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프로젝트①-1 | <태일>, 그리고 창작진을 만나다
역사적 실존 인물의 삶을 공연으로 재조명하는 ‘목소리 프로젝트’가 주목한 첫 번째 인물은 전태일 열사다. 전태일은 1948년 출생 후 1960년대 노동 운동에 투신했고, 1970년 11월 13일 노동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했다. 그의 분신 자살은 이후 근로 환경 개선과 노동 운동사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목소리 프로젝트’ 첫 작품인 <태일>은 박소영 연출가, 이선영 작곡가, 장우성 작가가 모여 음악극으로 세상에 나왔다. 2017년 11월, 일주일 간의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쳐 2018년 6월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을 통해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본 공연을 올렸다.
PART1. <태일>의 출발
‘목소리 프로젝트’의 첫 소재 선정은 오세혁 작가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오세혁 작가는 초반 아이디어 제안과 함께 지원 사업에 신청해 트라이아웃 공연을 선보일 수 있는데 한 몫 했다. 박소영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어떤 소재가 좋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어요. 초반엔 오세혁 작가님이 도와주셨는데, 예전부터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대요.
이선영 전태일을 다룬 작품이 많지만 전태일이 직접 쓴 수기를 직접 가사로 삼아 노래로 푼 극은 없는 것 같았거든요. 노래로 붙일 수 있는 글을 많이 발췌해서, 그 중 어떤 노래를 할지 얘기를 나눴어요.
박소영 가사와 음악 작업을 먼저 하고 극작을 병행해서 같이 써내려 갔어요. 노래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먼저 최대한 펼쳐놨죠.
PART2. <태일>의 여정 - 음악과 대본
‘목소리 프로젝트’는 노래가 전하는 힘에 주목해 시작되었다. <태일>에도 그런 마음이 담겼다. 그러기 위해 창작진은 진정성에 집중했고, 당시 분위기를 담아내려 애썼다.
박소영 엄청 덜어내려 했어요.
이선영 양희은, 송창식, 김광석과 같은 음악을 많이 참고했어요. 제 기준에서 진정성 있는 선생님들의 음악요.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그런 느낌이 날까’ 의심하면서 썼어요. 멋부리지 않으려고 했고, 단순하게 덧붙이지 않으려고 했어요. 지금까지 했던 뮤지컬과는 조금 다르게 쓰려고 했어요. 가사가 온전히 전달되는데 중점을 뒀죠. ‘이 작품만 본 사람들은 이 작품만으로 나를 평가할 텐데’란 유혹도 있었지만.
박선영 그럼으로써 노래로도 들리면서, 태일의 말처럼 들리게 된 것 같아요.
이선영 연주자들도 덜어내는 게 쉽지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할 때 텐션이 붙거든요. “마이너 세븐(m7) 빼주세요” 하면서 연주도 단순하게 하려고 했죠.
<태일>은 피아노와 기타가 연주를 이끈다. 우란문화재단에서 지원에 나서면서 보강할 기회도 있었지만 그래도 결론은 피아노와 기타, 단 두대로 연주하는 것이었다.
이선영 피아노와 기타가 가장 단순하고 완벽한 악기잖아요. 뭐든 할 수 있고. 2인극이니까 악개 두 대와 배우 두 명인 컨셉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경제적으로 못했던 부분을 채울 기회가 있었지만 고민하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죠. 지금이 제일 좋은 편성인 것 같았거든요.
박소영 욕심인지 아닌지 계속 고민했어요.
이선영 다른 악기가 추가되었으면 지금과는 느낌이 달랐을 거예요.
<태일>은 일반 공연과 달리 배우들이 극 중 인물이 되었다가 배우 자신이 되기도, 장면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장우성 초반에는 작품에 접근하는 방법도 많이 열려 있었어요. 인상깊게 봤던 테드(TED) 강연이 있었어요. 가수 ‘스팅(Sting)’이 창작 의욕을 잃었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곡을 쓸 수 있게 된 내용이었는데, 힘들었던 과정을 얘기하고 그것을 통해 나온 결과물을 들려주는 형식이었어요. 모노 뮤지컬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 방식을 차용해서 공연하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냈어요. 자신이 되었다가 극 중 인물이 되었다가 하죠.
박소영 <태일>과 이 방식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공연은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많은 이야기를 다 담아낼 수 없잖아요. 이런 형식을 통해 이야기를 더 쉽게 전달하면서 배우를 통해 조심스러운 부분까지 말할 수 있는, 인물을 다룰 때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저는 좋았어요.
그간 전태일의 삶은 노동 운동 이후 발자취를 중심으로 알려져 있었다. 반면 <태일>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집중했다.
장우성 <태일>은 전태일 평전을 바탕으로 했어요. 일기나 수기,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들은 직접 인용도 했고요. 조영래 변호사(전태일 평전 저자)가 ‘그랬다더라’ 하는 식으로 짧게 쓴 몇몇 부분은 극적인 상상력을 넣어 키우기도 했어요. 극적인 진행을 위해 압축시킨 것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 자칫 왜곡될 수 있는 지점이 있어서 조심스러웠어요. 평전에서는 노동자로서 폐해를 인식한 중후반부 이후 삶이 더 방대하고 중요하게 여겨져요.
장우성 <태일>은 초기 평범했던 어린 시절과 의문을 가졌던 때를 비중있게 다뤘어요. 후반부에 해당하는 담지 못한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균형감이 맞지 않아 빼낸 게 많거든요. 평전을 몇 번이고 읽으면서 지금 구성이 안정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직도 고민인 부분이에요.
