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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칼럼] 한국의 뮤지컬학 정립을 위하여

글 |최승연(뮤지컬 평론가) 사진 |아이스톡 2026-02-28 269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가 매월 주목할 만한 뮤지컬계 이슈를 심도 있게 들여다봅니다.


 

 

한국에서 ‘뮤지컬학’이 정립될 수 있을까? 혹은, 한국에서 뮤지컬이 학문의 영역 안에서 다뤄질 수 있을까?

 

이 간단한 질문은 학문 간 위계뿐만이 아니라 이론과 현장 사이의 헤게모니 싸움, 공식적 아카이빙 부재 등을 포함하는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에서 뮤지컬은 상당 기간 아카데미아와 비평 현장, 그리고 행정 단위에서 연극의 하위 장르로 인식되거나 음악극의 범주 안에서 논의되곤 했다. 음악 분야에서도 대중음악과 서양 클래식 양편에서 본격적인 ‘음악학’의 연구 대상으로 상정되지 못했으며, 무용계에서도 뮤지컬 안무 연구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뮤지컬은 근본적으로 ‘대중문화’의 영역에 놓여 있지만 연극, 음악, 무용, 문학과 미술, 그리고 기술과 예술경영을 아우르는 간학제적(interdisciplinary) 본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융복합적인 본질은 뮤지컬의 잡식성과 혼종성을 설명해주지만, 그와 동시에 그 어떤 학문 분야에도 온전히 귀속될 수 없는 잉여적, 비정통적, 반연극적 대상이라는 인식을 낳았다. 데이비드 새브런(David Savran)이 「대중적인 것의 역사 서술학을 향하여(Toward a Historiography of the Popular)」라는 논문에서 지적했듯, 뮤지컬은 보수적인 학자들에게 기껏해야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guilty pleasure)'을 주는 ‘빌어먹게도 너무나 재미있는 것(too much damned fun)’쯤으로 존재했다.1)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뮤지컬이 '음악학'의 연구 대상으로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뮤지컬의 본질은 무엇보다 음악이지만 한국에서 뮤지컬은 클래식, 대중음악, 전통음악의 그 어느 영역에서도 학문적 관심사 밖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상은 뮤지컬 음악을 비정통적인 것으로 보는 오래된 엘리트주의적 관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음악을 뮤지컬 구조 안에서 극과 밀접하게 연관 지어 분석하는 작업이 매우 전문적인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오페라 연구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것도 부분적으로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으로는 분석 대상 확정의 문제, 다시 말해 자료의 진본성(authenticity)과 소멸성(evanescence) 사이에서 '무엇을 공식적인 분석 대상으로 확정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가령, 뮤지컬 무대에서 배우들에 의해 수행되는 넘버는 악보에 그대로 담길 수 있는가? 한 배역 당 트리플과 쿼드러플 캐스팅이 빈번하고 그에 따라 악보가 수정되기도 하는 한국의 현 상황에서 어떤 배우의 어떤 버전을 대표적인 연구 자료로 확정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기저에 존재한다. 혹은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공연 분석을 위한 대본과 스코어(score) 그리고 공연 영상이 공식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도 필요하다. 따라서 뮤지컬 음악 연구는 '작품'에서 '연행'으로 관점을 확장하여 뮤지컬 극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음악적 수행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 이는 음악학자 크리스토퍼 스몰이 “이 작품에 대한 공연이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이러한 참여자들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2)라고 질문하며 '음악'을 '음악하기(musicking)'라는 동사적 의미로 입체화한 것과 같은 관점이다. 그런데 이는 어쩌면 뮤지컬 음악 연구를 더 어렵게 만드는 관점일 수 있다. 연구자 자신에게 덕후적 기질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뮤지컬 연구의 흐름

