된 음악 스타일이 굉장히 다양하다. 음악을 설명해준다면?
조재진 메인 곡인 ‘서커스 피자’라든가, 넘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전환곡으로 쓰이는 음악은 서커스 분위기와 월트 디즈니의 아기자기하고 익살스런 음악 느낌을 주려고 시도한 것이다. 발라드 형식도 물론 사용했고. 아버지가 노래방에서 주제가로 부르는 ‘쩐다, 쩐다’는 아버지니까 아무래도 트로트가 어울릴 것 같았다. 풀 오케스트라를 사용하고 싶었는데 소극장에서 너무 규모가 큰 음악은 오히려 관객들이 즐기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번에는 주로 밴드적인 느낌을 주는 음악으로 줄였다.
두 분 다 뮤지컬 작업은 처음인 것으로 안다. 이번 작업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채정원 정말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원래는 희곡만 써왔는데 뮤지컬은 작곡가와 협업을 통해 작업이 진행된다. 협업 작업이 하고 싶어서 뮤지컬에 도전했는데 실제 하다 보니 여러 애로 사항이 생기더라. 가사에서는 어미의 끝처리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대본을 쓸 때 음악적인 구성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경우에 따라 어떤 식의 노래가 들어가야 하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하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모르면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가 모르면 배우도 힘들고, 문제가 생겼을 때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보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다시 도전하고 싶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들게 만들었다는 것이 가장 큰 배움이라고 할까.
조재진 그동안 곡 작업을 많이 했는데 생각해 보니 듀엣 곡을 해본 적이 없더라. 남자 곡이나 여자 곡을 만들었지 듀엣 곡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부르는 키에 맞춰 작곡을 하다 보니 배우들에게 맞지 않았다. 다행히 배우들이 잘해주어서 해결되었지만 다음부터는 더 디테일하게 부르는 사람을 고려해서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당연한 것인데 왜 놓치고 갔는지 모르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6호 2012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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