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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영화의 무대 재현 그 이상,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 [No.67]

글 |이민경(객원기자) 사진제공 |뮤지컬 해븐 2009-06-18 6,884

순수창작물이 아닌, 기존에 원작이 있는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릴 때에는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원작의 유명세가 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이미 스토리를 꿰고 있는 관객 입장에선 결말을 지켜보는 재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 등의 인쇄물을 원작으로 할 경우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이미지를 눈앞에 펼쳐 보인다는 것이 흥미를 자아낼 수는 있지만, 이미 영상으로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드라마나 영화의 단순한 무대 재현은 매력이 없다. 결국 관객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선 원작 이상의 무엇, 즉 뮤지컬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함이 필요하다.

 

 

2006년 개봉했던 박용우, 최강희 주연의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을 무대로 옮긴 이 작품은, 예기치 않게 살인을 저지른 비밀스러운 여인 ‘미나’와 그녀를 한눈에 사랑하게 된 소심한 남자 ‘대우’의 달콤하고도 살벌한 러브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30년 동안 연애를 한 번도 못 해본, 까칠한데다 소심하기까지 한 대학 영어강사 ‘황대우’는 극소심 A형의 성격을 지닌 약간은 바보스러울 만큼 순진한 남자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우연히 사랑이 찾아오는데, 그 상대가 바로 전 남편을 살해한 후 이태리 유학을 준비 중인 ‘미나’다. 대우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그녀를 보고 한눈에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며 그녀에게 점점 다가가고, 그의 순수한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던 미나도 서서히 마음을 열어간다. 그런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살벌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되는데, ‘장미’와 ‘성식’ 등 주변 인물들도 함께 개입되며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스크린과 무대라는 표면적인 특성은 제외하고 작품 자체만을 놓고 비교했을 때, 영화에 비해 뮤지컬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노래와 안무 등으로 대표되는 자유로운 표현방식에 있다. 특히 스토리 전개가 동일한 원작을 갖고 있는 경우엔 그 비중이 더 큰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성공적인 무비컬의 요건을 두루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극의 곳곳엔 이를 가능케 하는 여러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단연 첫 장면에 등장하는 그림자극으로, 이는 해설자를 등장시켜 ‘김치냉장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데 첫 장면부터 등장해, 이후로도 극의 곳곳에 유용하게 쓰인다. 특히 여주인공 ‘미나’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는 가볍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자극적이지 않은 표현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주요 소품으로 등장한 김치냉장고는 무대로 옮겨지면서 사체를 숨기기 위한 공간 외에 배우들의 등, 퇴장의 공간으로 활용된다. 때문에 마치 그 안에서 이야기를 꺼내고 다시 집어넣는 듯한 독특한 형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송 모멘트를 적절히 구사하며, 뮤지컬 넘버는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드라마와의 개연성을 높인다. 단순히 캐릭터들의 감정 표현에 국한된 것이 아닌, 장면에 대한 빠른 이해와 이어질 장면에 대한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는데, ‘미나’가 수박의 빨간 속이 핏물 같아 싫다고 하는 장면에서 곧 살인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해주는 넘버가 그렇다. 전체적으로 기계음을 최소화하고 배우들의 코러스로 대신하는 부분이 많은 덕분에 음악에 묻혀 배우들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을 염려 또한 접어둘 수 있다.
영화를 무대에 올릴 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 중 하나인 장면전환도 신속히 이루어지는데, 암전된 상태에서도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극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무대 활용도 면에선 다소 아쉬움이 남는데, 조명을 이용해 고정된 세트 안에서 공간을 나누어 사용한 것은 좋았으나, 전체적으로 극과는 상관없이 필요 이상의 소품을 배치함으로써 다소 산만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여주인공 ‘미나’는 다른 캐릭터들과 잘 섞이지 못하고 혼자 겉도는 느낌을 준다. ‘미나’를 사랑하지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에 결국 이별을 택하는 ‘대우’, 친구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파트를 얻기 위해 묵인해주며 심지어 뒤처리도 마다하지 않는 ‘장미’, 여행사를 운영하는 자칭 연애박사이자 ‘대우’의 연애코치 ‘성식’, 여기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미나’를 협박하는 ‘계동’ 등 극중 모든 캐릭터들은 다소 과장되게 표현되긴 했지만, 충분히 현실에 존재할 만한 인물들이다.
이에 반해 ‘미나’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인물로 비춰지며 다른 캐릭터들과 괴리감을 갖게 하는데, 이는 그녀의 캐릭터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전 남편을 죽이게 되었다더니, 이후엔 결국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그리고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반복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하지만 극중에선 그녀가 이처럼 변하게 된 이유에 대해선 어떠한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게다가 살인 후에 일말의 죄책감이나 두려움 없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정육을 하거나, 김치냉장고에 조각낸 사체를 넣으며 달콤한 노래를 부르는 장면 등은 영락없이 엽기적인 살인마로 비춰지며 ‘과연 첫 번째 살인도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와 같은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미나’ 역을 연기한 배우 방진의의 연기력과 가창력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캐릭터에 대해선 수정이 필요할 듯하다. 

 

원작이 달콤과 살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했다면,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로맨틱 코미디 쪽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 재치 있는 대사와 안무, 넘버 등을 극의 곳곳에 배치해 코믹적인 요소들이 이를 뒷받침해주며 유쾌함을 준다. 또한 작품 전반에 걸쳐 뮤지컬적인 표현법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영화의 단순 무대 재현이 아닌,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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