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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뮤지컬로 돌아온 영화 <시스터 액트> SISTER ACT [No.97]

글 |정예경(뉴욕 통신원) 2011-10-11 5,992


* 이번 호부터 클래식 작곡가로 어려서부터 촉망받았고, <모비딕>의 작곡가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한 정예경 씨가 <더뮤지컬> 뉴욕 통신원으로 ‘나우 인 뉴욕’ 코너에 공연 리뷰를 연재합니다. 현재 그녀는 뉴욕대에서 영화 음악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부하는 동안 브로드웨이를 거닐며 그곳 공기를 전해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요즘은 원소스 멀티유즈가 거의 당연시되고, 하나의 스토리가 여러 매체들에 동시다발적으로 침투하여 상업성을 극대화시켜 가고 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여러 공연들 속에서, 작품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심리적 유효 기간이 점점 짧아져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계에는 흥행이 검증된 영화들의 덕을 보면서 리스크를 줄인 작품들이 종종 등장한다. 브로드웨이에는 현재 <캐치 미 이프 유 캔>, <아담스 패밀리>, <시스터 액트>가 입성하여 지금까지 각기 다른 성적을 내고 있다. <아담스 패밀리>엔 왕년의 미녀 스타 브룩 쉴즈가 가세했다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고 있고, <시스터 액트>는 주연을 맡았던 우피 골드버그가 직접 프로듀싱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중 우피 골드버그로 대표되는 <시스터 액트>를 살펴본다. 

 

 

 

매력적인 스토리와 캐릭터
<시스터 액트>에 대한 기억은 큰 웃음을 주었던 다양한 캐릭터들과 ‘I Will Follow Him’ 같은 가스펠을 히트송으로 만들었던 수녀 합창단의 좋은 음악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뮤지컬은 주인공 ‘들로리스’를 우피 골드버그보다 예쁘고 섹시하고 날씬한 26살의 여배우로 선발한 것 빼고는, 나머지 캐릭터들은 상당 부분 비슷하게 살려놨다.


1막은 들로리스가 독창을 하는 장면이 많았다. 그녀는 ‘극 중 가수’라는 점 때문에 여러 장르의 노래를 소화하느라 더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정말 잘했고, 그만큼 하는 사람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큰 무대를 연이어 혼자 휘어잡느라 목에 무리가 갔다.영화 촬영이야 단속적으로 진행되지만 뮤지컬 공연은 무대 위에서 연속적으로 진행되기에 배우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진다. 에너지 충전을 위한 모멘트가 전혀 없으면, 공연 예술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고갈되는 에너지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래서인지 무대가 낭비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전반부에 들로리스 혼자 감당해야 하는 장면이 몰려 있어서, 초반에는 극이 느리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크리에이티브 팀도 그것을 인식했는지, 뒤로 갈수록 다른 캐릭터들을 강화하고 각각 솔로를 준다든지, 연극적 요소를 추가해서 좀 더 타이트하게 만들려 한 흔적이 엿보였다.


수녀원 원장 역의 배우는 교양 있고 엄격한 캐릭터를 살렸을 뿐만 아니라, 가성인데도 힘 있고 깨끗한 음색으로 극장 구석구석까지 굉장한 에너지를 전달했다. 들로리스가 부르는 규칙적인 리듬의 팝 음악 스타일과는 대조되게, 서사적으로 진행되는 멜로디와 부드러운 스트링 반주를 깔아준 것도 원장 수녀의 캐릭터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선택이었다. 들로리스를 도와주는 형사는 제복을 입은 경찰관으로 바뀌고, 좀 더 친근한 캐릭터로 수정되었다. 들로리스와 어릴 적 친구이고 그녀를 동경해왔다는 설정을 넣어 둘의 로맨스를 짐작케했다. 수녀님 역할 중 할머니 수녀님이 랩을 유려하게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중에 사운드 트랙을 사려는 사람들 중에 ‘아까 할머니가 부르던 그 노래 제목이 뭐냐?’면서 묻는 이들이 꽤 있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악당들조차 나쁜 짓을 해도 꿀밤 하나 먹이고 ‘예끼!’ 하고서 눈감아 주고 싶은 귀여운 캐릭터들이었다. 역시 잘 짜인 직물을 깔끔하게 마무리해 완성품으로 만들어 주는 건, 감초 같은 귀한 조연들임을 실감했다.

