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경제 사정 때문에 뮤지컬보다는 스타를 앞세운 연극이 우세했던 분위기가 점차 바뀌고 있다. 지난해 나온 <마틸다>나 <빅 피시> 같은 작품들이 그 증거다. 올해 브로드웨이의 상황은 훨씬 호전될 것 같다. 거장들의 참여로 흥미로운 신작들이 대거 등장하며 ‘별들의 전쟁’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올해 토니상도 작년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최근 불황기 동안 풍부한 자금력을 갖춘 프로듀서들의 계획하에 교과서적인 작품들이 만들어졌다면, 올해는 진보적이고 예술성도 갖춘 작품들이 많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다.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신작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믿고 듣고, 믿고 보는’ 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새 작품으로 돌아온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월 17일 프리뷰가 시작됐다. 이 작품은 원작인 소설은 물론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 주연해 영화화한 버전 역시 90년대 여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프리뷰에 앞서 이 작품의 넘버를 미리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브로드웨이에 ‘54 Below’라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우리나라로 말하면 대학로의 ‘천년동안도’ 정도 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식사와 함께 브로드웨이 빅 스타들의 쇼를 볼 수 있다. 지난해 말에도 스티븐 손드하임의 곡으로 이루어진 쇼에 현역 브로드웨이 스타들이 출동하는가 하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원조 스타, 치타 리베라의 쇼도 치러졌다. 브라운도 이곳에서 1주일간 공연을 했는데, 그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주연배우들이 새로운 넘버들을 발표했다. 곡에는 브라운 특유의 시니컬함과 예민함, 쉴 새 없이 관객을 간지럽히는 코믹함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넘버로만 짐작했을 때, 원작의 아련한 분위기와는 달리 코믹하고 빠른 연기를 요하는 장면들이 많아 호기심을 자극했다. 당시 브라운은 오프닝 날에 극장을 제일 먼저 찾는 사람에게 노래를 써주겠다는 깜짝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는 골수팬들을 위해 가끔 이런 이벤트들을 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의 이색적인 마케팅이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두 대가의 만남 <브로드웨이를 쏴라>
3월 11일 프리뷰를 시작해 4월 15일 정식 개막하는 도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다. 한국에선 ‘브로드웨이를 쏴라’라는 제목으로 익히 알려진 우디 앨런의 영화를 뮤지컬로 옮긴 작품이다. 이번 공연이 특별한 것은 우디 앨런이 직접 극작을 하고, 수잔 스트로만이 연출을 맡았다는 사실이다. 이 두 사람의 콜라보레이션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뉴욕까지 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물론 우디 앨런과 수잔 스트로만은 둘 다 각자의 색깔과 아이디어가 강한 아티스트라 우려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상업성과 예술성의 경계에서 자기만의 색으로 관객을 설득해 그 진보적인 예술을 납득시키는 데 기막힌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런 두 사람의 이색적인 만남과 재능의 결합만으로도 이 뮤지컬은 뉴욕 방문객들에게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 될 것이다.
스크린 명작의 무대화 <록키>
올해는 유독 영화를 뮤지컬로 옮긴 작품들이 첫선을 보이는 사례가 많다. 앞서 소개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브로드웨이를 쏴라>도 이에 포함된다. 1976년 11월 21일 실베스터 스탤론의 주연으로 개봉돼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의 영광을 안았던 <록키>도 뮤지컬로 관객과 만난다. 소제목인 ‘사랑이 이긴다’에서 작품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스포츠 관련 영화나 기타 창작물은 매번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으면서도 꾸준히 만들어진다. 그 이유는 ‘스포츠는 스포츠 이상의 것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굉장히 유명한 원작 영화가 무대에서 어떻게 재현될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특히 영화에서는 여러 종류의 효과적인 컷들과 미장센 등 다양한 영화 기법으로 표현됐던 록키의 내면이 무대에서 어떤 연출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인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고 걸작의 귀환 <레 미제라블>
설명이 필요없는 명작 <레 미제라블>이 지난 2006년 첫 번째 리바이벌 공연에 이어 올해 다시 공연된다. 1987년 브로드웨이 초연이 무려 16년간 지속됐던 만큼 이 작품의 내용은 이미 많은 관객들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프로덕션을 재정비해 연출이나 무대 디자인에서 변화를 주는 리바이벌 공연은 기존 관객들에게도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다. 지난해 라이선스로 이 작품을 만났던 한국의 팬들도 아마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브로드웨이의 관객들도 지금 비슷한 심정으로 이 작품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3월 1일 프리뷰가 시작하고, 같은 달 23일에 본 공연이 개막한다.
