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저작권 보호 장치들
공연 작품은 창작자들의 아이디어에서 비롯한다. 많은 창작자들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완성된 작품은 바로 그들의 재산인 이유다. 따라서 창작물의 저작권 보호는 민감한 사안이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체계화된 공연 시장의 기틀을 형성해온 미국에서는 어떠한 장치를 기반으로 공연 작품의 저작권을 보호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완성된 창작물을 출판, 등록
공연물의 저작권 보호는 작품의 완성 시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랫동안 개발 과정을 거치는 공연 작품은 여러 창작자의 협업이 요구되는 작업이기에 한 작품에 참여한 모든 창작 스태프와 제작진의 합의하에 작품의 모든 수정이 완료되고 완성을 결정짓는 시점은 반드시 필요하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는 연극이나 뮤지컬의 경우는 대개 수년간의 개발 단계, 트라이아웃 공연, 프리뷰 공연을 거친 이후 공식 개막을 며칠 앞둔 시점에 최종 프로덕션을 완성한다.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경우에는 바로 그 시점부터 해당 창작자들의 재산으로 등록되는 셈이다.
공연은 작가의 예술이다. 따라서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막을 내린 이후, 작품에 대한 공연권은 프로듀서가 아닌 작가에게 귀속된다. 미국에서는 많은 작가들이 전문 대행사를 통해 자신들의 작업을 등록하고 라이선스를 관리한다. 대부분의 극작가들은 단행본의 형태로 대본을 출판하여 판매하며, 해당 작품에 대한 공연권를 관리해주는 중계업체를 통해 일정한 법적 근거를 갖게 된다. 사무엘 프렌치(Samuel French)나 드라마티스츠 플레이 서비스(Dramatists Play Service)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 출판-라이선스 중계 업체들은 이후 작가를 대신해 각 작품에 대한 공연권과 로열티를 관리하게 된다. 즉, 특정 작품을 공연하고 싶은 개인이나 단체는 반드시 각 작품을 관리하고 있는 중계업체를 통해 적절한 금액을 지불하고 라이선스를 확보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자신의 작품이 공연되는 프로덕션을 일일이 컨트롤하기 힘든 극작가를 위해 매우 유용한 방식이다. 게다가 작품의 대본이 출판물 형태로 유통되는 것은 더욱 다양한 무대에서 공연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작가들에게 적절한 로열티가 꾸준히 지급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시스템이다.
간혹 작가들은 작품이 작가의 의도와 달리 제작된 프로덕션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기도 한다. 예컨대,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여성 배우들로만 캐스팅해 제작하고 있는 한 프로덕션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공연의 취소를 요청한 바 있다. 작가는 한 편의 공연 작품에 대해 절대적이자 궁극의 권한을 가진다. 따라서 작가는 작품의 구체적인 공연 조건을 명시할 수 있다. 이는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이건, 지역 공연 단체 또는 학생들의 아마추어 프로덕션에서건 동일하게 적용된다. 완성된 형태의 작품을 출판하여 공연권을 중계하는 이들 업체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이보다 좀 더 확실한 법적 근거를 확보하는 방법은 저작권 협회(Copyright Office)에 자신의 작품을 등록하는 방법이다. 모든 창작자가 의무적으로 창작물을 저작권 협회에 등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창작이 완료된 작품은 그 자체로 저작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에 발생할 수도 있는 표절이나 법적 분쟁에 대비해 미국에서는 작가들에게 가급적 저작권 협회에 작품을 등록할 것을 권유한다. 등록 방법은 간단하다. 저작권 협회 웹사이트에서 창작물의 형식별로 구분되어 있는 신청서를 다운받아 작성하고 65달러(공연물에 대한 저작권 신청비)와 함께 제출하면 된다. (https://www.copyright.gov)
노동조합과 저작권 협회의 역할
출판물의 형태로 확실한 근거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대본이나 음악에 비해 연출이나 안무, 디자인 등의 영역은 저작권 보호에 좀 더 세심한 장치가 요구된다. 창작자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각 창작자가 소속된 노동조합과 프로듀서의 협의, 그리고 저작권 협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대, 의상, 조명, 음향, 프로젝션 디자이너의 조합(United Scenic Artists)은 프로듀서·극장주 협회인 더 브로드웨이 리그와 함께 협의한 표준 계약서를 통해 공연에 사용된 모든 디자인의 사용권이 디자이너에게 귀속됨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따라서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는 이후 투어나 라이선스의 형태로 해당 작품을 다시 제작할 경우, 디자인 부문을 재사용할 때 반드시 해당 디자이너의 의사를 먼저 타진해야만 한다.
안무나 팬터마임과 같은 움직임의 창작은 작업의 자세한 설명을 기록한 문서 또는 녹화된 영상물을 저작권 협회에 등록함으로써 법적인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무단 사용이나 표절에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된다. 또한 대부분의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은 한 회분의 공연이나 마지막 리허설을 영상으로 담아 자료로 보관하는데, 이후 창작물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불거졌을 경우 이 영상물은 작업 노트와 함께 근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연출과 안무가의 노동조합(Stage Directors and Choreographers Society) 역시 디자이너 조합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좀 더 명확한 창작의 영역이 구분되는 안무에 비해 다른 창작 영역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연출의 영역은 여전히 다소 그 기준이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창작자가 주장하는 정당한 로열티
이미 완성된 작품의 저작권 보호도 중요하지만, 오랜 시간 개발의 단계를 거치는 공연 작품의 경우 간혹 작업 도중 창작진의 교체라는 난관에 봉착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브로드웨이 최대의 블록버스터 뮤지컬인 <스파이더맨>은 기록적인 제작비의 규모만큼이나 개막 직전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품이었다. 2010년 11월 프리뷰를 시작한 이후 연이은 사건, 사고는 개막 시기의 연기로 이어지며 프로덕션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 급기야 제작진은 2011년 3월 작품의 연출가이자 공동 작가인 줄리 테이머를 해고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이후 추가로 창작진이 투입되어 작품이 완성되었으나 줄리 테이머는 원작의 공동 작가이자 연출가로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연출가 조합은 줄리 테이머를 대신해 <스파이더맨>의 제작진을 고소했다. 그들의 주장은 프로듀서들이 오리지널 연출가로서 줄리 테이머에게 응당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그녀와의 근로 계약은 물론 조합의 표준 계약서를 위반하는 행위라는 것이었다. 연출가 조합의 대표인 로라 팬(Laura Penn)은 “줄리 테이머가 이 작품을 위해 무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작업하였으며, (그녀를 해고한) 제작진에게는 법적인 책임은 물론 윤리적인 이유에서도 그녀에게 적절한 로열티를 지불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스파이더맨>의 프로듀서들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줄리 테이머에게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이 지속되는 때까지 약속한 로열티를 지급할 것에 합의했다. 또한 손익분기점을 넘기거나 뉴욕 이외의 지역에서 공연이 진행될 때에도 별도의 금액을 지불할 것에 동의했다. 현재 줄리 테이머는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으로부터 주당 9,750 달러의 로열티를 지급받고 있다.
이따금씩 공연 창작물에 대한 법적 분쟁은 피해갈 수 없다. 함께 만들어내는 아이디어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공연 작품은 여전히 저작권 보호의 테두리가 촘촘하지 못하다. 노동조합이나 저작권 협회의 역할에 앞서 창작물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사항은 창작자 자신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계약서를 통해 상세한 내용을 분명하게 밝히고, 작업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하며, 완성된 작품의 근거 자료를 확보하고 보존함으로써 혹시 발생할 수도 있는 분쟁에서 창작자의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8호 2012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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