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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돌아온 <마리 퀴리> “이런 여성 캐릭터는 처음이다” (프레스콜)

글 | 안시은 기자 | 사진 | 안시은 기자 2020-02-14 5,620
“두 여성의 연대와 성장, 고뇌와 반성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마리 퀴리>가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리 퀴리>는 100분이던 공연 시간을 150분으로 늘리면서 마리와 안느의 서사를 대폭 보강했다. 음악은 기존 여섯 곡을 제외한 모든 곡을 새롭게 써서 완성도를 높였다. 새로운 작품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어제(2월 13일) 오후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진행된 프레스콜에서는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김찬호를 제외한 전 캐스트가 참여해 '두드려', '잘 지내요', '또 다른 이름', '어둠 속에서', '그댄 내게 별', '예측할 수 없고(Rep)' 등 작품 주요 장면을 시연했다. 이어 김태형 연출과 천세은 작가, 최종윤 작곡가를 비롯해 출연 배우들이 참석한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번 공연에서 연출가로 합류한 김태형 연출은 이런 작업을 위해서 “전반적인 공연 콘셉트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점검했다”고 말했다. 천세은 작가, 최종윤 작곡가와 수차례 회의를 거치면서 “무엇을 쓰고 싶었는지” 살펴보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

김태형 연출은 “위대한 과학자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라듐을 발견한 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기 힘들다. 방사선 치료나 핵물리학 발전 등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전하고자 했던 핵심을 짚었다.

그가 주목한 또다른 점은 편견과 차별을 극복해나간 한 인물에 대한 것이었다. 김태형 연출은 “여성 과학자, 이민자 등 소수자였던 마리 퀴리가 사회에서 편견과 차별을 어떻게 극복하고 삶을 꾸려가면서 완성해갔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라듐걸스’는 역사적 사실에서 일부를 차용해 창작한 부분”이라고 언급하면서 “그 부분에서 마리 퀴리의 삶을 함께 연대하고 고통을 나누고 겪은 안느란 캐릭터를 통해 두 여성 간 연대와 성장, 발전뿐만 아니라 여성 캐릭터가 고뇌하고 반성하고 다른 일을 해나가는 이야기를 하게 됐다. 전형적인 성장 이야기지만 두 여자 주인공이 이야기할 때 관객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주목한 부분을 말했다.




<마리 퀴리>가 보여준 여성 서사에 대해서 김태형 연출은 “공연은 결국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시대의 메시지를 강한 의지로 담으려 하지 않아도, 자신도 모르게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공연에 담을 수밖에 없다”면서 “여성 중심 서사, 즉 주인공뿐만 아니라 상대 배역까지 여성인 이야기는 시대가 원하기 때문에 나온 거다.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봐왔으니까.”라고 이유를 짚었다.

그는 <마리 퀴리>를 만들면서도 그런 필요가 당연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여성 서사에 집중했다고 했다. “다른 캐릭터도 중요하지만, 마리와 안느의 서사와 연대, 목소리가 함께 나아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배우들과 공유했다. 작가님, 작곡가님도 그 점을 적극적으로 얘기해 주셔서, 장면과 음악이 수월하게 만들어졌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천세은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에는 딸이 있었다. 천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체 이름이 아닌) 퀴리 부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아이에게 위인전집을 사주려던 중에 아이가 퀴리부인 책을 들고 왔다. 누군가의 부인이 되기 위해서 했던 이야기를 사주기 위해 36개월 할부를 긁고 싶지 않았다. 이 분의 이야기를 나의 딸에게 어떻게 전해줘야 할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했다.”면서 그 뒤로 4년 간 작품 개발에 매진해왔다고 했다.

천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 중 특히 주목한 것은 마리 퀴리가 지닌 인간으로서 고귀한 가치였다. “마리 퀴리가 훌륭한 건 많이 아시지만 어떤 과정과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알고 계신 분이 많지 않다. 머리가 좋고 훌륭한 인물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실패를 거듭해도) 끝도 없이 가봤다는 것에서 존경받을만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점을 부드럽고 감정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딸에게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다”라고 설명했다.






