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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AST VS CAST] <모차르트!> 볼프강 모차르트 [No.130]

글 |송준호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2014-08-12 5,533
‘불행한 천재’에서 ‘방황하는 인간’으로

개막 전부터 <모차르트!>는 서사, 무대, 음악 등 기존 버전을 완전히 쇄신한다는 소식으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지난 버전에서 찢어진 청바지 차림의 록스타 모차르트를 선보이며 색다른 재미를 준 <모차르트!>는 이번에 또 한 번 천재의 일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인간 볼프강’의 불운한 일생이 한층 더 부각된 이번 공연에서 기존 캐스트인 임태경과 박은태, 새로 합류한 박효신은 모차르트를 각각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을까. 



세상에 파괴된 동심 임태경                                                                                        

박은태, 김준수와 기존 버전 <모차르트!>의 흥행을 이끌었던 임태경의 볼프강은 기본적으로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천재의 동심을 보여줬다. 이런 특징은 이번 버전에서도 대체로 이어진다.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잘츠부르크와 파리, 빈을 거치며 고생하는 과정에서 그의 볼프강은 지나칠 정도로 순진무구하게 그려진다. 콜로레도 대주교 앞에서는 잘난 체하지만, 사기꾼 같은 베버 가족에게 그는 착취하기 딱 좋은 어설프고 어리바리한 청년일 뿐이다. 특히 천재보다는 마치 나사 풀린 망나니 같은 전반부 설정에 그의 존재감은 다소 흐릿해진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상징하는 ‘아마데’는 초현실적인 캐릭터이지만, 임태경의 볼프강은 그런 아마데보다도 종종 더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기존 버전에서 아마데는 하나의 상징으로 볼프강과 연결돼 있었는데 이번에는 재능의 영역을 혼자 전담한다. 그러다 보니 천재적 면모가 가장 두드러졌던 임태경의 볼프강은 급격히 평범해졌다. 그는 단지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 같다. 천재성이 퇴색되고 음악에 대한 열정보다 주변인들과의 관계 악화가 주된 서사가 되자 ‘나는 나는 음악’ 등 그를 대변해준 곡들이 힘을 잃는다. 천재성이라는 그만의 고유함을 잃고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청년의 이야기에 무게가 실리면서 임태경의 매력은 1막 마지막까지 답답하게 가로막혀 있다.

흐릿한 존재감이 역전되는 건 그가 가발을 벗고 나오는 2막부터다. 다른 두 캐스트와 달리 임태경의 볼프강은 세련되게 탈색한 은발이다. 다른 캐스트가 현대의 최신 헤어스타일로 등장하며 보편적 인간의 삶을 은유한다면, 그는 그 시기에 강림한 21세기의 모차르트 같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새롭게 편곡된 기존 넘버들을 소화할 때도 엇박을 활용해 진보적인 느낌을 준다. 또 1막에서 청년의 패기로 반짝였던 영혼이 2막에서 초토화되는 과정에서는 임태경의 것이 가장 극적인 대비를 보여준다. 순백의 영혼이 세상에 상처받고 결국 파멸하고 마는 비극의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연민을 자아낸다.    



남자의 자아 찾기 박은태                   
                                                                      
‘청바지를 입은 철부지 모차르트’를 탄생시킨 기존 버전에서 캐릭터를 가장 인상적으로 소화했던 이는 박은태였다. 적당히 엉성하고 유머러스한 볼프강은 박은태의 가벼운 연기와 만나 최상의 조합을 만들어냈다. 이런 박은태의 특색은 극 전반에서 유머가 자제된 이번 버전에서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신인 시절이던 예전과는 달리 박은태는 그간 쌓은 연기 내공으로 이를 새롭게 소화해냈다. 