 

 

 

센스 있는 오마주 음악이 인상적
이렇게 캐릭터와 스토리가 상당 부분 살아있는 데 반해, TV 스피커를 타고 나오던 기존의 신나는 모타운 음악들은 상당수 사라졌다. 그러나 작곡을 맡은 이는 바로 디즈니의 영원한 친구 앨런 맨켄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대신 더 좋고 다양한 음악들이 추가되었다. 그가 곡을 만들었는데 안 좋을 리가 없다. 곡도 좋지만 더 인상적인 것은 재기 발랄한 센스가 녹아든 여러 음악가에 대한 오마주 장면들이다. 노래 중에 갑자기 시내트라의 ‘뉴욕 뉴욕’ 클라이막스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그걸 캐치해서 들은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 특유의 창법, 문워크를 비롯한 안무들을 곳곳에 녹여내었으며, 비지스풍의 창법을 의도적으로 이용한 장면들도 큰 웃음을 주었다.


노래들이 팝 색채가 워낙 강하다 보니, 특정 테마를 적극적으로 전 작품에 걸쳐 이용하기보다는, 재미있는 장면을 위해 만든 것이 많았고, 되풀이되는 테마는 거의 없었다. 뮤지컬은 기억나는 노래가 있어야 한다는 진부한 명제를 가지고 음악적 구조의 좋고 나쁨을 논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제 브로드웨이, 오프브로드웨이에서는 장면에 충실한 각각의 음악들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장르와 컨셉에 어울리게끔 코디네이션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단지, 좀 아쉬웠던 점은 음악이 팝으로 시작되고 끝나는 게 많다보니 콘서트를 보는 기분이 들어 오히려 음악이 안 나오는 곳에서는 이야기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을 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브리지 음악이 별로 없어서 송 모멘트가 헐겁게 느껴졌다. 음악의 쓰임에 따른 전경과 후경이 확실했더라면 더 유려하게 작품이 흘렀을 것이라 생각된다. 앨런 멘켄이 그걸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같이 웃고 즐기자는 이 뮤지컬의 컨셉과 프로듀서의 의도에 충실히 화답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무튼 이렇게 신나는 노래가 나올 때 우리나라에서라면 벌써 열린 음악회용 단체 박수가 나왔을 법도 한데, 여긴 아무리 신나도 단체로 박수를 치진 않는다. 문화 차이라면 문화 차이다.

 

 

 

정교한 오케스트레이션, 안무, 무대
예산 줄이려고 현악기를 많이 없애고 관객을 자극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강한 사운드로만 가는 뮤지컬들도 꽤 있는데, <시스터 액트> 오케스트레이션은 소모적인 악기의 구성 없이 정교하고 깨끗한 사운드를 구사했다. 기본적으로 스트링이 다른 뮤지컬들보다 강하고, 관악기는 필요할 때만 구성돼 효과를 더더욱 증대시켰다.


수녀복이 몸의 실루엣을 가리므로 안무는 하체나 허리 대신에 손과 팔, 어깨를 많이 이용했다. 때문에 스토리가 있는 춤이라기보다는, 개별적 동작들이 연결된 군무를 보는 느낌이었다. 이 안무를 만들기 위해 많이 고민을 했을 거라 생각된다.


