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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Oh! Broadway 어린이 공연에서 미래를 보다 [No.77]

글|지혜원(공연칼럼니스트) |사진|Chris Bennion 2010-03-09 6,477

성인 관객을 위주로 한 상업 공연 시장이 크게 발달한 미국이지만, 브로드웨이가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 공연계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누릴 수 있었던 데에는 끊임없이 양산되는 양질의 콘텐츠만큼이나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두터운 관객층의 역할이 주요했다. 관객 계발이 언제나 공연계의화두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의 어린이 공연 시장
흔히 미국의 공연 시장을 이야기할 때 뉴욕의 브로드웨이를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 미국의 전체 공연 시장에서는 각 지역에 포진되어 있는 다수의 크고 작은 공연 단체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시카고의 굿맨 시어터 Goodman Theatre, 애틀랜타의 얼라이언스 시어터 Alliance Theatre, 워싱턴 D.C.의 아레나 스테이지 Arena Stage, 샌 디에고의 라 호야 플레이 하우스 La Jolla Playhouse 등을 비롯한 많은 민간 비영리 지역 공연장들이 수많은 시즌 프로그램들을 자체 기획·제작해 왔다. 이들 중 상당수는 뉴욕의 상업 공연 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경우가 적지 않다.


지역 공연장의 무시 못할 성과는 어린이 공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전체 공연 시장을 놓고 볼 때 규모나 제작 편수가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린이 공연 역시 여러 지역에서 고르게 발달하며 성장해왔다. 어린이 공연의 경우에는 상업 공연의 중심인 뉴욕보다 오히려 지역 공연 시장에서 더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특히 미네아폴리스에 위치한 칠드런스 시어터 컴퍼니 Children`s Theatre Company (이하 CTC) 와 시애틀 칠드런스 극장 Seattle Children`s Theatre (이하 SCT) 등은 독자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제작함으로써 어린이 공연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 힘쓰고 있다.


대부분이 비영리 체제로 운영되는 어린이 극장들은 대개 2~18세의 어린이, 청소년과 그들의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공연들과 교육 프로그램들을 시즌제로 제공하고 있다. 대형 극장들은 보통 매년 6~8개 정도의 공연을 제작하며 각 작품 당 약 5~8주 동안 공연한다. 각 극장마다 설립 취지와 목적에 맞게 작품을 선별하고 제작하지만, 어느 지역의 어린이 극장에서든 1년 내내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제공되는 셈이다.

비영리 체제이다 보니 대부분 멤버십이나 서브스크립션을 통한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어린이 공연이라고 해서 같은 공연을 반복하여 공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신선하고 수준 높은 작품이 공연되지 않는다면 회원들의 재가입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멤버십이란 비영리 공연장에서 운영하는 연간 회원 프로그램으로 회원에게 공연 티켓 할인이나 이벤트 초대 등의 혜택을 주는 유료 회원제 체제이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 등 우리나라의 국공립 공연장의 유료 회원 제도와 비슷하게 운영된다.

서브스크립션이란 몇 개의 작품을 패키지로 묶어 구입하거나 한 시즌에 관람 가능한 작품의 수를 정해 선구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 LG아트센터가 기획공연 패키지를 판매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대부분의 어린이 극장들은 공연 프로그램만큼이나 주요한 사업으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선보인다.

공연 프로그램들과 연계한 워크숍이나 캠프 등의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넘어서 더욱 지속적으로 학교 교육과 직접적인 연계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학교 선생님들을 위한 상세한 교육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예술 전문 교사를 파견하거나 드라마와 교과과정을 연계하여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한다.

