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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명작의 부활 <스위니 토드> SWEENEY TODD [No.103]

글 |정명주(런던 통신원) 2012-04-30 4,795

런던 웨스트엔드에 손드하임의 명작 <스위니 토드: 플리트 가의 악마 이발사>가 탁월한 연기력과 음악성을 선사하는 리바이벌 무대로 돌아왔다. 지난 3월 20일 런던 아델피 극장에서 오픈한 <스위니 토드>는 영국 연극계의 스타 배우인 마이클 볼과 이멜다 스톤튼을 필두로 하여 이발사의 복수 살인극을 맛깔나게 이야기한다. <레 미제라블>의 런던 오리지널 프로덕션에서 마리우스 역을 맡았던 마이클 볼이 런던 뒷골목의 살인마 이발사로 열연하고,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 이멜다 스톤튼이 엽기적인 러빗 부인 역으로 분해 폭발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번 프로덕션은 <싱잉 인 더 레인>을 웨스트엔드로 진출시킨 치체스터 극장이 제작했으며, 영국의 대표 연출가 조나단 켄트의 디테일한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무대였다.

 


스티븐 손드하임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스위니 토드>는 1979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래 수차례 리바이벌되었던 인기 레퍼토리 중 하나이다. 19세기 중반 영국 잡지의 연재소설에 기초한 이야기로, 복수심에 불타는 연쇄 살인마 이발사 스위니 토드, 그리고 그의 공모자로서 인육으로 고기 파이를 만들어 파는 러빗 부인의 엽기 살인 행각을 다룬다. 오싹한 내용이지만, 휴 휠러가 대본을 쓴 뮤지컬 버전은 재기 넘치는 코미디로서, 특히 엽기적이고 주책 맞은 중년의 러빗 부인이 많은 웃음을 선사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2004년에는 오케스트라 없이 배우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연기까지 했던, 영국 워터밀 극장이 제작하고 존 도일이 연출한 ‘액터-뮤지션’ 버전이 크게 성공을 거두어 웨스트엔드 및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한 바 있다. 영화로도 여러 차례 제작되었으며, 최근에는 조니 뎁을 주인공으로 한 2007년 팀 버튼 감독의 영화가 특유의 영상미를 자랑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손드하임의 천재적인 음악이 빛을 발하는 무대
이번 런던 프로덕션은 조나단 켄트의 절묘한 타이밍을 자랑하는 연출과 음악감독 니콜라스 스킬벡의 해석이 돋보이는 탁월한 오케스트라 연주, 그리고 폴 그루투이즈의 완벽주의자다운 음향으로 최고의 무대를 선사한다. 지저귀는 듯한 플루트 소리와 암울한 첼로 선율 하나하나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그야말로 손드하임의 천재적인 음악이 빛을 발하는 무대였다. 첫 곡 ‘The Ballad of Sweeney Todd’에서 코러스를 활용하여 순식간에 살인마 이발사를 소개하는 스토리텔링의 기술은 단연 뮤지컬 작법의 모범이다. 바로 뒤를 잇는 곡 ‘No Place Like London’은 한 곡 안에 청년 안소니의 맑은 고음과 거지 여인의 천사 같은 목소리, 스위니 토드의 악마 같은 저음이 모두 어우러지며, 각 등장인물의 사연과 관계, 색깔을 간결하고 확실하게 소개한다. 다음 곡인 스위니의 비극적인 노래 ‘The Barber and His Wife’는 그가 어린 딸을 판사에게 빼앗기고 감옥에 갇히면서 아내까지 잃게 된 사연을 순식간에 요약·정리하는 스토리텔링 기술이 대단하다. 바로 그 뒤를 잇는 코믹한 러빗 부인의 걸걸한 목소리는 이내 웃음을 자아내며 코믹 캐릭터로서 확실한 소개를 마친다. 막이 오르자마자, 짧은 시간 내에 각 인물의 성격이 놀랍도록 효과적으로 소개되는 방식이 얄미울 정도로 치밀하다. 전주 한 소절만 들어도, 그 인물의 영혼에 담긴 색깔을 바로 느끼게 하는 실로 연극적인 음악은 대가로서 손드하임의 솜씨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려와 공포가 담긴 코러스의 노래가 반복되며 극의 분위기가 명확하게 형성되는 가운데, 중간 중간 심상치 않은 순간마다 귓가를 날카롭게 스쳐가는 휘슬 소리는 소름 돋는 비극의 전조가 된다. 극의 내용에 따라 공포에서 웃음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카멜레온 같은 음악은 디테일의 정교함까지 더해져 듣는 이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러빗 부인이 ‘이왕 죽은 사람, 그 고기가 아까우니 그것으로 파이를 만들어 팔자’고 제안하는 1막의 마지막 곡인 ‘A Little Priest’는 살인과 시체 처리에 대한 섬뜩한 내용과 대조를 이루며 즐겁게 속삭이는 듯한 반주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플루트와 현악기의 ‘쿵작작 쿵작작’ 하는 가벼운 터치의 반주에 맞추어 직업에 따라 고기 맛도 다르다며, 신부와 주교, 재단사, 은행가의 인육은 그 맛이 어떨까를 상상케 하는 가사는 참으로 엽기적인 코믹송을 만들어 내고, 이내 웅장한 풀 오케스트라 연주로 발전하면서 1막의 마지막을 멋지게 마무리한다. 이러한 손드하임의 음악적 디테일이 이번 공연에는 일일이 다 살아있다. 뮤지컬을 보면서 간지러운 플루트의 속삭임과, 울음을 참는 듯한 첼로의 절제된 저음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멜다 스톤튼의 폭발적인 존재감
