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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뉴욕 최장수 뮤지컬, 런던에서 단명의 불운을 맞다 <판타스틱스> The Fantasticks [No.82]

글 |정명주(런던통신원) 2010-09-28 6,717

<판타스틱스> (The Fantasticks)는 196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42년 동안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의 설리번 스트릿 플레이하우스에서 공연되어 세계 최장 공연을 기록한 뮤지컬이다. 2006년 리바이벌 프로덕션이 뉴욕에서 극장을 옮겨 오픈하였고, 지난 5월 50주년 기념공연을 하였으며 현재까지 인기리에 공연 중이다. 이 오프 브로드웨이 최장수 뮤지컬이 2010년 6월 9일,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영국 배우를 기용한 새 프로덕션으로 공식 오픈을 했다. 그러나 9월까지 예정된 공연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2주 만에 바로 공연을 접게 되었다. 영국 비평가들의 혹평과 월드컵 축구로 인한 희생양이 된 것이다.

 

 

올해로 82세를 맞은 <판타스틱스>의 작가, 톰 존스는 왜 이 작품이 그리 오래도록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사랑을 받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일단, <로미오와 줄리엣>에 기초한 젊은 연인의 사랑이야기는 시대를 불문하고 인기를 누리는 소재이다. 열여섯의 소녀 루이자와 열아홉 소년 매트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연정을 키우는 어린 연인들이다. 이 둘의 아버지는 인종은 다르지만 오랜 우정을 자랑하는 친구로, 자식들의 사랑이 맺어지도록 일부러 반대하는 척 음모를 꾸민다. 두 사람은 핸섬한 스페인 배우, 엘 가오를 고용하여, 딸 루이자를 납치하게 하고, 아들 매트가 그녀를 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엘 가오는 관객들에게 직접 모든 이야기를 전달하는 내레이터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늙은 광대 두 명을 추가로 고용하여 셋이서 젊은 연인들을 위협한다. 그리고 극중에는 두 집안 사이에 가로놓인 벽을 연기하는 대사 없는 연기자가 한 명 더 있다. 각종 소품을 운반하고, 무대를 준비하는 그는 작품의 연극성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톰 존스는 아마도 이렇게 모든 연령의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다양한 인물들, 그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빈 무대의 연극성이 작품의 매력이 아닐까 하고 회상한다. 무엇보다 ‘Try to Remember’와  ‘Soon It`s Gonna Rain’ 등 단순하면서 달콤한 선율을 담은 대표곡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인기를 유지해 온 비결일 것이다.

 

 

 

단명의 이유
그렇다면,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최장수 뮤지컬로 기록을 세운 뮤지컬이 왜 웨스트엔드에서는 개막 2주 만에 막을 내리는 단명 뮤지컬이 되고 말았을까? 홍보를 담당한 벤 쳄벌레인의 말에 따르면, 우선 영국의 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60년대의 연극성을 강조한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원작의 내용과 구조 자체가 2010년의 관객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작품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내레이터의 관객을 향한 대담한 직설어법이나 이탈리아의 코미디아 델 아르떼에 나오는 광대들의 코미디는 이미 너무나 많이 보아 온 진부한 연극적 장치이다. 이것을 그나마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가벼운 코미디로서의 접근이 필요했을 것이다.


일본 프로듀서, 쿠미코 요시가 일본 연출가 아몬 미야모토를 기용하여 제작한 이번 웨스트엔드 프로덕션은 가벼운 코미디를 너무 진지하게 접근하였다. 대연출가, 피터 브룩이 주창한 ‘빈 무대’의 연극성을 재현하려 했다는 미야모토의 연출은 지나치게 거창한 연극성을 강조하다가 재치와 유머를 놓쳐버렸다. 가볍게 툭툭 던지고 지나가야 할 대사를 하나 하나를 힘주어 연기하는 배우들의 코미디는, 웃음을 유발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불편함을 야기했다. 무대디자이너 루미 마츠이의 기울어진 다이아몬드형 무대는, ‘빈 무대’의 연극 철학과 연극의 즉흥성을 강조한 의미는 훌륭했지만, 배우들의 연기 공간을 너무 비좁게 만들었다.  경사진 좁은 무대에서 불편하게 움직이는 배우들을 바라보는 관객들까지 불편하게 만들었다. 


