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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데빌> 관객과의 대화

글 | 최영현 2014-09-29 4,645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지난 9월 18일. 뮤지컬 <더 데빌>의 공연이 끝난 후 작품에 대한 궁금증도 풀고,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곁들여 들을 수 있었던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었다. <더뮤지컬> 정기구독자 중에 선발된 관객 스무 명이 참석한 가운데, <더뮤지컬> 박병성 편집장의 사회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는 이지나 연출, 윤형렬(존 파우스트役), 장은아(그레첸役), 이충주(X役) 배우가 함께 했다. 창작 뮤지컬로서는 보기 드문 주제와 형식, 음악으로 주목 받고 있는 뮤지컬 <더 데빌>. 여타 작품보다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많이 준 작품인 탓인지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작품 속 숨은 의미와 연출 의도를 묻는 질문이 유독 많았다.

어른들을 위한 쇼뮤지컬<더데빌>
화려한 쇼조명, 록음악이 어우러진 새로운 스타일

이지나 연출은 <더 데빌>에 대해 단순한 이미지 속에서 어른들을 위한 쇼- 기괴하면서 주제가 있고, 음악, 노래, 퍼포먼스, 분위기를 즐기는 쇼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는 <카바레>를 꼽았다. <카바레> 역시 쇼뮤지컬로 분류되지만 끔찍한 내용에 쇼 장면도 난잡하고 세기말적이다. 이지나 연출은 여기에 록오페라와 클럽 느낌을 더했다. 다만 작품이 종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어 중세풍 음악을 이용해 묘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더 데빌>에서 다른 뮤지컬에서 찾아볼 수 없는 화려한 쇼 조명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제안’ 장면부터다. 나락으로 떨어진 존이 신과 자기가 믿었던 모든 것을 부정하다 난데없이 편지를 받는다. 이지나 연출은 이를 두고 ‘소외효과’로 정의했다. “이 작품은 감정이입을 하면 보기 힘든 작품이다. 스토리가 중심인 작품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갑자기 편지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다. 누구한테 왔는지 모를 편지를 존이 받았고, 조명은 이상하게 바뀌고, 그레첸은 부시시 일어나는, 이 장면부터 그레첸의 악몽이 시작된다”. 작품의 시작과 마지막에는 1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지만, 그 사이에 1년 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것처럼 설정된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바로 판타지적 시간, 그레첸의 악몽의 시간이 반영된 탓이다.

그레첸의 악몽 속에서 존이 악마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친절해지는 부분이 대해서 이지나 연출은 “그레첸의 악몽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실제로도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평상시 마음속으로 타인을 악하게, 때론 선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실제로 존은 굉장히 이성적인 말을 하고 있지만 그레첸의 눈에는 악에 물들었다고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레첸의 눈에 존이 악하게 보일 때는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고, 그렇지 않을 때는 선한 존재로 보인다. 이런 이중적 시선은 엑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이지나 연출은 “그레첸의 신이 아닌 블랙 엑스일 때는 존이 끄집어낸 악마와 타락한 종교를 입혔다”고 말했다. 이런 극명한 대비가 몰입을 방해한다는 의견에 대해 이지나 연출은 “스토리 안으로 들어오라는 작품이 아니고, 변하는 스타일 통해 뭔가 생각할 것을 주고 싶어 그렇게 표현했다”고 대답했다.

존을 연기하는 윤형렬 배우는 “그레첸의 악몽에서 그레첸에 눈에 과격하게 변한 모습도 있지만, 현실 속의 존도 처음과 달라져 있다. 나중에는 환상이 아닌데도 나쁜 놈이 되어 있다. 그런 부분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포인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타락한 종교와 돈으로 상징되는 악,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는 선

