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넘도록 일요일 정오면 TV에서 익숙한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온다. ‘빰빰빰 빰빰 빰빠~ 빠바바빰 빰빰빰빰 빰~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대에 올라 애창곡 실력을 뽐내고, 개인적인 사연이며 지역의 특산품을 늘어놓으며 한바탕 축제가 펼쳐지는 시간. KBS의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을 컨셉으로 한 뮤지컬이 개막을 앞두고 있다.
1980년에 방송을 시작한 <전국노래자랑>은 국내 아마추어 노래 경연 대회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매주 본선에서 일등한 사람은 연말 결선에 출전할 자격이 주어지고, 연말 결선에서 대상을 받은 사람들은 가수로 데뷔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렇다면 뮤지컬은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가수의 꿈을 이룬 주인공의 이야기를 할까? 또는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제각각 인물들의 사연들을 엮었을까? 최근, TV 오디션 프로그램이 급증했다. 여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비하면 <전국노래자랑>의 참가자들은 잔치를 즐기기 위해 노래하는 정도로 우승을 향한 긴장감과 절실함이 약하다. <전국노래자랑>에서 경연 대회 특유의 갈등 구조를 가져오기 어렵다고 판단한 성재준 작가는 다른 경쟁 구도를 구상해냈다. 자존심이 걸린 경쟁이라면 작은 승부라도 치열해질 수 있는 법. 과거에 노래자랑에 출전했던 두 원수 집안의 경쟁을 뮤지컬의 중심축으로 삼은 것이다. 25년 전, 노래자랑에서 연인에게 공개 청혼을 하려다 실패한 김 회장과, 친구의 프러포즈 이벤트는 물론 그의 연인까지 뺏은 이 회장은 앙숙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이 동네에서 노래자랑이 열리고, 과거에 잃은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두 집안은 아들과 딸을 대회에 출전시키기로 한다. 그리고 원수 집안의 아들과 딸은 예상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에 빠지고 만다. 25년 만에 두 집안은 화해하게 될 것인지, 그것은 공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 국민의 애창곡을 들을 수 있는 <전국노래자랑>을 컨셉으로 한다면, 뮤지컬 넘버 역시 만인이 알고 좋아할 만한 것이어야 할 터이다. 따라서 새로 작곡한 노래가 아닌 이미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대중가요를 엮어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드는 것은 <전국노래자랑>에게 더없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전국노래자랑>은 1990년대에 큰 사랑을 받았던 히트곡 위주로 구성되었는데, 뮤지컬 넘버뿐만 아니라 캐릭터 역시 1990년대 대중음악계에 한 획을 그었던 아이콘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당시 터보와 클론 등은 남성 듀오로서 큰 인기를 얻었다. 김 회장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에게 이런 듀오의 이미지를 입혔고, 두 아들이 부르는 노래 역시 인기 듀오의 것이다. 이 회장의 첫째 아들은 해외파 보컬을 연상시킨다. 한국말은 서투르지만 훌륭한 가창력을 자랑했던 R&B 그룹 솔리드의 김조한 같은 보컬리스트 말이다. 원치 않게 로미오가 되어버린 김 회장의 막내아들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드높인 가수들에게서 이미지를 차용했으며, 그는 가수 박진영과 싸이의 노래를 들려줄 예정이다. 캐릭터와 노래, 그리고 의상과 소품까지 1990년대를 제대로 추억할 수 있는 공연이 될 듯하다. 하지만 남녀노소가 즐기는 <전국노래자랑>이 되도록 전 연령층이 충분히 즐길 만한 곡들을 선별했다. 드라마 전개와 맞아떨어지는 곡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성재준 연출이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숨은 보석 같은 곡도 있으니 기대해보길 바란다.
등장인물 각각을 대중음악계 아이콘으로 컨셉화한 만큼, 로미오와 줄리엣형 남녀 주인공뿐만 아니라 조연들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야말로 캐릭터 열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성재준 연출은 자신했다. 출연진의 일부만 확인해봐도 코미디 빅 리그에 버금가는 열전이 될 듯하다. 코믹 연기라면 뒤지지 않는 서현철과 정상훈, 김대종, 정수한, 오대환, 백주희 등이 출연하니 <전국노래자랑>의 유머 수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듯하다. <미스 사이공>의 킴으로 열연한 김보경의 숨겨진 코미디 본능도 엿볼 수 있다. 지난해에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주크박스 뮤지컬 <스트릿 라이프>를 선보였던 성재준 작가 겸 연출가, 원미솔 음악감독, 정도영 안무가가 다시 한번 뭉쳤다. 신나는 주크박스 뮤지컬로 연타를 날릴지 기대해보자.
6월 22일~9월 23일 /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 02) 762-0010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5호 2012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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