이번 무대의 일등 공신은 러빗 부인 역의 이멜다 스톤튼이다. 등장하자마자 징그러운 웃음소리를 한바탕 쏟아내더니, 이내 첫 대사를 내뱉는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갈라진다. 그러곤 손에 침을 퉤퉤 뱉으며 능글맞게 반죽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순식간에 웃음을 터트리게 하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마디 한마디, 맛깔스럽게 치는 대사는 감탄을 자아내고, 적재적소에서 단 한번도 놓치지 않고 웃음을 자아내는 그녀의 코믹 연기에는 신기마저 느껴진다. 누구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는 가창력의 소유자이자 안정된 연기력을 자랑하는 마이클 볼조차, 그녀와 같이 무대에 선 순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배우가 되어버릴 정도이다. 이멜다 스톤튼은 2004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금사자상을 받았던 마이클 리 감독의 영화 <베라 드레이크>에서 여주인공으로 열연했던 실력파 연기자로 무대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영국을 대표하는 여배우 중 한 명으로, 주디 덴치가 도도한 악녀의 대명사라면, 이멜다 스톤튼은 겉으로는 동정하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쓸 수 있는 이중적인 성격의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악녀 전문 배우라 할 수 있다. 1990년에 손드하임의 또 다른 작품인 <숲 속으로>에서는 빵집 마누라 역할을 기가 막히게 해내어, 주인공도 아닌 역할로 영국 최고의 시상식인 올리비에 연극상에서 최우수 여자연기자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최근에는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돌로레스 엄브릿지 역으로 선전한 바 있다. 개성 강한 마스크와 독특한 보이스 컬러를 자랑하는 그녀는 이번 공연 내내 무대를 장악하며 폭발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2막의 앞부분에서 스위니를 유혹하며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함께 살자고 말하는 ‘By the Sea’를 부르는 그녀는 주책 맞은 아줌마의 교태와 앙탈로 객석을 폭소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스위니 토드>의 주인공은 스위니가 아니라 러빗 부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만큼 대단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이멜다 스톤튼의 대활약 앞에 가장 큰 손해를 본 것은 주인공 스위니 역의 마이클 볼이다. 처음 등장해 ‘No Place Like London’을 부르는 순간에는 무대에서 오랜만에 그를 만나는 관객들의 따스한 박수를 받았고, 이어지는 비장한 고뇌를 담은 곡 ‘The Barber and His Wife’에서는 스모크가 가득한 무대에 그림자처럼 외롭게 우두커니 선 모습으로 풍성한 가창력을 발휘하여 큰 박수를 자아냈다. 그는 다정하고 자상한 기존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변신을 시도하며, 배가 나온 중년의 풍채 있는 몸매에 수염까지 기른 초췌한 모습의 스위니 토드를 선보였다. 심지어 마이클 볼을 보러 왔는데 왜 출연을 하지 않느냐며 환불을 요청하는 관객이 있을 정도로, 그는 확실한 변신에 성공했다. 그러나 초반에 어느 정도 무대 장악력을 보이는 듯했던 그는 러빗 부인 역의 이멜다 스톤튼이 등장하면서부터는 존재감을 상실해 버린다. 관객들은 러빗 부인의 방정맞은 하이톤의 목소리와 익살맞은 동작, 때로는 여우처럼 홀리고 때로는 너구리처럼 능글맞은 연기에 혼을 쏙 뺏겨버려, 상대적으로 표정이 거의 없고 과묵한 성격의 스위니 토드를 주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마이클 볼이 연기나 가창력에서 뒤지는 배우가 절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번 무대에서는 이멜다 스톤튼의 기에 눌려 상대적으로 카리스마가 부족한 배우로 전락해 버렸다.