작품에서는 종교와 돈이라는 소재가 유독 눈에 띈다. 이지나 연출은 “현대 모든 죄악은 돈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월 스트리트를 선택한 것은 쉬웠다. 거기서 더 들어가서 돈으로 인해 타락한 종교 집단을 월 스트리트와 함께 현대 악으로 상징”했다며, “종교의 본질을 믿고 있는 순수한 그레첸의 눈에는 돈과 돈이 전부인 타락한 교회 자체가 가장 큰 악이고, 존이 그렇게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연출이 무대에서 표현하고 싶어하는 선악의 개념에 대해서는 “엑스는 본능과 인간의 욕망에 충실한 존재다.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악으로 분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중심적인 원초적 본능과 행복을 블랙 엑스로, 자기보다는 타인, 자기를 죽여서라도 타인을 위해 희생할 수 있거나 타인의 영혼을 대신해 아파할 수 있다는 것을 화이트라는 선이라는 존재로 표현”했다고 전했다.

엑스 역할의 이충주 배우는 “한 인물이 표현하는 두 가지 면인데, 해보니까 꼭 선과 악만으로 표현이 아닌 것 같다. 그레첸의 신과 존의 동일 인물인 악마에 중점을 맞췄다. 그 부분이 극명하게 드러났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에서 한없이 선한 존재이자, 유일하게 신을 믿는 그레첸은 2막 마지막에 마치 십자에게 못 박히듯 죽음을 맞이한다. 이 장면의 의도를 묻는 질문에 이지나 연출은 “그레첸은 자기가 믿는 존재 안에서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고 죽음을 택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금하고 있다. 2막에서 그레첸은 광기로 인해 마치 예수처럼 존을 위해 자기가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믿는다. 그레첸의 행위는 종교적으로 잘못된 것이지만,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자기 사랑을 지키겠다는 것을 종교와 결부시켜 만든 장면”이라고 대답했다.

한편, 그레첸은 시종일관 어떤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선의를 버리지 않는 힘에 대해서 장은아 배우는 “신에 대한 사랑과 존에 대한 사랑을 함께 갖고 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레첸은 무대에서 유일하게 신을 믿는다. 그러나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데, 그 이유는 존에 대한 사랑이다. 존이 그레첸을 버리고 외면하더라고, 그레첸은 신을 끝까지 의지하고 신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해달라고 울부짖는다. 그 힘으로 계속 가는 거다”라고 말했다.

조금은 아찔하고 힘들었던 ‘데빌’스러웠던 경험
<더 데빌>을 하면서 꼭 ‘데빌’ 같은 상황이 있었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윤형렬 배우는 실수 아닌 실수담을 털어놓았다. “첫 공연 때 2막 첫 장면이 그레첸에게 나쁜 짓을 하는 장면인데, 원래는 없다가 내가 첫 공연을 할 때 생겼다. 음악이 긴 줄 모르고 연기를 시작했는데, 조명이 켜지지 않아서 계속 연기를 했다. 이후에 ‘짐승’, ‘너무 했다’라면서…… 지금도 용진이 형이 놀린다”며 가장 데빌스러운 상황으로 꼽았다.

 


장은아 배우는 “연습부터 ‘데빌’이었다”고 운을 뗐다. “다리에 온통 멍 투성이다. 지연언니도 그렇고. 그리고 땀을 정말 많이 흘렸다. 우리끼리 본격 ‘육수뮤지컬’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지금은 그레첸이 많이 좀 순화가 되었는데, 처음 콘셉트는 더 셌다. 지금 흘리는 땀의 세배 정도를 흘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 스태프, 연출님 이하 모든 배우들이 똘똘 뭉쳐서 이 작품에 애착을 갖고 있고, 관객 여러분께서 좋아해주시는 것에 정말 감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조금씩 수정되는 작품에 대해서 관객들은 계속 수정되고 변하는 공연이 아니라 완결된 공연을 보고 싶다는 의견에 이지나 연출은 “작품 근간을 흔드는 수정을 할 시간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러나 엔진 오일을 쳐 주는 정도의 수정은 안 하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수정을 싫어하는 관객이 있고, 또 수정을 해서라도 작품을 놓지 않고 가길 원하는 관객도 있어서, 요즘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중”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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