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용어 없이는 제 생각과 느낌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할 것 같은 발랄하고 쾌활한 보통 여고생 채경, 그리고 까칠하고 냉소적인 황태자 이신이 어른들의 약속 때문에 하루아침에 어린 부부가 되면서 진정한 사랑을 알기까지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궁>이 두 번째로 황실의 문을 열었다. 메이지 유신 전까지 일본의 수도였던 아름다운 도시 교토, 문화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높기로 유명한 고도의 유서 깊은 가부키 극장에서 창작뮤지컬로는 첫 도전을 하게 된 <궁>의 두 주연배우가 출국부터 첫 공연까지의 일기를 보내왔다. 초연에 이어 다시 한번 황태자비로 ‘간택’된 곽선영은 채경처럼 밝고 씩씩하게 이국에서의 첫 공연에 대한 소회를 전했고, 이 작품으로 뮤지컬 데뷔를 하게 된 아이돌 그룹 SS501 출신의 김규종은 이신처럼 진지하게 첫 뮤지컬에 대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6月8日水
규종 일본으로 출국하는 날이다. 일본에서 뮤지컬 첫 도전을 시작하는 날이다. 거기 더해 내가 SS501로 데뷔한 지 6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정도면 정말 여러모로 나에게 의미가 아주 큰 날이라고 해도 되겠지. 일본 오사카를 지나 교토에 도착한 직후 음향 체크와 무대를 보기 위해 미나미좌로 출발을 했다. 뭐랄까 이런 떨림과 설렘… 말로 표현하기에는 지금 내 마음이 스스로도 조금 익숙하지가 않다. 늘 해오던 무대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무대라 그런가… 그런데 직접 본 미나미좌 공연장은 너무나도 멋지다! 무대 위에서 객석을 바라보면 정말로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행복감이 느껴진다. 앞으로의 일들이 기대되는 일본 교토에서의 첫날이다.
선영: 아침 일찍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당최 한 달치 짐을 어떻게 챙겨야 할지 막막했지만, 드디어 간다, 일본으로! 공항에서 만난 우리 <궁> 식구들. 다들 표정이 밝고 에너지가 넘쳤다. 그동안 연습했던 모든 것들을 머리에 가슴에 그리고 캐리어에 담고 출발! 그리고 2시간을 날아 일본 도착.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는 곧장 극장으로 갔다. 교토 미나미좌, 무려 130년의 전통을 지닌 가부키 극장이라고 한다. 이런 곳에서 우리의 창작뮤지컬을 공연할 수 있다니. 뭔지 모를 떨림이 ‘지이인~~~도오옹’한다. 하지만 그런 떨림도 잠시. 오 마이 갓! 큰일 났다. 대기실이나 분장실로 가는 길이 꽤나 복잡 미묘하다. 상하수 연결된 곳은 무대 뒤 통로와 4층이고, 상수 엘리베이터는 식당으로 연결. 하수 엘리베이터는 의상 분장실? 아, 이거 참, 대략 난감일세… 아무래도 미로 같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열심히 다녀서 빨리 익숙해져야겠다.
6月9日木
규종: 첫 공연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지 잠이 잘 안 와서 밤새 뒤척이다가 눈을 떴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아직 어깨가 무겁다. 오늘 아침에도 문득 든 생각인데. 뮤지컬이 처음인 내가 주인공이라니… 잘해 낼 수 있을까. 괜히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늘 힘이 되는 건 내 옆에서 나를 받쳐주는 우리 <궁> 팀, <궁> 배우 분들. 그분들이 계시기에 힘을 낼 수 있다. 리허설이 시작되고 첫 공연에 오르는 내가 원근이 형(런) 대신 리허설에 임하였다. 안무와 노래만 맞추어 콘서트 리허설을 하던 게 익숙해서인지 아직 조금 어색하다. 동선과 의상, 그리고 음향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를 해나갔다. 하면 할수록 무대에 적응이 되어가고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무대에 오르면 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너무나 편하고 행복하다. 이 훌륭한 무대에 오르게 되어서 기분이 정말 좋다. 내일모레면 많은 분들이 우리 공연을 보러 와 주시겠지? 음, 멋지게 준비해야겠다! 리허설을 마치고 숙소로 와서 대본을 체크하고 목에 좋다는 도라지액도 한 모금 마시고 침대에 누웠다. 지금도 내 심장은 두근두근… 모든 신경이 무대를 향해 있다. 떨린다.
선영: 오하요우~! 극장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조그마한 맨션이 어제부터 ‘우리 집’이다. 걱정했던 것보다 편하게 잘 잤다. 하~음~! 극장에 들어와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입장. 미나미좌는 안에 있는 대기실이 모두 다다미방이다. 그래서 슬리퍼도 벗고 마치 집 안에서 오가는 것처럼 다녀야 한다. 처음엔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No~No~ 정말 편하다. 게다가 4층이어서 환기도, 채광도, 전망도 Good!
