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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시큼쌉싸름한 영국식 유머에 빠진 뮤지컬 <슈렉> Shrek The Musical [No.94]

글 |정명주(런던 통신원) 2011-08-02 5,817

지난 6월 14일, 뮤지컬 <슈렉>이 새로운 모습으로 런던 드루리레인 극장에서 개막했다. 2010년 초, 영화 <슈렉> 오리지널 버전과 윌리엄 스테이그의 원작 동화를 바탕으로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했던 오리지널 미국 프로덕션은 엇갈린 평을 받으며 1년여 만에 444회째 공연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곧이어 무대장치를 대폭 축소하고, 음악을 일부 수정하여 2010년 7월부터 미국 60개 도시의 투어를 다닌 바 있다. 이번 런던 프로덕션은 미국 투어 공연에 가까운 버전으로, 단순해진 무대장치와 또 한번 수정한 대본 및 음악을 선보인다.


이번 런던 드루리레인 극장의 무대에서는 브로드웨이에서 보았던 세 개의 회전무대가 돌아가는 장중하고 화려한 입체형 무대장치는 볼 수 없다. 대신, 동화책처럼 알록달록한 그림이 그려진 백드럽과 무대판, 그리고 대도구만을 가지고 공연하는 한층 가볍고 경제적인 프로덕션을 선보인다. 의상도 단순화된 장면들이 있다. 피오나 공주가 피리 부는 사나이와 쥐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그녀와 함께 화려한 탭댄스를 선보이는 장면의 쥐 코러스들은 브로드웨이에서 보여주었던 화려한 은색 반짝이 양복을 벗고 대신 깔끔한 검은 연미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간소화된 장치와 의상은 더욱 빠른 무대전환을 통해 극의 전개에 속도감을 전하는 장점도 있지만, 한편으로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 같은 디테일이 부족한 무대장치는 다소의 아쉬움을 남긴다.

 

 

원작과도 브로드웨이판과도 다르다
데이빗 린지-에이베어(대본·작사)와 지나인 테소리(작곡)가 만든 뮤지컬 넘버들의 수정도 있었고, 영화음악 중 한 곡을 가져와 새롭게 추가한 장면도 있다. 막이 오르면 거대한 동화책이 열리면서, 어린 시절의 슈렉이 부모님에게 매몰차게 버림받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집을 나와 늪지대, ‘스왐프’에 정착해 조용히 홀로 살아가던 슈렉에게 어느 날 갑자기 한 떼의 동화 나라 인물들이 들이닥친다. 둘락에서 쫓겨 온 이 동화 속 인물들로부터 고요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슈렉은 둘락의 통치자 파콰드 영주와 담판을 지으러 떠나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새로운 뮤지컬 넘버 ‘웰컴 투 둘락’이 소개된다. 마이크 히멜스타인이 음악을 쓰고, 에릭 다넬이 가사를 쓴 이 넘버는 원래 2001년에 만든 곡으로, 영화에서 시계탑의 인형들이 부르던 노래를 코러스로 활용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뮤지컬 넘버인 파콰드 영주의 노래, ‘왓썹, 둘락?’ What`s Up, Duloc? 과 피오나 공주의 ‘난 알아, 오늘이야’ I Know, It`s Today 는 스토리 전개상의 깔끔함을 위해, 미국 투어부터 순서를 바꾸어 세 명의 각기 다른 나이의 피오나가 부르는 노래를 뒤로 빼고, 파콰드 영주의 노래를 먼저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슈렉이 친구가 된 당나귀 동키와 함께 피오나 공주를 구하기 위해 드래건과 싸우는 장면에서는, 동키와 드래건이 부르는 노래 ‘돈 렛 미 고’ Don`t Let Me Go가 ‘포에버’ Forever 라는 신곡으로 교체되었다. 이 곡은 드래건 역을 맡은 영국 흑인 배우 랜디 오시노워가 흑인 영가풍의 열창으로 멋지게 한순간을 장식한다. 또한 2막의 중반에 슈렉이 부르던 노래 ‘벽을 세우자’ Build a Wall는 전체 작품의 길이 조정을 위해 삭제되었다. 이외에도 동화 나라 인물들 중 구두장이 요정과 그놈 Gnome 등이 없어지면서, 구두장이 요정과 피노키오가 친구가 되는 서브플롯도 함께 정리 삭제되었다.

