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NEWS DB 발빠른 공연 뉴스와 풍부한 현장 소식

연극 <젤리피쉬> 9월 명동예술극장 무대 오른다

글: 이솔희 | 사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옥상훈 2025-08-13 317


국립극단이 올해 두 번째 [2025 기획초청 Pick크닉]을 선보인다. [기획초청 Pick크닉]은 국립극단이 직접 꼽은 우수 연극 초정전으로, 초연 당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으며 전석 매진을 기록한 <젤리피쉬>가 내달 12일 다시 한번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단은 민간 연극계와의 상생을 이루고 한국 공연예술의 발전을 위해 기획초청과 민간교류 사업을 꾸준히 시도해 왔다. 특히 지난해 8월 [기획초청 Pick크닉]을 새롭게 정규 사업으로 편성해 매해 상하반기 정기 초청을 진행하고 있다. [기획초청 Pick크닉]은 민간극단에 공연 제작비를 지원하고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의 공연장 제반 시설과 무대 사용을 제공한다. 민간극단이 제작하거나 대학로 등지에서 발현한 뛰어난 창작극이 초연에 그치지 않고 레퍼토리로 자리 잡아 한국 연극을 대표하는 공연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의 목표다. 짧은 공연 기간과 홍보 자원의 부족 등으로 미처 우수 신작과 만날 기회를 놓쳤던 관객 역시 관람 기회를 제공받고 연극 경험의 확장을 누릴 수 있다.

 

연극 <젤리피쉬>는 영국 극작가 벤 웨더릴의 희곡으로 민새롬이 연출하고,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이 공동제작했다. 27살 다운증후군 여성 ‘켈리’가 비장애인 남자친구 ‘닐’과 연애를 시작하면서 그려가는 선하고 따뜻한 이야기지만, 그 이면에는 장애에 대한 부당한 편견과 몰이해가 날카롭게 적시된 극이다. 작품은 2018년 영국 런던 부시극장에서 초연하고 영국 내셔널시어터(2019), 호주 뉴 시어터(2023) 등에서 공연했다. 

 

해외 공연 당시 영국 유력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와 가디언(The Guardian)은 각각 “감동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작품”, “현실을 반영한 섹시 로맨틱 코메디”라는 평을 남겼다. 오프웨스트엔드어워즈(Off West End Theatre Awards) 4 부문, 작가조합상(Writers Guild of America Awards) 후보 등에 올랐으며, 영국 공연에서 ‘켈리’를 연기한 사라 고디는 다운증후군 여성 예술가 최초로 대영제국훈장(Order of the British Empire, MBE)을 수상하기도 했다. 

 

 

켈리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당차고 사랑스러운 여성이다. 켈리의 엄마 아그네스는 세상으로부터 켈리를 보호하기 위해 잠재적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켈리의 남자친구이자 비장애인인 닐을 거부하고 경계한다. 세상의 부당한 편견에 맞서 딸을 지켜왔던 엄마는 딸이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편견 속에 딸을 가둔다.

 

<젤리피쉬>는 그동안 연극 무대에서 보기 힘들었던 장애 여성의 연애와 결혼, 출산 등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장애 여성의 생애 자기주도성, 성적 자기결정권 등 다루기 첨예한 주제들을 조명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극중 인물들과 발칙하고도 톡톡 튀는 극적 장치들로 비장애 중심의 우리 사회가 가진 편견과 이데올로기를 자연스럽게 지워낸다. 특히 장애가 있는 주인공의 사회적 권리 신장뿐만 아니라 주변에 비장애 인물들의 성장까지 담았다는 점에서 작품은 특별하다. 

 

배우 백지윤이 주체적이고 발랄한 켈리 역을 소화한다. 지난해 쇼케이스부터 올해 초연까지 한국판 <젤리피쉬>의 주역을 맡아 온 백지윤은 다운증후군 무용수 출신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발레를 전공했다. 2013년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특별 공연에서 발레 <지젤>의 낭만적이고 순수한 시골처녀 ‘지젤’ 그 자체로 분해 페전트 파드되 중 여자 솔로를 완벽하게 표현하면서 관객의 기립박수와 함께 ‘기적의 지젤’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2019년 드라마 <고고송>에서 연기한 적은 있지만 주역으로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한 건 연극 <젤리피쉬>가 처음이다. 

 

인지, 감정 조절 속도가 다르고 선천적으로 작은 키와 약한 근력, 균형감각을 가진 배우와 함께 공연을 완성하기 위해 배로 느리더라도 단단하게 공을 들였다. 상대의 대사까지 1,642줄에 이르는 대사를 암기해야 하는 백지윤을 위해 연출과 창작진은 단순히 말과 언어의 설명이 아닌 감각적이고 시각적인 방식으로 극의 서사를 전달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창작 조력자’라는 직책을 도입해 배우가 느끼는 긴장과 불안감을 해소하고 극 속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과 관계들을 심리적, 신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감각 워크숍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현실과 극 속 세계를 구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 창작 조력자는 ‘체크인’과 ‘체크아웃’ 시간을 마련하고 연습의 시작과 마무리를 명확히 정리하기도 한다.

 

장애 예술의 제작 방법론을 새롭게 개척해 가면서 완성한 공연은 실제 무대에서도 그 속도의 배려가 이어진다. <젤리피쉬>는 배우와 스태프 간 공개 워밍업으로 시작하고 각 장의 시작마다 배우의 상태를 점검하는 손 사인도 관객에게 노출한다. 무대 밖 공간에서는 프롬프터 역할을 하는 스태프가 상시 대기한다. 더딘 반응으로 배우가 대사를 놓칠 때면 프롬프터 스태프는 연극 내내 배우를 따라다니며 대사를 상기시켜 준다. <젤리피쉬>는 이러한 비연극적 요소들이 포용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포함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극이다.

 

 

당사자성을 반영해 다운증후군 켈리 역 외에도 저신장장애인 도미닉 역에 배우 김범진이 출연한다. 그와 더불어 아그네스 역에 정수영, 닐 역에 김바다, 이휘종이 캐스팅됐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배우가 함께 만들어 가는 프로덕션에서 당사자성이 큰 울림을 주는 한편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와 합이 더해져 진정성이 깊은 연극이 탄생했다. 

 

프로시니엄 중극장으로 무대와 객석의 구획 구분이 분명한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이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을 맞이하는 것도 이번 공연의 또 다른 묘미다. <젤리피쉬>는 명동예술극장의 무대와 객석 사이에 자리 잡은 경계선을 지우고 무대 위에 관람석을 올린다.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을 전용 극장으로 운영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창작진의 안전 보장과 제작 환경의 접근성 확보가 1순위라는 공연의 특수성과 관람 환경의 접근성 역시 연극의 일부라는 판단이 반영된 결과다.

 

국립극단 박정희 예술감독은 “관객의 마음속에 있는 경계를 허무는 연극이 극장의 경계마저 뛰어넘어 다시 한번 우리의 곁으로 돌아온다”라며 “<젤리피쉬>는 장애를 이야기하지만, 장애를 잊게 하는 연극이다. 다름이 틀림으로 읽히고 분열과 반목이 마음을 할퀴는 시대에 단순히 장애의 문제로만 머물지 않는, 모두가 돌아봐야 할 연극”이라고 초청 사유를 전했다. 

 

연극 <젤리피쉬>는 오는 9월 12일부터 2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