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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레 미제라블> 정성화, 이 배우가 사는 법 [No.109]

글 |박병성 사진 |김호근 2012-10-23 5,803

 

 

The way that  the actor lives
  

2004년 <아이 러브 유>로 뮤지컬에 데뷔한 정성화는 2009년 <영웅> 이후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2010년 대표적인 국내 두 뮤지컬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올해 새롭게 신설된 예그린상에서도 남우주연상과, 배우와 스태프가 뽑은 배우상을 받았다. 상복뿐만 아니라 실제 그가 참여한 최근의 작품들은 흥행과 더불어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최고의 전성기’라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여전히 그의 성장세는 진행형이기 때문에 ‘최고’라는 수사는 아껴두기로 한다. 그가 국내 수많은 뮤지컬 배우들이 선망하는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 역으로 낙점되었다. 게다가 복수의 캐스팅이 트렌드인 공연계 관행을 깨고 원 캐스트로 출연한다. 멋있게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배우 정성화가 사는 법을 들여다보았다.

 

 

스타일리스트| 김현숙,  헤어| 득예,  메이크업| 송나래, 가방 소품 협찬| 이지혜, 의상 협찬| SIEG Fahrenheit, H&M, DOHC, EVISU, J SHOES, 미소페


선입견과 싸우다
<레 미제라블> 제작 발표회에서 정성화는 “개그맨도 장 발장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뮤지컬 팬들에게 정성화와 개그맨의 연결 고리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 그는 무대에서 이미 훌륭한 뮤지컬 배우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증명해왔다. 그런 그가 <레 미제라블>이라는 대형 뮤지컬의 단독 주인공을 맡은 것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개그맨 출신을 언급하는 것은 의외였다. 이젠 개그맨이라는 과거의 흔적보다 뮤지컬 배우로서의 현재 입지가 확고하리라 생각했는데, 대중들에게는 그렇지만도 않았나 보다. 무엇보다 정성화 자신이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이 러브 유> 때부터였을 거예요. ‘지겨울 때도 된 것일까’란 심각한 노래가 있는데 정상화가 저 진지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의심하는 분위기였어요.”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로 엮인 <아이 러브 유>는 주로 코믹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었지만, 오랜 결혼 생활을 한 노부부의 에피소드만은 달랐다. 정성화는 이 에피소드를 훌륭히 소화해냈지만, 개그맨 출신이라는 딱지가 그의 연기 범위를 제한하는 굴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정성화는 주인공의 코믹한 친구 이외에 다른 역은 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암암리에 있었고, 실제로 그러한 역할에 주로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다. 그런 편견을 보기 좋게 깬 것은 <맨 오브 라만차>를 통해서였다. 조승우와 돈키호테 역에 더블 캐스팅된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를 개그맨으로 인식한다. 아직 내 티켓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잘해서 입소문을 내야 한다. 열심히 아니, 무조건 잘해 야 한다. 그래도 과연 사람들이 내 공연을 보러 올까,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많이 보러 오시더라고요.” 진지하게 인물에 접근해서 감동을 끌어낸 정성화는 큰 감동을 주었고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해 뮤지컬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은 함께 출연한 조승우에게 돌아갔지만 조승우가 정성화의 연기를 추켜세울 정도로 그의 연기는 탁월했다.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가 코믹 연기와 진지한 연기를 넘나드는 캐릭터였다면, 2009년 <영웅>의 안중근은 시종 진지한 태도로 말 그대로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어야 하는 역할이었다. 그는 국내 초연작이었던 <영웅>에서 안중근 하면 정성화가 떠오를 정도로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이를 인정받아 국내 뮤지컬 시상식 두 곳에서 모두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정성화가 개그맨 출신이기 때문에 진지한 역할을 맡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뿐히 벗어던졌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고맙죠.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은 선입견이었어요. 정성화는 진지한 역할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오기를 발동하게 했죠. 무대에서 사람을 울리는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선입견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제겐 좋게 작용했어요. 지금도 그런 선입견과 싸우고 있고요.”

