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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서른한 살 오은수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달콤한 나의 도시> [No.76]

글 |이영미 (대중문화 평론가) 2010-01-18 7,116

우린 흔히 줄거리가 작품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31세 노처녀, 출판사 대리 월급으로 오피스텔에 독립하여 사는 싱글, 남자친구는 ‘배신 때리고’ 떠나가고 나이는 먹어가고 일상은 피곤하고 지루한 오은수, 이 여자가 우연히 만난 달콤한 연하의 남자와 ‘원 나잇 스탠드’를 하고 동거에 돌입하지만 그의 치기가 마음에 차지 않는데, 다른 한편 다소 지루하지만 안정감 있는 중소기업 대표와 소개팅으로 만나 사귀면서 ‘양다리’를 걸친다는 이야기, 이것이 <달콤한 나의 도시>의 줄거리이다. 자, 이런 줄거리로 어떤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아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다소 신파 냄새 풍기는 비극적 애정물로 만들 수도 있고, 심지어 스릴러물이나 에로물로도 만들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구성과 인물, 문체나 어조, 연출 컨셉 같은 다른 요소이다.

 


정이현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의 선택은 칙릿(chick-lit)이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줄거리가 아니라) 바로 도시의 젊은 여성의 목소리와 시각을 담은 서술자의 매력적인 수다였다. 독자가 동일시할 수 있는 인물인 주인공의 목소리로, 그 서술자는 끊임없이 재잘댄다. 그 ‘수다체’의 서술은 재기발랄하고 상큼하고 솔직하다. 외모도 그저 그렇고 업무 능력도 그저 남들 정도이고, 월급도 쥐꼬리만큼이며 나이까지 서른 고개를 넘긴 주인공 오은수는 그저 겉으로 드러난 행동으로 보자면 어디에서도 튀지 않고 무리 없이 사회생활을 해가는 경력 5~6년차의 평범한 전문직 여성이지만, 서술자가 풀어놓는 ‘수다체’ 서술로 그의 머릿속의 흐름까지 엿보면 전혀 다른 느낌을 풍긴다. 그는 길거리의 풍경, 커피의 향과 맛, 스쳐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 행인이 든 가방의 브랜드, 그리고 사무실에서 만나는 선후배의 인간 군상들, 선 본 남자의 패션 감각, 심지어 키스 방식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대해 일일이 수다스러운 코멘트를 가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소설을 읽을 때에 주인공 오은수에게, 겉으로는 “황이사님!” 하면서도 속으로는 “저, 밥맛!” 하고 쓴 입맛을 다시고, 겉으로는 “네, 맛있어요!” 하면서도 속으로는 “화학조미료 범벅이구만!”이라고 생각하는 그 솔직함에 매력을 느끼는데, 그 솔직함은 오로지 그 서술자의 서술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극’이 될 때이다. 극의 본질상 그 서술자가 제거되거나 상당히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TV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는 이 수다를 동갑내기 세 명 여자의 수다로 상당히 흡수했을 뿐 아니라, 여기에 다소 ‘사차원’ 느낌이 날 정도로 독특한 내면이 느껴지는 최강희라는 여배우에게 은수 역을 맡김으로써 해결했다. 최강희의 다소 차분한 목소리로 가끔 내뱉어지는 해설은, 소설의 수다체 서술이 지닌 정보량을 충분히 보완해줄 수는 없었지만, 대신 소설을 영상으로 옮겼을 때에 흔히 훼손되는 사유의 틈을 보상해 주었다.

 

 

 

 

 

 

 

 

 

 

 

 

뮤지컬 <달콤한 나의 도시>은 가볍고 톡톡 튀는 칙릿을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2시간 남짓한 시간 안에, 그것도 한정된 공간 안에서 모든 이야기를 해결하는 무대예술의 특성상 좀 더 집약성을 강화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런 점에 해설자의 설정은 유용했다. 해설자는 주인공 31살 오은수의 일상을 따라다니며 코멘트를 가하고 문제제기를 한다. 그가 유도하는 대로 오은수의 일상의 에피소드가 마치 영화의 컷들이 연결되듯 빠르고 경쾌하게 짜맞추어졌다. 해설자를 맡은 김우형은 안정감 있는 가창에 가장 또렷한 가사 전달력을 보여주어 판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갔다. 2층으로 구성된 베란다 유리문 모양의 무대는 아파트로 대표되는 도시의 일상적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였고, 무엇보다도 온라인/오프라인에서 수시로 돌출하여 일상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인물들을 처리하는 데에 유용했다. 재즈와 모던록, 포크록이 중심이 된 음악 역시, 31세 전문직 여성의 질감과 조화로웠다.


