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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거울의 뒤편에서 나를 찾기 [No.107]

글 |김영주 2012-08-30 4,602

 

 

 

마담 자자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알렉산드로스 대왕, 아킬레우스, 헤라클레스의 공통점을 묻는다면 가장 먼저 나올 대답은 ‘영웅’이라는 것이겠지만 사실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그들 모두가 여장을 한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서구 문화권에서 가장 강한 남자 세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차례로 이름이 나올 만한 이들이 여자 옷차림을 하게 된 배경은 제각각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두려워한 어머니 테티스 여신의 간청 때문에 여장을 하고 스키로스의 왕 리코메데스의 딸들 사이에 숨어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반드시 무적의 영웅이 필요했던 오디세우스는 공주들 중에 섞여 있는 남자를 찾아내기 위해 방물장수를 가장해서 궁전에 들어갔다. 그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물건들 틈에 보검 한 자루를 숨겨 놓고 미끼에 반응을 보이는 특이한 취향의 공주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참전을 거부했던 아킬레우스를 운명의 전장에 동참시키는 데 성공한다. 반면 헤라클레스의 경우는  광기에 휩싸여 아내와 아이들을 죽인 죄를 씻기 위해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의 노예로 지내는 동안 여장을 하라는 명령에 순종한 결과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피치못할 상황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취향대로 여장을 한 경우였다. 그리스 신화에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여장을 했던 아킬레우스나 헤라클레스가 그 일을 수치스러워했다는 묘사가 없다. 자신을 아킬레우스와 헤라클레스의 직계 후손이라고 믿었던 알렉산드로스가 술자리에서 여장을 한 것은 선조들의 일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양성애 성향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신화 속의 영웅들이 여장을 하는 에피소드들이 단순히 예쁘장한 아이돌 스타를 데려다가 화장을 시키고 가발을 씌워놓고 좋아하는 식의 흥미 위주의 이벤트는 아니었다. 평범한 인간과 신의 중간에 있는 특별한 존재로서 영웅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남성에게 내재되어 있는 여성적인 면, 아니마의 발현을 상징하는 통과의례가 필요했던 것이다. 여성을 한없이 열등한 존재로 치부했던 그 시대에도 그리스의 섬나라 중 하나였던 시라쿠사에서는 특정한 날에는 왕을 포함한 모든 남성들이 여자 옷을 입는 풍습도 있었다.

 

 

 

 

 

 

드레스를 입은 영웅들
동성애자와 트렌스젠더의 개념 정리도 쉽지 않은 사람들에게 드래그퀸과 크로스 섹슈얼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한 인간의 성향을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미묘한 문제이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여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동성애자는 아니다. 또 동성애자이며 여장을 즐겨 하는 남자 중에도 자신이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물학적 성별과 자신의 성향 사이에서 혼란을 겪지 않고 균형을 찾은 사람들도 있다. <라카지>의 앨빈(마담 자자)이나 <거미여인의 키스>의 몰리나가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고, 후자의 경우로는 <렌트>의 엔젤을 예로 들 수 있다. 너희는 나를 변종 취급하지만 나는 세상 어떤 남자보다 남자답고, 어떤 여자보다 사랑스럽다는 엔젤의 당당한 외침은 ‘나는 누구인가, 이런 모습의 나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고뇌를 극복한 후의 승리 선언일 것이다.


여성의 사회적인 활동이 금기시된 시대에 현실의 벽을 뛰어넘으려는 여인들이 남장을 하고 세상 속에 뛰어든 일은 간간이 있어왔다. 그 자체로 금기에 대한 선전포고였고 당연히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이러한 남장 여인들의 도전은 한편으로 영웅시되기도 했다. 반면에 더 많은 기회와 권리를 갖고 있는 남성이 여장을 한다는 것은 병적인 취향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때문에 드래그퀸 쇼는 남자가 여자처럼 분장을 하고 여성스러운 몸짓으로 춤과 노래를 선보인다는 것을 우스꽝스럽게 과장된 코미디로 받아들이는 관객들과, 생물학적 성별에 따른 사회적 통념에 반하여 자신의 성향을 관철하려는 퍼포머의 동상이몽이 한자리에서 펼쳐지는 희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문화권에 따라서는 여장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하기도 했는데 태국이나 일본의 경우가 그렇다. 드래그퀸 쇼나 트랜스젠더 미인대회 같은 이벤트가 대표적인 관광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고, 여장 남자에 대해 덜 배타적인 태국인들의 정서는 잦은 전쟁으로 인한 징병을 피하기 위해 여장을 시키는 일이 잦았던 것과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일본에서는 어린 남자아이에게 여장을 시키면 건강하게 잘 자란다는 속설이 민간에 있어왔다. 또한  한자 문화권이기는 하지만 유교적 도덕 관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다신교 사회였다는 점이 여장 남자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문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가발과 하이힐로 무장하는 전투
재미있는 것은 드래그퀸이든 크로스 드레서든 남자가 여자처럼 꾸미고 다니는 것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일종의 도착증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에서도 흥미 위주의 이벤트로 여장을 하는 것은 그저 즐거운 놀이로 인정받는다는 점이다. 평범한 학교 축제나 장기 자랑, 신입생 환영회에서 빠지지 않는 남장 여자 콘테스트나 어린 남동생에게 화장을 시켜주고 즐거워하는 누나들의 장난에 정색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 역할에 대한 사회의 굳건한 통념에 대해 가볍게 장난을 걸거나 농담을 하는 것까지는 용납되어도 진지한 도전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외부의 시선에 영향을 받고 그에 따라 자신을 제어한다. 누군가는 사회의 기준치와 자기 자신 사이에 큰 차이가 없지만 누군가는 도저히 절충안을 찾을 수가 없다. 남자가 화장을 하고, 가발을 쓰고, 드레스를 입고, 빛나는 보석과 깃털을 몸에 휘감을 때 누군가는 이를 두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는 위장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위장이야말로 남자의 몸과 사회적 시선에 갇혀 있는 진정한 자신을 끄집어내는 용기 있는 고백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7호 2012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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