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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기획-1] 신인 배우 발굴과 육성, 선택이 아닌 의무 [No.94]

글 |김영주 2011-08-01 4,976

<더뮤지컬>은 차세대 뮤지컬 스타들을 묶어서 소개하는 기사를 꾸준히 실어 왔고, 그렇게 소개된 배우 중에 김무열과 조정석, 박은태와 전동석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11주년을 맞아 떠오르는 기대주에게 힘을 실어주는 특집 기사를 준비해보자는 계획은 성사되지 못했다. 편집 팀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아도 적당한 이름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뮤지컬>이 예년과 달리 신인 배우들에게 충분한 애정과 관심을 주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갑자기 뮤지컬계에서 좋은 신인들이 자취를 감춘 것일까. 뮤지컬 전문 교육 기관이 사설 아카데미부터 2년제, 4년제 대학의 전공 학과까지 급속도로 확대되었고, 해당 과정에서 교육을 받은 전공자들이 본격적으로 공연계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신인은 오히려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면 근본적인 이유를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직 이름 석자를 알리지는 못했지만 뮤지컬 관계자들이 먼저 눈길을 주고 있는 가능성 있는 신인들을 모아서 소개하고, 뮤지컬계의 젊은 피가 되어주었던 배우들의 활약상에 대해서도 정리해보았다.

 

뮤지컬 신인 배우 발굴과 육성, 선택이 아니라 의무  

 

눈에 띄는 신인이 없다. 이 한탄은 <더뮤지컬> 편집 팀에서 처음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뮤지컬계에서 배우는 창작자, 극장과 함께 고질적으로 품귀 현상을 보이는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다. 한 해에 200여 편의 뮤지컬이 극장에 올라가는 시대에 배우가 남아돈다면 그쪽이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뮤지컬계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 양성을 위한 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는 문제는 분명 해결해야 할 급선무 중 하나였다.

 

 

