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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JAPAN] 한번 돈키호테는 영원한 돈키호테 [NO.108]

글, 사진|장지영(국민일보 기자) 2012-09-28 4,710

흔히 일본을 상징하는 것으로 천황제, 다도, 스모, 가부키 등 여러 가지가 거론되지만 ‘장인정신’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전통을 귀중히 여기며 자신을 끊임없이 연마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장인정신은 원래 수공업 분야에서 주로 쓰였지만 이제는 스포츠와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일본 공연계에서 오랫동안 같은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존경받는 것도 특유의 장인정신과 관련이 있다. 

 


올여름 일본 공연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작품은 8월 3~25일 도쿄 제국극장에서 공연된 뮤지컬 <라만차의 사나이>다. 돈키호테 역을 맡은 마츠모토 코시로(松本幸四郞·70)가 26살이던 1969년 4월 일본 초연 공연에 출연한 이래 고희가 되는 올해 8월 19일 1,200회를 돌파하기 때문이다. 무려 44년간 같은 역할을 해온 그는 일본 뮤지컬계에서 일본 최다 기록을 스스로 경신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이 작품에는 그의 딸들도 출연해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본의 유명 배우인 작은딸 마츠 타카코가 1995년 안토니아 역으로 처음 참가해 2002년부터 지금까지 알돈자 역을 맡고 있으며 큰딸 마츠모토 키오는 2002년부터 안토니아 역으로 참가하는 동시에 연출을 맡은 아버지를 도와 조연출로 참가하고 있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마츠모토 코시로는 일본에서 너무나 유명한 배우다. 가부키 명문가인 마츠모토 가문의 적통으로 가부키뿐만 아니라 영화, TV 드라마, 연극, 뮤지컬 분야에서도 최정상에 올라있기 때문에 ‘만능 배우’로 꼽힌다. 이 뿐만 아니라 연출가와 전통 무용가로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직접 작곡하고 부른 노래로 음반을 내기도 했다. 현재 일본 예술원 회원인 그는 공연계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그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해 온 그에겐 명실공히 그를 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몇 개 있다. 예를 들어 가부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간진초(勸進帳)>의 벤케이 역을 50년에 걸쳐 1,000회 이상 했으며 연극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 역을 30년간 400회 이상 연기했다. 그리고 이번 8월 <라만차의 사나이> 공연을 마치면 돈키호테 역만 1,207회 하게 된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그는 1965년 <왕과 나>의 일본 초연 당시 왕 역으로 뮤지컬에 데뷔해 호평을 받았다. 이듬해 뮤지컬 <연인들의 은화 한 닢(원제는 ‘Half a Six Pence’)>으로 또다시 주가를 올린 그는 1969년 세 번째로 출연한 뮤지컬 <라만차의 사나이>로 일본의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다(참고로 일본의 연극상은 연극과 뮤지컬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당시 높은 평가를 받은 그는 이듬해 뉴욕 브로드웨이의 초청을 받아 마틴 벡 극장(지금의 앨 허시펠드 극장)에서 미국 배우들과 영어로 두 달간 60회 공연했다. 일본 배우가 브로드웨이의 초청으로 미국 배우들과 공연한 것은 올해 요네쿠라 료코가 <시카고>에서 록시 역을 하기 전까지는 유일했다. 그는 또 1991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왕과 나>를 6개월간 영국 배우들과 영어로 공연했다. 이후 그는 손드하임의 <스위니 토드>와 창작 뮤지컬인 <제아미>, <우타마로> 등에도 출연해 호평을 받았지만 <라만차의 사나이>로 거둔 성과에는 미치지 못한다.

일본 뮤지컬계에서 <라만차의 사나이>처럼 배우 한 명이 오랫동안 주인공을 연기해온 작품으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꼽을 수 있다. 1967년 일본에서 초연될 때 극 중 아버지 데비에 역은 54세의 모리시게 히사야였다. NHK 아나운서로 출발해 배우와 가수로 큰 인기를 끈 그는 1986년 73세까지 데비에 역을 통산 900회 공연했다.