사실, 배우들의 역량은 훌륭했다. 그러나 이번 무대는 그들의 연기력이 발휘되는 무대가 되지 못했다. 나레이터 엘 가오 역의 해들리 프레이저는 수려한 외모와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8명의 배우들 중에 유일하게 자기 페이스를 지키면서 편안한 연기를 펼쳐보였다. 루이자 역의 로르나 원트는 <레 미제라블>의 코제트 역으로 유명한 재능 있는 배우로, 가냘프고 고운 목소리가 상당히 매력적이었고, 나름대로 혼신을 다한 열연을 펼쳤지만 지나치게 진지한 연기가 작품의 톤을 너무 무겁게 만들었다. 또한 매트 역의 루크 브래디 역시 <위 윌 록 유>의 갈릴레오 역을 맡았던 가창력이 뛰어난 신예로서 온 몸을 던져 연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지만, 지나치게 비극적인 톤이 거슬렸다. 문제는 지나치게 심각한 작품의 톤과 앙상블의 부재에 있었다. 남녀 주인공 간에 정서적 교감이 보이지 않았고, 유머가 담긴 참신한 순간이 없었다. 특히 남녀 주인공이 손을 마주 잡은 채 가만히 서서, 너무나 정직하게 ‘Soon It`s Gonna Rain’을 부르는 순간에는 연출력의 부재를 통감케 했다. 노래의 아름다운 선율과 배우들의 고운 음색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연극적 효과를 찾아 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아버지 역을 맡은 클라이브 로웨와 데이빗 버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최고의 연극상인 올리비에상을 수상한 경력의 대배우, 클라이브 로웨와 수많은 셰익스피어 무대와 웨스트엔드 뮤지컬에서 활약해 온 데이빗 버트가, 이번 무대에서는 과장된 코미디 연기로 어색함과 불편함을 선사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많은 대사를 치고 받으며 유머를 생산해야 할 두 사람의 사이에 앙상블이 부재했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오버액팅을 하는 데이빗 버트의 연기는 때로 고통스러웠다. 작품의 톤을 가볍게 유지하지 못하고, 두 배우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외국인 연출가의 한계였다. 엘 가오와 함께 극중에서 늙은 광대로 활약하는 헨리 역의 에드워드 피써브릿지와, 몰티머 역의 폴 헌터 역시, 노련한 코미디 배우로서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다. 평소와 다르게, 너무나 느린 템포로 신체 코미디를 연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지못한 웃음과 연민만을 자아냈다.

 

 

웃음을 휘발시킨 진지한 극
원작이 가진 구조적인 문제도 없지 않았다. 친구 사이인 아버지들이 서로의 자식들을 연인으로 맺어주기 위해, 일부러 반대를 하고 배우까지 고용해 납치극을 벌인 끝에 젊은 연인을 탄생시킨다는 기본 줄거리는 이미 1막에서 종결된다. 2막은 이제 이 젊은 연인들이 권태기를 맞고, 아버지들의 계획을  알고 분노하고, 매트가 세상으로 떠나버리고, 다시 한번 엘 가오의 개입으로 위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보다 성숙한 루이자와 매트가 행복한 재결합을 이룬다는, 상당히 반복적인 내용으로 긴장감이 많이 부족하다. 대신 2막에는 연극적인 장치들이 재미의 요소로 많이 등장한다. 아버지와 아들딸의 행복한 모습이 정지 동작인 ‘타블로’로 장식되었던 1막의 마지막 장면이 그대로 2막의 시작이 된다. 엘 가오의 나레이션을 통해 각종 연극적 용어가 설명되고 장치와 소품의 전환도 수시로 관객에게 설명된다. 달빛 아래 이루어진 로맨스가 적나라한 태양 아래 어떻게 되는지 보자며, 달 조명을 해 조명으로 바꾸어 다는 상황이 그러한 예이다. 또한 엘 가오는 소년 매트에게 세상을 보고 오라며, 늙은 두 명의 배우들과 함께 그를 떠나보낸다. 매트는 이 배우들과 함께 마임 형식으로 세상의 고난과 시련을 연극적으로 선보인다. 수시로 엘 가오는 연출가처럼 여러 가지 상황을 지시하고, 관객들을 무대에 초청하여 즉흥 연기도 시킨다.