박소영 전태일이 많이 다뤄졌는데, 저희는 다른 시선으로 보자는 게 애초의 생각이었어요. 따뜻하고 평범한 청년의 면모를 다루자고 접근하다 보니까 앞 부분을 더 비중있게 다루게 됐어요.
이번 공연에서는 이야기도 추가하고 보강했다.
장우성 태일이 연모하던 상대가 생겼는데, 현실적인 어려움 등으로 단념할 수밖에 없었던 일화를 넣었어요. 기록을 직접 인용하는 방식도 중요했는데, 트라이아웃 공연 때는 일기를 직접 낭독했거든요. 이번엔 일기를 잘게 쪼개서 파편화시켰어요. 낭독하면서 쳇바퀴 돌 듯이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시각화할 수 있게 이번 공연 전부터 계획하고 보강했어요.
PART3. <태일>의 표현 - 무대와 연출
텍스트로만 존재하던 대본과 음악을 시각화한 것이 연출로 탄생된 공연과 분위기를 담아낸 무대다. 특히 무대는 본공연을 하면서 가장 크게 변화된 부분이다. 극장에 들어서면 마치 태일이 살던 공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박소영 우란문화재단 극장인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공연하면서 어떤 시도를 하면 좋을까에 대해 우란문화재단 프로듀서님과도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저는 무대를 통해 시대성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태일이 바라봤을 때 보이는 모습들을 생각했고, 그러면 관객들이 같이 안에 있는 것처럼 바라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공연을 위해 우란문화재단의 도움으로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활동 중인 미술감독을 찾았고, 류선광 미술감독이 최종 참여하게 되었다. 뮤지컬과는 다른 작업 방식으로 지금의 무대를 완성했다.
박소영 영화나 드라마 분야는 완벽한 재연과 고증이 목적이잖아요. 접근 방법이 달라요. 일례로 신문이 필요했는데, 당시 신문에 썼던 활자가 지금은 없대요. 구하지 못해서 그 시대 활자를 인쇄했던 장인을 찾아가 새롭게 만드셨대요. 공연은 무대적으로 어느 정도 덜어내고 정말 필요한 것들을 담아야 하잖아요. 시대상을 표현하면서도 여건에 맞게 고증하느냐가 중요했어요.
박소영 <태일>은 단순한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무대가 가득 채워져 있으면 목소리가 안 들릴 것 같았거든요. 그 결과 객석은 디테일하게 살리고, 무대는 단순화 시키기로 했어요. 어떤 장면에서도 어울리게 했죠. 거리를 컨셉으로, 벽면은 창을 기본으로 했어요. 창은 사람들이 살았을 법한 수많은 창도 되었다가 공장이 되기도 집이 되기도 하는 거죠. 그렇게 분리시켜서 작업했어요.
공연은 틈틈이 대본이 나올 때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콜라주 방식처럼 장면 배치를 바꿔보기도 하면서 아이디어를 내면서 만들어갔다.
박소영 (이번 공연에서) 추가되어서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건 후반부 태일의 움직임이에요. 트라이아웃 공연 때는 태일이 여러 노동 운동을 시도한 모습이 부족하게 표현되었다고 생각했어요. 태일은 많은 사람들을 찾아가고 편지도 쓰는 등의 모습이 담긴 수기가 많거든요. 대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들려주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음악과 움직임으로 표현했어요. 수많은 목소리로 채우다가 한 번쯤 비워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았죠. 그럼으로써 태일이 여러 가지를 시도한 모습을 더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선영 소품을 뿌리는 등의 방식으로 표현한 장면이에요. 노래가 아닌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연기로 채워요. 오프닝 곡 ‘소년의 의문’에서 ‘왜 계속 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데, 이 부분에서 오프닝 음악이 다시 변이되어 나와요.
<태일>에서 촛불은 중요한 소품으로 쓰인다. 극 후반부로 갈수록 더 많은 초들이 극장을 밝힌다.
박소영 태일의 분신 장면을 보여주는 건 너무 자극적이잖아요. 초를 쓴 건 이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찾은 결론이에요. 저는 초가 태일 자체라고 생각하거든요. “태일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라고 할 때 처음 초를 켜요. 태일이 어떤 마음을 담는 순간, 깨달음이 생긴 순간, 이타심이 생겨나는 순간들처럼 태일이 한발씩 나아가고 있을 때 초를 켜요. ‘잘했다’ 장면에서 작은 초들이 생겨나는 식으로 상징성을 두고 싶었죠. 그러다 마지막에 근로기준법 조항이 나올 때 초를 제일 많이 켜게 돼요.
박소영 초는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기도 해요. 처음엔 초가 하나도 없다가, 엔딩 무렵에는 무대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초가 있죠. 태일의 삶을 다 보여줄 순 없지만 그 삶과 고민의 시간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장우성 연출님께 여줘보진 않았는데, 저는 촛불이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태일이 마지막에 나가고 나서 함성소리가 공간감있게 울려펴지고 음악만 남은 상태에서 관객이 객석 구조상 마주보게 돼요. 그때 무거운 침묵이 극장 안에 감도는데 그 자체로 훌륭한 연출 기법이라 생각했어요. 태일이 떠나고 난 빈 자리에 초가 남아있으니까 우리 마음으로 번져나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박소영 이제 우리 시대엔 초를 들 수 있잖아요. 내 마음을 표현할 때 초를 들고요. 우리 모두가 그런 존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니까요.
목소리프로젝트①-2| <태일> 배우들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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