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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뉴욕의 여름을 상징하는 공연 축제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

글 |이곤(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a 2009-10-12 6,158

여름을 맞이하는 뉴요커나 뉴욕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퍼블릭 극단(The Public Theater)의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 공연은 빼놓을 수 없는 행사가 된 지 오래이다. 올해로 56년째를 맞는 이 페스티벌은 미국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조셉 팹(Joeseph Papp)이 일반 시민들에게 셰익스피어 연극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었다.

 

 

1954년부터 셰익스피어 워크숍 시리즈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들이 무료로 공연되기 시작하였고 1957년에는 센트럴 파크 거북이 연못(Turtle Pond) 앞 잔디밭(Grand Lawn)의 사용권을 얻게 되어 본격적으로 센트럴 파크 안에서 연극이 공연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1959년 센트럴 파크 측은 손상된 잔디에 대한 보상을 극단 측에 요구했고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그 부근에 야외 공연장을 짓는 걸로 합의가 되었다. 무료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 대한 조셉 팹의 의지와 노력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후원을 이끌어 내었고 결국 1961년 원형 야외극장인 델라코타 시어터(Delarcorte Theater)가 완공되었다. 1962년 첫 공연으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 올라간 이래 이 극장은 뉴욕 시에서 소유하고 조셉 팹 퍼블릭 극단에서 운영하는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뉴욕 셰익스피어 페스티벌로 시작한 조셉 팹의 퍼블릭 극단은 뉴욕의 오프 브로드웨이를 대표하는 극단으로 성장하였고 그간 올려진 작품들을 통해 149개의 오비 상과 42개의 토니 상, 그리고 4개의 퓰리쳐 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비상업극단이지만 브로드웨이에서 성공을 거둔 다수의 레퍼토리 역시 확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뮤지컬 <코러스 라인>, <헤어>, 그리고 <패싱 스트레인지> 등을 들 수 있겠다.

 

 

기다림을 또 하나의 문화로!
조셉 팹의 설립 취지에 따라 후원자를 위한 일부 좌석을 제외한 모든 좌석은 무료로 시민들에게 배부된다. 오후 1시에 배부되는 티켓을 얻기 위해 시민들은 아침부터 극장 앞으로 와 줄을 서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기다림은 오직 티켓을 받기 위한 기다림을 넘어선 듯이 보였다. 페스티벌이 지니는 오랜 역사와 함께 시민들도 그들의 기다림을 이미 또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 만끽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바닥에 깔 담요와 먹을 것, 그리고 읽을거리를 가져와 센트럴 파크의 자연 속에서 여유를 만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히려 공연보다 티켓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이 시간이 그들의 삶에 훨씬 더 유익한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도시의 삶 속에서 숲 속에 누워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주위의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분명히 이 페스티벌이 주는 커다란 이점 중의 하나다.
공연의 유명세에 따라 티켓을 받기 위해 줄을 서야 되는 시간이 앞당겨지기도 한다. 대개 유명한 배우가 나오면 티켓을 받기가 어려워지고 그만큼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올해 첫 공연작이었던 셰익스피어의 <십이야(Twelfth Night)>는 할리우드 스타 앤 헤서웨이가 출연한 데다 공연에 대한 좋은 리뷰도 더해져 입장권을 얻기가 갈수록 힘들어졌다. 그래서 시민들은 공원이 문을 여는 오전 6시 보다 훨씬 전부터 공원 바깥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티켓을 구하기 위한 경쟁이 가장 심했던 작품 중 하나로 2001년에 공연되었던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들 수 있겠다. 메릴 스트립, 케빈 클라인, 나탈리 포트만이 출연했던 이 공연을 보기 위해 관객들은 전날 밤부터 텐트를 치고 밤을 새워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2009 페스티벌 두 번째 공연 <바카이>
페스티벌의 이름만을 보자면 셰익스피어 작품들만 공연되어진다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셰익스피어 작품 이외에도 체홉, 샘 쉐퍼드, 베케트, 브레히트 등의 작품들이 무대에 올려진다. 대개 두 작품이 프리뷰 기간을 포함해 3주 정도 공연되는데 작년에는 <햄릿>과 올해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뮤지컬 <헤어>가 공연되었고 올해에는 앞서 언급했던 <십이야>와 에우리피데스의 그리스 비극 <바카이 Bacchae>가 공연되었다.
8월 11일 프리뷰를 시작한 <바카이>는 세계적인 작곡가 필립 글래스가 음악을 맡았다는 사실로 이미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연출자인 조앤 애컬래이터 (JoAnne Akalaitis)는 필립 글래스의 첫 번째 부인이자 작업동료이기도 하다. 그들은 1965년에 결혼해 사이에 두 딸을 두었고 1970년 리 브루어 (Lee Breuer)와 함께 극단 마부 마인즈(Mabou Mines)를 만들어 베케트의 <더 로스트 원스(The Lost Ones)>나 <엔드 게임(Endgame)> 등의 화제작을 공연했다.