천 작가가 가장 어려운 장면으로 꼽은 것은 남편인 피에르 퀴리 시신을 부검하기로 하는 부분이다. 마차 사고로 사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검하겠다고 발표하는 장면은 창작한 것이라고. 천 작가는 “이 이야기가 기능적으로 사용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부분을 고심하면서 작곡가님과 상의했다. 이 장면을 통해 세상으로 나아가는 인물로 성장할 수 있길 바랐다”고도 했다.

이 장면을 쓰면서 마리 퀴리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천 작가는 “남편의 죽음을 상상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신념을 갖고 부검해서 공개해야 하는 결정을 해야 하는 마음은 어땠을까 상상되지 않았다. 많은 밤 동안 침대에서 잠든 남편을 보면서 (그 심정을 떠올려보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남편이 눈을 뜨면 다시 잠들길 기다렸다.”고 말해 웃음을 주면서도, 장면에 진정성을 담기 위해 노력한 작가의 마음을 엿보게 했다. 



김소향은 마리 퀴리 역을 맡은 배우 중 유일하게 지난 공연에 이어 다시 참여한 배우다. 김소향은 “기뻤지만 그만큼 부담과 책임이 컸던 것도 사실”이었다고 고백했다. 김태형 연출을 비롯해 모두 열정적으로 만들면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도 했다.

지난 공연과 달라진 점으로는 안느 캐릭터를 짚었다. 김소향은 “안느가 초연에 비해 아주 다른 캐릭터로 다가왔다. 가장 친한 친구로서 함께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됐다. 공연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그에게 가장 어려웠던 건 방대한 대사량과 함께 익혀야 했던 생소한 수학 공식이었다. 그 부분은 과학고와 카이스트를 졸업한 김태형 연출의 덕을 봤다. “김태형 연출께서 많은 걸 알고 계셔서 이해시켜 주셨다. 마리 역을 맡은 세 명 모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까지 이해하게 됏다. 관객 여러분들께서 혼란스럽지 않도록 철저히 고증에 기반해서 더 정확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게 돼서 가장 힘들었지만 뿌듯하고 기뻤다.”

김소향은 체력적으로 힘든 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같은 역을 세 명이 하고 있어서 번갈아 가면서 출연한다. 그 부분이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의 완성도였다. 드라마와 음악이 잘 어우러지면 연기하는 배우가 그렇게 힘들지 않을 때가 많이 있다고. “저희 공연은 드라마와 음악이 아름답게 연결돼있어서 덜 힘들게 연기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같은 역으로 리사와 정인지가 처음 합류해 함께하고 있다. 리사는 “체력도 힘들지만 머리가 더 힘들다”면서 “극 중 공식을 쓰면서 노래를 동시에 하는 장면이 있다. 천재 과학자를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하지 않으면 보시는 분들에게 잘 전달하기 어려워서 그 부분을 마리 역 세 명 모두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정인지는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안무감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안무감독님께서 안무를 추가해주시면서 부분마다 몸이 많이 힘들지 않게끔 장치를 마련해 주셨다. 충분히 에너지가 전달되면서도 체력이 크게 소모되지 않도록 한 부분이 많다. 장면 순서라든지. 그래서 캐릭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연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비결을 공개했다.



작품에 대한 에피소드로는 '곡괭이'가 언급됐다. 작품 초반 곡괭이질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찍다 보니 소품이 부서지고 있다는 것. 정인지는 “과감히 찍으라고 해서 찍고 있는데 곡괭이가 부러지고 돌이 계속 뚫리고 있다.”고 언급해 웃음을 주었다.

리사도 “아까 시연할 때 곡괭이질을 했지 않나. 이미 한 쪽이 부러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반대쪽을 했는데 돌까지 부서져있었다.”고 말을 보탰다. 김소향도 “어제(2월 12일) 곡괭이질을 하는데 돌이 반으로 갈라져서 스티로폼이 위로 올라와서 굉장히 죄송했다. 돌에 머리를 쿵 찍어서 뒤로 넘어지면서 마리 퀴리를 연기하다가 저도 모르게 김소향이 나오기도 했다.”며 또다른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배우들은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했다. 김소향은 “예술이 관객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희망과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에 대해서, 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와 용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성별을 떠나서 모두 만족하실 수 있는 공연이라 자부한다.”고 작품을 아끼는 마음을 드러냈다.

