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노하우를 쌓아가는 중 프로듀서 중심
뮤지컬 제작에서 프로듀서의 역할은 무척 크다. 연륜 있는 프로듀서가 제작을 주도하면 그만큼 공연의 성공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제작사의 프로듀서들은 다년간 뮤지컬을 만들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며 제작 노하우를 익혔다. 하지만 그들은 주로 라이선스 뮤지컬을 발판 삼아 성장했고, 창작뮤지컬의 제작 경험은 많지 않다. 작품의 기획력과 마케팅 능력보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서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에이콤인터내셔날과 설앤컴퍼니, 신시컴퍼니,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해븐, PMC프러덕션과 CJ E&M은 국내에서 뮤지컬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대형 제작사들이다. <명성황후>와 <영웅>을 대표작으로 삼고 있는 에이콤과 <난타>를 시작으로 <달고나>, <형제는 용감했다> 등을 내놓은 PMC프러덕션은 처음부터 창작뮤지컬 제작에 주력해왔다. 나머지 제작사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라이선스 뮤지컬을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뮤지컬 시장 확대에 일조했는데, 그들 역시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창작뮤지컬 제작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형 제작사에서 만들어지는 창작뮤지컬은 다른 경우에 비해 창작 과정에서 프로듀서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프로듀서가 제작의 주체가 되는 경우, 좀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제작 환경이 마련된다. 꾸준히 한국의 역사와 전통에서 소재를 가져오는 에이콤을 제외하면, 신시컴퍼니의 <퀴즈쇼>와 <엄마를 부탁해>, 뮤지컬 해븐의 <마이 스케어리 걸>과 <파리의 연인> 등 대부분의 제작사들은 창작뮤지컬의 소재를 주로 인기 소설과 영화, 드라마에서 가져온다. 창작뮤지컬의 낮은 인지도를 원작의 명성으로 만회하려는 의도이다. 제작사의 인지도와 그간의 인맥을 활용하면, 실력 있는 창작진을 섭외하고 기존의 투자처에 문을 두드려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다른 창작 프로덕션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개인 및 기업을 상대로 한 전문적인 홍보·마케팅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대형 뮤지컬 제작사에서 만든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기획력과 자본력, 마케팅 능력이 뒷받침되어 탄생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상업적 성공 확률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제작된 작품들이 실제로도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창작뮤지컬이 지적받고 있는 대로 프로듀서 주도로 제작된 작품들도 완성도와 성숙도 부족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프로듀서의 아이디어를 잘 구현해줄 창작 인프라의 부족으로 창작 팀을 꾸리기가 쉽지 않고, 라이선스 뮤지컬을 제작한 경험을 창작뮤지컬 제작 과정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한편, 대형 제작사의 프로듀서들은 창작뮤지컬도 주로 중대형 규모를 지향한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을 제작하며 쌓은 노하우를 활용하다보니 그런 선택을 하게 되고, 중대형 작품을 올려야 수익 구조를 만드는 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력이 부족한 단계에서는 소극장에서 작품을 개발하여 중대극장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이 유효하다. 그런 이유로 PMC프러덕션은 <형제는 용감했다>의 초연을 소극장에서 올린 뒤 재공연 때에는 중극장인 연강홀과 코엑스 아티움으로 옮기면서 규모를 키웠다. <달고나> 역시 3년간 소극장에서 공연한 후, 대극장으로 공연장을 옮겼다. 뮤지컬해븐은 <마이 스케어리 걸>과 <파리의 연인>을 정식 무대에 올리기 전에 워크숍 공연을 거쳐 소규모 제작비가 투자된 상태에서 시장성을 검증받았다.
프로듀서가 주도한 창작뮤지컬 중에 성공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에이콤은 <명성황후>에 이어 <영웅>을 내놓아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인들에게 울림을 주기에 충분한 소재를 선택했고, 관객 타깃층을 중상류층으로 명확히 설정했으며, 프로듀서가 연출가의 역할을 겸하고 있어서 프로듀서의 의도가 제대로 반영됐다. 또한 이들 작품은 1960년대 예그린 시절부터 한국적인 뮤지컬을 개발하려 했던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때부터 축적된 뮤지컬 제작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된 듯하다.
최근에는 기획 단계에서 제작 목적과 관객 타깃을 확실히 설정한 작품들이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PMC프러덕션이 제작한 <달고나>와 <젊음의 행진>은 각각 1970~80년대와 1990년대에 히트 쳤던 가요들을 엮어 30대 이상 관객의 향수를 자극하며 인기를 얻었다. 이어서 나온 <늑대의 유혹>은 동시대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를 활용하고 아이돌 스타일의 퍼포먼스를 보여줌으로써, 현재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K-POP의 인기 열풍에 기대었다. CJ E&M의 <막돼먹은 영애씨>는 ‘오피스 뮤지컬’이라는 색다른 컨셉으로 직장인 관객들을 공략했다. 30대 직장인 영애씨를 주인공으로 하되, 직장 동료 캐릭터들도 함께 부각시키고 회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들을 사실적으로 담아내, 큰 공감과 재미를 주었다. 현재로서는 드라마가 중심이 된 창작뮤지컬보다는 <달고나>와 <막돼먹은 영애씨>같이 명확한 컨셉이 중심이 된 작품들이 완성도나 관객 호응 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기획자의 컨셉이 두드러진 작품들을 창작뮤지컬의 모범 답안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앞서 말한 작품들이 내세운 컨셉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만족을 주기는 어렵다.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명작이 되기 위해서는 드라마와 음악의 결합이 뛰어난 작품이 만들어져야 한다. 기획력과 자본력, 마케팅 능력 등 작품 창작의 전후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였다. 이를 바탕으로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노하우까지 축적된 창작 전문 프로듀서의 활약이 기다려진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2호 2012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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