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시키는 1953년 창립된 일본 최대의 공연 단체이다. 일본 뮤지컬 시장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일본 내에서의 위상이 높다. 시키는 연극, 오리지널 뮤지컬(창작뮤지컬), 가족 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들을 올리고 있는데, 주력 장르는 라이선스 뮤지컬이다. 1964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히트시키면서 라이선스 뮤지컬을 제작한 시키는 이후 <오페라의 유령>, <캣츠>, <라이온 킹> 등을 롱런시키며 일본 전역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시키의 뮤지컬은 시키만의 맛이 있다. 드라마에 중심을 둔 연출이나 분명한 가사 전달, 단어를 찍어 누르는 듯 묵직하게 발성하는 시키의 창법은 브로드웨이의 작품을 그대로 공연한다 하더라도 시키만의 색깔을 느끼게 한다.
시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4월 13일~5월 7일, 자유극장)가 일본 공연 이후 8월 한국 공연을 계획하였으나, 지난 일본의 대지진의 여파로 무산되었다. 시키에는 두 가지 버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하 <지저스>)가 있다. 하나는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예루살렘 버전이고, 다른 하나는 배우들이 얼굴에 흰 칠을 하고 일본 전통 악기를 사용해서 일본적인 색채를 담아낸 가부키 버전이다. 이번 내한을 준비했던 버전은 예루살렘 버전으로 지난 1994년 한국을 방문해 뛰어난 무대 연출과 앙상블, 배우들의 가창력 등으로 국내 공연계에 충격을 주었던 작품이다. 이번 일본에서의 공연은 단기 공연이어서인지 시키 공연 팬들이 연일 객석을 가득 메웠다. 시키의 <지저스>는 여느 라이선스 뮤지컬에 비해 시키만의 독자성이 강하다. <오페라의 유령>이나 <캣츠>, <맘마미아>, <미녀와 야수> 등이 원작의 무대나 연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과는 달리 <지저스>는 1970년대 제작된 까닭인지 무대나 음향, 연출도 브로드웨이와는 다르게 독창적으로 표현한 요소들이 많았다.
시키의 <지저스>는 예루살렘의 가파른 모래 언덕을 원 세트로 한 무대가 시선을 압도한다. 성스루인 <지저스> 공연은 적지 않은 장면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배우들의 지능적인 등퇴장을 통해 극의 흐름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했다. 포커스가 예수와 제자들에서 제사장들로 이동할 때는, 예수 무리가 언덕을 넘어 퇴장하면 제사장들이 무대 옆면이나 무대 전면의 지하 출입구를 통해 등장하는 식으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성경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모래 언덕 하나만으로도 이처럼 다채로운 장면 전환을 연출해낼 뿐만 아니라 브리지 장면을 적절히 두어 극의 정서를 유지하면서 암전을 최소화한 장면 전환을 연출해냈다. 가장 이질적인 무대인 헤롯왕의 왕궁 장면도 잠깐의 암전 사이 카펫을 펴고 커튼을 내리는 식으로 약간의 소품만 이용해 간단히 장소를 전환했다.
예수의 7일간 행적을 그린 <지저스>는 성경의 내용을 모티프로 예수와 유다의 대립을 통해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킨 작품이다. 1971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극장 앞에 기독교인들이 몰려들 정도로 작품은 신의 아들 예수가 아닌, 고뇌하는 인간 예수를 만들어냈다. 유다가 자살 이후 재등장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비아냥거리는 장면은 종교인들을 경악하게 했다. 시키의 <지저스>는 원작의 도발적인 해석을 완화하고 안정적인 연출로 성서의 느낌을 살리고 있다. 예수가 서른아홉 대의 채찍을 맞는 장면에서는 건장한 두 군인들이 예수를 매달고 사막 전체를 누비며 채찍질을 하는 역동적인 장면으로 연출했다. 매질 당하는 예수의 주변 신자들이 지르는 비명은 예수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지만 정작 예수는 고통을 내면으로 삭이는 신성한 모습을 보여준다. 채찍질 장면과 함께 예수의 고난을 강조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에서는 못을 박는 강렬한 쇠의 타격음과, 손바닥과 발목에 흐르는 피를 사실적으로 연출해 감각적으로 고통이 느껴지도록 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저들을 용서하라’는 긴 독백을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예수의 몸으로 쏟아지는 조명을 통해 환생의 효과를 내기도 했다.