이번 버전에서 볼프강의 1막과 2막의 색깔은 확연히 다르다. 1막에서 박은태의 볼프강은 기존 버전과 비슷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내 운명 피하고 싶어’ 등 대표곡들도 지나친 애드리브 없이 정석에 가깝게 소화한다. 천방지축에 제멋대로인 그의 볼프강은 자신을 강제하려는 대주교와 아버지에 맞서 ‘황금별’을 찾기로 한다. 그런 의지가 이번 버전에서는 2막의 짧은 펌 헤어스타일과 금속 지퍼가 달린 모던한 복장으로 잘 드러난다. 비록 캐릭터 자체는 자신의 운명을 주도하지 못하는 인물이지만, 다른 두 캐스트와 달리 박은태의 볼프강은 마냥 유약하지만은 않다. 전작 <프랑켄슈타인>에서 ‘언니적’ 풍모로 팬덤의 크기를 키운 박은태는 이번에는 확실히 ‘남자’를 보여준다. 절대 권력을 지닌 콜로레도 대주교와 충돌하는 ‘쉬운 길은 잘못된 길’에서는 이런 박은태의 해석이 빛을 발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볼프강의 오만함이 이 뮤지컬 넘버를 통해 한층 설득력을 갖는다. 

아마데를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임태경과 박효신의 볼프강이 아마데와 운명을 공유하며 결국에는 그에게 주도권을 빼앗긴다면, 박은태에게 아마데란 자신의 천재성을 분리시킨 별개의 인격 같다. 그래서 임태경의 볼프강이 아마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데 반해, 박은태의 볼프강은 아마데라는 분신의 노동력을 마음껏 착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천재성에 발목 잡힌 불운아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여 일하는 능동적 워커홀릭 같다. 그래서 아버지가 매정하게 자신을 떠난 후 아마데를 힘껏 껴안는 장면에서는, 절대 고독의 아픔을 보여주는 다른 캐스트와 달리 아련한 자기애의 냄새가 짙게 피어난다. 



오판이 낳은 비극 박효신     

이번 버전이 기존 버전과 가장 차별되는 지점은 볼프강의 스타일과 변화된 가사들이다. 특히 머리를 잘게 꼬아 길게 늘어뜨리고 다녔던 기존 모습과 달리, 이번 버전에서는 내내 하얀 가발을 쓰다가 1막 끝에서 스스로 이를 벗으면서 모던한 헤어스타일을 공개한다. 그리고 이는 2막에서의 본격적인 서사 변주를 예고하는 단초로 기능한다. 

<엘리자벳>의 토드 때 특유의 소울 충만한 애드리브로 감동과 거부감을 동시에 줬던 박효신은 <모차르트!>에서도 자신만의 특색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얀 가발 차림도 마치 그 당시에 살던 사람처럼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하지만 분위기 표현과 기본적인 몸짓만으로 충분했던 토드 역과는 달리 볼프강 모차르트는 시종일관 이야기의 중심에서 극을 이끌어야 하는 캐릭터다. 때문에 초보 배우인 박효신의 한계는 금방 드러난다. 어떤 상황 안에서 그의 볼프강이 느끼는 감정들은 대개 연기보다는 노래할 때만 전달된다.

물론 쉽지 않은 뮤지컬 넘버들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이런 훌륭한 곡 소화력은 연기에서의 결점을 어느 정도 잘 보완하고 있다. 다만 그러다 보니 디테일한 부분에서 의외의 변수가 생긴다. 가령 아마데와의 긴밀한 거리 조절이 그렇다. 아마데는 관객에게는 하나의 상징이지만 볼프강에게는 자신이고, 운명이다. 후반부에서는 정신적으로도 볼프강의 삶에 관여하는 존재다. 그러나 박효신은 이를 종종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호작용의 부재 속에서 박효신을 바라보는 아마데는 자연스레 타자처럼 느껴지게 된다. 천재성이 상당 부분 제거되고 ‘인간 볼프강’을 부각시킨 이번 버전에서 박효신의 이런 노선은 그나마 남아 있던 천재 음악가의 잔상마저 말끔히 지워버린다. 그 결과 그의 <모차르트!>는 불운했던 천재의 일생이 아니라, 한 남자의 잘못된 선택이 초래한 비극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0호 2014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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