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저의 첫 번째 ‘팝 뮤지컬’이에요. <오페라의 유령> 같은 클래식한 작품을 하다 밝고 경쾌한 공연에 출연해보니, 거기엔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특히 <그리스>는 고교생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로, 시작부터 끝까지 우울한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이 신나는 작품이잖아요. 배우와 관객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게 뮤지컬의 매력이라면, <그리스>는 그 점에서 최고의 작품일 거예요. 그래서 항상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 같고요. 제가 출연했던 2003년 공연 역시 극장을 옮겨가며 앙코르 공연을 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어요. 그런데 사실 처음엔 이 작품이 흥행에 성공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연습을 반복하다보면 내용이 익숙해져서, 나중엔 이게 웃길지 안 웃길지 판단이 흐려지게 되잖아요. 공연 날이 다가올수록 이건 호응이 없으면 안 되는 작품인데 관객들이 안 웃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됐죠. 다행히 관객들은 몇 초 단위로 웃음을 터뜨렸어요. 이건 의외의 사실일지 몰라도 <그리스>는 수십 번씩 보는 재관람 관객도 많아요. 애드리브가 많은 공연이라, 그걸 보는 재미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했던 애드리브 중에서도 반응이 좋았던 게 몇 개 있는데…, 아! “데니는 날라리고 별로야. 왜 좋아하니?”라는 친구들 대사에 제가 “데니는 안 ‘데니’?”라고 말했더니 관객들이 많이 웃어줬던 기억이 나요.
관객들이 제일 뜨거운 호응을 보내는 장면 중 하나가 엔딩 신이에요. 엔딩에서 요조숙녀 같았던 샌디가 가죽 재킷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변신해서 등장하거든요. 그야말로 파격 변신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샌디가 데니처럼 날라리가 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점이에요. 여담이지만, 저희 아버지가 공연을 보러 오셨다 엔딩 신을 보고 깜짝 놀라셔서 그 뒤로 다시는 보러 오지 않으셨죠.
<그리스>는 오래된 작품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작품 자체가 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청춘 이야기에, 작품 속 캐릭터들이 다들 옆에 있는 친구들 같잖아요. 오랜만에 <그리스>를 본다면 순수했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젊음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12월 1일 ~ 2013년 1월 20일 /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 / 1588-5212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1호 2012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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