 

 

미국 내 대표적인 어린이 극장
미네소타의 미네아 폴리스에 위치한 칠드런스 시어터 컴퍼니(CTC)는 미국 내 어린이 극장 중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극장 중 하나이다. 1965년에 설립된 이 극장은 2003년 토니상의 지역 공연장 부문상을 받을 정도로 주목받는 비영리 공연단체이며, 그동안 어린이 공연계에 큰 기여를 했다. CTC의 공연 프로그램은 모든 연령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메인 프로그램과 10대 청소년들을 위해서 특별히 마련된 ctc4teens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CTC는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거나 창작하고, 지역과 연계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투어 공연을 포함한 공연과 트레이닝 프로그램 등을 통해 매년 총 약 35만 명의 관객들을 꾸준히 동원하며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CTC는 매 시즌마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공연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패밀리 가이드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물론 각 공연 별로 공연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배경 설명, 참고 서적과 수업에 필요한 자료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스터디 가이드를 제공해 학교 수업과 공연이 연계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히 2005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프로그램 ctc4teens는 CTC만의 차별화된 기획 프로그램이다. 300석 규모의 극장에서 매 시즌 2~3편의 청소년 프로그램을 공연하는데, 주제나 내용이 청소년을 위해 선정되는 것은 물론 형식면에서도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프로그램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동안 공연했던 작품들을 살펴보면 청소년의 주된 관심사인 패션이나 이성 교제 등의 소재로 흥미를 끄는가 하면, 인종 문제나 사회 문제 등 교육적인 가치가 높은 작품들을 청소년의 눈높이로 풀어내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도 힙합 뮤지션이 뮤지컬이나 퍼포먼스의 형식을 빌려 공연하는 프로그램들의 인기가 가장 높다. 보통 어린이 공연은 동화나 영화, TV 시리즈 등을 각색해 만든 작품들을 위주로 제작되며 초등학교 이하의 어린아이를 위한 공연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아 그들이 성인 관객으로 성장하기까지 가장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기는 간과되곤 한다. 이런 관점에서 어린이부터 청소년 관객까지 모두를 아우르기 위한 CTC의 노력은 더욱 높이 살 만하다.

 

CTC는 정서적으로도 가장 민감한 시기인 청소년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15~18세의 고등학생 12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구성해 주간 회의를 통해 이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전문가들로부터 일반적인 공연 운영에 대해서도 학습할 수 있는 보너스 기회까지 부여받는다. 2009~2010 시즌 작품 중에는 3명의 힙합 아티스트들이 <메이헴 포이츠(Mayhem Poets)>의 퍼포먼스가 공연되었다.

 

1975년에 설립한 시애틀 칠드런스 시어터(SCT) 역시 활약이 두드러지는 어린이 극장 중 하나이다.

1년 예산이 약 70억 원 정도로 전국의 지역 공연장을 통틀어도 20위권 내에 속할 만큼 제법 규모가 크다. SCT는 어린이들이 새롭고 신선한 공연을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접할 수 있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들의 시즌은 482석, 275석 규모의 두 개 극장으로 나뉘어 매년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한 시즌으로 운영되는데, 기획 공연이 없는 여름에는 학생들이 직접 배우로 나서서 공연전문가와 창작자들과 호흡을 맞춰 작품을 제작하는 캠프를 운영한다.

 

 

 

매년 약 25만 명 이상의 관객에게 자체 기획 작품을 선보이는 SCT는 지난 35년여 동안 100여 편의 새로운 작품을 기획·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도 유통시켜왔다. SCT에는 공연과 교육 프로그램 외에도 특별한 프로그램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아이들의 생일파티를 공연장 안에서 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극장 내에 공간을 빌려 공연 전문가와 30~60분 길이의 워크숍에 참여함으로써 아이들은 공연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파티를 위한 공간과 제반 시설 대여 비용만은 약 17만 원(150달러) 정도이며 특별 워크숍에 약 30만 원(220~260달러) 가량의 별도 비용이 추가된다. 파티 참석자들이 함께 공연 관람까지 원하는 경우 할인된 금액으로 예약석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이는 공연장의 부수입원이 되면서도, 생일이라는 특별한 날의 색다른 경험을 통해 아이들의 관심을 공연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인 셈이다.