한국의 뮤지컬 연구는 1966년에 개최된 ’예그린 심포지엄‘에서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예그린악단은 2차 예그린 활동을 위한 재창단식을 갖고 1966년 5월 27일~28일 양일간 '한국적 뮤지컬의 가능성', '민속예술의 현대화'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27일에는 서강대학교에서 영어 뮤지컬 <성춘향>(1965)을 쓰고 연출한 퀴어리 신부가 발제를 맡았으며, 28일에는 연극학자 이두현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이 심포지엄은 예그린악단이 추구했던 '한국적 뮤지컬', '뮤지컬의 토착화'의 비전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1980~90년대에는 한국음악극연구소의 학술모임이 이어졌다. 오페라 연출가 문호근이 주축이 되어 1986년 12월에 결성된 한국음악극연구소는 오페라, 뮤지컬, 창극에 관여하는 연구자들을 확보하여 1987년부터 1994년까지 5차에 걸친 학술모임을 개최했다. 특히 1차 학술모임에서는 '한국 음악극의 방향 설정'을 주제로 음악극, 오페라, 뮤지컬, 창극 그리고 기타 전통 음악극의 개념이 논의되었으며, 김춘미, 이유선, 박용구, 이보형 등이 발제를 맡았다. 당시 한국음악극연구소는 작품의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지금/여기에 맞게 재해석될 수 있는 음악극 창출을 목표로 삼았다. 오페라를 탈정형화하여 생활 속에서 향유될 수 있는 장르로 만들기 위해, '한국형 노래극'을 창안했다. 한국음악극연구소는 이러한 예술적 비전을 위해 뮤지컬을 '노래극·음악극' 장르 안에서 이론화하고 <우리들의 사랑>(1987), <구로동 연가>(1988)를 실제 결과물로 내놓았다.

 

한편, 1993년에는 한국연극학회 주관으로 '한국 현대 음악극의 현황과 과제'라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1975년에 설립된 한국연극학회에서는 점차 연극계의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한 음악극을 점검하기 위해 한국적 수용의 실태를 조사하고 가능한 모델을 제시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이를 위해 유민영 교수가 '한국 현대 음악극의 개념과 역사'를 총론으로 발제하고 김효경, 신일수, 정진수, 김우옥이 개별 발제를 이어갔다. 1993년 한국연극학회의 심포지엄은 뮤지컬을 음악극의 범주 안에서 개념화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보여준 것이었다.

 

뮤지컬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연감』에서 개별 장르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문예연감』, 즉 2000년 연극계에 대한 기록부터였다. 뮤지컬은 『문예연감』에 1990년대 초부터 언급되기 시작했으나 때로는 창작극에, 또 때로는 번역극에 포함되며 장르적 독자성이 인정되지 않았다. 2001년 『문예연감』의 뮤지컬 파트는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뮤지컬과 음악극을 연구하던 김광선 교수가 집필함으로써 이례적으로 독자적 장르로 분리되었으나, 이후 논자에 따라 번역극, 음악극으로 명명되며 장르 개념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명확히 '뮤지컬'로 명명되며 공식적인 기록으로 정리된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2007년 『문예연감』 때부터였다. 2001~2002년 <오페라의 유령> 라이선스 공연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장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던 이론적 지체 현상이 『문예연감』 분류 체계에서 관찰된다.

 

한국의 뮤지컬학 정립을 위하여

현재 한국의 뮤지컬 연구는 문학, 연극학, 공연학, 대중문화와 미디어 연구 그리고 예술경영과 콘텐츠학, 엔터테인먼트학의 범주로 확장되며 상당한 분량으로 축적되어 있다. 뮤지컬 창작진의 창작이론 관련 논문3), 뮤지컬 배우의 학위논문4), 한국에 유학 온 중국인들의 학위논문 등 연구자 풀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논의가 산발적이고 체계화되어 있지 않으며, 서양에 비해 연구 방법론 및 담론이 한정적이다. 공연학이나 연극학을 가르치는 대학원에서 뮤지컬 연구를 경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체계화된 이론을 개발하고 발전시키지도 않는 상황이다. 영미권 역시 오랫동안 아카데미아 안에서 뮤지컬이 무시되어 왔으나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뮤지컬 연구를 다학제적 분야로 정립하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199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뮤지컬은 '학문적 응집력'을 갖추기 시작했다.5) 현재 영미권에서 뮤지컬 논문은 음악, 연극, 공연학을 포함하여 음성학, 젠더 연구, 문화연구, 문학, 유대인 연구, 아시아 연구, 흑인 및 라틴계 연구, 미국학 등 무수한 분야의 학술지에 게재되고 있다. 또한 음악과 연극, 그리고 공연학 분야의 학술단체들은 대부분 활발한 뮤지컬 연구 그룹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제 컨퍼런스에서도 뮤지컬 관련 논문이나 패널, 라운드테이블을 쉽게 만날 수 있다.6)

