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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OPLE & PEOPLE] 최성신 연출가와 윤중강 평론가, 외형은 바뀌어도 본질은 영원하다 [No.121]

진행·정리|송준호 | 사진|김수홍 2013-11-08 4,477

고전은 현대의 보물창고라고 했던가.
수많은 현대의 창작물들이 고전을 비틀고 헤집어 새로운 매력을 만들어낸다.
뮤지컬만 해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나 <렌트> 같은 작품들이
셰익스피어나 푸치니에게 빚을 지고 있다. 창작뮤지컬에서는 <인당수 사랑가>가 그런 작품이다.
 『춘향전』과 『심청전』의 흥미로운 퓨전으로 2002년 초연부터 화제가 됐던 이 작품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재공연되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전통 문화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은
꽤 오랫동안 나오지 않고 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에서 전통의 재해석이란 이렇게나 어려운 것일까.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인당수 사랑가>를 완성시켜온 최성신 연출가와 우리 소리를 포함하는
모든 공연에 할 말이 많은 윤중강 국악평론가가 합석해 생각을 나눴다.

 

 

                             

 

장소협찬 | Spring come, rain fall (02-3210-1555)

 


해금 소리에서 비롯된 <인당수 사랑가>

윤중강    그동안 대학로에서 국악이나 판소리를 다룬 뮤지컬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이 작품은 처음 봤을 때부터 좀 남다른 점이 있더라고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최성신    2002년에 국립극장에서 기획한 ‘사랑 페스티벌’로 출발했어요. 저는 그때 <수궁가> 조연출을 끝냈을 때였는데, 어느 날 안숙선 명창, 조통달 명인과 우연히 함께 자리하게 됐어요. 그런데 갑자기 조 명인이 해금을 켜는데 그날따라 그 소리가 정말 좋은 거예요. 난 평소에 그 소리를 안 좋아하던 사람인데(웃음).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박새봄 작가와 의기투합해서 시작하게 됐죠. 페스티벌의 성격이 그렇다고 해도 무조건 사랑 이야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 ‘이 시대에 왜 사랑이 필요하지?’로 발전시켜서 오늘에 이르렀죠.
윤중강    처음에는 지금과는 다른 형태였죠. 인형극 부분도 비중이 더 컸던 것 같고.
최성신    당시에는 사랑을 하는 주체와 사랑을 지켜보는 주체 두 가지로 나누어서 진행했어요. 무대에서는 사랑을 직접 하는 춘향, 몽룡, 학도는 인형으로 표현했고, 나머지는 사람으로 진행했죠. 그리고 양식적으로도 차이를 두기 위해서 그 세 사람에게만 판소리를 줬죠.
윤중강    판소리를 모티프로 하는 공연들, 가령 창극에서는 대개 마무리가 해피엔딩이거든요. 그런데 <인당수 사랑가>는 약간 낭만적인 판타지로 포장하긴 했어도 결국 비극에 가까운 엔딩이에요. 대중극이라는 장르에서 이런 설정을 하려면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최성신    아주 많았죠. 그래서 지난 공연에서는 몽룡이를 죽이지 않고 살려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결국 이게 삶이냐 죽음이냐의 여부보다 선택의 문제라고 봤어요. 춘향이가 마지막에 간 데가 어딜까에 초점을 맞추면, 두 사람이 가장 행복했던 장소인 인당수였던 거죠. 죽음이라는 사실보다 만남이라는 면에 집중한다면 해피엔딩으로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윤중강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판소리의 매력이나 특징은 긴장과 이완, 비장미와 골계미라고 하는데 이 작품도 그래요. 판소리를 잘 모른다면서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을까.
최성신    그 부분은 판소리 자체가 가진 특성이 아닐까 생각해요. 관객이 잘 받아주기만 하면 되는 부분 같아요. 오히려 전 판소리 원래의 깊은 맛을 잘 못 살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에요. 극히 일부만 가져와 겉핥기 식으로 보여줄까봐요.
윤중강    아니 이 상태로도 충분히 좋아요. 사실 다른 연출가들도 그동안 판소리나 국악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기도 했는데, 너무 명분 위주에요. 이런 걸 했다는 것에 대한 과시가 보인달까. 그런 것이 거부감을 들게 해요. 확실하게 자기화돼 있다는 건 큰 장점이에요.
최성신    감사합니다. 그런 점은 오히려 원일 작곡가라는 좋은 조력자의 공인 것 같아요. 제가 배우면서 놀랐던 건, 판소리는 상황에 따라서 창자(唱者)에게 자유를 주면 전통을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그 맛을 낼 수가 있다는 거예요. 클래식이나 록 같은 서양음악은 특유의 문법이 있잖아요. 그 내용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봐도 비슷한 감동을 느낀다고 하는 걸 보면 음악은 세계 공통의 언어인 게 맞고, 우리 소리도 역시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전통에 대한 인식과 관점이 우선