뉴욕과 마찬가지로 미국 공연계의 또 다른 구심점인 워싱턴 D.C.의 케네디 센터 John F. Kennedy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에도 어린 관객들만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 있다. 케네디 센터의 시어터 포 영 오디언스즈 Theatre for Young Audiences  프로그램은 새로운 작품을 직접 개발, 제작하고 공연하는 것은 물론 투어 공연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까지 양질의 작품이 유통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케네디 센터의 명성은 투어 공연의 성과에도 크게 한몫을 한다. 투어 공연만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도 있다. 뉴욕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 시어터웍스 USA  Theatreworks USA는 매년 약 16개의 공연 레퍼토리로 일년 내내 전국의 지역 공연장이나 학교 등을 찾아 공연한다. 1961년에 설립된 이 단체는 무료 여름캠프 등을 통해 보다 많은 어린이들이 공연으로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어린 관객들에게 양질의 공연 작품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이러한 어린이 공연단체와 달리 어린이들의 직접 참여를 유도하는, 보다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 설립된 극장들도 있다. 몬타나주의 미졸라 칠드런스 시어터 Missoula Children`s Theatre (이하 MCT)가 대표적이다. 매년 6천여 명 이상의 어린이 배우들을 캐스팅해 작품을 공연하는 MCT는 자체 제작하는 뮤지컬 작품 이외에도 공연 워크숍과 뮤지컬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어린이들이 직접 공연에 참여해 다양한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관객을 넘어서 어린이들이 실제 공연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어린이 공연을 위한 지원 정책
앞서 이야기했듯이 어린이 공연은 대부분 비영리 공연단체에서 제작한다. 따라서 멤버십이나 서브스크립션 등 티켓 판매를 통한 수입 외에 비영리 공연단체를 지원하는 미국연방예술기금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의 지원금이나 기타 다른 문화재단, 기업, 그리고 일반인의 기부금 등의 도움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어린이 공연만을 위한 재단인 미국 어린이 공연 재단 Children’s Theatre Foundation of America 도 있다.

1958년에 설립한 이 재단은 어린 관객들을 위한 공연을 육성하고 개발을 지원하며 예술가와 학계 전문가, 공연 관계자들의 프로젝트를 선별하여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본부가 있는 국제 아동 청소년 연극협회 ASSITEJ 의 미국 본부는 시어터 포 영 오디언스즈/USA Theatre for Young Audiences/USA, TYA/USA 라는 이름으로 1965년에 설립돼 어린이 공연의 활성화를 위해 미국 전역은 물론 국제 교류에도 힘을 쏟고 있다.


어린이 공연이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지원만큼이나 양질의 콘텐츠 개발이 중요하다. 물론 나이가 어린 아이들일수록 책이나 TV, 영화 등으로 익숙한 이야기나 캐릭터를 무대에서 볼 수 있다면 신선한 경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공연을 경험하기 시작한 어린이 관객이 성인이 될 때까지 공연에 관심을 잃지 않으려면 그들이 성장하면서 더욱 양질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끊임없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대표적인 어린이 극장으로 손꼽히는 CTC와 SCT는 지난 2004년 파트너십 벤처인 플레이즈 포 영 오디언스즈 Plays for Young Audiences, PYA 를 설립, 어린이 공연 작품을 위한 극본을 개발, 공급하고 있다. 전문 공연단체만이 아니라 아마추어 공연단체나 지역의 작은 공연단체, 학교 등에도 공연권을 제공하고 있다. 오랜 시간 새로운 어린이 공연의 창작과 개발에 힘을 쏟아온 두 단체가 더욱 수준 높은 어린이 공연물을 더 많은 어린 관객들이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한 것이다. 이들로부터 공연권을 사들인 단체들은 좋은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미국 전역의 공연장이나 학교, 아마추어 공연단체는 물론 캐나다, 영국, 독일, 벨기에, 스페인, 멕시코 등까지 이르며 점차 그 수를 늘려가고 있다.

 

 

공연계의 과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지적되는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관객 계발의 필요성이다. 물론 좋은 콘텐츠라면 다수의 수용자가 공감하고 소비할 것이다. 하지만 공연은 소파에 앉아 습관처럼 보게 되는 TV와도, 그리 높지 않은 티켓 가격으로 꽤 만족스러운 오락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영화와도 다른 영역이다. 이것이 공연이 엔터테인먼트이기 이전에 예술로서의 의의가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연의 관객층을 확보하는 작업은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지금 바로 지갑을 열어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성인 관객층을 넓혀나가는 것 이상으로 어린이, 청소년들이 양질의 공연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공연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좋은 공연을 보기 위해 만만치 않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고 공연장을 찾는 진정한 공연 관객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77호 2010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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