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웨스트엔드의 대 브로드웨이 역습’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영국 연극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에 비해 올 한 해 웨스트엔드의 뮤지컬 시장은 창작보다는 리바이벌과 브로드웨이산 대형 뮤지컬이 대부분이었다. 극장 문을 열기가 무섭게 영국 전통 연극의 위세에 밀려 금세 활기를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그 덕에 소극장의 뮤지컬들마저 관객들에게 외면당했다.
그래서 찾아 나섰다! 웨스트엔드 변방의 목소리를, 런던의 소극장들의 귀중한 뮤지컬을, 지금 만나러 가자.
맛집 탐방보다 더 재미난 런던의 소극장 탐방기
‘프린지 Fringe 극장’이란 객석이 100석 미만인 소극장을 지칭한다.
이는 본래 에든버러 페스티발 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에서 소규모의 공연물과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발 공연을 구분 짓기 위해 쓰였던 말인데, 일반적인 모든 소극장을 지칭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변했다.
런던에는 현재 약 90개의 프린지 극장이 공연을 올리고 있는데 이중 10여 개 극장에서 뮤지컬을 공연하고 있다. 소극장은 런던 각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보통 그 지역의 특색을 살린 소극장과 대형 극장의 브렌치 Branch 역할을 하는 소극장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경우는 그 지역 주민들의 문화를 반영한 창작뮤지컬을 주로 만드는데 문화 산물 Cultural commodification 로서 그 지역의 주요 인종과 문화적인 관심사를 읽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인도계 인디언과 아랍 서남아시아 계통의 주민들이 모여 사는 해머스미스의 리버사이드 스튜디오 Riverside Studio theatre 의 경우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적인 뮤지컬을 올리는 경우가 많으며, 중산층 백인이 주로 사는 리치몬드 지역의 오렌지 트리 시어터 Organe Tree theatre 는 백인 중산층 중년들이 좋아하는 풍자 코미디 혹은 스탠드 업 코미디가 곁들어진 공연들을 올린다.
반면 후자의 경우 대형 극장의 작품들을 투어 형식으로 짧은 기간 동안 올려 각 지역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큰 프로덕션이 협소한 무대로 옮겨지다 보니 작품의 질은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상업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소개할 두 극장은 저민 스트릿 시어터 Jermyn Street Theatre 와 혹스턴 홀 시어터 Hoxton Hall Theatre 다.
먼저 저민 스트릿 시어터는 런던 시내 피카디리 서커스 역 Piccadilly circus 주변 뒷골목에 있다. 주변의 대형 극장들의 상업 뮤지컬에 맞서 주로 비주류 공연들을 올리는데, 이를 테면 요즘 무대에서 보기 힘든 스티븐 손드하임의 초기 뮤지컬 <새터데이 나잇>을 올리는가 하면 테러리스트들을 둘러싼 풍자 뮤지컬 <지하드> Jihad! 를 올린 바 있다.
반면 런던 북동부 올드 스트릿 Old Street 지역에 위치한 혹스톤 홀은 영국에서 몇 개 남지 않은 전통 뮤직홀을 현대식 극장으로 개조했다. 1863년 문을 연 혹스톤 뮤직홀은 오랫동안 영국 전통 음악공연을 올려왔다. 뮤직홀에서 펼쳐졌던 영국식 전통 음악 공연이란 쉽게 말해 뮤지컬 <카바레>에서의 엠씨와 코러스의 막간극과 비슷한 형식이라고 보면 되는데, 사회자인 체어맨 Chairman 을 주축으로 여러 명의 코러스 멤버 배우들이 음악과 재미난 풍자 위주의 패러디 공연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혹스톤 뮤직홀은 지역 주민들에게 향수를 자극하고 영국식 풍자 코미디 공연의 명맥을 현대식 뮤지컬로서 이어가고 있다.
풍자 혹은 아이러니. 패러디, 나를 말하다
현재 혹스톤 뮤직홀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프랭크의 클로젯> Frank`s Closet 은 바로 이 혹스톤 뮤직홀의 전통적인 공연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가 스튜어트 우드 Stuart Wood 는 “어린 시절 나를 감동시켰던 뮤직홀의 주인공들을 뮤지컬 속에서 다시 만나고 싶었다”고 말한다.
