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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거슈윈의 명곡이 가득한 <크레이지 포 유> CRAZY FOR YOU [No.101]

글 |정명주(런던통신원) 사진제공 |Roy Tan 2012-02-29 6,137

작년 가을, 런던 리전트 파크의 오픈에어씨어터에서 리바이벌하여 큰 인기를 얻은 <크레이지 포 유>가 웨스트엔드의 노벨로 극장으로 거처를 옮겨 장기 공연에 돌입했다. 20세기 전반에 브로드웨이를 장식했던 거슈윈 형제의 재즈 명곡들이 가득한 이 작품은 엘라 피츠제럴드, 쳇 베이커, 프랭크 시나트라 등 전설적인 미국 가수들이 불렀던 명곡들, ‘누군가 날 지켜봐 줄 사람(Someone to Watch Over Me)’, ‘안고 싶은 그대(Embraceable You)’, 영화 <쉘 위 댄스>의 삽입곡이었던 ‘내게서 그걸 빼앗아 갈 순 없어(They Can’t Take That Away from Me)’ 등을 들려주는 것만으로 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와 더불어, 1930년대에 뉴욕을 장식했던 레뷔, <폴리스> 스타일의 화려한 코러스 댄스와 신나는 탭댄스가 무대를 장식한다.

 


<크레이지 포 유>는 원래 1930년에 거슈윈 형제가 썼던 뮤지컬 <걸 크레이지>를 대폭 수정 및 각색한 작품이다. 1992년에 켄 루드비히가 대본을 재구성하면서, 거슈윈 형제의 다른 작품에서 유명곡들을 빌려와 추가했고 수잔 스트로먼이 안무를 맡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하여, 그해 토니상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이번 런던 리바이벌에서는 오픈에어씨어터의 예술감독 티모시 쉬더가 직접 연출을 맡고, <인어공주>와 <스위트 채러티> 등으로 알려진 스티븐 미어가 화려하게 안무를 재창조하여 다시 한번 눈과 귀가 즐거운 뮤지컬 무대를 선사한다.

 

 

뮤지컬 코미디의 매력을 모은 종합 선물 세트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 하면 대부분은 화려한 무대와 멋진 노래와 춤을 연상하게 된다. 반짝이는 의상을 입은 여자 코러스들이 긴 다리를 쭉쭉 뻗으며 선사하는 화려한 군무, 기예에 가까운 흥겨운 탭댄스, 감미로운 발라드곡을 동반하며 첫눈에 반하는 러브 스토리, 전 출연진이 총출동하는 컬러풀한 컴퍼니 장면과 합창곡, 모든 근심을 잊고 웃어도 좋은 가벼운 내용의 뮤지컬 코미디. <크레이지 포 유>는 이 모든 것을 종합 선물 세트처럼 담아낸 작품이다. 이유가 필요치 않은 첫눈에 반한 사랑이 있고, 코러스 걸들이 형형색색의 의상을 입고 뛰어다니는 백 스테이지 장면이 있고, 남자 주인공 바비가 연미복 차림으로 멋지게 선보이는 솔로 탭댄스가 있다. 더불어 카우보이들의 다이내믹한 군무와 폭소를 자아내는 개그 장면까지 더해진다. 그래서 세상의 근심을 모두 잊게 하는 완벽한 엔터테인먼트의 순간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아마 켄 루드비히가 이 작품을 쓰면서 염두에 둔 목표일 것이다. 그렇기에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작품 분석이나 줄거리상의 허점을 찾으며 개연성을 운운하는 일은, 가볍고 화려한 뮤지컬 코미디 <크레이지 포 유>를 보는 동안은 금기 사항이다.

 

 

 