 

뮤지컬 역사가 로라 맥도널드(Laura MacDonald)는 폴란드, 일본, 한국, 프랑스, 동일,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학자들이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자국의 뮤지컬 산업과 영미권 뮤지컬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고 영미권 학계에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뮤지컬학은 어떠한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최근 창립된 '한국뮤지컬학회(The Korean Association of Musical Theatre Studies)'를 거론할 수 있겠다.7) 2025년 8월 발기인대회를 마치고 2026년 1월 31일 창립학술대회를 개최한 한국뮤지컬학회는 “한국 뮤지컬 60년과 K-뮤지컬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포문을 열었다. 본 학술대회에는 교수와 평론가, 기자를 비롯하여 대학원생과 학부생, 뮤지컬 창작진, 프로듀서, 행정가 등 100여 명의 인원이 참석하여 '한국 뮤지컬학'의 시작을 함께했다. 무엇보다도 학계와 업계, 현장과 행정 단위의 인력이 모여 다 함께 뮤지컬을 논의 선상에 놓았다는 것, 그럼으로써 이론과 현장을 매개할 수 있는 학문적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의지를 모았다는 것이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변화로 거론될 수 있겠다.

 

한국의 뮤지컬학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관습적으로 쓰이고 있는 여러 용어의 개념이 정치하게 논의되어야 하며, 한국 뮤지컬의 역사화 작업을 본격화함으로써 항간에 통용되는 정보의 진본성을 확인해야 하며,8) 이론과 현장 양편에서 한국 뮤지컬의 심연을 잘 그려낼 수 있는 방법론과 담론 개발이 필요하다. 또한 지원사업 외에 정부적 차원의 뮤지컬 아카이빙 사업이 제도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이 모든 일은 어렵고 요원해 보이지만, 스테이시 울프(Stacy Wolf)가 지적한 대로 뮤지컬이 주는 '즐거움(pleasure)' 안에 거한다면 언젠가 우리에게 도래할 미래 안에 있다. 

 


[1] David Savran, “Toward a Historiography of the Popular”, Theatre Survey 45:2, 2004, p. 216.

[2] 최유준, 『크리스토퍼 스몰, 음악하기』, 커뮤니케이션북스(주), 2016, 7쪽.

[3] 대표적으로 장우성, 「뮤지컬 <로기수> 창작과정 연구」,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8; 표상아, 「뮤지컬에서의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 극복하기- 가능세계이론을 바탕으로」,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25권 제10호, 한국콘텐츠학회, 2025; 한재은, 「뮤지컬의 구조 연구-노래의 분리와 통합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1.

[4] 대표적으로 윤형열, 「문학에서 무대로 매체 전이한 뮤지컬의 특성 연구-뮤지컬 <레 미제라블>과 <노트르담 드 파리>를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1; 허규, 「송스루(Song-Through) 뮤지컬에서의 서사구조 연구-록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5] Elizabeth L. Wollman,“Musical Theater Studies: A Critical View of the Discipline’s History in the United States and the United Kingdom.” Music Research Annual 2, 2021, p. 2.

[6] Elizabeth L. Wollman, ibid., p. 18.

[7] 미국의 뮤지컬 학술단체로 2023년 라이언 도너번(Ryan Donovan), 제시카 스턴펠드(Jessica Sternfeld), 엘리자베스 L. 울먼(Elizabeth L. Wollman)에 의해 설립된 ISSM(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Study of Musicals)이 있다. ISSM에서는 학술지 Studies in Musical Theatre를 발간하고 있으며 “Song, Stage and Screen”이라는 연례 국제 학술대회를 통해 텍스트, 무대, 영상 전반에 걸친 뮤지컬 이론을 탐구하고 있다. 참고로 홈페이지 링크는 다음과 같다. https://www.issmusicals.org/

[8] 대표적으로 한국의 공식적인 첫 라이선스 공연은 <브로드웨이 42번가>(1996)가 아니라 에이콤과 조선일보가 공동 제작한 <아가씨와 건달들>(199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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