 

 

 

완벽한 타이밍을 자랑하는 연출
손드하임의 <스위니 토드>가 명작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이번 무대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기와 음악이 돋보인다. 분명, 40년 넘게 주요 무대에서 연출을 해온 내공 있는 연출가 조나단 켄트의 손길 덕일 터이다. 러빗 부인이 달콤하게 달래듯이 유혹적인 질문을 던지는 목소리는 꿀을 바른 듯 미끈하고, 이에 대답하는 스위니의 목소리는 가뭄 때 논바닥처럼 쩍 갈라지면서 부담감이 곧바로 표현된다. 그야말로 대사 한마디마다 악센트와 디테일이 살아있다. 이 장면에 바로 이어서, 스위니 토드의 딸 조안나에 대한 소식을 전하러 안소니가 찾아오자, 이 청년을 맞이하는 러빗 부인은 목소리를 싹 바꾸면서 폭소를 자아낸다. 매 장면, 분위기가 바뀔 때마다, 장면 전환의 타이밍 또한 절묘하다. 장면과 분위기에 따라 손드하임이 음악적으로 구축해 놓은 타이밍도 훌륭하지만, 연출가가 설정한 장면 전환의 타이밍 역시 대가의 솜씨답다. 코미디는 타이밍에 달렸다고들 한다. 조나단 켄트는 사소한 대사 하나, 동작 하나에도 웃음을 터뜨리게 하며, 매번 타이밍이 정확한 연출로 <스위니 토드>가 뮤지컬 코미디로서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코미디를 순식간에 스릴러로 전환시키는 타이밍 역시 아주 적확하며, 더불어 공포 분위기로 치달아가는 속도감 역시 훌륭하다. 스위니 토드의 살인 행각을 따라가는 긴장감, 이와 병행하여 잃어버린 그의 딸 조안나에게 닥치는 위기가 조성하는 불안감은, 적재적소에 배치된 귀를 찢는 휘슬 소리나 심벌즈의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극대화된다. 이와 동시에 코러스들이 무대를 가로지르며 황급히 달려가는 모습을 통해 긴박감이 더해진다. 음모나 간계가 논의되는 순간에는 여지없이 2층에 배치해 놓은 코러스들이 유령들처럼 둘러서서 그 순간을 말없이 내려다보는 오싹한 목격자가 된다. 조나단 켄트는 평생 동안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템페스트>를 비롯하여 <페드라>, <오이디푸스> 등의 그리스 비극과,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갈릴레오의 생애> 등 세계 고전 연극 및 대형 오페라를 연출해 온 기본기가 탁월한 연출가이다. 뮤지컬로는 브로드웨이의 <맨 오브 라만차>(2002), 최근 런던에서 공연된 알랭 부브릴의 신작 뮤지컬 <마가리타>(2008) 등을 연출했다.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연극적 해석력, 수많은 오페라 연출을 통해 쌓아온 음악적 감각이 남다르다. 이번 공연에서는 안소니 워드가 디자인한 철제 계단과 구조물을 사용한 상징성이 강한 단순한 무대를 배경으로, 코러스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헐벗고 차가운 런던의 뒷골목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취조실의 실내등을 연상케 하는 백열구 달린 철제 등을 천장에 여러 개 매달아 놓고, 잠복하는 형사처럼 또는 말없는 목격자처럼 무대 위에 벌어지는 악마적인 음모와 행각들을 2층에서 내려다보도록 연출한 코러스가 인상적이다.

 

 

 

연기, 연출, 음악의 삼박자가 훌륭하게 잘 맞아떨어진 보기 드문 수작
이번 <스위니 토드>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러빗 부인 역의 이멜다 스톤튼의 열연과, 상대적으로 존재감은 약하지만 여전히 안정된 연기와 풍성한 가창력을 자랑하는 인기 스타 마이클 볼의 활약 덕에, 프리뷰 기간에도 막이 내리자마자 1층 관객 전원이 일어나 기립 박수를 치는 광경을 만들어냈다. 베테랑 연기자들의 농익은 연기와 타이밍이 정확한 대가의 연출력, 그리고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주로 손드하임의 음악적 천재성을 만끽하게 하는 무대였다. 연기, 연출, 음악의 삼박자가 훌륭하게 잘 맞아떨어진 보기 드문 수작으로, 가히 손드하임 뮤지컬의 완결판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프로덕션이다. 올해 런던에서 꼭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작품.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3호 2012년 4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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