아침 식사 후, 마이크를 착용하러 무대로 내려갔는데… 또 한번 완전 깜놀! 이게 대체 뭐지? 무대 스태프 분들이 모두 슬리퍼를 신고 계셨다. 무대에서 슬리퍼라니,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인데! 어쨌든 덕분에 나도 처음으로 슬리퍼를 신고 무대 위를 걸어다녀본다. 묘한 기분인걸. 호호.
이곳 미나미좌에는 무대와 객석 맨 뒤 출입구를 (마치 런웨이처럼) 연결한 ‘하나미치’가 있어서 여러모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연습 때 상상으로만 그려보았던 하나미치를 직접 밟아보니 정말 색다르고 신기했다. 특히 친영례와 채경의 처가 나들이 하는 장면의 활용은 정말 최고! 우리 배우와 스태프들과 일본 현지 스태프의 호흡이 정말 중요할 것 같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서로를 믿고 도우며 손발이 척척 맞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무도 다치는 일 없이 무사히 공연을 올려봐요, 우리!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수!!!
6月10日金
규종: 비가 주르륵 내리는 아침이다. 빗소리에 잠을 깼다. 8시! 한국에서는 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습관이었는데… 일찍 눈을 뜨니 조금 어색하다. 드디어 내일이구나. 오지 않을 것 같던, 아니 아직 멀게만 느껴졌던 첫 공연이 내일로 다가왔다. 자, 최종 리허설을 위하여! 마지막 점검을 하기 위하여 모든 스태프 분들과 배우 분들이 집중해서 무대를 만들어 나갔다. 보이지 않는 긴장감 속에서의 최종 리허설! 모든 분들이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공연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신다. 이런 무대인 만큼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이다,우리 궁! 아싸라비야 궁궁 화이팅! 화이궁! 오늘은 좋은 꿈꾸길 바라며!
6月11日土
선영: 드디어, <궁>이 일본에서 막을 올리는 날이다 두둥! 1시 공연을 위해 9시부터 준비에 들어간 배우들(2회 공연인 날은 1시와 6시에 공연을 한다.) 설렘 반, 기대 반. 분주하고 긴장돼 있는 ‘첫공날’ 특유의 공기가 미나미좌를 가득 채웠다. 두근두근. 공연 시작 45분 전, 관객 입장이 시작되자 웅성웅성 소리가 들린다. 아, 정말 시작이구나 오프닝 곡이 진행되는 동안, 등퇴장과 퀵체인지를 다시 한번 체크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다(떨릴까봐 청심환까지 챙겨왔는데, 정말 희한하게도 마냥 한국 같았다) 오프닝 곡이 끝나고 암전. 내 차례다! “엄마, 아빠 학교 갔다 올게요.” 채경의 등장은 하나미치! 전력 질주해서 무대에 도착하자 3층까지 가득 메운 객석이 눈에 들어온다. 와…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 공연 내내 발산될 배우들의 넘치는 에너지, 그 ‘참 좋은 기운’이 극과 맛나게 버무려져 <궁>이 첫선을 보였고, 보는 분들에게는 어땠을까 궁금하고 기대되는 우리에게 함성과 박수가 돌아왔다. 모두가 그동안의 땀과 눈물을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공연을 무사히 올린 걸 서로에게 감사하고 토닥토닥 안아주는 <궁> 식구들. 우리의 첫 노래처럼 “이제부터 시작이야~ 빠밤!” 앞으로 3주, 마지막까지 신나게 달려 봐요, 우리.
규종: 눈을 뜨며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소중한 날을 맞이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첫 공연이다! 떨리고 긴장이 되어서 밥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다.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를 손질하고 의상을 입으니 드디어 실감이 난다. 곧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 무대 뒤에서 <궁> 팀이 다 함께 나와 우리 동료 몇몇의 뮤지컬 데뷔를 축하해주며 함께 외쳤다. “아싸라비아 궁궁 화이팅!” 관객이 입장을 하고 공연 5분 전이라는 알림이 있었다. 내 심장은 두근두근… ‘자, 나는 황태자 이신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할 수 없는 황태자 이신이다.’ 속으로 다짐하며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한다. 드디어 종이 울리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뮤지컬 데뷔 무대! 무대에 오르고 관객의 함성과 나를 향한 조명이 쏟아진 순간, 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고마움과 행복감이 밀려왔다. 가수로서의 무대와 조금 다른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김규종이 아닌 황태자 이신으로 무대에 올라서 약 2시간 30분의 첫 공연을 마쳤다. 마지막 커튼콜 때 다 함께 부르는 ‘사랑인가요’… 정말이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으으. 잊지 못할 첫 공연이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공연을 보러 와 주신 공연장을 가득 메워주신 관객 분들과 이런 멋진 공연을 만들게 해주신 많은 분들과 나를 위해 힘써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 밖에 드릴 수 없어 죄송한 마음이지만 그런 만큼 마지막 무대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4호 2011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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