유망주 찾아보기 힘든 시대
2000년대에 들어 뮤지컬 대중화가 진행되면서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는 청소년들이 늘어났고, 그 수요에 발맞춰 전문적인 뮤지컬 교육 기관들도 앞다투어 문을 열었다. 관록 있는 배우들이 운영하는 뮤지컬 아카데미와 2년제, 4년제 대학의 뮤지컬 전공 학과들도 신설되었고, 기존의 연극영화과에서도 뮤지컬 관련 커리큘럼이 개설되었다. 뮤지컬 배우 부족을 한탄해온 관계자들이 그 해결 방안으로 가장 먼저 손꼽았던 전문 교육 기관의 부재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인데, 신인 배우의 등용은 오히려 지난 몇 년간 더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디서부터 변수가 발생한 것일까.
2006년 일본 최대 규모의 극단 시키가 <라이온 킹>으로 한국 진출을 선언했을 당시, 큰 반발에 부딪히자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내놓은 안이 ‘한국에서 수익을 낼 경우, 배우 트레이닝 센터를 건립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뮤지컬 전문 배우 양성이 한국 뮤지컬계가 안고 있는 묵은 숙제면서 동시에 일본의 대표적인 극단 시키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였다는 뜻이다. 최근 주목할 만한 신인 배우의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서도 관객과 업계 종사자들에게 존재감을 분명히 인식시킨 배우들을 떠올렸을 때 시키에서 기본기를 배운 차지연, 박은태, 김준현, 최현주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는 점은 분명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극단 시키와 뮤지컬 교육 기관의 가장 큰 차이는 커리큘럼이 아니라, ‘무대’에 있다. 스타 시스템을 부정하면서 철저하게 배우의 실력과 개성이 배역에 적합한지 여부에 따라 캐스팅을 결정하는 극단 시키에서 단원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오디션에 응시하여 무대에 설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오늘 이 작품에서 앙상블이었지만, 내일 저 작품에서는 내게 맞춤인 배역만 있다면 주조연급으로 도약할 수 있는 ‘열린 구조’라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보장 받고 경험을 쌓아온 배우들이 극단을 나온 후에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다. 일단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기업이 그렇듯이, 국내 뮤지컬계도 경력이 없거나 앙상블 경력만 가진 신인에게는 주요 배역을 주는 모험을 감수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노래, 춤, 연기 삼박자를 갖춰야 하는 뮤지컬 무대에서 검증되지 않은 신인 배우 하나하나에게 공을 들이고 단계적으로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은 무리한 바람일 수도 있다. 일본의 극단 시키나 한국의 학전, 서울예술단 같은 단체에서 배우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프리랜서인 배우와 컴퍼니가 개별 작품으로 맺어진 일시적 계약 관계가 아니라, 장기적인 협력자 관계, 전통적인 도제 시스템과 유사한 형태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시키만큼 체계적이고 지속적이지는 않더라도, 서울예술단과 서울시 뮤지컬단은 한국 뮤지컬을 지탱하는 다수의 중견 배우와 관록 있는 뮤지컬 스타를 배출해왔다. 수많은 배우들을 길러낸 학전의 경우, 김민기 대표라는 걸출한 스승의 역할이 가장 컸지만, 함께 무대에 서는 선후배들이 배우로서 갖춰야 할 미덕과 기술들을 전수하고 공유해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못자리 역할을 하는 ‘극단’ 개념이 갈수록 희박해지는 오늘날,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한 학생이라고 해도, 졸업 후 프로 무대에서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이 몇 배로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애초에 상업 예술인 뮤지컬은 극단의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만들어지기보다 영화처럼 개별 작품 위주로 오디션을 통해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런던이나 뉴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유독 국내 뮤지컬계에서 오디션이 신인 발굴의 건강한 통로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88만원 세대와 뮤지컬 배우의 꿈
지난 10년간 주역 급으로 성장한 신인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몇 가지 키워드가 보인다. 앞서 언급한 극단의 성격을 가진 단체에서 경험을 쌓았다는 것이 그 첫 번째라면, 두 번째는 신생 제작사가 만든 대형 유럽 뮤지컬이다. 대표적으로 <노트르담 드 파리>를 언급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이 키워낸 배우로는 윤형렬, 박은태, 전동석, 문혜원 등이 있다.
기존의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배우에게 요구하는 조건이 다른 프랑스 뮤지컬은 지난 몇 년간 대형 신인을 발굴하고 배출하는 하나의 통로가 되어주었다. 뮤지컬 배우가 갖춰야 할 세 가지 조건이 노래, 연기, 춤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 모두를 갖춘 배우, 특히 신인 배우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인지도도 부족하고 어느 한 부분에서는 뛰어나지만 전체적으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상태인 배우를 발굴하여 비중 있는 역으로 무대에 세우는 것은 프로듀서와 연출가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티켓 파워가 확실한 뮤지컬 스타와 쌓아놓은 관계가 없는 신생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뮤지컬계에서 이미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성 제작사와 달리 모험일지라도 신인을 키워야 한다는 필요성이 좀 더 분명하다. 거꾸로 말해서 뮤지컬계에서 이미 확고한 입지를 가지고 있고, 기존 스타들과 안정적인 인맥 관계를 가진 제작사에서는 이러한 공개 오디션을 통해서 주요 배역을 찾으려는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데뷔와 동시에 주역을 꿰차고 신데렐라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기적이 흔치 않은 것이 당연하고, 모든 뮤지컬 배우 지망생들이 그런 방식으로 직업 배우가 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나 앙상블에서부터 기본기를 닦아온 신인이 캐릭터가 있는 배역을 맡고, 내공을 쌓아서 작은 작품의 주역을, 거기서 더 성장해서 대극장 무대의 중심에 서는 것이 기적처럼 드물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20대 초중반에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이 맞닥뜨리고 감내해야 하는 차가운 현실은 젊은 뮤지컬 배우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어느 기업의 어떤 집단에서나 처음 업무를 맞게 된 사람들은 비교적 단순하고, 숙련도와 개성이 덜 필요한 업무에 배정을 받는다. 