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브로드웨이 결산
한층 다양하고 풍성한 브로드웨이
경기 불황 속에서 선전한 2008-2009 시즌도, 보다 신선한 시도로 관객들의 발길을 돌리려는 신작들도 브로드웨이에 충분한 활력을 불어넣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브로드웨이의 프로듀서들은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연말 시즌 흥행 경쟁에 좋은 성과를 올리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기 악화 속에서 선전한 2008-2009 시즌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강타한 경기 침체 속에서 마무리 된 브로드웨이 2008-2009 시즌의 성적은 우려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지난 한 해 잔뜩 움츠러들었던 소비 심리를 고려한다면 발군의 선전인 셈이다. 미국 극장주/프로듀서 협회인 더 브로드웨이 리그가 발표한 결산 자료에 의하면 브로드웨이 2008-2009 시즌(2008년 5월 26일-2009년 5월 24일)에는 총 43편의 작품이 새롭게 무대에 올랐으며, 14편의 뮤지컬(신작 10편, 리바이벌 4편), 24편의 연극(신작 8편, 리바이벌 16편), 그리고 5편의 특별 공연이 공연되었다. 총 50편이 공연되었던 1982-1983년 시즌 이후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이 개막한 셈이다. 전체 티켓 판매 수입은 약 1조 1천억 원(943,268,677달러)에 이르렀으며, 이중 뮤지컬이 약 9천억 원(775,806,499달러), 연극과 특별 공연을 합해 약 2천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매주 수입을 공개하지 않아 비난을 샀던 <영 프랑켄슈타인>의 티켓 판매 수입을 예측하여 포함한 이 수치는 2007-2008 시즌에 비해 약 0.6%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 프랑켄슈타인>의 수입을 합산하지 않은 나머지 공연만의 티켓판매 수입은 약 1조억 원(919,800,000달러)으로 집계되었다. 또한 지난 시즌 브로드웨이가 동원한 유료 관객수는 총 121억 5천만 명으로, 지난해에 비하면 다소 감소한 추세이다. 이중 63%의 관객이 두 작품 이상의 공연을 관람한 것으로 나타났고, 지속적으로 공연을 보는 브로드웨이 시어터고어들은 1년간 평균적 4편 이상의 작품을 관람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1년간 15편 이상의 공연을 본 관객은 전체 관객의 약 5% 정도를 차지할 뿐이었지만, 전체 티켓 판매에는 약 30%를 차지할 만큼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2008년부터 지속된 경기 침체 속에 예정된 작품들의 개막이 미뤄지거나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지며 브로드웨이를 찾는 관객들의 발길이 끊길 것을 걱정하던 관계자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낸 것은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브로드웨이 리그의 대표 샬롯 마틴은 “이번 시즌을 통해 좋은 공연이 올라가기만 한다면, 관객들의 발길은 극장으로 향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극장을 찾은 이유 중 하나로 수준 높은 공연을 통해 잠시나마 빡빡한 일상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녀는 또한 “모든 공연 관계자가 양질의 작품을 선보이기만 한다면, 불황에도 불구하고 선전한 이번 시즌처럼 이어 다가올 시즌에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는 그녀의 바람이자 공연관계자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지난 6월 열린 토니상 시상식에서는 단연 <빌리 엘리어트>의 독주가 눈에 띄었다. 총 15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10개 부문의 상을 수상한 <빌리 엘리어트>는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데이비드 알바레즈, 트렌트 코왈릭, 키릴 쿨리쉬), 연출상(스티븐 달드리) 등을 포함하여 주요 부문을 휩쓸며 2008-2009 시즌 절대 강자의 입지를 굳혔다. 작품상 부문에서는 <빌리 엘리어트>와 함께 <넥스트 투 노멀>, <록 오브 에이지스>, <슈렉> 등이 경합을 벌였다. 최우수 리바이벌 뮤지컬 부문은 <아가씨와 건달들>, <팔 조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의 경쟁 끝에 2008년 센트럴 파크의 델라코트 극장에서의 공연에 이어 성공적으로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헤어>에게 돌아갔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세 명의 빌리 보이즈와 함께 여우주연상 부문은 <넥스트 투 노멀>에서 열연을 펼친 앨리스 리플리(Alice Ripley)가 수상했다. 음악상은 <넥스트 투 노멀>의 톰 킷(Tom Kitt)와 브라이언 요키(Brian Yorkey)에게, 안무상은 <빌리 엘리어트>의 피터 달링(Peter Darling)에게 각각 돌아갔다.
지난 시즌 작품상 후보에 오른 작품들 중 <아가씨와 건달들>은 안타깝게도 개막 후 4개월여 만인 지난 6월 일찌감치 막을 내렸고, <슈렉> 역시 2010년 1월 폐막을 발표했다. 이들의 실패를 평가하자면 역시나 경기 한파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듯하다.
