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기를 얻었던 영화나 드라마, 또는 소설을 뮤지컬로 옮긴 작품들이 올해도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런 시도들은 이미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흥행성도 검증됐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예상에서 비롯된다. 한마디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멀티 유즈’가 이런 최초의 의도에 항상 부합하지는 않는다. 내용이 이미 다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를 뛰어넘을 만한 새로운 재미가 있어야 한다. 원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한계는, 극복하면 장점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위험 요인이 된다. 게다가 원작보다 더 큰 돈을 지불해야 하는 뮤지컬의 특성상 그에 상응하는 예술적 완성도도 갖추어야 한다. 이 때문에 원작의 뮤지컬화는 오히려 원작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지난해 동명의 드라마로 신드롬을 일으킨 <해를 품은 달> 역시 비슷한 운명에 처해 있다. 정은궐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했던 드라마는 젊은 왕의 순애보적 사랑을 그린 퓨전 판타지로 숱한 화제를 뿌렸다. 세자빈에서 액받이 무녀로 전락하는 여주인공과 한 여자를 두고 경쟁의식을 보이는 이복형제 왕족 등 극적인 설정 덕분에 뮤지컬계는 소설 판권을 따내기 위해 일찌감치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뮤지컬 <해를 품은 달>은 드라마가 아니라 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노블컬’이지만 어쩔 수 없이 드라마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뮤지컬은 원작 소설의 설정들을 변주하면서도 드라마의 이미지도 극복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게 된다.
뮤지컬만의 가장 큰 특징은 여주인공인 연우의 기억에 관한 부분이다. 소설에서 연우는 자신의 과거를 다 기억하지만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액받이 무녀로 들어간다. 드라마에서는 연우가 사약(사실은 가사 상태에 빠지는 약)을 마신 뒤 기억상실증에 빠져 무녀 ‘월’이 된다. 뮤지컬은 이를 완전히 새롭게 바꿨다. 성수청 무녀 장씨가 연우의 모든 기억을 몸종인 ‘설’에게 옮겨 봉인한다는 설정이다. 양명의 비중도 커졌다. 소설에서는 훤과 연우 사이에서 양명이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다 연우에게 연정을 품게 되지만, 드라마에서는 변경됐다. 뮤지컬에서는 이 세 사람의 비중을 맞춰 삼각관계로 그려진다. CG가 인상적이었던 드라마와 달리 뮤지컬의 볼거리는 전통춤의 군무와 독특한 문양을 활용한 무대에 있다. 특히 전통적인 조각보로 표현된 무대 디자인은 단절과 연결 사이에 있는 훤과 연우의 인연을 표현한다.
신예 김수현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을 만큼 이 이야기에서 캐릭터의 힘은 막강하다. 모두가 주목했던 훤 역에는 김다현과 전동석이 캐스팅돼 김수현의 훤과 다른 매력을 기대케 하고 있다. 또 이복형이자 부왕의 서자인 양명에는 성두섭과 조강현이, 훤의 연인이자 액받이 무녀 연우 역은 전미도와 안시하가 각각 맡았다. 스태프들도 배우 못지않은 실력파들로 꾸려졌다. 정태영 연출과 원미솔 작곡가, 그리고 박인선 작가, 정도영 안무가가 그들이다. 용인에서 프리뷰 기간을 마친 후 7월부터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본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7월 6일~31일 /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 1588-5212
한 줄 평: 원작과의 비교, 자체의 완성도. 넘을 산이 많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7호 2013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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