디즈니표 뮤지컬 신작 <알라딘>
한편 2011년 시애틀에서 트라이아웃을 시작했던 <알라딘>도 드디어 브로드웨이를 찾아온다. 디즈니 시어트리컬이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뮤지컬로 제작해 올리는 작품이다. 앞서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메리 포핀스> 등 디즈니 뮤지컬을 성공적으로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한 전례가 있는 만큼 <알라딘>도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다른 디즈니표 뮤지컬들처럼 원작 애니메이션에 이미 뮤지컬로서의 요소는 다 갖추고 있어 한 번은 봐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앨런 맨켄이 음악을 쓰고, 하워드 애슈먼과 팀 라이스, 채드 베귈린이 작사를 했다. 2월 26일 프리뷰 시작해, 3월 20일에 정식 오픈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얼마 전 <겨울왕국>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프로즌>도 곧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넘버는 <북 오브 몰몬>과 <애비뉴 Q>의 듀오 로버트 로페즈와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즈 부부가 작업했다. 흥행 불패 디즈니와 손을 잡은 브로드웨이 최고의 창작자들이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고품격 재즈의 종합 선물 세트 <애프터 미드나잇>
<애프터 미드나잇>은 뮤지컬 관람을 위해 뉴욕에 방문한다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작품이다. 완벽한 음악과 안무가 있음에도 이어지는 줄거리가 없어 뮤지컬보다는 레뷔 형식에 더 가까운 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극을 꼭 체크해야만 하는 이유는 재즈와 클래식, 두 부문의 그래미상을 모두 석권한 전무후무한 뮤지션 ‘윈튼 마셜리스’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재즈 앳 링컨센터 올스타’ 빅 밴드 팀이 연주를 하기 때문이다. 마셜리스는 이 작품의 프로듀서로 직접 참여했고, 스타 ‘케이디 랭’도 출연한다. 장르를 넘나들며 완벽을 보여주는 마셜리스가 자신의 악단을 데리고 미드타운으로 내려와 브로드웨이에도 손을 댄 것은 상당히 의미 있고 주목할 만한 일이다. 어쨌든 모든 음악은 재즈 스탠다드이고, 탭 등의 안무는 고전적이지만 수준이 아주 높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연주자가 세계 최고 수준의 재즈 연주자들이기 때문에, 코러스마다 각자의 기량을 뽐내는 걸 보다 보면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클럽에서 듣는 소울 넘치는 흑인의 재즈라기보다는, 철저하게 다듬어진 테크닉과 완벽한 일치감, 깔끔함이 돋보이는 백인의 재즈에 가깝다. 이 공연은 어떤 식으로든 토니상에서 이번엔 절대 외면하지 못할 작품이 될 것이다.
캐롤 킹의 일대기 <뷰티풀>
여성 싱어송라이터 캐롤 킹의 일대기를 다룬 <뷰티풀>도 주목해봐야 한다. 2012년 ‘나우 인 뉴욕’에서 <온 어 클리어 데이 유 캔 씨 포에버>를 다룰 때, 제시 뮐러는 단번에 브로드웨이 스타가 될 것이라 했던 필자의 예상은 적중했다. 해리 코닉 주니어를 압도하며 엄청난 가창력과 연기력을 선보인 괴물 여배우 제시 뮐러는 이제 완전히 브로드웨이에 자리잡았다. 그 작품으로 단번에 토니상에 노미네이트되는 기염을 토하더니, 이제 당당히 브로드웨이에서 주연을 꿰차고 있는 것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팬이라면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녀다. 그렇다고 뛰어나게 예쁘거나 전형적인 미녀도 아닌데, 무대에 섰다 하면 그 카리스마에 관객이 압도당하는, ‘아름다움을 연기하는’ 묘한 배우다. <뷰티풀>은 그녀가 전설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5호 2014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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