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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박은태, 아직 펼치지 않은 페이지 [No.115]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3-04-16 8,095

성실과 노력, 배우 박은태에게 따라붙는 꼬리표다. 그는 약속 시간보다 10여 분 먼저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작품의 이미지를 살려 촬영 컨셉을 잡았다. 연습 중이라 그는 무리없이 예수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마지막 컷은 지금껏 보여주지 않은 박은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미지가 의도대로 나오지 않았다. 막연한 컨셉 탓인지 겉도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는 셔터 소리가 날 때마다 짓궂게, 또는 코믹하게 표정을 바꾸며 끝까지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성실과 노력인지 알 것 같았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옳든 그르든 최선을 다하는 배우는 얼마나 고마운가. 잠시 동안의 촬영이었는데도 그와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결국 박은태의 기존 이미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지만, 단순한 이해를 넘어 박은태라는 배우를 깊고 진하게 알게 된 것 같다.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한층 깊어진 그를 만났다.

 

 

     

스타일리스트 | 김하늘 헤어,메이크업 | 차윤경

 

 

박은태의 겟세마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하 <지저스>)의 예수 역은 뮤지컬 배우라면 한번 꿈꿔 볼 만한 역할이면서도 함부로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 역할이다. 초연 예수 역은 딥 퍼플의 이안 길런이 맡았다. 힘든 록 발성 때문에 지금껏 이 역할엔 록커가 종종 출연해왔다. 신중한 성격이지만 박은태는 예수 역 제안을 받았을 때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그만큼 동경하고 선망한 역할이었다. 그에게 뮤지컬을 인식하게 해준 것도 <지저스>였다. “처음 ‘겟세마네’ 노래를 듣고 뮤지컬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어요. 뮤지컬은 오페라스러운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아닌 거예요. 대신 더 겁을 먹고 ‘뮤지컬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20대 초반 <지저스>와의 만남은 박은태에게 꽤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자신이 뮤지컬 배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때 만난 <지저스>는 충격 자체였다.


선뜻 수락했지만 <지저스>의 예수는 결코 녹록지 않은 역할이다. 작품 자체도 어렵지만 신앙인으로서 예수를 연기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방향은 정했다. 신앙적으로 풀기보다는 웨버와 팀 라이스의 원작대로 인간적인 예수의 모습을 부각시키기로 했다. “예수님은 특별하게 태어났지만 인간의 몸으로 너무나 고통스런 일을 당하잖아요.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강하게 느꼈다고 봐요. 자신에게 일어날 모든 고통과 죽음을 이미 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겠어요. 그러한 고통을 겪었기에 신으로 환생할 수 있었던 거겠죠. 이 작품에서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성경에 더 가까워져요. 그건 종교적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죠. 비종교인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다고 봐요.”

<햄릿>을 연기했을 때 5kg을 뺐다. 역할 이미지 때문에 작정하고 다이어트를 했던 것이다. 정신성이 강조된 <지저스>의 예수 역시 깡마른 몸매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예상 외로 별다른 다이어트를 하고 있진 않았다. 그저 기름진 음식을 안 먹는 정도의 식단 조절이랄까. 그랬는데도 그 사이 살이 좀 쪄 있던 상태라 3kg이 빠졌다고 한다. 외적인 것에 조바심 내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여유롭게 느껴졌다. 그가 정작 신경 쓰는 것은 음악이다.


그가 예수 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기대되는 것은 박은태의 ‘겟세마네’였다. 1996년 음반에서 예수의 노래를 부른 스티브 발사모는 깨끗한 고음으로 그 힘들다는 ‘겟세마네’를 아주 편하게 불러 놀라게 했고, 영화 버전에 출연한 테드 닐리는 음정이나 박자에 구애받지 않고 드라마틱하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관객들의 마음을 장악했다. 박은태는 워낙 시원한 고음과 가창력이 뛰어난 배우라, 그가 부르는 ‘겟세마네’는 어떤 느낌을 줄지 기대가 된다. “기대하지 마세요. 너무 부담되는 게 사실이에요. 저는 저 나름의 ‘겟세마네’가 나오겠죠. 처음엔 저만의 ‘겟세마네’를 만들겠다고 욕심을 냈어요.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다들 훌륭하게 풀어내서 나만의 버전을 욕심내다간 작품이 망가질 것 같더라고요. 노래는 악보에 표현된 대로 할 생각이에요. 노래가 남는 게 아니라 작품이 남도록 하고 싶어요. 작품을 보고 예수님의 죽음에서 뭉클한 감동을 받게 하는 게 목표에요. 그러려면 인물을 이해시켜야 하겠죠.”

 

 

                             

 


더 멀리 가기 위한 성장통

기대 말라고 했지만 이 말을 들으니 더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박은태를 공연계에 알린 것은 <노트르담 드 파리>이다. 미성의 신인 배우의 등장에 관객들은 환호했고,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그때 인터뷰들을 찾아 읽어보면 노래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랭구아르가 해설자의 역할을 겸했고, 그가 부르는 ‘대성당들의 시대’가 워낙 작품을 대표하는 노래이기 때문이겠지만 박은태는 주로 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의 그라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노래 잘하는’이란 수식어 이외에 하나씩 다른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그때는 뭐가 중요한 것인지, 뭘 보여주어야 하는지 몰랐던 거 같아요. <라이온 킹>의 앙상블 경력밖에 없었으니까요. 노래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죠. 감동은 연기에서 오는 것 같아요. 그 인물이 돼야만 감동이 오는 거죠.” 그렇지만 정확한 음정, 박자, 피치를 지키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배우 훈련을 멈출 수가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배우라는 명칭은 부담스럽다. 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연기에만 쏟지만, 자신은 노래 레슨을 더 많이 받고, 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연기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노래는 놓아버리면 근육이 풀어지니까요. 그래서 갈수록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2011년 첫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는 몽환적인 꿈을 꾸는 몰리나라는 게이 역을 맡았다. 작품에 참여했던 시간 동안은 온전히 연기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전쟁터에 총을 안 가져간 느낌이었어요. 무대에서 발가벗겨진 기분! 제가 가장 잘하는 것을 못하고 보여줄 게 없는 상태로 무대에 남겨진 거잖아요.” 그의 말만 들으면 끔찍한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 그는 <거미여인의 키스> 참여를 매우 소중한 경험으로 받아들였다. 힘든 만큼 성장했고, 그래서 성취감도 컸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뮤지컬을 잘하기 위해 연극을 정기적으로 해야겠어요.”