특히 배우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작품에 함께 참여하는 배우들에게도 고맙다. 공연을 보시면 (주요 배역을 제외한 배우들은) 거의 다 1인 다역을 소화한다. 그 분들이 어떤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지 찾으시는 재미도 있을 거다. 흥미있게 지켜봐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리사는 “이런 여자 캐릭터는 못 본 것 같다. 여성미를 살린 건 많이 봤지만. 저희 작품에선 마리 퀴리와 안느, 직공들까지 바깥이 아닌 내면이 아름다워서 그 인물들에게 빠지게 된다”면서 그래서 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실패는 해도 포기하지 않는다'란 루이스의 대사를 소개하며, 연습할 때 붙들고 했던 말이라고 했다. “지금 시대에 너무 힘들지 않나. 그런데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있을 거고, 마리 퀴리처럼 그 모습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시면서 위로가 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공연하고 있다.”고 작품에 임하는 마음을 전했다.



정인지는 “내가 제출한 것들, 해왔던 것들을 봐달라”는 마리 퀴리의 대사를 소개하며 “마리 퀴리가 현대에서 독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증명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자여서 겪는 일들도 물론 있지만, 여러 업적을 남겼는데 알고 보니 여자였던 것뿐이다. 여성이란 점이 마리 퀴리를 과학자로 성장시키는데 크게 걸림돌이 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과학을 향한 집념을 방해할 수 없지 않았을까 한다.”며 역경보다 이겨내려는 집념이 강했을 거라는 생각을 들려줬다. 

정인지는 <마리 퀴리>의 장점은 “사람으로서 겪는 걸림돌이 입체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짚으며 “마리 퀴리뿐 아니라 피에르, 루벤, 직공들까지 각자 다 드라마를 갖고 있다. 모든 역할이 살아있는 뮤지컬은 과감하게 말씀드리지만 <마리 퀴리>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며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줬다.



안느 역으로 출연 중인 이봄소리는 처음 연습하던 당시 했던 고민들을 고백했다. “안느가 마리의 상대 배역으로 얼마나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걱정했다. 여성 연대에 대한 느낌을 관객들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까 의문이 있었고 두려웠다. 첫 공연 전까지도 그랬다.”고 했다.

걱정했던 이유는 작품이 잘되지 않았을 때 다시 튀어나올 말들 때문이었다. “잘 안 되면 또 '여성 서사 주연극은 안 될 거야'라는 이미지가 굳어질까봐 굉장히 걱정했다”고.

그 걱정은 첫 공연 후 불식됐다. “관객 분들이 기립하시는 걸 보면서 첫 공연이 아니었던 배우들이 (지켜보고) 다 울음이 터졌다. 알아주시는 것 같았다. 함께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고생하고 노력했는지 아니까 눈물이 났다.”며 당시 감정을 떠올렸다.




이봄소리는 “이런 공연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리 퀴리>가 여성들이 더 많이 목소리를 내는 공연이자,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라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공연인 것 같아서 정말 기쁘다. 그런 공연에 참여할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하다.”고 작품에 참여하며 느낀 점을 말했다.



김히어라는 “마리와 안느가 가장 재미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버티는 것이 멋졌다. 무대에서 보면서 마리가 과학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멋있게 하는 게 정말 멋있었다.”고 떠올렸다.

“안느도 (마리처럼) 부당한 일에 주춤하고 이겨낸다기 보다, 더 재밌는 일을 찾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부당한 것에) 부딪힌 것이 컸다. 그게 마리와 공통점이다”라고 역할에 대해 언급하며,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더 매력있었고, 공감받는 것 같다. 요즘 시대는 '힘들었어. 이겨낼 거야'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 이후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마리 퀴리>가 그 첫걸음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작품의 의미를 다시 새겼다.





한편, 여성 서사를 본격적으로 그려낸 <마리 퀴리>는 3월 2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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