<프랭크의 클로젯>은 프랭크의 옷장에 걸린 여섯 벌의 옷, 그리고 그 옷의 주인공인 여섯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이들을 바라보는 게이 남성이 성적 정체성의 혼돈과 교류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 자신의 자서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한 <프랭크의 클로젯>에서 주인공의 옷장과 옷은 이중적인 메세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이야기를 엿봄과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성적 자의식의 폭로) 를 내포하고 있다. 프랭크의 옷들의 주인공은 과거 혹스톤 뮤직홀의 스타였던 마리아 로이드 Marie Lloyd 를 비롯하여 줄리 앤드루스 Julie Andrews , 캐런 카펜더 Karen Carpenter 등 프랭크로 하여금 게이로서의 성정체성을 깨닫게 이끌어준 디바 DIVA 들이다.
<프랭크의 클로젯>은 게이 문화를 관객들에게 편견 없이 알리고 싶어 한다. 게이 문화가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영국이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국 대중문화 속에서 발견되는 게이들의 모습에는 여전히 편견과 오해로 뭉쳐진 비뚤어지고 왜곡된 이미지가 많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스꽝스럽고 지나치게 여성적인 모습을 강조시킨 스테레오 타입의 게이 캐릭터가 드라마는 물론이요, 뮤지컬과 연극 속에서도 비호감과 편견을 불러일으키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프랭크의 클로젯>이 심각한 게이 문화의 편견을 바로잡고자 선택한 방법이 다름 아닌 패러디와 풍자라는 점이 놀랍다. 풍자와 패러디를 통한 공격 대상이 되는 게이 문화를 다시 풍자와 패러디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관객들은 무대로 들어가기 전 극장 옆의 바와 연결된 작은 무대에 앉아 체어맨 Chairman 인 게이 아주머니(?)의 색다른 인트로 공연을 보게 된다. 19세기 중산층 여성의 의상을 입은 체어맨은 스토리텔링 storytelling 형식을 빌려 앞으로 보게 될 뮤지컬 속 주인공 프랭크의 이야기를 마치 아주 오래된 동화책 속 스토리처럼 구성해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체어맨의 구수한 이야기를 들은 관객들이 극장 안으로 들어서면 빨간색과 노란색의 원색적인 아방가르드적인 무대가 보인다. 무대 자체가 커다란 옷장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옷장 문은 프랭크와 인물들이 등장하는 입구다. 그 입구를 열고 나오면, 오른쪽 아래 프랭크의 옷들이 걸려있다. 빨간 무대의 왼쪽 아래는 전화기가 놓인 분리된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서 프랭크는 자신의 엄마와 시종일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다.
50여 석밖에 안 되는 작은 홀이지만 웬만한 중극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상당한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무대 왼쪽에 자리 잡고 있다. 무대가 열리면 세 명의 코러스가 그로테스크한 분장을 한 채 프랭크의 주변을 맴돌며 그의 은밀한(?) 옷장을 열기 시작한다. 세 명의 코러스는 프랭크의 분신이자 그의 자의식을 상징한다.
프랭크는 장면과 장면 사이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에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는다. 이 전화기는 프랭크와 그의 엄마의 교류의 공간이면서 또 프랭크의 환상과 내부, 현실 세계를 이어주는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90여 분 안팎의 짧은 구성에 맞춰 드라마의 내러티브는 다소 심플하고 반복적이라는 아쉬움이 있으며 안무와 조명도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7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색깔의 음악은 클래식하면서도 풍부했으며 인물의 표현 기법과 패러디의 사용은 포스트모던 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다시 말해 음악과 내러티브는 현대적이지만 극적 인물들과 극의 성격에는 영국 특유의 클래식함과 아방가르드적인 색깔이 있고, 비주얼적인 표현 기법은 초현대적인 모습을 띄고 있어 이는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신크레틱 시어터` Syncretic theatre, 즉 미래형 혼용 뮤지컬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줄리 앤드루스의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 패러디는 비주얼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색다르고 재미난데 아름다운 여성 디바의 이미지가 게이 남성의 자의식에 투영되면서 해학적으로 패러디된 과정은 프랭크 자신의 복잡한 성적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결국 상상과 현실로 이분화된 프랭크의 자의식은 결국 아름다운 그의 결혼식장면과 함께 비로소 하나로 이어지게 된다.