 

 

 

재능과 관록이 있는 배우들의 맹활약
이렇게 정리된 영국 프로덕션은 원래 유럽을 배경으로 했던 원작 동화의 감칠맛을 더 잘 살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원작 영화에서부터 스코틀랜드 액센트를 가진 무뚝뚝한 성격이 설정이었던 슈렉은 이제 영국 배우 나이젤 린지 Nigel Lindsay 를 만나 제대로 퉁명스럽고 고집 센 스코틀랜드인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수많은 연극 무대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아 온 나이젤 린지는 그동안 <리어왕>, <필로우맨>, <템페스트> 등을 통해 무대 장악력을 자랑해 온 중견 배우이다. 파콰드 영주 역에는, TV와 무대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인기 배우 나이젤 하먼 Nigel Harman 이 공연 내내 무릎을 꿇은 채 가짜 미니 다리를 대롱대롱 달고, 키 작은 악한을 연기한다.  기발한 안무로 많은 웃음을 주는 악한을 연기하면서, 행복한 에너지를 한껏 쏟아내는 그의 연기 덕분에, 파콰드 영주는 악한이라기보다는 사랑스러운 개구쟁이로 탄생하며 공연 내내 박수를 제일 많이 받는 역할이 되었다. 특히 이번 런던 공연의 두 남자 배우는 공동 연출을 맡은 영국 연출가 롭 애쉬포드의 지휘 아래, 웨스트엔드의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네이선과 스카이 역으로 호흡을 맞춰왔던 연기파 배우들이기에 둘 사이의 앙상블이 남다르다.

 

 

 

피오나 공주 역에는 텔레비전 연예 콘테스트 ‘브리튼즈 갓 텔런트’의 심사위원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확보한 아만다 홀든(Amanda Holden)이 출연하여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39세의 아만다 홀든이 열연하는 피오나는 에너지 면에서 브로드웨이에서 엄청난 파워를 발산했던 서튼 포스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공주 같은 미모에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으로 털털한 성격을 보여주는 솔직한 연기로 많은 박수를 이끌어 낸다. 최근 TV 출연으로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는 아만다 홀든은 뮤지컬 <속속들이 현대적인 밀리> Thoroughly Modern Millie 의 2003년 웨스트엔드 프로덕션을 통해, 연출가 롭 애쉬포드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뮤지컬 전문 배우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영국 프로덕션은 처음부터 뮤지컬 <슈렉>의 기획을 시작했던 영국 측 프로듀서 샘 맨더스(닐 스트리트 대표 및 연출가) 사단으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서부터, <애비뉴 Q>를 연출했던 제이슨 무어와 함께 공동 연출로 활약해 온 연출가 롭 애쉬포드는 오래 전부터 샘 맨더스와 작업해 왔다. 그를 비롯해, <슈렉>으로 토니상을 받은 무대디자이너 팀 해틀리, 그리고 조명디자이너 휴 밴스톤 역시 샘 멘더스가 돈마르 웨어하우스 극장에 예술감독으로 있던 시절부터 함께 작업해 온 영국 팀들이다. 기획 당시부터 런던을 최종 목적지로 삼아 왔다는 뮤지컬 <슈렉>은, 이제 창작 팀에 이어 배우진까지 모두 샘 맨더스 사단의 드림 팀이 기용되어, 남다른 호흡을 자랑하며 질주할 것으로 기대된다.

 

 

 