탭댄서가 되고 싶은 은행 재벌 2세의 이야기
화려한 공연계는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꿈의 세계이다. 특히 돈은 잘 벌지만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직업이라 할 수 있는 회계사나 은행원에게는 유독 그러한 듯하다. <프로듀서스>는 뮤지컬 프로듀서가 되고 싶은 소심한 회계사가 유명한 공연 프로듀서와 짝을 이루어 마침내 꿈을 이루려 하는 내용의 코미디였고, <크레이지 포 유>는 탭댄서가 되고 싶은 은행 재벌 2세 청년, 바비 차일드가 꿈과 사랑을 찾는 뮤지컬 코미디이다. 공연은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극장가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네온사인이 화려한 브로드웨이 거리가 등장하고, 이어서 극 중에서 대형 프로듀서인 쟁글러의 <폴리스> 공연이 한창인 백 스테이지가 나타난다. 반짝이 의상의 코러스 걸들이 총총걸음으로 걸어 다니는 이곳에 은행 재벌 2세 바비 차일드가 오디션을 보고 싶다며 찾아온다. 코러스 걸들과 친한 친구 사이인 그는 특히 프로듀서 쟁글러의 총애를 받는 코러스 캡틴 테스의 도움을 받아 쟁글러를 잠깐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한 번만 오디션 볼 기회를 달라고 통사정을 하면서 즉석에서 탭댄스 실력을 보여주는데, 너무 긴장한 탓에 쟁글러의 발을 밟는 실수를 하고 그 자리에서 쫓겨나고 만다. 무대를 향한 꿈이 무너져 좌절한 그 앞에 나타나는 것은 은행 재벌인 어머니 미시즈 차일드 여사이다. 헛된 꿈은 그만 접고 은행 일이나 배우라며, 채무 관계 정리를 위해 바비를 네바다 사막의 시골 마을로 보내 버린다. 그렇게 해서 기차역에서 한 시간이나 걸어가야 하는 시골구석에 도착한 바비는 그곳에서 은행 빚을 갚지 못해 문을 닫게 된 시골 극장과 그 극장 주인의 딸 폴리를 만나게 되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왜 하필 어머니의 은행에 저당 잡힌 건물이 극장인지, 왜 바비가 청바지에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톰보이 같은 폴리에게 첫눈에 반하는지는 굳이 따져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바비가 엄마의 뜻과는 반대로 이 시골 극장에 화려한 폴리스 공연을 제작해서 댄서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 극장 주인의 딸 폴리의 마음까지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다.


바비의 요청으로 마침 휴가를 맞은 뉴욕의 코러스 걸들이 모두 네바다 시골로 몰려오고, 공연 제작을 위해 바비는 쟁글러로 변장을 하고 진두지휘에 나선다. 여기서 또 역시, 왜 하필 쟁글러의 코러스 걸들이 때마침 동시에 휴가를 떠날 시간이 났는지, 공연 제작을 하는 데 바비가 왜 굳이 쟁글러로 변장까지 해야 하는지를 따져서는 공연에 몰입할 수가 없다. 그저 줄무늬 양복에 흰머리 가발과 수염까지 달고 가짜 쟁글러가 된 바비가 공연 제작을 지휘하는 것을 즐기고, 더구나 그 모습에 극장 주인의 딸 폴리마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바비는 폴리를 사랑하고 폴리는 가짜 쟁글러로 변장한 바비를 사랑하는 코믹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둘의 사랑은 엇갈린다. 한편, 뉴욕에서 온 아름다운 코러스 걸들에게 반한 동네 카우보이 청년들은 졸지에 남자 코러스로서 훈련을 받기 시작하고 공연 준비는 제법 틀을 잡아가는데, 그때 진짜 쟁글러와 바비의 약혼녀인 아이린이 뉴욕에서 찾아오면서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위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이 모든 위기는 이렇게 저렇게 큰 문제없이 무난히 극복되고 오해도 풀린다. 역시 어떻게 문제들이 해결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관객으로서 한 무대에 두 명의 쟁글러가 나타난 코믹한 설정과 바비의 약혼녀가 다른 카우보이와 사랑에 빠지는 재미있는 장면을 웃고 즐기다 보면, 모든 것은 어느 순간 다 해결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네바다 시골 무대에서 화려한 폴리스 공연의 막이 오르면서 바비와 폴리는 해피 엔딩을 맞이한다.

 

 

 

화려한 코러스와 카우보이들
대부분의 사건이 뉴욕과 네바다의 극장에서 공연 준비를 하며 일어나는 것이기에, 많은 장면들이 코러스의 연습과 공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연히 작품 곳곳에 여자 코러스의 화려한 군무가 즐비하며, 수시로 탭댄서가 되기를 꿈꾸는 바비의 상상 속에서 그의 멋진 솔로 탭댄스 장면들이 근사하게 펼쳐진다. 안무가 스티븐 미어는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수잔 스트로먼에 못지않은 안무 실력을 자랑하면서 여덟 명의 아리따운 코러스 걸들의 환상적인 춤과, 카우보이들이 남성 코러스로 춤을 배워가는 과정을 코믹하고 다이내믹하게 그려냈다. 댄스 캡틴 테스 역을 맡은 레이첼 스탠리와 조안나 굿윈을 비롯한 여자 코러스 멤버들은 런던 무대에서 보기 드물게 키가 크고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무용수들로만 구성되어, 스티븐 미어의 멋진 안무와 더불어 근사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극의 초반, 브로드웨이의 극장 장면에서는 백 스테이지에서 바라본 앵글로 폴리스 걸들의 화려한 군무가 멋진 뒷모습으로 재연된다. 브로드웨이 거리에서 탭댄서를 꿈꾸는 바비의 상상 장면에서는 ‘이제 상관없어(I Can’t Be Bothered Now)’의 흥겨운 선율을 따라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바비의 솔로 탭댄스와 아름다운 파란색 의상을 입은 상상 속 여자 코러스의 군무가 펼쳐진다. 또한 네바다 시골에 컬러풀한 의상을 입고 왁자지껄하게 등장하는 폴리스 걸들이 동네 카우보이들과 만나서 신나게 춤을 주는 ‘네바다의 도착(Entrance to Nevada)’ 역시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순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1막의 마지막에 카우보이들이 깡통과 목욕통 등 다양한 소도구를 타악기처럼 활용하여 신나는 연주와 함께 춤을 추는 ‘아이 갓 리듬(I Got Rhythm)’이나, 2막에서 컴퍼니 전체가 영국 숙녀들을 흉내 내며 다들 찻잔을 하나씩 들고 코믹하게 노래하는 ‘꼭 다문 윗입술(Stiff Upper Lip)’ 등은 신나고 즐거운 장면을 연출한다. 가장 화려한 장면은 역시 피날레 장면이다. 처음에 뉴욕의 극장을 백 스테이지 앵글로 보여주다가 드디어 정면에서 보게 되는데,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실버 의상을 입은 코러스 사이로 바비와 폴리가 주인공 커플이 되어 반달 모양의 무대 장치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은 실로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쇼의 한 장면을 목격하게 한다.