무대는 브로드웨이답게 화려하다. 브로드웨이 교과서라 할 정도로 화려하고 볼거리 많은 무대 세트를 잘 활용하고 있었다. 무대 장치의 변화와 세트의 정교함 등은 굉장히 칭찬할 만했다.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난 다음 날이라서 <빌리 엘리어트>를 봤을 때처럼 경악스러운 충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은 세트였고 무대였다. 단지, 무대장치가 자주 바뀌는 데 비해 무대가 비어 보인다거나 전환이 좀 느린 점은 보완하면 좋을 것이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와 디즈니의 공통 공식, ‘가족’, ‘우정’, ‘사랑’ 같은 인간애에 더 초점을 맞췄다. (제작사에 디즈니사가 껴있어서 더욱 그랬을지도.) 인간 모두에게 공통되는 명제를 집어넣지 않고서 전체 관람가 뮤지컬이 성공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악당 앞에서 수녀들이 들로리스 대신 자기를 쏘라며 저마다 나서는 장면과, 모든 파란이 지난 후 원장 수녀와 들로리스의 화해 장면은 너무 뻔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다른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가끔 창작자로서 이런 장면에서 고민한다. 이렇게 시시콜콜 설명을 꼭 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와, 이런 갈등의 해소 장면이 관객들로 하여금 박수를 치게 만드는구나 하는 깨달음 사이에서 생기는 고민 말이다. 이런 고민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숙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의 가능성
<시스터 액트>가 토니상을 받았건 받지 못했건, <프로듀서스>나 <나쁜 녀석들>같이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꼬리표’가 붙은 작품들보다 훨씬 우리 관객들과 통하는 지점이 많을 것 같다. 대사의 유머 코드도 비슷하고, 포즈 모멘트를 활용해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거나, 슬랩스틱을 쓰는 방식, 연출적인 부분까지 우리나라에서 공연되는 작품들과 닮은 점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중극장 규모의 뮤지컬을 볼 때와 상당히 흡사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아기자기한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무대의 규모를 배려해서 만든 느낌. 아마도 이런 분위기가 또 나름 서로 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관객들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지점을 많이 만들어놓은 것도 좋았다. 기본적으로 ‘웃고 가세요’라는 모토를 가지고 만든 것 같다. 문제는 이걸 번안했을 때, 흑인 특유의 영어 액센트를 어떤 식으로 표현할 것이며, 기존 뮤지컬 창법과는 확연히 다른 R&B와 소울을 넘나드는 음색을 가진 가수, 배우를 어디서 찾을 것이냐이다.

 

 

 

극장 문을 나서며
다른 극장에 비해 유독 흑인 관객들이 많았다. 그중 몇몇 사람들에게 ‘왜 <시스터 액트>를 보러 오셨나요?’라고 물으니, 99퍼센트가 “영화를 봤거든요”라는 대답을 했다. 내년이면 영화 출시 20주년인데, 이런 오래된 영화를 아직도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이 작품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이 스토리에 녹아있는 인종 갈등의 해소, 거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이 극에 힘을 실어주는 진짜 이유인 것 같다.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할리우드 영화를 통틀어, 흑인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와 흑인 음악을 그들의 스타일로 노래하는 작품은 거의 없다. <드림걸즈> 정도가 이에 해당할까? 굳이 인종차별 문제가 아니라, 이 산업의 구조를 뜯어 보면 결과적으로 백인 금발 여자가 주연을 맡기가 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시장에서 우피 골드버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흑인의 노래를 백인들이 세련되게 정제해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마당에, 흑인 고유의 소울이 넘치는 노래들과 가스펠을 흑인이 직접 리드해서 백인들에게 따라 부르게 하고, 정서를 고양시킨다는 스토리의 통쾌함이 사람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시스터 액트>를 통해 완전한 스타로 자리를 굳힌 우피 골드버그는 한때 미국에서 돈이 제일 많은 여성 5위 안에 들었다고 한다. 자신에게 그런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 필드로 돌아와 또 하나의 스타를 만들었다. 물러날 때를 알고, 선배 노릇까지 할 줄 아는 그녀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그녀는 금발도, 백인도 아니고, 주인공에서 거리가 먼 비주얼을 가졌는데 본인의 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라며 또 다른 우피 골드버그를 꿈꿨던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었다.


프로듀서로서의 우피도 성공적이다. 전문가가 좋은 조합으로 모일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프로듀서의 역할인데, 프로듀서로서 우피는 이걸 잘 해낸 것 같다. 팀의 조합이나 친밀도가 무대로 100퍼센트 연계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할리우드에 연계된 많은 사람들과 제작사를 동부로 불러낼 수 있을 정도면,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로서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PS.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지금 <시스터 액트>를 하고 있는 ‘브로드웨이 극장’(극장 이름이 그냥 브로드웨이 극장)은 다른 극장들에 비해 들어올 때 분위기가 좀 험악(?)하다. 한 덩치 하는 아저씨들에게 가방까지 다 열어서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줄이 길다. 9/11 이후로 계속 이렇게 하고 있는데, 미국 사람들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자기들 먹고 사는 게 힘들다 보니 외국인에 대해 전처럼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예술계 사람들도 이젠 우리나라처럼 밤샘하면서 시간 외 작업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로 전환이 되었다. 어쨌든, 참 내가 이전에 느낀 ‘일하기 좋은 미국’, 또는 ‘믿음으로 사람을 만나는 미국’은 점점 멀어지는 얘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 아쉽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7호 2011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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