윤중강    사실 <인당수 사랑가>가 나오기 전에도 연극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나>를 비롯해 전통의 재해석 작업은 꾸준히 있었죠. 그 시대에 맞는 재해석 작업은 늘 있었는데 그때는 사실 전통 자체보다는 ‘오태석’이나 ‘극단 목화’를 좋아했던 면이 컸죠. <인당수 사랑가>의 경우는 일반적인 대중, 젊은 관객들이 좋아했다는 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고. 지난 10년 동안 <인당수 사랑가>를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전통 문화를 재해석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도 많이 생겼을 것 같은데.
최성신    전통의 재해석은 ‘해석’이라는 동시대적인 언어가 붙잖아요. 동시대인들이 무엇을 보는가에 관한 ‘뷰 포인트’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만약에 우리가 『적벽가』를 재해석한다고 가정할 때, 그 웅장함을 재현하려면 일단 공연 장르로는 못 하거든요. 그건 영화로 가야지. 거기서 무엇을 봤고 그것이 우리 시대에 어떻게 소통될 것인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에 수긍한다면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통을 재해석한다는 것은 노하우의 문제라기보다 관점의 문제 같아요.
윤중강    그런 주제나 내용상의 문제 외에도 변주 방식의 문제도 있죠.
최성신    이 작품의 초연 당시 ‘태양의 서커스’가 인기였거든요. 서커스도 그 시대에 맞추려고 그렇게 탈바꿈하는 것처럼, 이 시대에 전통의 원형과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어떻게 재창조할까 고민했죠. 전 연출가니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전통에 관심만 생기면 재창조는 누구든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해요.
윤중강    난 사실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좀 다른 생각이에요. 지금이 무슨 3D나 4D 시대라고 하는데 <인당수 사랑가>를 보면 다시 2D로 돌아가는 것 같거든요. 가령 상여가 나오는 장면은 2D로 가다가 입체화되는데 이게 굉장히 뭉클한 느낌을 주더라고요. 오히려 화려함을 빼고 현대적인 변용 대신에 전통적 느낌을 강조하는 게 좋아요.
최성신    이런 형태의 작품이 계속 나오려면 고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읽고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시대에 대입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윤중강    당장 TV 드라마만 봐도 춘향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이 많죠. 남자 친구가 유학 가 있는 사이에 다른 남자가 돈과 권력으로 유혹하는 이야기도 흔하잖아요. 또 자기 입장만 생각하면서 자식을 고통스럽게 하는 바보 같은 부모들도 있고.
최성신    이 작품에서도 연출의 방점은 남은 자들에 있거든요. 사실 모든 상황이 끝나고 가장 아픈 건 변학도나 춘향 아버지잖아요. 저쪽 세계로 넘어간 춘향이나 몽룡이는 어쨌든 다시 만났으니까. 변학도는 또 하나의 아픔을 안고 살 수밖에 없죠. 후회와 반성을 하면서요.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에요. 둘 다 씁쓸함이 있어요. 제가 이 작품을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윤중강    동화라, 그건 굉장히 특별하네요. 이제까지 그런 작업을 해온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작품이 그렇게 가볍게 여겨지는 걸 원치 않았거든요. 하나의 철학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라지. 이제까지 나온 대부분의 작품이 그런 극단성을 띠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나치게 심각한 주제로 일관하거나 해학이 넘치는 마당놀이 스타일이거나. 그 사이에서 영리하게 균형 감각을 갖춘 작품은 확실히 눈에 띄지 않아요.

 

 

 

 