 

그리고 올해 <라카지>의 앨빈(자자)을 통해 이제 정성화의 시대가 왔음을 예고했다. 그는 대사 하나하나의 웃음 코드를 놓치지 않았고, 한껏 웃음을 주다가 돌연 숙연하게 만드는 사랑스런 게이이자 자식을 둔 엄마인 앨빈을 감동적으로 표현했다. 이후 누가 다시 국내에서 앨빈을 연기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 배우는 정성화라는 큰 벽을 부담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뛰어난 코믹 감각을 칭찬하자, ‘그게 전공이니까요’라고 응수한 그는 탁월했던 드라마 전달력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를 들었다. “코미디를 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전달하는 탁월한 감각을 지녀야 해요. 그것은 코미디뿐만 아니라 감동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요. 그래서 코미디 감각이 좋은 배우는 정극도 잘해요.”


현재 뮤지컬계에서 그가 개그맨 출신이었다는 이유로 홀대하는 이는 없다. 적어도 업계에서 그를 보던 편견은 무너졌다. 그러나 아직도 대중들은 그런 우려와 편견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좀 더 대중적이고 원 캐스트로 참여하는 <레 미제라블>의 출연이 대중들의 편견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까?

 

 

 

장 발장으로 무대에 서다


<레 미제라블>은 국내 뮤지컬 배우들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로 꼽히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노래와 개성 있는 캐릭터로 인해 많은 배우들이 <레 미제라블> 무대에 서기를 희망한다. 2007년에 라이선스 공연이 시도되었다가 무산된 경험이 있어 작품에 대한 갈증은 충분히 팽배해 있다. 정성화는 이런 작품의 주인공을 맡아 한껏 고무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맨 오브 라만차>를 할 때 공연을 보러 오시는 선배나 선생님들이 다 저한테 돈키호테에 대해 한마디씩 하시는 거예요. 각자의 경험에서 형성된 돈키호테가 있어서 자신이 생각한 돈키호테가 나오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거죠. <레 미제라블>은 그것보다 서너 배는 더할 거예요.”


<레 미제라블>이 한국인에게 특별히 공감하는 요소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원작에서 비롯된 탄탄한 캐릭터들이 전해주는 텍스트의 힘과,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운 아리아의 매력 때문에 <레 미제라블>에 반한 사람들을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번 작품에서 함께하는 크리에이티브 팀과 배우들을 믿고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작품 속에서 살려고 노력하는 것 외에,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지 말자는 생각으로 연습하고 있어요. 흔들리지 말고 내가 표현한 장 발장을 밀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러려면 준비가 탄탄해야 하겠죠.” 그는 이번 작품에 참여하면서 단행본으로 압축된 소설과, 세 편의 영화, 그리고 유투브에 오른 관련 영상들을 꼼꼼히 살폈다. 여섯 권짜리 원작 소설도 읽고 있는 중이다. 정성화는 앞서 코미디나 드라마에서 중요한 것이 정보 전달력이라고 했는데, 그 이전에 작품을 정확히 분석하고 캐릭터를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 그가 코미디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정보 전달력이 탁월한 것은 그만큼 작품을 꼼꼼히 분석하고 준비하기 때문이다. 연습에 들어가기에 앞서 웨스트엔드에 들러 작품도 보고, 그곳의 보컬 코치에게 짧은 기간이지만 보이스 티칭도 받고 왔다. 11월 용인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장기간 공연에 참여하기 전에 자신의 상태를 점검받고, 장기 공연에 대비할 기술을 익혔다. “그전에는 목을 쥐어짜서 힘으로 밀어붙이면서 부른 적이 많았어요. 이번에 제 발성의 문제점을 알았고 목에 무리가 되지 않게 노래하는 법을 배웠어요. 역대 장 발장들의 노래를 들으면 다들 목에 스크래치가 나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노래를 하더라고요.”


정성화는 보컬은 자신이 더 노력해야 할 사항이라고 했지만, 그의 풍부한 성량만큼은 다들 인정하는 바이다. 특별히 노래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할 수 있느냐고 묻자, 몇 가지 경험을 들려주었다. “고등학교 때 응원단장을 했는데 그때 메가폰을 주지 않았어요. 몇 천 명의 학생들을 제 목소리 하나로 움직여야 했어요. 창 하는 사람들처럼 매일 목이 쉬었다 나았다를 반복했죠. 그때 성대가 강해진 것 같아요. <아이 러브 유> 공연 할 때였는데요. 박종호라고 CCM으로 유명한 분이 계시거든요. 그분 노래가 너무 좋아서 다 외우고 따라 불렀어요. 나중에는 그대로 모창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분이 소리 내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지금도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친구들에게 모창을 하라고 권하고 있어요.”