시키의 <지저스>는 성서의 이야기를 인상적인 미장센으로 무대에 옮겨놓았다. 제자들이 비탈진 사막에 둥글게 앉아 식사를 하고 있고, 예수와 유다만이 그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갈등 구조를 이루는 ‘최후의 만찬’ 장면도 놀라운 미장센을 보여주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두 개 꼽으라면 ‘타락한 예루살렘(Poor Jerusalem)’과 시장 장면인 ‘성전(The Temple)’을 들 수 있다. ‘타락한 예루살렘’ 장면에서는 배고프고 병든 예루살렘인들이 하나둘 예수의 손길에 닿기 위해 꾸역꾸역 몰려든다. 느리게 시작한 음악이 조금씩 빨라지면서 예루살렘인들의 예수에 대한 갈구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심해진다.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를 향해 손을 뻗치고 예수는 그 많은 고통을 일일이 헤아리려 하지만 거머리떼처럼 달려드는 예루살렘인들의 모든 손길을 감당하지 못한다. 예수의 구원을 바라며 몰려들다가 비탈에 굴러 떨어지고 다시 몰려드는 민중들의 집요한 집착은 특별한 예수의 능력이 축복이 아닌 고뇌였음을 알게 한다. 비탈길에 길게 줄선 장사치들과 약탈자들이 물건을 흥정하고 훔치고 싸우고 빼앗는 성전 장면은 앙상블들의 역동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게 연출된다. 위태로운 경사와 자유분방한 움직임, 거친 록이 결합되어 예루살렘의 타락상을 잘 드러내주었다.
눈에 띄는 암전이 없진 않았지만 7일간의 행적을 날이 밝고 해가 지는 등의 자연스러운 조명의 변화로 잦은 암전 없이 극을 이끌어간 연출과 조명은 70년대 제작된 작품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음향은 라이브 연주 대신 초연 공연 때 녹음한 음원을 잘 복원해서 사용했다고 하는데 지금의 기술로도 복원하기 힘든 수준이라 그것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한다. 당시 일본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최고의 전성기 시절에 힘을 합쳐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 실감이 날 정도로 음향, 조명, 연출의 앙상블이 뛰어났다.
예수 역을 맡은 시바 키오미치는 신성한 이미지를 유지하려 애쓰며 예수의 고난과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잘 드러냈다. 예수의 노래가 쉽진 않지만 힘없는 가성으로 일관한 것은 아쉽다. 유다 역은
<라이온 킹> 한국 공연에도 참여했던 김승락이 맡았다. 검은 피부에 꺾임이 강렬한 독특한 창법으로 게릴라 같은 거칠고 불안한 유다를 표현해냈다. 마리아는 한국 배우 최은실이 맡았다. 여린 모습과는 다르게 묵직하게 깔리는 소리로 기존 마리아의 이미지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무엇보다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은 앙상블이었다. 비탈진 무대를 뛰고 뒹굴고 춤추면서 긴장과 이완을 절묘하게 이루어냈다. 500석 규모의 극장이었으나 무대 규모는 작지 않았고 그곳에 40여 명의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작품 전체를 지배했다. 연습량이 느껴지는 앙상블 무대는 주조연들의 호연 못지않은 뿌듯한 감동을 주었다.
시키의 <지저스>는 해외 라이선스 작품이라도 연출과 무대를 가미해 그들만의 색깔을 간직한 공연으로 만들 수 있다는 모범적인 사례였다. <지저스> 예루살렘 공연은 5월 7일 공연을 마치고 그 이후 5월 14일부터 29일까지 가부키 버전이 공연된 후 7월 5일부터 17일에는 예루살렘 앙코르 공연을 이어간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3호 2011년 6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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