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일, 세계 각국의 <노트르담 드 파리> 배우들이 이탈리아 베로나에 모였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작곡가인 리카르도 코시안테가 이들을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인 ‘아레나 디 베로나(Arena di Verona Festival)’에 초청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마이클 리가 오프닝 무대에 서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촉박하지만 감동적이었던 일정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왔다.
짧은 인연에서 시작된 행운
2014년 5월 30일 9시 30분, 프랑스 파리를 경유해 무려 15시간에 이르는 베로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코시안테의 갑작스러운 연락에서 비롯된 영광스럽고 가슴 떨리는 무대에 서기 위해서였다. 그와의 인연은 올해 초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노트르담 드 파리> 앙코르 공연 때 시작됐다. 당시 그는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노트르담 드 파리> 중에서 한국 공연을 보는 것을 선택했다. 공연 팀 모두 그를 만나는 것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 만난 그는 내게 정중하게 악수를 건네며 “공연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예술 작품의 창작자와의 만남은 항상 좋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짧았던 인연이 몇 달 뒤 나를 지구 반대편으로 이끌어주었다. <프리실라> 연습에 한창이던 나에게 코시안테로부터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 초청이 온 것이다. 이 세계적인 축제는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913년 시작돼 지난해 100회를 맞이했다. 코시안테는 나를 포함해 총 6개국에서 모인 10명의 <노트르담 드 파리> 캐스트들에게 축제의 오프닝 갈라쇼를 맡겼다. 공연 연습도 시급했지만 컴퍼니 측의 배려로 3박 5일간의 축제 일정에 나설 수 있었다.
현지 시간으로 오후 5시쯤 도착한 베로나 공항에는 이번 축제의 광고판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워 그 위상을 짐작하게 했다. 공항에 나와 있던 가이드를 따라 호텔에 짐을 놓고, 우리는 바로 축제가 열리는 극장으로 향했다. 로마의 콜로세움, 나폴리 북부의 카푸아 원형극장과 함께 이탈리아 3대 극장으로 꼽히는 아레나 디 베로나 극장은 로마시대인 120년에 세워진 원형극장이다. 출연자 대기실인 분장실 역시 옛날 검투사들이 대기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화장실과 일부 전기 시설을 제외하고는 옛 모습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무대 위에서 바라본 극장 전경은 숨이 멎을 듯한 장관이었다. 수많은 위대한 연기자와 공연이 올랐던 무대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꿈만 같았다. 그곳에서 이번 축제의 갈라쇼 담당 매니저 로지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줬다. 그녀는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3일 동안 현지에서 필요한 안내와 공연 진행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맡았다. 극장 투어를 한 후, 먼저 도착해 연습 중인 캐스트들과 인사를 나눴다. 세계 각국에서 온 동료 배우들을 만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영혼을 공유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형제라고 생각한다. 캐나다,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국적은 다르지만 우리는 금방 서로를 편하게 느끼며 친해졌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멋진 그룹에 포함된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나는 즉시 리허설에 투입돼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 투어 공연에서 그랭구아르 역을 맡았던 리샤르 샤레스트(Richard Charest)와 함께 ‘대성당들의 시대’를 불렀다. 그는 놀라운 목소리와 존재감을 지닌 배우다. 또 굉장히 겸손하고 관대하며, 친절한 사람이었다. 긴 여정을 거쳐 현지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데다 시차 때문에 지쳐있던 나에게 많은 배려를 해줬다. 그 덕분에 리허설은 편안하고 재미있게 마칠 수 있었다. 새벽 2시 무렵에야 극장을 나왔지만 이상하게도 피로감 대신 흥분과 다가올 공연에 대한 설렘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힘든 리허설과 보람찬 공연
다음 날은 이탈리아 전역으로 생방송되는 이번 축제의 개막식 총 리허설이 예정돼 있었다. 우리는 오전에 베로나 투어를 하고, 오후에는 호텔에서 예행 연습을 하며 리허설을 준비했다. 본 공연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저녁에 카메라 촬영까지 하는 총 리허설을 진행하기 전에 리샤르와 동선과 호흡을 맞춰봐야 했다.
리샤르와 리허설을 마치니 어디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온다. 바로 이번 오프닝의 특별 게스트인 테드 닐리의 순서였다. 그는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영화 버전(1973)의 오리지널 ‘지저스’이다. 그는 내가 만난 최초의 지저스이기도 하다. 1943년생으로 올해 72살인 ‘할아버지’이지만, 그가 부르는 ‘겟세마네(Gethsemne)’를 들으면 소름이 돋는다. 그의 공연은 굉장히 훌륭하며, 감동적이었다. 그는 여전히 록커였고, 그와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은 굉장한 영광이었다.
3시간 정도 기다린 후 오케스트라와 라이브 카메라 리허설이 진행됐다. 그러고 나서야 드레스 리허설이 시작됐다. 오페라 갈라쇼들과 특별 무대를 보았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무대는 무대 위에 세 마리의 말이 올라왔던 오페라 <카르멘>이다. 객석의 모든 입구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오페라 가수들, 거의 200명 정도의 배우들과 말의 행진이 놀라운 광경을 만들어냈다. 한참을 기다려 새벽 1시경에야 <노트르담 드 파리>의 리허설을 진행할 수 있었다. 시차 적응이 될 여유도 없는 일정 탓에 기진맥진했지만, 끊임없이 나오는 아드레날린은 정신이 초롱초롱할 수 있도록 계속 나를 자극했다. 무엇보다 이 이벤트는 모든 이들의 커다란 기쁨과 축하로 가득했기에 피곤함도 느끼지 못했다. 끝없는 기다림에 지치고 힘들긴 했지만 내일 이곳에서 2만여 명의 관객을 만날 생각에 더욱 집중했다. 아침이 다 되어서야 호텔에 돌아온 나는 12시간 동안 ‘기절’해 있었다.
공연 당일, 우리는 마지막으로 베로나 투어를 하며 낮 시간을 여유롭게 보냈다. 축제가 시작하는 날이라서 그런지, 시내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었다. 미니 축구 게임과 농구 게임 등이 진행되며 세계 각지에서 모인 관광객들로 거리가 붐비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 6시 30분에 분장을 시작한 나는 두 시간 후 무대에 올라 영광스럽고 감격적인 공연을 치를 수 있었다.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해 도착한 무대에서 한 공연은 단 2분이었다. 하지만 그 무대와 그 공연, 그 음악, 그 축제의 2분은 항상 기억될 것 같다. 그 기억은 내 남은 인생에 항상 저장돼 있을 것이다. 나에게 기적과도 같은 2분이었다.
A Beautiful Et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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