그리스 비극 <바카이>는 흔히 3대 그리스 비극작가로 불리는 에우리피데스의 마지막 작품으로서 그의 사후에 공연되어 디오니소스 비극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차지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 말년의 작품인 <태풍>이나 <겨울이야기>처럼 <바카이> 역시 단순하게 해석할 수 없는, 그의 인생관이 응축된 작품으로 평가를 받아왔다.
그리스 비극 공연은 새벽 동이 트기 바로 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은 새벽 여명과 함께 시작해서 아침 해가 떠오르면 파수꾼이 트로이 전쟁의 승리를 알리는 횃불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리스 비극과는 반대로 센트럴 파크의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공연은 해가 지기 직전에 시작한다. 공연을 시작하는 8시경에는 아직 해가 어스름하게 남아있는 시간이다. 공연의 진행과 함께 서서히 극장에 어둠이 깔리고 관객은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기 시작한다.


무대에는 계단 모양의 철제로 이루어진 간단하지만 시각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는 세트가 놓여있는데 극장의 오른쪽에 있는 벨베데레 성과 거북이 연못이 있는 그대로 공연의 배경이 되어준다. 관객은 공연장 너머로 보이는 배경을 보면서 야외극장이 지니는 운치를 만끽하게 된다.


<바카이>의 내용은 간단하다. 디오니소스 신을 거부하는 젊은 왕(펜테우스)을 징계하기 위하여 그의 어머니(아가베)로 하여금 환각상태에서 자식을 죽이도록 하는 이야기이다. 신을 거부하는 인간의 오만에 대한 징계를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그들의 한계를 느끼게 하고 겸양의 미덕을 가르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단지 그리스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다분히 통용되는 이야기이다.

 


그리스 비극은 배우가 연기하는 부분인 ‘에페이소디온’과 합창대(코러스)가 노래하는 부분인 ‘콤모스’가 번갈아 가며 구성된다. 필립 글래스가 작곡한 음악은 주로 코러스에 의해 불려지며 극의 진행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대중성보다는 그의 고유한 음악성이 훨씬 더 강조되었다. 코러스들은 높은 음역을 가성으로 소화해야 했고 노래는 멜로디보다는 화성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친숙하게 음악을 받아들이게 하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음악을 감상하도록 만들었고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스 연극에서는 코러스의 운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들은 노래와 움직임을 통해 관객에게 극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시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리뷰 첫날의 코러스는 아직 노래와 움직임에 채 익숙해지기 전인 탓인지 앙상블이 빚어내는 리듬과 에너지를 느끼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였다.


미국에서 다인종 캐스팅은 이제 보편적인 현상이 된 것 같다. 연출은 한 가족을 캐스팅하는 데 있어서도 피부 색깔을 그리 염두에 두지 않는 듯 보였다. 왕인 펜테우스를 위해 흑인 배우(Anthony Mackie)를 기용했고 그의 어머니 아가베는 5개의 오비상을 수상한 관록있는 백인 여배우(Joan Macintosh)가 맡았다. 그리고 디오니소스 역할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토미상 후보에 올랐던 매력적인 젊은 백인 배우 조나단 그로프(Jonathan Groff)가 맡았는데 극 중에서 디오니소스와 펜테우스는 이종 사촌으로 나온다. 또한 디오니소스 신을 따라 아시아에서 건너온 여인들로 설정된 코러스들 역시 백인, 흑인, 아시아인 등이 혼합된 다인종 캐스트로 구성되었다.


희곡 <바카이>를 읽어본 관객이라면 무엇보다도 두 개의 커다란 시각적 효과를 어떻게 무대에 표현할 것인지가 기대될 것이다. 첫 번째는 왕에게 디오니소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지진을 일으키고 궁궐을 불타게 하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왕비 아가베가 아들인 펜테우스의 잘린 머리를 들고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 공연에서 지진 장면은 무대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홈에 연기를 내뿜는 관을 설치하고 지진과 천둥의 음향과 함께 조명, 특수효과, 그리고 실제 불을 일으킴으로써 실감나게 재현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효과는 왕비가 사자모양 같기도 하고 사람 얼굴 같기도 한 마스크를 들고 나오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무난한 설정이었지만 보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기대했던 터라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나가며
퍼블릭 극단의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는 무료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작품성과 유명 배우들의 출연으로 시민들에게 연극 보기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공연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이런 공연제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페스티벌이 이처럼 성장하게 된 데에는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의 후원과 함께 연극을 통해 헐리우드의 스타로 자리잡은 배우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헐리우드의 영화를 통해 이미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메릴 스트립, 케빈 클라인 등은 젊었을 적에 이 페스티벌을 통해 스타로 성장하였고 성공한 뒤에도 다시 공연에 참여함으로써 이 페스티벌의 성장에 큰 기여를 하였다. 단순히 이색적인 볼거리로 끝나지 않고 뉴욕의 여름을 보내는 하나의 의미 있는 문화로 자리 잡은 이런 페스티벌이 한국에서도 실현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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