뮤지컬 코미디의 약세,
한층 다양하고 풍성해진 브로드웨이
브로드웨이의 2009-2010 시즌은 지난 8월 2일 공식 개막한 <번 더 플로어>와 함께 시작되었다. 자이브, 탱고, 스윙, 삼바 등 각종 댄스 장르를 넘나들며 현란한 무대를 선보이는 이 공연은 당초 예정되었던 12주의 공연 기간을 연장해 내년 1월 3일까지 공연될 예정이다. 댄스 공연으로는 보기 드문 선전인 셈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두드러지고 있는 브로드웨이 변화의 트렌드는 이번 시즌도 예외가 아니다. 2000년대 이후 <헤어스프레이>와 <프로듀서스>의 성공에 힘을 얻어 한동안 브로드웨이를 점령했던 뮤지컬 코미디의 세력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새롭고 신선한 무대를 원하는 관객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브로드웨이 관객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중년의 백인관객을 넘어서 새로운 타깃을 향하고 있는 작품들도 끊이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 젊은 관객들의 많은 지지를 얻었던 <컬러 퍼플>, <패싱 스트레인지>에 이어 이러한 변화의 바람에 도전장을 낸 작품이 바로 <펠라!>다. 나이지리아 예술가인 펠라 아니쿨라포 쿠티(Fela Anikulapo Kuti)의 인생을 그린 이 작품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2007년 토니상 안무상을 수상했던 빌 T. 존스(Bill T. Jones)가 연출과 안무를 맡았다. 이와 더불어 또 한편의 신선한 신작은 국내에도 <올 슉 업>, <아이 러브 유> 등으로 잘 알려진 극작가 조 디피에트로(Joe DiPietro)의 새로운 뮤지컬 <멤피스>다. 1950년대 멤피스 지역의 한 DJ와 로큰롤 뮤직, 흑백간 인종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경쾌한 리듬과 흥겨운 무대로 풀어내는 이 작품은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하고 있다. 로큰롤로 무장한 또 한 편의 뮤지컬 <밀리언 달러 콰르텟(Million Dollar Quartet)>은1956년 전설적인 로큰롤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 조니 캐쉬, 제리 리 루이스, 칼 퍼킨스가 한데 모여 작업했던 녹음 세션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어졌다. 오는 2010년 3월 네덜란더 극장에서 막을 올릴 예정이다.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코미디의 스타일에서 벗어난 이 작품들의 성패가 앞으로 브로드웨이의 판도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리바이벌 뮤지컬로는 <바이 바이 버디>가 48년 만에 다시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국내에도 <드림걸즈>의 연출가로 이름을 알린 로버트 롱버톰이 연출과 안무를 맡았다. 지난 10월 29일 막을 올린 <피니언스의 레인보우(Finian’s Rainbow)> 역시 선전 중이며, 브로드웨이 시어터고어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랙타임> 또한 새롭게 리바이벌되어 지난 11월 15일 닐 사이먼 극장에서 공식 개막했다. 스티븐 손드하임의 <어 리틀 나잇 뮤직>은 트레버 넌이 연출을 맡고 캐서린 제타-존스와 안젤라 란스버리를 주인공으로 앞세워 개막 전부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외에도 <위키드>에서 글린다 역을 맡았던 크리스틴 체노웨스가 주연을 맡은 <프라미스즈, 프라미스즈(Promises, Promises)>가 개막을 기다리고 있으며, 지난 2004년 재공연되었던 <새장 속의 광인들>은 런던의 머니어 초콜릿 팩토리(Menier Chocolate Factory)의 리바이벌 버전으로 다시 한번 브로드웨이 무대에 소개된다.
연극 작품으로는 라운드 어바웃 시어터 컴퍼니의 <애프터 미스 줄리>, 영화배우 주드 로가 열연 중인 <햄릿>, 다니엘 크레이그와 휴 잭맨의 출연으로 인기몰이 중인 <어 스테디 레인(A Steady Rain)>, 맨해튼 시어터 클럽의 <더 로얄 패밀리> 등이 공연되고 있다.
2010년 상반기에 활기를 넣어줄 기대작
경기 불황에 대한 불안은 이번 시즌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10월 2일 프리뷰 공연을 시작으로 25일 막을 올렸던 닐 사이먼의 연극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이 개막 1주일 만인 11월 1일 막을 내린 것은 뉴욕 공연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공연 관계자들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속속 개막하는 뮤지컬 대작들이 시즌 하반기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9-2010 시즌 기대작 중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단연 <스파이더맨>이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약 400억 원 이상)가 소요되는 것은 물론, <라이온 킹>의 줄리 테이머가 연출을, 록 그룹 유투(U2)의 보노가 음악을 맡아 제작 초기 단계에서부터 주목을 받았다. 아직까지 공식 개막일은 발표되지 않았으나 오는 2월 25일부터 힐튼 극장에서 프리뷰 공연의 막이 올라갈 예정이다. 개막이 기다려지는 또 한 편의 대작 뮤지컬은 바로 <아담스 패밀리>이다. 2010년 4월 개막을 앞두고 있는 이 작품은 한 가족의 기괴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낼 주인공들로 네이던 레인 등 굵직한 배우들을 캐스팅하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경기 불황이 브로드웨이는 물론 문화예술계 전반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브로드웨이에 보다 신선한 시도와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 부정적인 영향만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지난 시즌의 선전에서 보여지듯이,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관객의 발길을 돌리는 양질의 작품들로 다시금 브로드웨이가 활기를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