대중적 취향과의 타협점

윤중강    전통의 재창조와 관련해 이 작품에서 가장 큰 수확이 바로 캐릭터를 그렇게 현대적으로 잘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여기서는 변학도가 그런 인물이에요. 변학도는 늘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가로막는 못된 방해꾼 정도로만 다뤄지잖아요. 하지만 여기서 변학도는 조연도 악역도 아니거든요. 그 심리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해주는 캐릭터라 눈길이 가요.
최성신    변학도는 이 작품을 모던하게 만드는 힘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에요. 지금으로 보면 지방 군수 정도 되는데, 굉장히 강직하고 자기 세계가 뚜렷한 40대 중년의 남자죠. 그런 만큼 가장 현실적인 사랑 방식을 잘 알겠죠. 자본과 권력의 힘도 잘 활용할 줄 알겠고요.
윤중강    사실 대부분의 뮤지컬들이 보여주는 한계가 1막은 재미있고 2막은 상대적으로 지루하거나 재미없어지는 게 있는데, 이 작품은 반대로 2막부터 흥미진진해지더라고요. 2막에서 변학도가 처음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오히려 깊어지는 게 인상적이에요.
최성신    이런 소재를 다룰 때 고민이 많이 되는 부분이에요. 뮤지컬이라는 양식을 선택하는 순간 대중성을 버릴 수는 없거든요. 대중은 공연을 보러 오면서 일단 재미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래서 이 작품에서도 2막이 지루하다는 평이 충분히 나올 수 있어요. 우리에게는 그런 연출이 중요하지만 관객들은 ‘알겠는데 어쩌라고’ 이럴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 지점은 이 작품이 언제까지 계속될까의 문제와 연결된 부분이에요. 작품의 근간이 타협 가능한 부분까지 물러서다 더 이상 그게 안 되는 순간이 올 때 공연은 멈추겠죠.
윤중강    재공연할 때마다 일반 관객들은 더 늘어날 텐데 그런 문제들은 더 커지겠네요.
최성신    이번처럼 이석준이나 고영빈, 이창용 같은 뮤지컬계 스타들이 출연하면 확실히 새로운 관객들이 유입되는 효과가 있지만, 그들은 ‘뮤지컬’을 보러 오거든요. 이 극 속의 의미나 전통예술의 매력보다는 현대적인 재미에 반응하는 거죠. 그게 좀 아픈 부분이에요. 사실 그들 취향에 맞게 더 웃기고 재미있게 만들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밸런스를 맞춰야 하니까.
윤중강    그런 일부분들이 주제 의식을 해치면 안 되니까. 그 지점에서 좀 고민이 있겠군요.
최성신    기존에는 소수의 마니아들만 보러 왔다면 이제는 일반적인 뮤지컬 팬들까지 폭넓게 오시기 때문에 그런 취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 부분에 갈등이 있어요. 우리 작품은 기본적으로 고전스러운 맛을 바탕으로 태어나고 성장해온 작품이기 때문에 어디까지 이걸 받아들이고 바꿔야 할지 생각 중이에요.

 

 


옷은 바꿔 입었어도 정신은 바뀌지 말아야

최성신    전 궁금한 게, 최근에 국립창극단이 단테의 『신곡』이나 『메디아』 같은 작품을 소리를 넣어서 창극화하잖아요. 탐나는 작업이긴 하지만 창극단에서 그런 테마를 지속하는 건 뭘까 싶어요. 인류 보편의 유산을 양식적인 부분에서 창극화해서 캐릭터에게 소리를 하게 해서 자연스럽게 소리화하는 데 목적이 있는 건지. 국립창극단이야말로 전통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주로 해야 하는 곳이잖아요. 물론 전통 <심청>도 하고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창극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떤 걸까 궁금하기도 해요.
윤중강    저는 생각이 좀 다른데, 가령 외국 연주자가 피아노를 가지고 한국 민요를 연주할 때는 우리 관객들은 ‘와 멋있다’ 그래요. 그런데 우리 전통 음악 연주단이 가야금을 가지고 외국의 음악을 연주하면 ‘왜 가야금을 가지고 저런데?’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요.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 비극을 가지고 창극단도 할 수 있고, 반대로 그리스 극단이 한국의 전통 소재를 가지고 할 수 있겠죠. 소재 선택 문제는 그리 대수로운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대신 지금 국립창극단 작업의 문제는 판소리가 실종됐다는 거예요. 지금 작업에서는 작창이 아니라 작곡이 되거든요. 코러스가 살고 뭔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뭉클하게 관객에게 던져주는 뭔가가 없어요. 그 점에서 <인당수 사랑가>는 장점이 많지.
최성신    어떤 점에서요?
윤중강    외형적으로는 현대인들의 취향에 맞게 사랑 이야기도 <개그 콘서트>처럼 성 역할을 바꿔서 코믹하게 보여주지만, 궁극적으로 판소리를 들려주는 장면에선 그 본래적인 맛이 묻어 나온다는 거죠. 옷은 약간 바꿔 입었어도 정신은 바뀌지 않은 거죠. 창극단은 결정적인 순간에 ‘창극으로’ 감동을 줘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봐요.
최성신    10년 넘게 해왔지만 이 문제에선 아직도 배우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대중성과 예술성의 조율 문제랄지, 주제와 양식을 지키면서 대중적인 접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랄지.
윤중강    그래도 <인당수 사랑가>가 대학로에 영향을 미친 건 분명해요. 예전에 ‘선화공주 연애비사’라는 부제가 붙은 <밀당의 탄생>을 봤는데, 이 작품도 도창을 뒀다는 점에서 <인당수 사랑가>의 존재를 생각 안 할 수가 없었죠.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진일보한 면도 있는 게, 도창과 고수를 오가면서 멀티 역할을 하고 북으로 소통을 하는 건 인상적이더라고요. 다만 주제 의식은 기존 선화 공주의 이야기 얼개에서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게 아쉬웠어요. 그래서 <인당수 사랑가> 이후 전통을 재해석하는 작품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안 나온다는 건, 창작자들이 전통을 너무 스테레오 타입으로만 재현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에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1호 2013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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