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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빨래> 솔롱고, 사랑과 꿈을 품은 무지개 [No.115]

글 |이민선 일러스트레이션 | 권재준 2013-05-27 5,350

솔롱고, 당신이 걱정되지만 더 이상 걱정하지 않을게요. 현실적인 우려 따위, 당신의 단단한 꿈 앞에서는 접어두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 당신에겐 옥탑방 계단도 무지개다리 같을 테니까요.
* 이 글은 솔롱고를 연기한 배우 김보강과의 대화를 기초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실제로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격식 차리고 인사하진 않는데, 책에선 이렇게 가르치죠?
네, 안녕하세요. 저는 솔롱고입니다. 몽골에서 왔어요. 한국 사람이랑 똑같이 생겼죠?


아뇨, 한국 사람보다 더 잘 생겼어요. 한국말도 잘 하시고요.
한국 온 지 5년 됐습니다. 스무 살 때 왔어요.


와, 그럼 지금 스물다섯 살?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흠흠. 아무튼 한국 생활, 아니 서울살이 많이 고달프죠?
아닙니다. 서울, 못된 짓 많이 하지만, 여기 돈 많이 벌 수 있는 곳이에요. 저는 꿈을 가지고 여기에 왔어요.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좋습니다.


몽골에서 꿈을 향해 한국으로 올 때 무지개의 나라에 대한 기대가 컸을 텐데, 막상 도착하고선 실망했죠?
아니요, 첫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았습니다. 서울 사람들 예쁘고 세련되고 멋있었어요. 도시는 활기가 넘쳤고요. 꿈을 이루러 온 저에게 서울의 공기는 무척 상쾌했습니다.


그래도 정착해서 살려다보니 속상한 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옥탑방만 해도 열악한 곳이잖아요?
솔롱고, 옥탑방이 좋아서 여기서 살겠습니다, 하고 골랐어요. 옥탑방, 하늘과 친해요. 언제든 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아요. 저의 휴식처죠. 지쳤던 하루를 되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저는 방보다 바깥에 나와 있는 시간이 더 많아요. 책도 밖에서 읽어요. 어두워지면 스탠드를 켜고요. 제가 옥상에 작은 전등도 달았거든요. 마이클과 옥상에서 놀다가 라면도 끓여 먹고요. 여름에는 밖에서 자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다가 추우면 방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옥탑방, 좋습니다.


오르내리지 않아도 옥상에 곧바로 빨래도 널 수 있고요.
네, 흐흐. 하지만 솔롱고는 나영처럼 몰아서 빨래하지 않아요. 양말하고 속옷, 매일매일 빨아 입습니다. 옷이 별로 없어서 그때그때 빨아 입어야 깨끗해요. 저는 비록 공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서울 사람들 깔끔하고 세련되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보이고 싶어요.


하소연을 들으려 애써도 솔롱고 정말 긍정적이에요. 한국에 와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뭔가요?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힘들었습니다. 몽골 사람, 한국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완전히 다르게 생긴 외국인이었다면 오히려 나았을 것 같아요. 비슷하게 생겼는데도 말을 못 알아들으니 더욱 무시당했어요. 왜 말귀도 못 알아듣고 일도 잘 못하냐고, 타박이 심했습니다. 그다음엔 돈을 제대로 못 받아서 힘들었지요. 문 닫는 공장이 많아서 이 공장에서 쫓겨나고 저 공장에서 쫓겨났어요. 그래도 한국 사람에겐 월급 챙겨주는데 우리들에겐 나 몰라라 할 때도 있었어요. 왜 돈을 안 주시냐고 말해서, 받아낸 적도 있고 못 받아낸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솔롱고가 항의하려고 하면 그쪽에서 먼저 체류 기간을 들먹거렸어요. 당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고…. 그런데 나영이 있어서 괜찮았어요. 솔롱고, 힘낼 수 있었어요.


나영 씨에겐 첫눈에 반했나요?
천사 같았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먼저 웃어주는 사람 없었어요. 나영이 이사 오는 날이었어요. 제가 떨어진 책을 주워줬을 뿐인데 나영은 굉장히 밝고 따뜻하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어요. 그렇게 예쁜 여자는 처음 봤죠. 저뿐만 아니라 누구든 나영을 보면 좋아할 거예요.


첫인상도 중요하지만 두 번째 만남이 진짜죠. 내가 받은 첫인상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니까요.
일요일이었는데 나영이 옥상에 빨래 널러 와서 다시 만났어요. 제가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말을 걸었더니 불쾌해하는 것 같았죠. 하지만 괜찮았어요. 한국 사람들이 저에게 그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나영도 빨래를 한다는 게 놀라웠어요. 직접 손으로 옷을 빨고 짜서 너는 일을 나영 같은 사람은 안 할 줄 알았거든요. 솔롱고가 하는 것처럼 나영도 똑같이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무척 설레었습니다. 저는 휴식 시간의 대부분을 옥상에서 보내니, 다시 마주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커졌어요.

 

솔롱고, 생각보다 감정 표현에 적극적인데요?
사랑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사랑의 힘은 위대해요. 솔롱고도 그런 사랑을 꿈꾸었죠. 제가 아는 핫심은 한국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 잘 살아요. 저도 한국에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많이 생각했습니다. 누가 나를 좋아할까 주저했지만, 사랑을 하면 더 강해지고 무서울 게 없어져요. 나영은 작고 곱게 생겼지만, 정말 밝고 당당해요. 감정 표현도 잘하고요. 솔롱고보다 더 강해요. 제 어깨가 처져 있으면 힘이 되는 말을 해줘요. 나영 옆에서라면 저도 알 수 없는 힘이 생깁니다. 그러면서도 나영은 무척 애교가 많고 귀여워요. 외강내유해요.

 

솔롱고, 팔불출이란 말 알아요? 하하. 하지만 부럽네요. 앞으로 솔롱고랑 나영 두 사람, 문제없이 행복하게 잘 살 것 같은데요!
그럼요, 솔롱고 옆에 나영이 있으니 든든합니다. 제가 꿈꾸었던 일들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돈 많이 벌어서 가족들도 부양하고 나영과도 더 예쁘게 잘 살 거예요. 우린 다르지만 닮았어요. 돈 많이 벌면 우리 공부도 할 거예요. 그래서 솔롱고는 한국에 있는 많은 몽골인들에게 한국어도 가르치고 문학도 가르치고 싶어요. 한국 사람들에게 몽골 문화도 알려주고요. 한국과 몽골이 더 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몽골 사람들이 한국에서 꿈을 키우고 이룰 수 있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5호 2013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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