<슈렉>은 미국에서 먼저 영화로 만들어지고 뮤지컬 공연까지 이어졌지만, 이 작품의 유머는 매우 ‘영국적’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미국인을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환영받아 온 환상과 감상주의가 슈렉과 피오나의 이야기에는 없다는 이야기다. 영국 사람들은 달콤한 할리우드 식의 사랑 이야기에 속지 않는 염세적인 현실주의자들이 대부분이다. 마법에 풀려서 오히려 못생겨지는 공주 피오나, 그리고 멋지게 변신 같은 것을 하는 일 없이 못생긴 괴물 슈렉 사이의 사랑 이야기는 기존의 동화와 다른 어쩌면 매우 현실적인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뮤지컬 <슈렉>은 제작 팀의 희망처럼 영국에서 더 좋은 반응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뮤지컬 <슈렉>은 원작 영화에서 없었던, 부모에게 버림받은 슈렉과 피오나, 그리고 파콰드 영주의 어린 시절을 만들어 넣음으로써, 더욱 어두운 그늘을 가진 인물들을 만들어 내었다. 또한 방귀를 뀌고 트림을 하는 피오나와 슈렉의 엽기적인 귀여움을 강조하면서 그나마 영화에 있던 로맨스를 더 많이 드러내었고, 대신 온갖 풍자와 말장난을 통해 장난기를 최대한으로 발동한 뮤지컬로 발전했다, 그런 의미에서 <미스터 빈>이나 <리틀 브리튼> 같은 바보들이 등장하는 슬랩스틱류의 유머가 사랑받는 영국에서, 뮤지컬 <슈렉>이 미국에서 더욱 더 큰 인기를 끌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주역보다 매력적이라 위험한 조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에서 <슈렉>의 미래가 반드시 밝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나이젤 린지의 슈렉은 퉁명스러운 진솔함에 초점이 맞추어져 영국다운 맛은 있으나, 원작 영화에서의 사랑스러움이 보이지 않는다. 즉, 피오나 공주가 슈렉을 좋아하는 이유가 별로 분명치 않다. 반면, 파콰드 영주는 악한이면서도 오히려 슈렉보다 훨씬 더 사랑스러운 모습을 가졌다. 앙증맞은 노란 타이즈를 신은 짧은 다리로 열심히 춤을 추며 열연하는 나이젤 하먼의 모습에 매료되어 가장 큰 박수를 던지는 관객들을 보면서, 악한이 주인공 슈렉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아도 괜찮은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그렇기에 아만다 홀든이 열연하는 톰보이 피오나는 매우 매력있는 공주이긴 하지만, 그녀와 슈렉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덜하다. <슈렉>이 패러디 동화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과 소녀가 만나 사랑을 이루는 기본적인 구도는 원작 영화에서도 그대로 지켜졌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주변 인물에 가려지고, 그들의 로맨스는 과장된 장난기와 유머에 가려져버린 뮤지컬 무대에서는 가슴으로 느끼는 만족감을 경험할 수 없다. 더구나, 리처드 블랙우드가 연기하는 동키는 나름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전혀 재미있지 않고, 그 많은 동화 속 인물들은 산만하게 등장과 퇴장을 반복할 뿐, 존재 이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무엇보다 <슈렉>은 지나인 테소리가 <캐롤라인, 체인지> Caroline, or Change 에서 증명했던 폭발적인 선율과 다양한 음색이 돋보이는 노래들을 다시 한번 선보이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억에 남는 명곡이 없는 작품이다. 극의 상황들이 엽기적인 장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보니, 가슴을 울리는 음악이 나올 극적 순간이 없다. 피오나가 부르는 노래들만 보아도 ‘난 알아, 오늘이야’ I Know, It`s Today, ‘아침형 인간’ Morning Person, ‘내가 이긴 것 같은데’  I Think I Got You Beat,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  This Is Our Story 등 모든 곡이 신나는 유머와 재치로 열창의 순간을 불러오지만, 진정한 감동을 주는 곡은 없다. 슈렉의 노래들도 마찬가지다. 동화 나라 인물들과 부르는 오프닝 넘버인 ‘빅 브라이트 뷰티풀 월드’ Big Bright Beautiful World, 늪지대를 떠나면서 부르는 ‘굿바이 송’, 동키와 함께 부르는 ‘트레블 송’, 피오나와 동키, 드래건이 함께 부르는 ‘이렇게 꿈이 이루어진다’ This Is How A Dream Comes True 등은 모두 장난기가 동한 신나는 곡들이다. 그나마, 슈렉의 솔로 곡인 ‘말로 할 수 없을 때’ When Words Fail 한 곡 정도만이 피오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려다 실패한 슈렉의 마음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 뮤지컬 <슈렉>은 재미있고 귀여운 패러디 동화 뮤지컬이지만, 원작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가슴 따뜻한 ‘못난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놓쳐버렸다. 대신 수많은 농담과 장난이 즐비한 즐거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이에 대해 달콤한 환상보다는 시니컬한 풍자와 장난기를 더 사랑하는 영국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4호 2011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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