성실과 노력의 대명사인 박은태에게 매너리즘이 가당키나 할까? 그런데 이쯤이면 그도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도 하지 않았고 뒤늦게 뛰어든 뮤지컬계였기 때문에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그 노력이 관성에 따른 것이라면, 무엇을 위해서가 아닌, 단지 불안해서 습관적으로 레슨을 받는 것은 아닐까. 달리고 있지만 같은 자리를 뛰고 있다는 느낌, 박은태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왔었죠. 했던 작품을 앙코르 할 때였는데 내가 발전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무대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있나?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내가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좋아할지 신경 쓰고 있더라고요. 남의 눈으로 내가 결정되면 내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무대에서 실력이 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한데, 엉뚱한 것을 잡고 있었던 셈이죠.” 내려놓고 공연을 할 때 굉장히 자유로워지고, 그것이 그가 바라는 무대에서의 자신의 모습이란 걸 최근에 더 명확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단시간에 주연배우로 올라선 그이기에 이런 진통은 오히려 소중한 과정이다.

 

 

                              

 

그의 남은 페이지들                                 

박은태는 2006년 극단 시키의 <라이온 킹>에서 앙상블로 데뷔해 2007년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랭구아르가 계기가 되어 빠르게 성장한 배우이다. 햄릿이나 김생(<피맛골 연가>), 루돌프, 모차르트. 지금까지 그가 맡은 캐릭터가 모차르트는 다소 예외이긴 하지만 고뇌한다는 측면에서는 모두 진지하고 고민이 많은 인물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에 숨은 다른 모습들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동안의 역할들 중 질적으로 달랐던 루케니(<엘리자벳>)나 연극이긴 하지만 몰리나 정도가 예외적인 캐릭터였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닭살스러운 로맨틱물이나, 슬랩스틱 코미디에서도 그를 볼 수 있을까? “도전해야죠. 그게 제게 남은 몫인 거 같아요. 작품을 통해 튜닝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당장 다른 장르에 뛰어들진 않겠지만 그렇게 도전할 게 남아있다는 게 좋아요.”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피하지도 않는다. 서서히 다가서서 뜨겁게 만날 것을 기다린다.


대학 교지나, 소수 관객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도 종종 그를 만날 수 있다. 명성에 치우치지 않는 그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학생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제가 그 나이 때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남 일 같지 않아서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고 싶어요. 그래서 특강 같은 것을 많이 해요.”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냐고 하자, ‘지금 하는 고민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말을 해주고 싶단다.


모든 젊은 시절이 방황과 고민의 나날이듯 박은태의 젊은 날도 그랬다. 대학생 박은태는 성실하면서 신중한 학생이었고, 그래서 열성적으로 하는 일이 자신에게 맞는 일이 아니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다. 노래가 좋았지만, 학교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은 이유다. 군대를 제대하고는 남들처럼 공부에 매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길은 자신이 갈 길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가수의 길에 뛰어들었다. 노래를 하고 싶지만 그동안 불안해서 잡고 있던 끈을 놓아버린 것이다. 돌아갈 곳이 없으니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연습생으로 들어가 있는 2년 동안 끊임없이 좌절하며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겪었다. 그 시간이 지금의 박은태를 있게 하는 데 좋은 약이 됐을 것이다. “약도 됐고 독을 키웠죠. 실력은 안 되고 기대엔 못 미치고,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잖아요. 시행착오를 하며 독을 키우는 거죠.”


이런 경험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 학생들에게 한마디라도 더 해주고 싶다. 그래서인지 요즘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시선도 남다르다. “가수들은 몇 년 준비해서 앨범 발표하고 그 이미지로 몇 년을 활동하잖아요. 근데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은 일주일마다 다른 이미지를 요구해요. 한번에 모든 것을 요구하니까 금방 식상해져요.” 정말 그렇다. 일주일마다 다른 모습을 요구하는 것도 그렇지만,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는데 계속 다른 재능을 요구하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재능에 대한 생각을 묻자 무대에 서는 배우에게 재능은 매우 중요하다고 운을 뗀다. “그러나 재능이 없다고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부족한 재능은 연습을 하면 늘어요.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시간을 얼마나 투자했느냐에 따라 늘게 되는 거죠. 재능이 없는 것보다 정체되는 게 더 큰 문제예요.”


박은태는 작품을 통해 성장해왔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그렇지 않으면 않은 대로 그것을 발전의 발판으로 만들 줄 안다. 그만큼 자신을 성찰하는 힘이 강하다. 한결 여유로워지고 놓을 줄도 알게 됐지만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더 많은 배우이다. 1막을 거쳐 2막에 접어드는 그에게 아직 얼마나 더 많은 막들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이룬 성과와는 비교되지 않는 미래의 페이지들이 더 기대되고 궁금하다. 그 페이지를 채워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분명 행복하리라. 그것을 채워갈 그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5호 2013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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