모리시게가 건강이 나빠져 데비에 역할을 그만둔 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오랫동안 공연되지 않았다. 일본 뮤지컬 팬에게 모리시게가 나오지 않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러다가 12년 만인 1998년 다시 무대화됐을 때 코미디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50세의 니시다 도시유키가 맡았다. 그런데, 니시다는 워낙 드라마와 영화로 바쁘다보니 이 작품에 자주 출연하기 어려웠고, 2004년부터 일본 뮤지컬계의 거물 배우 이치무라 마사치카에게 데비에 역이 넘어가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70~80년대 극단 시키(四季)의 간판 배우였던 이치무라(62)는 1990년 퇴단 이후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으며 카리스마 넘치는 명배우로 손꼽힌다. 그동안 수많은 뮤지컬에 출연했는데,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엔지니어 역은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엔지니어 역을 1992년 초연 이후 올해까지도 계속 연기하고 있다. 다만 <라만차의 사나이>의 마츠모토나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모리시게처럼 원 캐스트가 아닌 더블 또는 트리플 캐스트로 출연했기 때문에 무게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뮤지컬 <라카지>의 앨빈(자자) 역을 1993년부터, 뮤지컬 <모차르트>의 레오폴드 역을 2002년부터 원 캐스트로 해오고 있다.


또 이치무라와 마찬가지로 극단 시키의 간판 배우였던 야마구치 유이치로(55)는 1996년 퇴단 이후 토호의 작품에서 주역을 많이 맡았는데, 비록 원 캐스트는 아니지만 1997년부터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 역과 2000년부터 <엘리자벳>의 토드(죽음) 역을 연기해왔다. 한국에서는 50대 토드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일본 뮤지컬 관객층이 한국보다 연령이 높은 50~60대이다 보니 지금도 젊은 배우들 못지 않게 주역으로 자주 캐스팅된다. 한마디로 일본 뮤지컬계의 ‘중년 조승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또 그는 2002년부터는 <모차르트>의 콜로레도 주교 역을 원 캐스트로 해오고 있다. 

 

이외에 뮤지컬은 아니지만 여배우 모리 미츠코(92)가 1961년 연극 <방랑기> 초연 이후 2009년까지 48년간 2,017회를 공연한 바 있다. 대역을 쓰지 않고 초연부터 48년 동안 한 사람이 계속 주연을 맡은 것은 세계 연극계에서 유례가 없다. 그는 2010년 1~2월 쟈니스 소속의 아이돌 스타 타키자와 히데아키의 <신춘혁명>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으나 건강 상태가 나빠져 같은 해 예정돼 있던 <방랑기>의 공연을 취소했다. 이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그가 최근 파킨슨병에 걸린 것이 알려져 팬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마츠모토 코시로나 모리 미츠코의 사례는 매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레퍼토리의 수를 늘리는 것을 중시하는 한국 배우들과 상반된다. 이는 장인정신을 중시하는 일본 전통 예술의 오랜 풍토와 관련이 깊다. 가부키나 노의 뛰어난 배우가 되기 위해 오랜 수련을 필요로 하는 만큼 어릴 때부터 선조의 가업을 이어온 배우들을 높이 평가한다. 이것은 선조의 이름을 그대로 잇는 일본 특유의 ‘습명(襲名)’에서 극대화된다. 마츠모토 코시로의 경우에도 가부키에서 습명을 한 경우로 엄밀히 말하면 9대 마츠모토 코시로다. 서양에서 들어온 연극이나 뮤지컬 등은 습명을 하진 않지만 배우가 오랜 시간 하나의 작품에 몰입함으로써 하나의 경지에 올라가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한 배우가 한 작품에 수십 년에 걸쳐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해당 배우에겐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다른 배우들에겐 처음부터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뮤지컬 배우들은 다양한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한국 배우들을 매우 부러워한다. <라만차의 사나이>의 경우 한국에선 조승우, 류정한, 정성화, 황정민, 홍광호 등 여러 배우가 주역을 맡았지만 일본에서 마츠모토 코시로가 독점하고 있어서 다른 배우들은 마츠모토가 세상을 뜨거나 쇠약해져 물려주기 전까진 결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8호 2012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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