많은 자료를 살펴보고 리서치를 했지만 연습에서 잔상이 남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인다는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즐겼던 술자리도 연습을 하면서 횟수가 확 줄었다고 한다. “술맛이 안 나요. 술보다 더 중요한 게 생겼으니까요. 덕분에 부부 관계도 돈독해지고. 참 여러 가지로 고마운 작품이에요.”

 

 

 

이 배우가 나이 드는 법
정성화는 다작을 하기보다는 소수의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선택을 해왔다. 그가 오래전 인터뷰에서 ‘쉬는 시간도 연습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공연을 잘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만드는 시간도 공연의 일부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긴 호흡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후 자신의 모습에 대해 ‘할아버지 배우가 되어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흔히 배우들이 말하는 ‘죽을 때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말보다 ‘할아버지 배우가 되어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말에서 구체적인 실천력이 느껴졌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 배우가 어떻게 나이 들어갈까, 궁금했던 것은.


정성화는 같은 작품을 여러 번 출연해왔다. <아이 러브 유>, <맨 오브 라만차>, <영웅>은 각각 세 시즌을 참여한 작품이다. <라카지>도 앙코르 공연을 한다면 정성화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하기 힘들 것이다. “제가 참여하는 작품이 남의 것이 아니잖아요. 시즌이 더해 갈수록 작품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저의 발전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캐릭터를 발전시키는 과정이 만족스러워야 끝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할수록 부족함을 느끼니 다시 도전하게 되는 거죠.”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그이지만 앞으로도 섣부른 욕심을 내지는 않을 것 같다. 자신과 인연을 맺었던 작품들이 잘될 수 있도록 돕고, 그 작품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이렇듯 선전할 수 있는 것은 한편으로는 주위 사람들이 그의 성장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올해 예그린상에서 남우주연상과, 배우가 뽑은 배우상, 스태프들이 뽑은 배우상을 동시에 받았다. 실력도 실력이려니와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두 그를 아끼고 성공을 바란다. 경쟁의 시대에 이렇듯 훈훈한 사랑을 받기도 쉽지 않다. 그는 그 비결에 대해 “글쎄, 밥을 많이 사서 그럴까요?” 라며 쑥스러운 듯 농담을 했다. 실력을 갖췄으면서도 성실하고,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며, 후배들을 먼저 챙기는 태도를 보면 대략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 것 같다. 게다가 밥까지 잘 산다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에게 할아버지 배우로 늙어가는 것이 무언지 궁금하다고 하자, 무언가가 떠오른다는 듯 자신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을 들려주었다. “객석에 앉아 공연을 볼 때 나름대로 배우를 평가하는 기준이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관객이 되어서 공연하는 나를 보죠. 그들은 정성화라는 배우에게 무얼 가장 원할까? 다음 작품을 선택할 때 관객들이 내게 원하는 다음 모습은 무얼까? 심각하게 물어봐요. 그때마다 저는 도전하는 것을 선택했어요. 이번 작품은 지난 것보다 놀라움이 있어야 해요. 아이폰이 진화하는 것처럼 배우로서 그렇게 살고 싶어요. <영웅> 다음에 게이 역할을 선택한 것이나, 그다음에 장 발장을 선택한 것도 다 그런 선택이었어요. 관객들에게 뭔가 다르게 다가가서 놀라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저 스스로 재미가 없어요. 그러면 쉬어야죠. 쉬는 것도 놀라우려나! (웃음)”


정성화는 코믹한 연기를 잘하고 노래도 좀 할 줄 아는 개그맨 출신의 배우일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진지한 드라마를 감동적으로 소화해냈다. 그것 역시 놀라움이었다. 편견이 깨진 이후에도 매 작품에서 그만의 성실함과 노력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많은 배우들이 선망하는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으로 무대에 선다. 장 발장 이후 그는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줄까? 그가 주는 놀라움은 작품의 규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늘 새롭고 신선한 도전에서 비롯된다. 언제나 변화와 놀라움을 주는 배우 정성화와 함께 늙어간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9호 2012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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