이 작품에서 가장 높이 살 만한 대목은 뚜렷한 주제의식을 설정하고 꿋꿋하게 관철해나가고자 한 의도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수시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 그 선택으로 자신의 삶이 만들어지는 것, 그리고 그 선택에서 책임이 따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선택의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 이러한 주제는 상당히 선명하게 전달된다. 해설자는 첫 시작부터 이 문제제기로부터 노래를 시작하고, 한 흐름이 끝날 때마다 다시 등장하여 이 주제를 상기시킨다. 종반부에서 그는 아예 오은수와 함께 계속 등장하여 본격적으로 여태 바다 속 인어처럼 경쾌하고 매끈하게 요리조리 헤엄치며 자유롭게 살아온 오은수가 이제 결정하고 책임질 나이가 되었고 그 성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여러 번 힘주어 말한다. 로맨틱 코미디가 대세인 우리나라 창작뮤지컬에서, 얼렁뚱땅 어쩌다 보니 자기 짝을 찾아 행복한 결말을 맺게 되었다든가, 가족애 같은 감정의 ‘약한 고리’를 자극하여 감동적 결말로 나아가는 방법은 흔히 보았으나, 이렇게 인생에 대한 각성으로 나아가는 작품은 그리 흔치 않다. 흔치 않은 것은 관객을 다소 불편하게 만들 소지가 있지만, 그래도 이런 불편함을 딛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작품은 발전하는 것이니 우리는 기꺼운 박수를 보내야 한다.

문제는, 이 주제를 관철하기 위해 이 작품이 상당한 무리수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이나 영화를 뮤지컬로 각색할 때에 일상의 분절적 에피소드를 경쾌하게 짜맞추는 방식은 이제 상당히 노하우가 터득된 바이지만, 소설의 미덕인 각성과 사유를 어떻게 뮤지컬로 옮길 것인가의 노하우는 거의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종반부에 주인공과 관객을 사유와 각성으로 이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련한 방식은, 해설자를 신이나 운명 혹은 초자아(超自我) 같은 것의 역할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오은수를 혼란과 괴로움에 빠뜨려 각성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론으로 치달을수록 해설자는 점점 오은수를 야단 치고 훈계하게 되어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해설자를 남성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이 문제를 훨씬 악화시켰다. 남성 해설자는 오은수와 동일체가 되기 힘들었고, 따라서 오은수는 스스로 각성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 훈계당하고 각성당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오히려 해설자를 오은수의 분신과 같은 여성 인물형으로 설정해서 풀어나갔다면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었겠지만) 좀더 편안하지 않았을까 싶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연극의 판을 짜고 이끌어나가는 댄디한 의상의 남성 해설자가 뮤지컬에서는 훨씬 익숙한 설정이겠지만, 칙릿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주효한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오은수의 분신 같은 여성 해설자가 오은수의 일상 구석구석의 수다를 도맡아 해주며 때때로 위로하도록 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반부도 해설자와의 대화를 통해 각성을 일방통행으로 강요하는 것을 피하고 위로와 격려의 분위기로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에서의 각성은 행동이 멈춰진 상태에서 이루어지지만, 연극에서의 각성은 갈등이 가장 최고조에 이른 때에 그 행동과 수반되어 이루어진다. 이 작품에서 해설자가 오은수 주변의 모든 사건을 중지시키고, 오은수와의 정면 대화를 통해 각성을 이끌어낸 것은, 어찌 보면 소설의 각성 방식을 다소 손쉽게 연극으로 변환한 것이기도 하다. 연극적인 각성을 정공법대로 만들려면, 결말 부분에서 어이없이 흐지부지 되어 버린 김영수와의 갈등, 몇 십 년 동안의 현모양처의 역할을 버리고 가출해 버린 어머니와의 갈등, 혹은 두 명의 친구인 재인과 유희와의 갈등을 좀더 징글징글하게 몰고 나가고, 그에 대해 오은수와 그 분신인 해설자가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각성으로 나아갔어야 했다. 이 방법 역시 결코 지금의 뮤지컬 관객들에게 편안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수나 엄마 같은 중요한 인물들을 처리하지 못한 채 끝내버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하지만 다른 한편 생각해 보면, 이 문제가 어찌 이 작품만의 문제랴 싶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어쩌다 보니 해피엔딩, 아니면 뻔한 감동 우려내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대한 주제를 담아내는 뮤지컬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지금 이 시대 우리 뮤지컬이 함께 감당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 본 리뷰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6호 2010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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