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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영화에 얽매이지 않은 무대 구현 <마이 스케어리 걸> [No.68]

글 |현수정 사진제공 |뮤지컬해븐프로덕션 2009-04-01 7,699

 

미녀 살인자를 소재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는 다양하다. 호러, 액션, 코믹 등등 모두 가능하다. <마이 스케어리 걸>(강경애 작, 변정주 연출)은 영화를 통해 이미 알려져 있듯, 블랙코미디라 할 수 있는데, 작품을 관통하는 중심 소품은 바로 김치냉장고다.
여주인공 미나가 살해한 사체를 담아 놓는 김치냉장고는 중요한 순간마다 잔혹하면서도 엽기적이고 코믹한 컨셉을 동시에 표현해준다. 그림자극을 활용한 첫 장면에서는 해설자 역할을 하는 코러스들을 등장시켜 “김치 냉장고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는 식의 질문을 우화적인 말투로 던지고, 중요한 순간마다 김치냉장고를 소품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미나가 사체를 김치냉장고에 넣기 위해 ‘정육’하는 행동과 더불어 극이 끝났을 때에는 배우들 모두가 이 김치냉장고 속으로 퇴장하면서 카니발리즘을 느끼게 한다. 호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듯 살인 장면은 희화화되는데, 그것이 <이블 데드>와 같은 하드보일드한 컬트와는 다르게 그림자극으로 처리된다.

 

옛 남자친구가 찾아와서 화를 돋우는 장면. 수박의 속살이 핏물을 연상시킨다는 내용의 넘버 `나는 정말 수박이 싫어`

 

내용인즉 다음과 같다. 지적이면서도 참한 외모의 소유자인 미나는 남다른 과거를 지니고 있다. 바로 세 명의 전 남편들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미나 친구인 장미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전적으로 ‘재수가 없어서’ 그들을 살해하게 되었다. 어쨌든 돈 많고 나이 많았던 전 남편의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받게 된 미나는 변호사의 지시에 따라 조용히 이태리로 유학을 떠나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아파트는 장미에게 주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런 미나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으니, 바로 연애라고는 해본 적 없는 ‘순진남’ 대우이다. 대우는 비밀을 많이 간직한 미나가 순진하고 신비롭고 수줍음이 많은 여인이라 생각하며 그녀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렇게 미나와 대우가 가까워지던 중, 미나는 다시금 살인을 하게 되는데, 옛 남자친구가 찾아와서 돈을 뜯어가기 위해 그녀의 과거를 밝히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한편, 장미는 대우로 인해 일이 잘못되어 자신이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 버릴까 봐 노심초사한다. 장미는 남자친구 계동과 함께 미나를 ‘없애 버릴’ 계획을 세우는데, 어쩌다 보니 오히려 계동이 미나에게 살해당한다.
대우는 베스트 프랜드 성식과 함께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하고 뒷조사를 하여 미나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된다. 그는 미나에게 죄를 추궁하지만, 성식의 신고로 경찰이 들이닥치자 오히려 그녀를 위해 거짓 증언을 해준다. 미나는 결국 이태리로 떠나고, 두 사람은 서로를 그리워한다.

 

 

 

 

 

 

 

 

 

 

 

 

 

 

 

 

 

 

 

 

 

 

 

 

 

 

 

대우 역의 신성록과 장미 역의 김진희

 

이 작품의 묘미는 무엇보다도 음악이라 할 수 있는데, 팝 베이스의 대중적인 넘버들은 한곡 한곡 귀에 감길 뿐 아니라, 극의 흐름과 잘 맞아떨어지는 송 모멘트와 음악적 구조를 보인다. 늑대 두 마리 코러스가 화음을 넣는 가운데 부르는 사랑의 테마는 호소력 있는 발라드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한껏 풍기고, 미나의 폭발적인 분노를 드러내는 부분(나는 정말 수박이 싫어)에서는 장중한 단조의 음악으로 살인을 예고한다. 그리고 해설자 역할을 하는 배우들의 노래는 익살스러우면서도 서사적인 느낌을 준다. 장미가 미나에 대한 음흉한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장면에서 소위 ‘뽕짝’이라 불리는 전통가요를 연상시키는 창법과 안무로 재치 있게 표현한다. 여기에 식상하지 않은 동작으로 캐릭터와 상황 표현을 코믹하게 보여준 안무가 잘 매치된다.

 

연출적인 장치들 또한 돋보이는데, 첫 장면과 살인 장면에서의 그림자극 이외에도 코러스의 활용이 눈에 띈다. 코러스들은 미약하게나마 해설자로서 극을 이끌어가고, 전환수, 늑대, 멀티맨 등의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면서 재미를 북돋운다.
한편, 이러한 서사극적인 부분이 미나의 캐릭터와 다소 충돌하는 면이 있다. 그녀가 내보이는 내면이 너무 깊고 정직해서 감정이입을 요구하는 듯 보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점에서 통일성을 잃는다. 때문에 해설자들의 역할도 충분히 부각되지 않고, 그녀가 내보이는 드라마도 강하게 어필하지 못하는 느낌을 준다.
또한 그녀의 캐릭터가 다소 명료하지 못한데, 미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들에 휘말려 자꾸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편들을 살해하게 된 동기를 이야기하는데, 그중 어떤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공감할 만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공연을 끝까지 관람하고 나서도 그녀가 이해 불가한 4차원인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범죄자인지, 정말 운이 나빠서 살인을 저지르게 된 착한 여자인지 알 수 없다.

 

사체를 묻기 위해 산에 올라온 미나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녀와 달콤한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전체적으로 <마이 스케어리 걸>은 몇 차례의 워크숍을 거친 작품다운 완성도를 보인다. 극의 진행도 자연스럽고, 리듬감도 살아 있다. 줄거리는 영화와 같지만, 원작의 플롯에 집착하지 않고 새롭게 무대에 재구성한 좋은 예이다. 단, 미나가 살인을 저지르자마자 주문해 놓은 김치냉장고가 배달되는 부분은 중요한 장면임에도 개연성이 없어 보인다. 그녀의 살인은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욱 하는 성질’에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무비컬이란 것을 만들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장면 전환이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 작품은 효과적으로 영화를 무대화시켰다고 볼 수 있는데, 무대와 배우들의 동선을 활용하여 신속한 장면 전환을 보여주는 연출의 센스가 돋보였다. 그러나 무대 디자인은 불필요한 장식이 많아서 김치냉장고를 제외한 소품들과 인물들이 묻히는 면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움직임, 장면 전환, 무대 운용이 모두 효율성 있게 맞아 떨어졌고, 배우들의 호흡이 잘 맞았고, 모두 수준급의 역량을 발휘했다. 미나 역의 방진의는 4차원의 엽기녀로는 보이지 않았으나, 연기력과 가창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 뮤지컬은 블랙코미디라기보다 ‘그레이코미디’ 정도의 느낌을 주는데, 이유는 바로 샤방샤방한 로맨틱 코미디에 무게 중심이 많이 쏠려 있고, 미나가 신비스럽고 미스터리하기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인간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사체를 담은 여행가방을 끌며 늑대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산중 데이트를 즐기고, 사랑의 증표로 삽에 리본을 담아 선물하는 남녀의 모습은 깜찍하면서도 을씨년스러운 묘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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