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3세>가 지난 2일 예술의전당의 한 연습실에서 연습 현장을 공개했다. <리차드3세>는 140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셰익스피어가 썼다.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4세에게 막내 동생인 리차드는 불만을 품고 있었다. 움츠러든 왼팔과 곱추등 등 신체적 장애에도 언변과 리더십이 뛰어났지만, 피해의식으로 도는 넘은 권력욕은 피바람을 몰고 온다.
셰익스피어 작가가 쓴 <리차드3세>는 한아름 작가의 각색과 서재형 연출의 손을 거쳐 2월 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의 개막을 앞두고 한창 담금질 중이다. 황정민을 필두로 정웅인, 김여진, 김도현, 박지연, 정은혜, 임기홍 등 전 출연진은 약 40여 분 간 주요 장면 연습을 진행했다.
지금, 왜 <리차드3세>인가?
숱한 셰익스피어 작품 중 지금 <리차드3세>를 공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황정민은 “어릴 때 고전극을 많이 했고, 그걸 보면서 공부하고 배웠던 기억” 때문이었다고 했다. 사라져가는 고전극을 다시 해보자는 얘기를 회사와 나눴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시작으로 협업해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하게 된 것.
“저는 <리차드3세>를 하면서 말의 중요함, 대사와 단어 하나 하나의 뉘앙스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다시 느꼈어요. 촬영하는 순간에만 집중해서 하다가 그 호흡이 짧아졌다는 것도 또 느꼈고요. 이번에 다시 한 번 배우고 공부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 공연은 서재형 연출이 이끈다. 그는 연극이 하고 싶었고, <리차드 3세>는 (원작 대본이) 일부 아쉬운 점이 있지만 독보적인 캐릭터가 있어 빛난다고 말했다. 그런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작품을 하게 된 이유였다. 황정민이 리차드 3세를 연기하는 것도 연출로서 공부가 될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고전극을 한다는 것
<리차드3세>는 고전극이기 때문에 고어체 사용 등 어려운 점이 있다. 서재형 연출은 한아름 작가와 함께 책 10여 권을 참고자료로 보면서, 현대 우리말에 맞게 직접 읽고 적절하게 바꾸면서 대본화시켰다고 말했다. “지금 쓰는 말에 근접하게 해서 쉽게 이해되고 더 보기 쉬운 쉽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황정민은 대본은 공연할 수 있는 말로 쓰여져서 크게 어렵진 않았지만, 고어체와 단어 사이 간격 간 길이감이라든지 장단음, 발음 등을 잘해야 관객에게 인지되는 단어가 있어서 조심스러우면서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어려운 단어는 ‘엘리자베스’라고.
정웅인은 평소 쓰는 말과 다른 고어체 대사라 한 달 간 연습했는데도 아직 대사가 입에서 쉽게 나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부족한 것 같고, 아직도 생각하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리차드3세>가 준 무게감과 성장
황정민은 연습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며, 놀라운 몰입을 보여주었다. 타이틀 롤의 무게감은 상당해 보였다. 연습실에 도착하고, 가는 걸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황정민은 연습에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정웅인은 “연습벌레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거라며 “대사를 다 외우지 못한 상태로 상대 배우와 연습한다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황정민이 어떤 배우인지 설명해주었다.
김여진은 ‘그렇게까지 해야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열심히 한다고 했다. 그만큼 굵은 땀방울을 비오듯 쏟고 있다. 정웅인은 먹는 포도당을 선물해준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체력 안배를 할 것이라고 믿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번 공연으로 한 훈련으로 이후 영화를 하더라도 이 모습이 그대로 투영될 것이라고 말해, 이후 활동도 기대하게 했다.
이어 김여진은 (역할을 소화해내기 위해 배우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달릴 정도이지만, 그 덕분에 에너지를 최대치로 쓰게 되면서 조금씩 (연기가) 늘고 있는 느낌이라 기쁘다고 말했다. 에너지가 큰 배우는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기를 받으면서 성장하고 있는 게 아닌가 추측했다.
박지연은 <리차드3세>가 첫 연극이다. 일주일 가량 음악 공부를 하고 대사를 더하면서 장면 연습을 해나가는 뮤지컬과 <리차드 3세>는 많이 달랐다. “새로운 환경에서 에너지와 집중력이 많이 필요한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연출님께서 노래하는 장면을 넣어주셔서 제 노래를 잠깐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원 캐스트는 당연한 것
<리차드3세>는 배우들이 원 캐스트로 출연한다고 해 화제를 모았다. 멀티 캐스트가 당연시되기 시작하면서 생긴 반대급부였다. 배우들은 매일 함께 구슬땀을 흘린 결과물을 보여주듯 간담회 전 선보인 연습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황정민은 브로드웨이를 포함한 많은 곳에서는 원 캐스트로 공연하는데, 흔치 않게 한국만 멀티 캐스팅이 당연하게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했다. 원 캐스트를 놓고 “신기하게 생각하시는데 해야하는 것”이라고 다시금 강조했다. 이는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자존심”이라고도 했다. 특히 연극은 더욱 그래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멀티 캐스팅이 당연시 되면) 나중에 영화도 더블, 트리플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요. 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공연 기간 동안 몸 관리부터 모든 걸 스스로 잘해내서 오롯이 그 역할로서 관객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하는 거예요”
1인 다역과 메시지
서재형 연출은 1400년대 비뚤어진 욕망으로 달려간 리차드 3세처럼, 지금 우리도 무슨 욕망으로 달릴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싶은지를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본이 많이 어렵지만, 최대한 할 수 있는 바를 다해서 관객들을 납득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이런 목표와 메시지가 잘 전달되기를 바랐다.
무대도 이를 반영했다. 의상이 최대한 고증에 힘을 줬다면, 정승호 무대디자이너가 만드는 무대는 연극에선 다소 많은 세 대의 프로젝터를 쓴다. 현대에 맞게 빠른 전환을 한다고. 철 구조물이 빛을 투과해서 자세히 보면 고딕 양식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은 형태라고 서재형 연출은 설명했다. 고전이지만 현대물 같기도 한 무대 장치로 배우들이 스펙터클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1인 2역도 메시지를 담았다. (원칙은 아니지만) 주역이 악했다면 다른 역은 선한, 선했다면 악한, 가벼우면 무거운 역을 소화하도록 했다. 양면을 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던 서재형 연출의 의도였다. “다재다능한 배우들이라 짧은 시간만 소화하고 그냥 집에 보내드리긴 연출로서 아까웠다”는 이유도 있었다.
실제 자녀가 있는 배우들은 또다른 관점을 들려주었다. 정웅인은 리차드 3세를 동시대인 15세기, 조선시대를 살았던 수양대군에 비유하며, 희생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낸 비극이라 설명했다. <리차드3세>를 하면서 ‘좋은 환경을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의무이고,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우리 시대에서 이런 비극은 없어야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리차드3세>처럼 실제 아들이 있는 김여진은 작품을 하면서 무섭다고 고백했다. “(아들이 죽는 신과 같은) 이런 연기를 할 때 감정이 과잉될 때가 많아요. 집에 있는 아들을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하는데도 첫 연습 리딩 때부터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니까 눈물이 났어요. 지금도 이 신이 다가오면 고통이 느껴져요. 정말 이런 일이 없는 현대에 살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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