이러한 모든 연극적인 상황들은, 관객들의 참여를 유발하며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상황들이 보다 가벼운 코미디로서, 즉흥에 기반한 재미를 선사하는 시간이 되었다면 보다 즐거운 관극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야모토의 무대는 그렇지 못했다. 마치 진지한 한 편의 연극을 풀어가듯, 헤어짐과 고난과 시련이 사뭇 심각하게 연기되었다. 음악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연출가의 접근이 원작의 장난기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두 연인이 다툰 끝에, 매트를 세상으로 보내며 엘 가오와 매트가 함께 부르는 노래 ‘Beyond That Road’의 경우 흥청흥청한 블루스 풍의 선율은 분명 흥겨움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음악의 분위기와는 달리, 무대에서는 아무런 액션 없이 가만히 관객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매트와 엘 가오의 표정이 너무나 진중하다. 엘 가오와 루이자가 부르는 ‘Round and Round’ 역시 반복적인 리듬이 귀엽고 코믹한 곡이다. 두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뒤쪽 무대에는 곤돌라를 타고 늙은 배우와 매트가 지나간다. 분명 코믹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무대에서는 웃음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진지한 장면으로,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처럼 부조리한 느낌으로 표현되었다.
결말에 이르러 두 연인이 재결합하며 부르는 아름다운 선율의 ‘There Were You’ 역시, 사랑스럽고 행복한 분위기의 듀엣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사뭇 비장한 분위기로, 진지하게 노래하는 연기자들의 모습이 음악과 부조화를 이루었다. 

 

 

일본 제작사의 영국 진출 프로젝트
뛰어난 기량의 영국 배우진을 기용한 이번 웨스트엔드의 <판타스틱스>는 뉴욕에 본부를 둔 일본제작사, 고저스 엔터테인먼트의 야심 찬 영국 진출 프로젝트였다. 고저스 엔터테인먼트는 2004년 일본의 개화기를 다룬 손드하임의 뮤지컬, <퍼시픽 오버추> (Pacific Overtures)를 일본 연출가 아몬 미야모토와 일본 무대디자이너 루미 마츠이를 기용하여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으로 제작하여 호평을 얻었다.  루미 마츠이의 무대는 토니상 후보에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힘입어, 고저스 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서, 쿠미코 요시는 같은 창작팀을 활용해, 최장수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 <판타스틱스>를  웨스트 엔드 프로덕션으로 시도했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 양쪽에서 모두 활동하는 영국 프로듀서, 존 고어와 토마스 맥그레스와 손을 잡고, 웨스트엔드의 주요 극장주인 나이맥스 극장과 공동제작을 했다.


그러나, 웨스트엔드의 벽은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월드컵 축구 시즌이 시작되면서 관객이 줄어든 웨스트엔드의 상황도 시기적으로 좋지 않았고, 외국인 제작사나 미국산 뮤지컬에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지 못한 영국의 언론도 한 몫 했다. 물론, 손드하임으로 대표되는 미국 뮤지컬을 시리즈로 제작하여, <일요일 공원에서 조지와 함게>, <소야곡>, <새장 속의 광대 >, <스위트 채러티> 등을 웨스트엔드에 진출시키며, 영국 평단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런던의 메니에 초콜릿 팩토리 극장의 성공담을 생각한다면, 영국의 평론가들이 옛날 미국 뮤지컬에 호의적이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잘 만들어진 프로덕션일 경우, 매우 미국적인 화려한 뮤지컬 코미디를 영국인들은 사랑한다. 쓸데없는 지적인 면모를 내세우지 않고, 솔직하게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미국 뮤지컬은 웨스트엔드에서 큰 인기를 얻을 수 있다. 현재 인기리에 상영중인 <리걸리 블론드>나 <스위트 채러티>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어설픈 연극적 미학을 내세우는 미국 뮤지컬에 대해서 영국의 평론가들은 가차없는 혹평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웨스트엔드 <판타스틱스>의 실패는 영국 연극계의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진지하게 연극적인 방식으로 원작을 해석한 일본 연출가의 접근 방식이 주요 원인이라 할 수 있겠다. 가벼운 오프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코미디로서 <판타스틱스>는 유럽 즉흥 연기의 원류인 코메디아 델 아르떼의 광대극을 비롯해 여러가지의 연극정인 장치를 유머의 요소로 활용했다. 젊은 시절, 작가 톰 존스의 참신한 장난기가 여러모로 발동한 재기 넘치는 작품이다. 거기에 작곡가 하비 슈미츠의 단순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발라드풍의 뮤지컬 넘버들은 분명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원작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 이번 프로덕션은 시대착오적일 만큼 지나치게 진부한 연극적 장치들을 강조하고 너무나 진지하게 사랑과 연극을 이야기하는 무대로, 영국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사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4개월을 예정했던 공연은 공식 개막 불과 이틀 만에 공연중단 발표가 났고 6월 26일 개막 18일 만에 문을 닫게 되는 비운을 맞았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2호 2010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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