웃음 그 언저리에 앉아 바라본 패러디, 너를 말하다
저민 스트릿 시어터의 뮤지컬 <제스트 엔드> Jest End 는 웨스트 엔드의 대형 뮤지컬들을 패러디해서 풍자하고 있는 뮤지컬 코미디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들을 풍자해서 만든 <포비든 브로드웨이> Forbidden Broadway 의 영국판이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남녀 각각 두 명씩으로 구성된 출연자들의 역량은 웬만한 대형 극장의 배우들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매우 뛰어나다. <제스트 엔드>는 스물여덟 곡의 뮤지컬 넘버를 통해 웨스트엔드 대형 뮤지컬들과 뮤지컬 산업의 문제점, 그리고 그늘에 가려 빛을 바라지 못하는 중소 극장의 작품과 배우들의 애환을 재미나게 그리고 있다. 예를 들어 최장기 공연의 기록을 채우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1년만 더, 5년만 더, 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배우들의 힘든 속사정을 ‘원 데이 모어` One Day More 를 패러디한 ‘원 모어 이어` One More Year 로 담아내는가하면 배우 마이클 볼의 골수팬들로 풍년 장사를 하다가 그가 그만두자 티켓 판매율이 감소해 걱정거리를 앓고 있는 뮤지컬 <헤어 스프레이>의 ‘마이클 볼 앤 미` MICHAEL BALL & ME, 웨스트엔드를 장악하는 브로드웨이 상업 뮤지컬 특히 최근 문을 연 <금발이 너무해>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You’re a Fraud’ 등 웨스트엔드 뮤지컬 팬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봤을 법한 이야기들이 영국식 유머로 해석되어 이야기되고 있다.
한편 대형 작품이 아닌 소극장 공연을 하고 있는 배우들의 힘겨운 작품 그리고 삶의 투쟁(?)을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웃으면서 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애환이 깊게 느껴져, 지켜보는 것 자체가 눈물겹다.
브로드웨이를 풍자한 <포비든 브로드웨이>가 가지지 못한 <제스트 엔드>만의 영국적인 코미디라고 해야 할까? 더구나 70석의 객석에 열 명 남짓한 관객과 저예산의 빈약한 무대 위 배우들은 웨스트엔드의 그늘에 가려진 프린지, 소극장들의 애환을 뮤지컬보다 더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음악과 안무는 평이하고, 극의 구성과 무대 효과에서 특별한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열창하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손바닥에서 불이 날정도로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런던 각 지역의 소극장에는 그나마 그 지역 관객들의 관심과 참여가 있다지만 이렇게 웨스트엔드 시내 뒷골목에 위치한 극장은 그 존재 자체가 소극장의 설움과 애환을 패러디하고 있는 것이다.
패러디-풍자, 해학의 묘미 그리고 뮤지컬. 인생은 코미디가 아니다
영국인들을 비롯한 유럽 사람들에게 패러디는 많은 코미디 장르, 특히 뮤지컬의 기원 중 하나인 벌레스크 Burlesque 를 통해 우리 사회와 개인, 즉 나와 너의 모습을 풍자하기 위해 쓰여왔다. 한바탕 웃음 뒤에 발견되는 우리 자신의 얼굴. 그 씁쓸한 기분은 ‘인생은 한 편의 코미디’라는 명언을 무대 위 패러디의 진중한 메시지보다 더 잔인하고 무겁게 무대 아래로 끌어내린다. 2009년의 마지막 날. 런던 하늘에 맑은 해가 뜨는가 싶더니 이내 거짓말처럼 흰 눈이 내리고 있다. 잠시 내리고 지나간 흰 눈의 흔적 뒤에 남은 하얀 추억을 더듬듯 나를, 그리고 너를, 잊혀져가는 지금의 우리를 기억하기 위해 무대는 짧고도 허망한 세상살이를 패러디한다. 저 눈이 그치고, 2010년이 오면 좀더 희망찬 소식을 웨스트엔드에서 들을 수 있을까?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76호 2010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