그리고 그 단순 업무를 통해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차츰 조직 내에서 입지를 확고히 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이는 햇병아리 사회 초년생이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제 몫을 하게 되는 매우 평범하고 바람직한 과정이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다수의 젊은이들이 이 소박한 꿈으로부터 추방당한 상태다. 젊은 인력을 싼 값에 소비하고 그들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뮤지컬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최저 생활비에 간신히 미치거나, 채 못 미치는 앙상블 배우의 개런티, 그리고 그나마 연차가 쌓인 만큼 개런티를 올려주는 것이 부담스러워 경력이 짧고 어린 배우들로 대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상황은 단지 앙상블 배우의 대우 문제로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을 믿고 키워주는 조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를 단련시키면서 성장해 나간다. 성장의 가장 큰 동력은 자긍심과 목표 의식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뮤지컬 지망생들에게 지금은 아직 앙상블이지만 곧 누구처럼 한 계단씩 올라가서 결국에는 훌륭한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키울 수 있게 해주는 롤모델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가능성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 뮤지컬계의 특이한 더블/트리플/쿼드러플 캐스팅은 사실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신인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순기능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그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은 아이돌을 필두로 한 TV 스타들이다. 브랜드 가치가 보장된 작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스타성을 파는 것이 뮤지컬 마케팅의 핵심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신인 배우의 기용은 점점 더 위험부담이 큰 일이 되어가고 있다. 완성된 무대를 보장할 수 있는 안정적인 뮤지컬 스타와 대중적인 관심을 끌어올 수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를 함께 캐스팅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프로듀서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인을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것은 위험부담을 감수해야하는 일임에 틀림없지만, ‘리스크 없이는 샴페인도 없다’라는 격언은 이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미 성공이 보장된 작품을 비싼 돈을 주고 수입해 오는 것보다는, 오히려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작품을 발굴해서 관객들이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도록 적절하게 손질을 해서 무대에 올리는 것이 프로듀서의 역량이고, 이는 배우 캐스팅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작품이든 관객들을 휘어잡는 놀라운 재능과 매력을 가진 배우를 캐스팅해서 무대에 세우는 것도 분명 중요한 능력이지만, 시장 전체를 생각했을 때 더욱 가치 있는 일은 가능성 있는 신인을 발굴하고 키워내서, 관객들이 믿을 수 있는 좋은 배우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는 것이다.
뮤지컬 무대에서 주연을 맡기 위해서는 방송에 나가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뮤지컬 배우로서 쌓은 커리어가 거의 없어도, 방송에서 이름을 먼저 알리면 뮤지컬계로 돌아와 주역을 맡을 수 있다는 말이 악의적인 왜곡이 아니라 불편한 사실이라면 이는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배우를 실력과 가능성이 아니라 인지도와 -실제 인지도에 정비례하는지도 알 수 없는- 티켓 파워만으로 판단하고 기회를 주는 것은 젊은 배우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지양해야 할 일이다.
대중이 사랑하는 스타를 좋은 작품에 캐스팅해서 완성도 있는 공연을 만드는 것은 프로듀서의 능력이다. 압도적인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배우가 압도적인 개런티를 받는 것 또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는 문제 삼을 일이 못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달리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 국내 뮤지컬계에서 무조건적으로 흥행을 보장하는 배우는 사실 다섯을 헤아리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신인의 입장에서 보면 배우 캐스팅에서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있는 뮤지컬 제작사도 사실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모든 뮤지컬 제작사들이 다섯 명도 안 되는 배우들을 놓고 쟁탈전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보다는 뮤지컬계의 미래가 되어야 할 어린 배우들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데 공을 들이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 아닌가. 당장의 티켓파워와 완성도가 보장된 레드오션과,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공을 들여볼 만한 블루오션. 전체 공연계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스타 캐스팅과 신인 발굴 중 어느 쪽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할지는 자명한 사실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4호 2011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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