 


 

진정성을 가진 남녀 주인공들의 열연
런던의 <크레이지 포 유>가 볼만한 공연이 되는 것은 바비 역의 숀 팔머와 폴리 역의 클레어 포스터의 선전 덕이다. 두 사람 모두 진정성을 가진 배우로서 가벼운 코믹 연기에도 인위적인 맛이 전혀 없는 소탈한 연기를 선사한다. 선남선녀의 외모와 안정된 가창력을 겸비한 이 주인공 커플은 난이도 높은 댄스 장면과 코믹 연기까지 멋지게 소화해냈다. 웨스트엔드에서 <온 더 타운>의 칩으로 열연했으며, 브로드웨이 <인어공주>의 오리지널 프로덕션에 왕자님으로 출연한 바 있는 숀 팔머는 출중한 외모와 약간 그늘진 표정이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으로, 주제곡 ‘크레이지 포 유(K-ra-zy For You)’를 비롯하여 ‘씽즈 아 룩킹 업(Things Are Looking Up)’, ‘내게서 그걸 빼앗아 갈 순 없어(They Can’t Take That Away from Me)’ 등의 솔로곡을 멋진 탭댄스를 가미하여 훌륭하게 소화했다. 특히, 가짜 쟁글러로 변장을 하고 있다가 진짜 쟁글러를 대면하는 장면에서는 데이빗 버트와 함께 듀엣으로 거울 효과를 사용하며 온몸을 던진 슬랩스틱 연기를 보여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카우보이 마을의 톰보이 소녀 폴리를 연기한 클레어 포스터는 웨스트엔드의 <애비뉴 Q>, <위 윌 록 유> 등에 출연했던 뮤지컬 배우로, 이번 무대에서는 끈 달린 청바지에 손을 찔러 넣은 자세로 소탈한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으로 매력을 발산했다. 바비가 변장한 가짜 쟁글러의 모습에 마음을 뺏긴 그녀가 사랑에 빠진 것을 깨달으며 부르는 솔로곡 ‘누군가 날 지켜봐 줄 사람(Someone to Watch Over Me)’, 그리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안타까워하는 짧은 발라드곡 ‘근데 날 위한 게 아닌 걸(But Not for Me)’은 그녀의 편안한 미성과 풍부한 가창력으로 명곡의 아름다움이 다시 한번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특히 1926년 거슈윈 형제의 뮤지컬 <오, 케이!>에서 처음 소개된 후 엘라 피츠제럴드를 비롯해 많은 명가수가 불렀던 명곡 ‘누군가 날 지켜봐 줄 사람(Someone to Watch Over Me)’은 가슴이 절절한 가사와 선율이 아름다운 곡으로, 이 한 곡을 듣는 것만으로 뮤지컬 <크레이지 포 유>를 볼 이유가 충분하다.

 

 

머리가 맑아지는 가벼운 뮤지컬 코미디
피터 매킨토시가 디자인한 화려한 의상과, 브로드웨이와 네바다의 백 스테이지와 온 스테이지를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바퀴 달린 회전무대로, <크레이지 포 유>는 공연 내내 화려한 무대와 큰 웃음을 선사한다. 줄거리가 단순하고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는 코믹한 설정이기에 대사의 대부분은 장난스러운 유머를 제공하는 것에 활용되었다. 한마디 한마디에 가벼운 말장난이 담겨 있으며 거의 모든 인물들이 희화화된 코믹 캐릭터로 대사뿐만 아니라 때로는 온몸을 던져 구르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이는 시종 즐거운 공연이다. 극장 밖의 모든 근심과 걱정, 진지한 고민은 모두 잊고 거슈윈의 멋진 음악과 켄 루드비히의 코미디, 선남선녀들의 멋진 댄스를 즐기면 그만인 그런 뮤지컬이다. <크레이지 포 유>는 런던 노벨로 극장에서 7월 28일까지 공연한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1호 2012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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